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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년 정경세(鄭經世) 고신(告身) 06

자료UCI G002+AKS+KSM-XA.1625.1111-20101008.B061a_088_00082_XXX 인용(논문) URL복사
기본정보
· 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 정치·행정-임면-고신
· 작성주체
발급: 국왕:인조(國王:仁祖)
수취: 정경세(鄭經世)
· 작성지역 한성 / 서울특별시 종로구
· 작성시기 1625년 / 천계5년4월초9일   
· 형태사항 크기: 53x76 / 낱장, 1장 / 종이 / 한자
· 인장서명
· 소장정보 원소장처 : 상주 우산 진주정씨 우복 정경세 종가  / 현소장처 : 상주 우산 진주정씨 우복 정경세 종가 
· 비고 출판정보:『고문서집성 88-상주 진주정씨 우복종가편-』(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고문서집성 수록정보
88책 / 고문서 / 1. 교령류 / (3) 고신 / 고신 / 고신 / 45 ~ 쪽
안내정보
광해군이 정경세에게 내리는 교지.
상세정보

주제
천계 5년, 즉 1624년 4월 9일에 광해군이 정경세에게 겸예문관제학세자우부빈객(兼藝文館提學世子右副賓客)의 벼슬을 내리는 교지.

용어
예문관(藝文館): 고려시대에는 제찬(制撰)과 사명(詞命:임금의 말이나 명령)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개국 당시에는 태봉(泰封)의 관제(官制)를 계승하여 원봉성(元鳳省)을 두었다가 뒤에 학사원(學士院)·한림원(翰林院)으로 고쳤다. 1275년(충렬왕 1) 문한서(文翰署), 1298년 사림원(詞林院), 1308년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등으로 불러오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춘추관을 분리하여 예문관으로 하였다. 관원으로는 대제학(大提學:종2품)·제학(提學:정3품)·직제학(直提學:정4품)·응교(應敎:정5품)·공봉(供奉:정7품)·수찬(修撰:정8품)·검열(檢閱:정9품) 등을 두었다. 1356년 다시 한림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362년(공민왕 11) 예문관으로 환원되었으나 1389년(공양왕 1) 춘추관을 합하여 예문춘추관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에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칙령(勅令)과 교명(敎命)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았으며, 개국 초 고려의 관제에 따라 예문춘추관으로 합쳐졌던 것을 1401년(태종 1) 춘추관을 분리하여 예문관으로 개편하였다. 예문관은 예조(禮曹)의 동반(東班) 정3품 속아문(屬衙門)으로, 영사(領事:정1품)·대제학(정2품)·제학(종2품) 등은 모두 타관(他官)이 겸임하였으며, 직제학(정3품)도 승정원(承政院)의 도승지(都承旨)가 겸하였고, 응교(정4품)는 홍문관(弘文館)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그 밑에 봉교(奉敎:정7품)·대교(待敎:정8품) 각 2명, 검열(정9품) 4명을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하고 전문적으로 춘추관의 일을 전담하여 이들을 사관(史官), 또는 한림(翰林)이라고 하였다. 봉교 이하 8명의 사관들은 번을 갈라 왕명을 출납하는 승지와 함께 궁중에서 숙직하고, 조회(朝會)·조참(朝參)·상참(常參)·수대(輸對) 등 정례행사는 물론, 백관회의(百官會議) 기타 모든 중대회의에 참석하여 희의록을 기록, 사초(史草)를 작성하고 시정기(時政記)를 편찬하여 실록편찬(實錄編纂)의 자료로 삼았다. 예문관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경연청(經筵廳)에 병합되었다. 제학(提學): 고려 시대에, 예문춘추관 예문관 보문각 우문관 진현관에 둔 정삼품 벼슬. 대제학의 다음으로, 충선왕 3년(1331)에 사백(詞伯)을 고친 것이다. 조선 시대에, 규장각에 속한 종일품이나 정이품 벼슬 또는 예문관 홍문관에 둔 종이품 벼슬.
집필자 : 정태윤/작성일:200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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