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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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문원공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조선 중종~명종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사림파 관료로 동방오현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주자의 주리론에 근본을 두면서 당시 성리학의 거두였던 조한보(曺漢輔)와의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을 통하여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과 이기불상잡설(理氣不相雜說)을 강조하였다. 이는 조선조 성리학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논쟁으로 평가되었으며, 그의 이우위설(理優位說)은 이후 퇴계 이황에 의해 계승 · 발전되어 영남학파 성리학의 선구가 되었다. 이 신도비는 1577년 대학자 회재 이언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학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호남의 거유(巨儒)였던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이 짓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썼다. 한편 이 신도비는 건립 당시에 옥산서원 앞 계류(溪流) 옆에 있었으나, 훼손을 막기 위하여 서원 안으로 옮겨졌다. 비의 전체 높이는 320㎝이며, 비신의 높이는 20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