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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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림사
장암동 수락산내에 자리한 석림사는 1676년(현종12) 신해년에 석현화상(釋賢和尙)과 그의 제자 치흠(致欽)이 석천동(현재 장암동)에 창건한 절이다. 당시 절이름은 석림암(石林庵)으로, 이 암명(庵銘)은 통진현감(通津縣監)을 지낸바 있는 서계 박세당(西溪朴世堂)선생이 지은 것이다. 이는 현존하는 문집인「서계집(西溪集)」 1집 2권과 4집 8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서계집(西溪集)에 기록된 석천동(石泉洞)은 석림사 도량의 큰 암반에'石泉洞'이라 새겨져 약 325년의 긴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그 후 서기 1676년 병진년 7월에 화주유담화상(化主裕淡和尙)이 삼소각(三笑閣)을 지었으며, 1698년(숙종24) 무인년 2월에 대홍수로 인하여 절이 유실된 것을 조가(朝家)에서 매월당(梅月堂)을 모시는 청절사(淸節祠)를 세우고 그 옆에 축원당(祝願堂)으로서 석림암(石林庵)을 복원 중수하였다. 현재 불려지는 석림사라는 절 이름은 1745년(영조 21) 을축 7월에 홍수로 유실된 절을 익명(匿名)의 스님이 복원한 것으로 이후 '석림사(石林寺)'로 개칭된 것이다. 또 석림사는 1890년 또 한차례 중수를 겪으며, 1890년경 진영각(眞影閣)을 비롯하여 1900년경 삼성각이 중수되었으며, 1903년에는 삼성각 내부의 칠성탱ㆍ독성탱ㆍ산신탱이 국태공(國太公)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그의 부인인 부대부인의 화주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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