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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년 윤진사댁(尹進士宅) 노(奴) 청일(淸一) 소지(所志)    
G002+AKS+KSM-XB.1715.4682-20101008.B003a_003_00323_001
 
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발급: 청일(淸一) /수취: 해남현(海南縣)
작성지역 전라도 해남현 현내면    / 전라남도 해남군   
작성시기 1715년 / 을미3월   
형태사항 크기: 57.3×219 / 점련, 1장 / 종이 / 한자, 이두
점련자료 1715년 약정(約正) 정(鄭) 서목(書目)
1715년 노(奴) 모언개(毛言介) 초사(招辭)
1715년 윤진사댁(尹進士宅) 윤두서(尹斗緖) 입안(立案)
소장정보 원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 현소장처 : 해남 연동 해남윤씨 녹우당  
비고 출판정보 : 『고문서집성 3 -해남윤씨편 정서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본 번역문은 2016년-2017년 한국고문서 정서·역주 및 스토리텔링 연구사업 연구결과물임.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고문서집성』03 / 7. 소지류 / 가. 소지(입지) / 소지(입지)56 / 113 ~쪽
 
1715년(숙종41) 윤진사댁 사내종 청일이 분실 문기에 대한 입지 건으로 해남현에 올린 입지신청소지
 
주제
   1715년(肅宗41) 3월에 윤 진사(尹進士) 댁의 노 청일이, 황무지의 개간∙경작권을 허여받은 상전 댁의 1573년도(宣祖6) 입안(立案)을 지난해에 분실했다고 하면서, 새 입안을 성급해줄 것을 요구하며 현감(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개간하여 그 동안 경작해온 황무지는 현산면(縣山面) 백야지(白也只)에 있는데, 동쪽의 우곡(牛谷)에서 시작하여 동북쪽의 봉비산(鳳飛山), 북쪽의 초피사(椒皮寺) 골짜기, 서북쪽의 장석곡(長石谷), 서쪽의 삼치곡(三峙谷), 서남쪽의 당산(堂山)을 거쳐 다시 우곡으로 이르는 선을 경계로 삼아 그 안쪽에 있는 땅이다. 당초의 입안은 서울에 사는 상전이 지난해에 해남으로 왕래하다가 도중에서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관(官)에서는 이 소지에 대해 사실을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제김(題音)을 면임(面任)에게 내렸고, 이에 따라 같은 해 4월, 면 약정(面約正)은 '서울과 해남으로 왕래하던 중에 분실한 것이 틀림없다'고 보고하였다. 관에서는 다시 면 약정의 보고 외에 이웃사람들의 5월 2일 자 초사(招辭)를 받고 같은 날에 입안(立案)을 발급해주었다.

용어
   제김(題音)은 개인이 제출한 청원 등에 대해 관에서 내리는 처분이나 결정∙판결이다. 제사(題辭)라고도 이른다. 초사(招辭)는 관(官)의 추문(推問) 등에 대해 답변하는 사실의 진술이다. 입안(立案)이란 관(官)에서 개인의 청원에 따라 매매(賣買)∙양도(讓渡)∙결송(決訟)∙입후(立後) 등 제반 사실을 확인(確認)하여 공증(公證)해주는 문서이다.

참고문헌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知識産業社, 1989. 法制處, 『古法典用語集』, 育志社, 1981.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所, 『韓國漢字語辭典』, 檀國大學校出版部, 1996. 장지영∙장세경, 『이두사전』, 정음사, 1983. 이희승, 『국어대사전』, 민중서림, 1986.
/ 작성일:200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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縣內居尹進士宅奴淸一
右謹陳所志矣段縣山面白也只 東自牛谷大路循山而北由鳳飛山麓 直
抵椒皮寺谷 又循山而西入長石谷 歷三峙谷口 遵海而南 包堂山繞外野
頭 還抵牛谷無主陳荒之地乙 矣上典宅亦 萬曆元䄵癸酉分 呈所志受立
案 至今五六代收用爲有如乎立案乙 矣上典主 昨年自京下來時持來
爲有如可 今始搜出 則終不得之乙仍于 或慮忘在京家是白乎可 使人搜
覓 亦終不得 其爲遠路往來時 遺失的實是白乎等以 敢此仰訴爲白去乎
後考次立旨成給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行縣監主 處分
乙未三月日 所志

(題辭) 以汝矣所訴 不可取信 詳査牒報向事 十七日縣內面任

官(押) (官印, 方6㎝ 十八個)

현내(縣內)에 사는 윤진사댁 사내종 청일(淸一)
삼가 소지를 아뢰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산면(縣山面) 백야지(白也只)의 동쪽으로는 우곡(牛谷) 큰 길로부터 산을 따라서 북쪽으로 봉비산(鳳飛山) 비탈을 거쳐 곧바로 초피사(椒皮寺) 골짜기에 이르며, 또 산을 따라 서쪽으로 장석(長石) 골짜기로 들어가 삼치(三峙) 골짜기 입구를 지나며, 바다를 따라서 남쪽으로 당산(堂山)을 둘러싸고 바깥 들머리를 에둘러서 다시 우곡에 이르는 주인 없는 진황지를 저희 상전댁이 만력 원년 계유년(1573)에 소지를 올려 입안을 받아 지금 5, 6대에 이르도록 세를 거두고 사용해 왔습니다.
이 입안을 저희 상전께서 작년에 서울에서 내려올 때 가지고 왔는데, 지금 찾아보니 끝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혹 서울 집에 있는 것을 잊었는지 염려스러워 사람을 시켜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습니다. 먼 길을 왕래할 때에 잃어버린 것이 확실하기에 감히 이렇게 우러러 호소하옵니다. 훗날 상고하기 위해 입지를 성급하여 주도록 명령해 주십시오.
행현감주(行縣監主)께서 처분하실 일입니다.
을미년(1715) 3월 일 소지

〈제사〉
네가 청원한 내용을 믿을 수 없으므로 상세히 조사하여 첩보할 일이다.
17일. 현내면 면임에게.

관 [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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