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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쌍매당중수기(雙梅堂重修記)    
G002+AKS+KSM-XI.1904.0000-20101008.B032a_049_00312_XXX
 
분류 고문서-시문류-악장 / 교육·문화-문학·저술-기
작성시기 1904년   
형태사항 크기: 20×42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안동 법흥 고성이씨 임청각  / 현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비고 출판정보: 『고문서집성 49 -안동 법흥 고성이씨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49 / 8. 시문류 / (3) 기·서·발 / 기·서·발11 / 868 ~쪽
 
李胤의 別堂인 雙梅堂의 重修記.
 
개요
   原題는 〈雙梅堂重修記〉이다. 본 重修記의 작성연대는 1904년(光武 8)이고, 撰者는 미상이다. 다만 안동 고성이씨 출신의 인사임에는 분명하다.기문에 따르면, 李胤은 1500년 巨濟島에서 해배되어 靈山 땅을 지나다가 산수에 매료되어 이곳을 점지해 두었다가 만년에 여기에 別業을 건립하고 自號로 삼았다고 한다. 즉 쌍매당은 靈山別業의 本堂이라 할 수 있으며, 정확한 소재지는 영산 麻姑洞이다. 이후 건물이 퇴락하자 1898년(光武 2) 그의 후손 李秀珪・李庭壽 등이 宗中 사람들과 협의하여 재물을 모아 6간 규모로 중수한 다음 무려 400리 떨어진 안동으로 와서 記文을 부탁한 것이다.본 기문을 통해서는 쌍매당의 원래의 규모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규모를 조금 확장하여 6간 형태로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전에는 4-5간의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인물
   〈李胤〉 1462-未詳. 字는 子伯, 號는 雙梅堂, 본관은 고성이다.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李增의 長孫이며, 아버지는 都承旨에 추증된 李泙이다. 金宗直의 문인으로 1483년(성종 14)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여러번 斥佛疏를 올렸으며, 1486년(成宗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했다. 1498년(燕山君 4) 대사간 재임시 아우 李胄(忘軒)와 함께 戊午士禍에 연루되어 자신은 거제도로, 이주는 진도로 유배되었다. 1500년(연산군 6) 해배되었고, 1506년 중종반정 이후에는 應敎・典翰・副提學 등 중앙의 文翰職에 종사하였고, 1510년(中宗 5)에는 성절사로서 중국을 다녀왔다. 淸白吏로 이름이 높았고, 조정에 있을 때는 施政의 得失과 柳子光 등 권신의 폐해를 비판하는 일이 많았다. 佔畢齋 문하의 同門인 金馹孫・權五福 등과 교유가 깊었다. 著書로『雙梅堂逸稿』(1冊)이 전한다.
/ 작성일:200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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