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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서원
입암서원(立岩書院)은 조선 효종 8년(1657)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 권극립(權克立), 정사상(鄭四象), 손우남(孫宇男), 정사진(鄭四震) 등을 배향하고 있다. 그 후 고종 5년(1868) 대원군 때 서원이 철폐 되었고, 순종 원년에 묘우가 소실되었다. 서원은 1913년에 복원되고, 1972년에는 묘우 역시 새로 만들어졌다. 서원주변에는 일제당과 만활당이 건립되어 있으며, 일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선조 33년(1600)에 건축되어 장현광, 정사진, 손우남 등이 학문을 강론하였다. 1629년에는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가 와서 '입암가(立岩歌)' 29수와 '입암별곡(立岩別曲)'을 남기기도 하였다. 만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막돌로 3단의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초석을 놓은 후 둥근 기둥을 세운 3량가 홑처마 굴도리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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