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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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조호익(芝山 曺好益, 1545-1609) 비각
강동구(江東邱)는 '강동의 언덕' 이란 뜻으로, 취원당(聚遠堂) 조광익(曺光益, 1537∼1578)과 아우인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1545~1609)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평안도 강동현(江東縣) 사람들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1575년(선조 8)에 경상도 도사 최황(崔滉)이 조호익(曺好益)에게 군적(軍籍)에 올랐으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들을 색출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조호익은 아버지를 상(喪)을 핑계로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최황은 그를 불량 토호(土豪)라는 명목으로 평안도 강동(江東)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에 조호익의 형인 조광익은 1578년(선조 11)에 귀양간 동생을 만나기 위해 평안도부사의 직책을 얻어 강동으로 갔다가 병을 얻어, 그곳에서 42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 후 밀양 오방리에서 조광익의 장사를 지내는데, 강동의 많은 선비와 백성들이 흙을 짊어지고 조문하러 와서 묘 위에 흙을 덮고 남은 흙으로 이 언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선조는 그들의 우애를 가상히 여겨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에 그 이야기를 싣도록 하고, 정문(旌門)을 내려 길이 후손의 귀감으로 삼도록 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