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0151
● 옛날에 안동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1. 아주 먼 옛날 옛날 유적을 발굴하여 조사해 보면 대강은 알 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물에 잠기는 지역의 유적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조사를 통해서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지요. 안동에는 고인돌이 천개 정도가 있출처 : 유교넷 -
60152
2. 놋다리밟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지애밟기ㆍ동다리밟기ㆍ기와밟기라고도 하는 부녀자 중심의 놀이로서 마을을 동부와 서부로 갈라 음력 정월 15일과 1출처 : 유교넷 -
60153
● 안동이라는 이름을 만든 삼태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안동은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강했던 곳이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동에서 배출된 인물은 조선시대 이전에도 이름난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삼태사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삼태사는 권행ㆍ김선평ㆍ장길 세 사람을 가리킵니다.출처 : 유교넷 -
60154
1. 섬 같은 마을 하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HXMLPIC ID="001"></HXMLPIC> 1) 마을로 가는 길 하회라는 말은 강물이 돌아 흐른다는 뜻입니다. 하회마을은 이름그대로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안고 돌아 흐르는 곳입니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오고 나가는 길이 하나뿐입니다. 하회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길출처 : 유교넷 -
60155
2. 하회마을의 옛 이야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풍산류씨들이 처음 하회마을에 들어와 집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기둥을 세우면 허물어지고 우물을 파면 나쁜 것들이 섞여 나왔습니다.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집 짓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에게 신출처 : 유교넷 -
60156
3. 하회마을에 있는 큰 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연꽃모양으로 되어 있는 하회는 옛날부터 가운데로 큰 길이 나 있었습니다. 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둘로 나누어진 것 같이 보입니다. 이 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남촌, 반대쪽을 북촌이라 부릅니다. 하회는 마을이 클 때는 남ㆍ북촌을 합해 200집이 넘는 마을이었습니출처 : 유교넷 -
60157
4. 하회마을의 민속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동석하회가 지닌 아름다운 자연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연과 함께 놀 수 있는 민속놀이를 만들게 했습니다. 전래 민속놀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회별신굿탈놀이와 하회선유줄불놀이입니다. 그밖에 세시풍속놀이로는 삼월 삼짇날의 화전놀이, 단오 행사, 7월의 풋굿, 복샘 등이 있습출처 : 유교넷 -
60158
책을 펴내면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최근 들어 안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문화의 고향이라는 점이 강조되어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와 전통으로 가득 찬 유교문화의 고장이라는 말은 안동의 특성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유교문화가 무엇인지, 유교문화가 어째서 중요한지, 지금에출처 : 유교넷 -
60159
1) 선안동 김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우리 나라 제일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씨다. 김씨는 가락국의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 계열과 신라의 알지(閼智)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 계열로 대별된다. 김씨들은 문헌상으로는 600여 개가 넘는 본이 있으며 시조가 뚜렷한 것도 100여 본이나 되는데출처 : 유교넷 -
60160
2) 후안동 김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 중 다른 하나는 구안동김씨와 구별하기 위하여 ‘후안동김씨’ 또는 ‘신안동김씨’로 불리는 ‘신김(新金)’ 혹은 ‘후김(後金)’인데 고려 개국공신 대광태사(大匡太師) 김선평(金宣平, 901~?)을 시조로 한다. 흔히 안동김씨라고 하면 이 후김을출처 : 유교넷 -
60161
3) 장동 김씨의 서울 정착과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가) 말머리 조선 후기 세도 정치를 했던 안동 김씨들을 우리는 장동김씨 또는 안동김씨 장동파라고 부른다. 안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로 60여년간 권력을 향유하였다고 하여 마치 안동사람들 모두가 세도정치로 권세를 누렸던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출처 : 유교넷 -
60162
4) 가계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安東 金氏> <HXMLPIC ID="001"></HXMLPIC> <安東 金氏 上系圖> <HXMLPIC ID="002"></HXMLPIC> <上洛 金氏 系圖> <HXMLPIC ID="003"></HXMLPIC>출처 : 유교넷 -
60163
1. 등곡당 학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1) 학조의 출생과 출가 학조는 안동 풍천면 소산리 안동김씨 비안공(比安公) 김삼근(金三近, 1419~1465)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성부판관을 지낸 김계권(金係權)이며 보백당 김계행(寶百堂 金係行, 김삼근의 둘째 아들)과는 숙질간이다. 학조는 양반출처 : 유교넷 -
60164
2. 김영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한성판관 계권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천 권씨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권맹손의 딸님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배움에 부지런하여 경사(經史)에 능통하였으며 모든 행실이 경학에 준거하여 행하므로 절도가 있었다. 용궁ㆍ비안ㆍ지례 현감을 지냈으며 함천부사를 거쳐출처 : 유교넷 -
60165
3. 김영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한성판관 김계권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서울에 생활할 때 한양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말이 적고 몸가짐이 의젓하였다. 13세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따라 고향인 소산에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는 팔척장신의 훤칠한 키에 수염이출처 : 유교넷 -
60166
4. 김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초명(初名)은 몽천(夢天)이고, 자는 선오(善吾) 호는 삼당(三塘)이다. 성종6년(1457)에 안동 소산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영수(永銖)이고 어머니는 강릉 김씨로 현감 박(博)의 딸이다. 어머니 김씨부인이 임신할 때 꿈에 눈부신 해와 별을 보았다고 해출처 : 유교넷 -
60167
5. 김상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문서 김번의 맏아들인 생해(生海)는 네 명의 아들을 두는데 큰아들 대효(大孝)는 아들이 없고 셋째인 극효(克孝)는 아들이 일곱이다. 그 가운데 첫째가 상용이며 넷째가 바로 그 유명한 청음 상헌이다. 청음은 세 살 때 후사가 없는 큰아버지 대효에게 양자로 들어가 문서출처 : 유교넷 -
60168
6. 청음 김상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청음 김상헌은 일생을 두고 청나라에 대적하여 조선의 위상을 새우려했던 인물이다. 그의 삶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몸으로 맞서며 안동 선비의 기개를 보였던 인물이라는 짧은 글로는 요약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선조 3년(1570)에 서울에서 안동 김씨 집안의 도정출처 : 유교넷 -
60169
7. 김계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자는 경렴, 호는 구재. 기보의 현손으로, 광해군 13년 1621년 소산에서 태어 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네댓 살 적에 서당에 가서 글 읽는 소리를 엿듣고 수 천자를 외었으며, 여섯 살 때 설경을 노래했다. 雪積玄厓白 눈이 쌓이매 현애(검은 언덕)가 희고출처 : 유교넷 -
60170
8. 김덕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어려서부터 기질이 온순하고 효성과 우애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이름처럼 덕이 있고 순박함 그대로였다. 부친 이을(履乙)은 일찍이 눈병으로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집안 일은 그의 어머니가 근근히 꾸려나가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아버지가 문밖을 나서지 못하기 때문출처 : 유교넷 -
60171
9. 안동의 항일투사 김시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나의 섭생은 오직 독립운동일 뿐 <HXMLPIC ID="001"></HXMLPIC>안동을 ‘독립운동사의 성지’라고 말한 분이 있다. 그 분은 ‘성지’라는 표현을 다음 네 가지 이유를 들어 말하였다. 첫째, 안동은 최초의 독립운동 발상지이다. 둘째, 안동은 전출처 : 유교넷 -
60172
1. 소산의 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1) 삼소재(三素齋, 민속자료 제66호) 선안동(先安東), 상락김씨(上洛金氏) 시조의 18대손 김용추(金用秋, 1651~1711)가 처가인 진성이씨의 재력으로 1674년경에 지었다고 하는 집이다. 당호는 용추의 5대손으로 정조 때 통정대부 및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출처 : 유교넷 -
60173
2. 소산의 봉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1) 소산봉수의 현황 가) 자연환경 <HXMLPIC ID="001"></HXMLPIC>소산봉수는 정산(鼎山)이라고 하는 산 정상(289.9m)에서 동쪽으로 150m 지점에 정상보다 약 20여m 낮은 봉우리(269m)를 둘러싸고 150m정도 석축이 형성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60174
3. 안교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1) 역(驛) 역(驛)이란 전명(傳命) 뿐만 아니라 변경의 긴급한 군사정보 및 사신왕래에 따른 접대와 공문서 전달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이며 또한 전명체제(傳命體制)의 하나이다. 조운(漕運)이 수로를 통하여 지방의 세곡(稅穀) 등을 운반하는 해상조출처 : 유교넷 -
60175
1. 소산의 의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안동시 풍산읍에 있는 소산은 산 이름이다. 4차선으로 확장된 34번 국도를 따라서 안동에서 예천쪽으로 줄곧 가면 풍산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풍산 이정표에서 우회전하여 옛길로 들어서서 풍산읍에 이르면 읍내로 들어가는 길과 왼쪽으로 읍을 우회하는 길이 있다. 우회도로의출처 : 유교넷 -
60176
1) 마을문학 또는 동네문학의 재인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고을마다 자기 지역 언어가 있다. 방언(方言)이라고 한다. 방언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층위로 존재한다. 마을과 고을 고유의 언어가 공동체마다 전승되는 것이 방언의 실상이다. 방언은 언어문화의 소중한 유산이다. 따라서 방언을 널리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언어학의 중요한출처 : 유교넷 -
60177
2) 소산마을의 구비문학 조사와 설화의 구연목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나는 안동지역의 구비문학을 조사하면서 1981년 7월 29일 소산동 삼귀정에서 이 마을 할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설화 23편과 민요 5편을 수집했다. 이 가운데 설화는 녹음이 되지 않았거나 녹음할 상황이 아니어서 정상적으로 녹음된 15편만 보고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개출처 : 유교넷 -
60178
3) 소산마을의 전설과 민담 자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마을에서 수집한 설화 자료를 수집한 차례대로 정리해 옮기면 아래와 같다. 이 자료들은 원래 제보자들이 말한 그대로 원문 채록되어 『한국구비문학대계』 7-9 안동시군편 <HXMLSUP ID="001"></HXMLSUP>에 보고된 것들이다. 분량이 많아서 구연상황을출처 : 유교넷 -
60179
4) 세 유형의 음담패설에 갈무리된 여성주의다운 의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설화 전승에서 흥미로운 것은 음담패설의 내용이다. 예사 이야기조차 설화는 잡성스러운 것이라고 기피하던 어른들이 서로 친교가 형성되자 자발적으로 노골적인 육담을 구연했다. 가장 대표적인 설화가 ‘곽씨 성의 유래’, ‘엉뚱하게 당한 과부 며느리와 시어머니’, 그리고 ‘귀출처 : 유교넷 -
60180
5) 소산마을에서 전승되는 민요의 양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마을에서 수집된 민요는 5편이다. 마을 굿패의 상쇠이자 앞소리꾼인 유장학 어른이 모두 부른 자료들이다. 마을 토박이지만 동성집단에 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는 신분차별을 받았다. 마을 동장이 이 분을 삼귀정으로 모시고 와서 민요를 들을 수 있었는데, 평소에 삼귀정에출처 : 유교넷 -
60181
6) 이야기와 민요를 통한 마을사와 마을문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이야기판과 달리 소리판에서는 소리꾼이 정해져 있었다. 유장학과 같은 상일꾼이 아니면 민요를 부르기 어렵다. 삼귀정의 어른들은 듣기만 했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소리판에서는 좌장을 하던 유장학 어른도 이야기판에는 아예 끼어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설화와 민요의 갈래에출처 : 유교넷 -
60182
2. 소산동 가신신앙 조사보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집안에 신체 혹은 신앙대상을 모시고, 신앙행위가 집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현상을 가신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집안에 직능체적인 신을 모시는 종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신앙형태를 가신신앙, 가정신앙, 가족신앙 등으로 명명한다. 각 명칭마다 그 특징출처 : 유교넷 -
60183
1) 성 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가) 성주와 대주, 그리고 집 소산동의 윤순호(여, 64세)는 “성주는 이집 주인이다. 제주이다. 제일 주인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성주는 곧 집을 창조한 신 혹은 집의 제일 어른을 상징하는 신체인 것이다. 성주는 대주가 바뀌거나 집을 수리할 경우에 새롭게 멘다, 말출처 : 유교넷 -
60184
2) 삼 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삼신은 아이를 낳고 건강을 지키는 가신이다. 소산동의 경우 삼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웃대어른인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들이 외지로 나가있어 대부분 삼신을 없앴다. 안방에 주로 모시고 있고, 신체도 바가지였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삼신도 새롭게 모시기도 하는데출처 : 유교넷 -
60185
3) 용단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용단지 신앙은 소산마을에서 중요한 가신신앙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전승이 중단되었다. 용단지 신앙은 생산과 관련된 신앙으로 보여지지만 용단지를 처음 모시는 것은 역시 무당이 의례를 주관하고 이후 집안의 안어른(여성)이 세시적인 의례를 진행하였다출처 : 유교넷 -
60186
4) 농사물 떠놓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2월 초하루가 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안 중 깨끗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동쪽이나 북쪽으로 상을 차려서 물을 떠 둔다. 보통 뒤안에 떠 놓는 이 물을 농사물이라고 하며 일찍 떠 놓으면 복 받는다고 하여 경쟁하듯 일찍 일어나 떠 둔다. 잘하는 집은 백편을 쪄가지고 복을출처 : 유교넷 -
60187
5) 소산동 가신신앙에 대한 조사자 의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동 가신신앙은 서두에 말한 바와 같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전승력이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집 고치면서 없앴어요”, “자질구레한 것 엉가이도(상당히) 많았는데 인제는 귀찮아서 못해요”, “옛날에는 어예 했는동”, “시어마이 때 많이 했는데, 눈치가 보출처 : 유교넷 -
60188
1) 풍물로 엮어가는 양반골 동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동에서는 신명나는 풍물과 함께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여 마을굿을 벌인다. 이러한 소산동의 마을굿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소산동이 안동지역에서 가지는 위상이 자못 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산동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지만, 특히 종가와 동제를출처 : 유교넷 -
60189
2) 양반은 갓쓰고 상민은 삼색띠 매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양반들의 적극적인 마을굿 참여는 소산동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보통 양반골에서 벌어지는 마을굿은 양반들의 후원 속에서 상민이 주체가 되어 연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지 양반들이 직접 참여하는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독축고사형의 유교식 제의도 아닌, 걸판지게 풍출처 : 유교넷 -
60190
3) 양반들의 상제당과 상민들의 하제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동에서 섬기는 당은 상당인 산신당(주산당, 주산어른)과 하당인 골맥이당(수구맥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원적인 당구성은 한국농촌사회에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상당과 하당을 모시는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구별짓는 관행은 그리 흔하지 않다. 상제당 제관은 대부분 안동 김씨가출처 : 유교넷 -
60191
4) 마을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동 마을굿에서 또 하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은 ‘열심히 달리는’데 있다. 풍물을 치면서 마을 전체를 감싸고 뛰어 다니는 마을굿 형식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들이 이렇게 뛰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무오신(歌舞娛神)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성을 들이려출처 : 유교넷 -
60192
5) 대동을 향한 소산동 마을굿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동에서는 15일 밤의 동고사가 끝나면 다음날 아침 음복과 함께 동회를 연다. 이때에는 마을의 한해 주요 사업 보고와 결산이 이루어지며, 이장이 임기가 끝나면 이장선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이번 해에 장정 1인당 노임을 얼마나 줄 것인지도 협의했다고 한다. 이렇게출처 : 유교넷 -
60193
4. 제 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1) 제례(祭禮)의 역사적 변천 <HXMLSUP ID="011"></HXMLSUP> 제례의 유래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함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원시 시대에서의 제례의 의의는 자기의 조상에게 보답하는 원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본능에서 초능력자에게 기출처 : 유교넷 -
60194
1) 소산지룡(素山之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은 안동시 풍산읍에 있다. 이 산이 주는 느낌은 우선 매우 덕스럽고 넉넉하여 마치 어머니의 모습 같다. 조용히 앉아서 품안의 자식을 그윽이 바라보는 모성이 느껴진다. 풍산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어떤 산도 소산이 주는 느낌을 가진 산은 없다. 오직 소산만이 그렇출처 : 유교넷 -
60195
2) 소산지혈(素山之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느낌이 좋은 산, 지기가 충만한 산은 자신의 기운을 어느 특정한 곳에 갈무리한다. 그 지점이 혈(穴)이다. 그러므로 풍수의 최종 목적은 혈을 찾는데 있다. 그러면 소산은 혈을 맺었을까? 그렇다. 분명하게 혈을 맺었다. 그렇다면 혈처는 어디인가? 풍수에서는 일정한 지출처 : 유교넷 -
60196
3) 소산지사(素山之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소산리는 마을의 주산인 소산이 사람을 위하여 품을 열었다. 마을의 오른쪽은 오른팔 격인 백호가 가볍게 감싸안았고 왼쪽은 왼팔인 청룡이 길게 뻗어내려 마을의 앞을 감싸서 위호하고 있다. 소산 마을은 풍수학상 보국이 꽉 짜여진 명당이다. 보국의 짜임 여부는 주로 사격(砂출처 : 유교넷 -
60197
4) 소산지수(素山之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학가산 산록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모여서 풍산읍 만운리(晩雲里) 앞의 만운못에서 쉬다가 매곡리(梅谷里)를 지나 소산의 앞으로 흘러오는데 이 물이 매곡천(梅谷川)이다. 매곡천이 소산에 이르면 북쪽에서 흘러오는 자그마한 시내와 만나게 된다. 편의상 이 시내를 소산천이라출처 : 유교넷 -
60198
3. 소산의 나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문화연구회양소당 툇마루에 붉은 감이 줄지어 늘어져 해바라기를 할 때면 농사 갈무리가 막바지에 이른다. 추수를 끝낸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삼구정 정자는 느티나무 단풍과 소나무의 창창하므로 한껏 가을의 정취를 돋군다. 마을 뒤 정산(井山)에서 좌측으로 내려온 소요산(素燿山) 산줄출처 : 유교넷 -
60199
화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HXMLPIC ID="004"></HXMLPIC> <HXMLPIC ID="005"></HXMLP출처 : 유교넷 -
60200
2. 광산김씨의 안동 입향 유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광산 김씨는 원래 전라도 광산(光山, 현 광주)의 토성(土姓)으로 고려왕조 후기에 중앙으로 진출하여 벼슬길에 오르면서 명문으로 발전한 왕경(王京)에 기반을 둔 가문이었는데, 많은 계파 중에서 김영리(金英利)의 판군기감사공파(判軍器監事公派)와 김천리(金天利)의 밀직부사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