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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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암 김연 신도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효로의 아들이다. 자는 자적(子迪) 또는 자유(子裕), 호는 운암(雲巖), 죽연이며, 1510년(중종 5) 생원시ㆍ진사시를 거쳐, 1519년(중종 14)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부정자(副正字)등 대소관직을 역임한 후 강원도관찰사, 경주부윤에 이르렀다. 1524년 정언으로서 김안로의 추방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뒤 지평으로 있을 때 심언광ㆍ채무택 등이 김안로를 다시 기용하려고 하자 이너적과 함께 거부하였다. 재집권한 김안로에 의해 경성통판으로 좌천되었다. 1937년 김안로가 사사되자 사간으로 기용되었다. 이듬해 탁영시에 급제,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44년 경주부윤으로 재직하였다. 저서에 <운암일기>가 있다. 그는 영남지방의 명유들과 교유하였고 그후 영남지방에 확고한 기반을 가진 사족ㆍ양반들과 통혼하며 본 가문이 안동지방에서 사족으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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