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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서원
이 서원은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 폐출의 부당함을 죽음으로써 간언하였던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숙종 21년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한 서원이며, 숙종 23년에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노강"이라고 사액 받았다.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당시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년), 문과에 장원급제 한후 관직에 나아간 뒤 숙종 15년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중, 노량진에서 36세 나이로 세살을 떠났다. 숙종 20년에 모든 죄를 사면 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의 시호가 내려졌고,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이 건립 되었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으로 맛배지붕의 사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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