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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년 승 자운(自雲) 소지(所志)    
G002+AKS+KSM-XB.1649.4682-20101008.B003a_003_00277_XXX
 
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발급: 자운(自雲) /수취: 해남관(海南官)
작성지역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1649년 / 기축정월일   
형태사항 크기: 65.5×850.8 / 점련, 8장 / 종이 / 한자,이두
인장서명 海南縣印 13개(6×6, 적색, 정방형)
南平縣印 3개(5×5, 적색, 정방형)
關 1개(7×5, 흑색, 장방형)
서명(개) 착관:8 / 서압:8
점련자료 1647년 이생원댁 노 석경(石京) 소지(所志)
1648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51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47년 남평현감(南平縣監) 관(關)
1652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52년 승 자운(自云) 소지(所志)
1649년 승 자운(自雲) 소지(所志)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7. 소지류 / 가. 소지(입지) / 소지(입지)10 / 83 ~쪽
 
1649년(인조27) 대흥사 승(僧) 자운(自雲)이 윤경담(尹景聃) 논 도매(盜買) 건으로 분쟁 중에 관련 문서들을 올리고 침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청원하는 소지(所志).
   대흥사 스님 자운이 사들여 오랫동안 경작해 온 논을 윤경담윤급에게서 먼저 샀다고 주장하면서 송사를 일으켰다. 자운은 확실한 소유권을 가진 이생원에게서 샀으므로, 윤경담윤급에게서 논 값을 돌려받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윤경담이 애꿎은 자운을 괴롭히면서 논을 빼앗으려고 하여, 자운이 관련 문서들을 해남현감에게 제출하면서 더 이상 침해받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1649년(인조27) 1월에 스님 자운이 윤경담과의 논 소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해남현감에게 올린 문서
내용 및 특징
   大興寺自雲이 논의 소유권 문제로 尹景聃과 분쟁에 휘말리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1649년(인조27) 1월에 해남현감에게 올린 문서이다.
   1647년(인조25)南平縣李生員宅 戶奴 石京이 상전의 牌旨和會文記의 謄書公文을 가지고 와서 그 상전댁이 외가에서 몫으로 받은 海南縣 舊城防築內員 논 9마지기를 대흥사 스님 자운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논을 海南縣 南面에 사는 윤경담靈岩에 사는 尹岌에게서 사서 仁卜에게 팔았는데, 그 후 자운이 잘못 산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소지를 관아에 올렸다.
   이생원윤생원은 숙질간으로, 윤생원은 처가 소유의 미처 분재하지 못한 전답들을 사사로이 팔았고, 이생원은 서울에서 살다가 장성한 뒤 친족들이 합의하여 전답들을 골고루 분재할 때 논 9마지기를 받았다. 그리고 자운은 확실한 소유권을 가진 이생원에게서 산 것이 명백하므로, 윤경담윤급에게서 논 값을 돌려받으면 해결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경담이 애꿎은 자운을 괴롭히면서 논을 빼앗으려 들었으므로, 관련된 화회문기의 謄書公文과 소지, 買得文記 등을 관아에 제출하면서 횡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였다.
   해남현감은 1월 26일에 ‘소지의 내용이 이러하다면 윤경담의 소행이 매우 극악하니, 이후 다시 논을 차지할 계획을 세우면 죄를 다스려 처리하도록 잡아올 일이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본 문서는 여러 건의 관련 문서들과 함께 있는데, 승 자운1652년(효종3) 8월과 1월, 1651년(효종2) 8월에 해남현감에게 각각 올린 소지 3건, 1647년(인조25) 11월에 남평현감해남현감에게 보낸 , 1647년(인조25) 11월에 남평이생원댁 노 석경해남현감에게 올린 소지, 자운해남현감에게 1649년(인조27) 1월에 올린 소지 다음에 점련되어 있다. 그 뒤에 1648년(인조26) 4월에 올린 소지가 있다.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影印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3
            『古文書集成 3 : 海南尹氏篇 正書本』,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6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韓國法制史攷』, 朴秉濠, 法文社, 1983
김봉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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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興寺僧人自雲
右謹陳所志僧矣▣丁亥年南平流寓李生員宅奴石京其矣上典牌字
及一門未分田畓和會文記謄書公文持是遣文記付其上典宅外家衿得
縣地舊城防築內員斗落庫乙放賣爲白去乙僧亦依例買得耕食爲
白在果縣地南面尹景聃亦同畓庫乙靈岩尹岌前曾已買得私奴
仁卜果相換之畓以僧矣身買得是如稱云至於謀呈所志橫侵設計爲臥乎所
大槩畓主李生員▣(韶)尹生員岌果作叔姪之間以尹生員段年老之人以妻
邊未分之田畓乙私自無數放賣李生員段年少在於京中爲白有如可旣以
長成之後親族和會未分田畓乙平均分衿此畓九斗落只則李生員宅衿以
分明載錄施行爲白乎等以矣身亦旣已本主處明白買得成文耕食則上項
尹景聃亦所當盜賣處尹生員前徵價事是去乙矣身乙無勢山僧是可向入
如是非理橫侵▣(極)爲無據哛不喩畓主李生員及其奴石京等下來屢度
推尋則稱以出去回避不現爲白如可李生員主及奴石京亦上京不來則如是
中間橫侵之狀乙各別監當敎矣本主文記謄書公文及所志買得文記
相考勿侵事 嚴明行下以杜奸濫成習之弊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行縣監主 處分
己丑正月 日所志

[題辭]
所訴果如則尹景聃所爲誠極痛惡此後 如有更生冒占之計是去等治罪處置次以捉來事 卄六日

官[署押] [印]

대흥사(大興寺) 승인(僧人)1) 자운(自雲)
삼가 소지로 아뢰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해년(1647)에 남평에 임시 거주하는 이생원(李生員)댁의 사내종 석경(石京)이 그의 상전이 준 패자(牌字)와 생원댁 문중에서 미처 나누지 못했던 전답에 대한 화회문기(和會文記)2)등서공문(謄書公文)3)을 가지고 왔습니다. 위 화회문기에 기재되어 있는 그의 상전이 외가에서 물려받은 논인 해남현 옛 성 방죽 내 들판에 있는 9마지기를 팔자, 저는 의례히 사들여 농사지어먹었습니다. 그런데 현의 남면(南面)에 사는 윤경담(尹景聃)이 그 논은 일찍이 영암(靈岩) 사는 윤급(尹岌)에게 사들여서 사노(私奴) 인복(仁卜)과 맞바꾼 논인데, 제가 산 것이라 하면서 소지를 올려 빼앗을 궁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논 주인인 이생원4) 소(韶)와 윤생원 급(岌)은 숙질(叔姪)간입니다. 윤생원은 연로한 이로 상속되기 전의 처갓집 땅을 제멋대로 무수히 팔았으며, 이생원은 어려서 한양 살다가 장성한 후 친족들과 합의하여 미처 못 나눈 전답을 평균분깃(平均分衿)하였습니다.
이 9마지기 논은 이생원 댁 몫이라고 분명히 (문서에) 기록․시행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미 본 주인에게 명백하게 사들이면서 문서를 작성했고 갈아먹은 것이니, 위 윤경담이 (논을) 훔쳐 판 윤생원에게 값을 요구해야 할 일이건만, 힘없는 산승이라고 이와 같이 이치에 어긋나게 함부로 침해하니 지극히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논의 주인인 이생원과 그의 종 석경 등이 내려와 여러 번 추심할 때엔 외출했다면서 회피하고 나타나지 않다가 이생원님과 종 석경이 상경하고 오지 않으니 이처럼 중간에 함부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상을 각별히 조사하고 심문하시되 본주(本主)의 문기(文記)를 등서(謄書)한 공문(公文), 소지, 매득문기(買得文記) 내의 사연을 상고하시어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엄격하고 명백하게 명령하시어 간교하고 외람된 행실이 습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분부하여 주십시오.
행현감주(行縣監主) 처분.
기축년(1649) 정월 일 소지.

[제사] 소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윤경담(尹景聃)의 소행은 진실로 몹시 악랄하다. 차후 다시 함부로 남의 재산을 점유하려 한다면 처벌하기 위해 잡아올 일이다. 26일.

관 [서압] [인]

[주석]

1) 승인(僧人)
현재는 대개 승려라는 호칭이 일반적이나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승인(僧人)이라는 용어로 불가의 출가자들을 일컬었다. 본래 승려는 승의 무리를 지칭하는 복수명사였으므로 여기서는 당대 용어를 그대로 옮긴다.
2) 화회문기(和會文記)
재주(財主) 사망 후 상속인들이 합의하여 재산을 나누는 문서.
3) 등서공문(謄書公文)
전준(傳准) 혹은 사급입안(斜給立案)을 말한다.
4) 이생원
1647년 남평현 관(關)에는 ‘유학’으로 표기되므로 실제 생원은 아니고 양반에 대한 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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