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 삶의 공간과 유물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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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 영당 들어가는 길
조선 중기의 문신 윤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윤증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8세 때 병자호란을 겪었다. 유계(兪棨),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의 3대 사문(師門)에 들어가 성리학을 기본으로 당대의 정통 유학을 수학하였다. 등과는 하지 않았으나, 대사헌·이조판서·우의정 등의 벼슬을 임명받았다. 그러나 일체 사양하였고 실제 벼슬을 지낸 적이 없었다. 40세 때 지금의 병사리에 낙향하여 강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스승 송시열과 대립된 학설과 주장을 펼쳐 노소분열(老少分裂)을 야기시켰고, 그에 따른 당쟁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상은 소론 진보세력에게 꾸준히 전수되었다.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80호로 지정되었다. 윤증이 죽은 뒤 1744년 문하에 있던 유생들이 영당과 경승제를 건립하였고, 영정을 봉안하고 춘추로 제향을 하였다. 제향일은 해마다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이다. 건물은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었으며, 많이 손상되지 않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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