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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효로의예안 입향과 오천 칠군자의 배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예안에 정착한 광산김씨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의 입향조는 풍산현 도양에 살다가 성종 연간에 예안으로 옮겨 온 농수(聾叟) 김효로(金孝盧, 1454년~1534년)로 보고 있다. 밀직부사공파는 일반적으로 예안파라 부르고 있다. 보통 광산김씨 밀직부사공파의 외내시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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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많은 인물을 배출한 군자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오천 칠군자의 뒤를 이어 임진왜란 당시 안동 열읍(列邑)의 의병장으로 활약한 근시재 김해(1555년~1593년)와 탁월한 절의 선비인 계암 김령(1577년~1641년)과 같은 우뚝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근시재 김해는 어릴 때부터 성현의 가르침에 뜻을 두고 도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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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효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의 입향조이며, 세종에서 세조 사이에 음성현감을 지낸 김회(金淮)의 아들로 자(子)는 순경(舜卿)이고, 호(號)는 농수(聾叟) 또는 춘포(春圃)이다. 26세(1480년, 성종11)때에 소과(小科)인 생원시(生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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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 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조선 초기의 명신이다. 예안현 오천리(지금의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김효로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자유(子由), 호는 운암(雲巖)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힘써 문예가 일찍이 이루어졌다. 현감 김만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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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 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자는 유지(綏之)요, 호는 탁청정(濯淸亭)이다. 성균생원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된 김효로(金孝盧)의 둘째 아들이며, 운암(雲巖) 김연(金緣)의 아우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로 재령군수 지(持)의 따님이다. 성종 신해년(1491년)에 예안 오천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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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부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자는 언우(彦遇)요, 호는 후조당(後彫堂)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관찰사를 지낸 운암(雲巖) 김연(金緣)이며, 어머니는 창령 조씨로 중종11년에 오천에서 태어났다. 약관에 이미 문예에 성취하였는데 1537년(중종32) 사마시에 합격하고 태학에 있으면서 동료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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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부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학자이다. 예안현 오천리(지금의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탁청정(濯淸亭) 김유(金綏)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백영(伯榮), 호는 산남(山南)이다. 일찍이 퇴계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그는 부친의 성격이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한 기질을 닮아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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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부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운암과 창녕조씨(昌寧曺氏) 진사 치당(致唐)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1525년(중종20)에 군자리에서 태어났다. 후조당 부필(富弼)의 동생으로 자(字)는 신중(愼仲)이며 호는 읍청정(挹淸亭)이다. 어려서부터 선대의 정기를 타고나서 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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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리 군자마을 주변 유적지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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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부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자(字)는 가행(可行)이며 호는 양정당(養正堂)으로 유(綏)의 아들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8년(명종13)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23년(계미년, 중종18)에 태어나서 1566년(병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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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부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성균관 생원 증 이조참판 탁청정(濯淸亭) 유(綏)와 순천김씨 증 호조참판(戶曹參判) 수홍(粹洪)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1531(중종26)년에 셋째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인(富仁)과 부신(富信)의 동생이다. 자(字)는 돈서(惇敍)이며 호(號)는 설월당(雪月堂)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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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 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김기는 1547년(명종2) 아버지 부인(富仁)과 영천이씨 농암 이현보의 따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지숙(止叔)이며 호는 북애(北厓)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고 성품이 단아하고 의젓하였으며 글읽기를 좋아하여 15세에는 이미 퇴계의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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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 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아버지 읍청정(挹淸亭) 부의(富儀)와 안동권씨 정랑(正郞) 습(習)의 따님을 어머니로 1555년(명종10)에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달원(達遠)이며 호는 근시재(近始齋)이다. 태어난 지 7일만에 산고(産苦)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큰아버지댁인 후조당에서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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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 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설월당(雪月堂) 부륜(富倫)과 어머니는 평산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1577년(선조10)에 서울 주자동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이다. 공은 명석한 성품을 타고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어른들에게 물어서 행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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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 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자(字)는 계평(季平)이며 호는 극재(克齋)이다. 부신(富信)의 아들로 1591년 사마시에 합격였다. 1563년(계해년, 명종18)에 태어나서 1617년(정사년, 광해군9)에 55세를 일기로 몰하였다. 학행으로 사림(士林)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삼도(三道)의 사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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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광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아버지는 근시재(近始齋) 해(垓)와 진성이씨로 퇴계의 조카인 재(宰)의 딸을 어머니로 1580년(선조13) 8월에 예안면 군자리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이지(以志)이며 호는 매원(梅園)이다. 8세에 소학을 배웠으며 총명함이 대단하였다. 한 번은 할머니가 손자가 귀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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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금응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526년(중종21)에 태어나서 1589년(선조22)에 향년 64세를 일기로 몰하였다.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자(字)는 협지(夾之)이며 호는 일휴당(日休堂)이다. 재(榟)의 아들로 이황(李滉)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당시 학우들이 모두 공경하고 두렵게 여겼으며 유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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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금응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540년(중종35)에 태어나서 1616년(광해군9)에 77세를 일기로 몰하였다.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자(字)는 훈지(壎之)이며 호는 면진재(勉進齋)이다. 응협의 아우로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뜻을 세우고 학문탐구에 분발하여 학문적 깊이가 정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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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외내에서 군자리까지”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생활공동체인 마을을 형성하여 왔다.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소중한 삶의 터전을 일구어온 마을에는 수 많은 이야기와 문화와 역사가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일명 ‘외내’라고도 하는 군자마을은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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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천 군자리 문화재 유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약 20Km쯤 가다 보면 길가 오른쪽에 군자리라고 새긴 돌을 보게 된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약 20채 가량의 옛날 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이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20여 대에 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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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재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이 건물은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시조인 농수 김효로와 그의 증손 근시재 김해를 모시는 재사이다. 재사는 사당에 모신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낼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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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조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산 28-1번지에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227호(1991.8.22)인 이 건물은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선조 때에 후조당 김부필이 처음 건립했다고 한다. <HXMLPIC ID="001"></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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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청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건물은 읍청정 김부의가 지은 정자로 150cm 정도의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건물이다. <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양쪽으로 온돌방이 있는데, 오른쪽 방은 1칸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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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청정 종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이 건물은 탁청정 김유가 1541년(중종36)에 세운 집이다. 조선후기에 화재를 당해서 중건하였다. 원래의 위치는 산간의 계곡물이 서에서 나와 동으로 흐르는 배산임수의 자리였으며 정침과 정자의 방향은 조금 차이를 두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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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청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중요민속자료 제226호(1991.8.22)인 이 건물은 탁청정 김유가 1544년(중종39)에 세운 것으로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김유의 호에서 유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 건물이다. 오른쪽에 4칸 규모로 3면이 트인 마루가 있고, 왼쪽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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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산남 김부인이 건축한 정자로 지금은 낙운정으로 불리고 있다. 탁청정의 왼편에 서쪽을 보고 세워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청판에 풍혈이 있는 계자각 난간을 ㄷ자형으로 달았다. 가운데 2칸을 온돌방으로 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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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락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이 건물은 영남 의병대장을 지냈던 근시재 김해의 아들 김광계가 1672년(현종13)에 세운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2칸은 마루이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만들었다. 잡석으로 만든 기단 위에 네모난 주춧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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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정면 4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약 1m 높이의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추를 놓고 각주를 세웠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놓았고 좌우의 2칸은 방으로 꾸몄다.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만들었다. <HXMLPIC ID="001"></HXM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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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이 건물은 설월당 김부륜이 만든 정자로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건물이다. 읍청정과 같이 오른쪽 방은 1칸이며, 왼쪽 방은 1칸 반의 크기이다.가운데 2칸의통마루를 두었으며,앞으로는 툇마루가 있다. 정자는 1m 높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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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암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침락정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잡석기단 위에 세워진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의 건물로 2칸을 마루로 하였고, 왼편에 온돌방을 두었다. 앞면 툇마루에는 계자각 난간을 둘렀으며, 둥근기둥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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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애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건물이다. 오른편에 1칸짜리온돌방을 두었고, 왼편에는 1칸 반짜리 온돌방을 두었다. 가운데 2칸은 마루로만들었다.마루전체에는‘ㄷ’자형태로계자각난간을달았다.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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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문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문서들은 안동 예안의 광산김씨 예안파(光山金氏禮安派)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물 제1018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산 김씨는 광주의 토성(土姓) 가운데 제일의 족세(族勢)를 자랑하는 가문으로, 고려 후기에 중앙의 관료로 진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김연(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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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소장 전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전적(典籍)들은 안동 예안의 광산김씨 예안파(光山金氏禮安派)의 종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인데, 현재 종가에는 조선왕조 전기 이래의 각종 전적 2,500여 책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중 13종 61점이 보물 제10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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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후조당 유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유물은 김연(金緣, 1487년~1544년)의 맏아들인 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 1516년~1577년)의 후예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으로 유형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부필의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자(字)는 언우(彦遇)이며 호는 후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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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설월당종택 소장 전적 및 고문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책과 문서들은 광산김씨 예안파 내 설월당공파의 소장 고문서 및 전적이다. 현재 가문에는 ‘설월당유고’ 계암일록을 비롯하여 1,500여 점의 전적 및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고문서의 내용은 교지(敎旨), 교첩(敎牒), 유지(有志), 분재기(分財記), 호구단자(戶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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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운잡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형태 및 내용 이 책은 1500년대 초에 저술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調理書)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전체가 표지를 포함해서 25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9.5cm, 세로 25.5cm이다. 표지에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 적혀 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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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례(冠禮)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관례(冠禮)는 남자의 나이 15세에서 20세가 되면 상투를 틀어 올리고 갓이나 초립(草笠)을 쓰는 것으로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는 의례이다. 이때부터 자(字)를 지어 주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여 호칭에서부터 어른 대접을 하게 된다. 여자아이는 머리를 쪽지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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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혼례(婚禮)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전통혼례는 성인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보편적 의미 뿐만 아니라 성(姓)이 다른 두 집안이 결합하여 조상의 혈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의례로 여겨졌다. 위로는 조상을 섬기고, 아래로는 자녀를 낳아서 기르고 주위 친척과 화목해야 할 새로운 임무를 지게 되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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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천 유적지(군자리)를 찾아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 가는 국도를 따라 약 20km 정도 가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오천 유적지’라는 안내판과 자연석에 ‘군자리(君子里)’라고 새긴 표석이 연이어 서 있고, 여기서 오른 쪽으로 300m 정도 들어가면 20여 채의 고가들이 들어앉은 안배된 유적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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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례(喪禮)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상례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례이자, 가장 마지막으로 거치는 의례이다. 상례의 시작은 임종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서에 의하면 초종(初終)에는 임종(臨終)에 대한 준비, 초혼(招魂), 시체 거두기(收屍), 상례 동안의 역할 분담, 관(棺) 준비, 부고(訃告) 등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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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례(祭禮)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제례는 조상의 기일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행하는 제의이다. 전통적으로 관혼상제라 하여 중요시되어 온 의례 가운데 하나였다. 일생의례라기보다는 조상숭배의 일환으로 조상신께 바치는 일종의 전통 종교의식이라 해도 좋겠다. 군자리에서는 지금도 각종 제례의 전통이 잘 지켜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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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판공 김효로와 근시재 김해의 부조지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조지위(不祧之位)란 높은 벼슬을 하여 큰 공훈이 있거나 학덕을 많이 쌓아 사회에 기여한 사람에게 유림의 동의를 얻어 불천위처럼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영구히 지내는 것을 이른다. 이 두 분의 제사는 광산 김씨 예안파만의 의례가 아니라 지방 유림에 의해 행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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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문정공 김령 선생 불천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큰 공훈이 있는 사람은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신위를 불천위(不遷之位)라 한다. 불천위에는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와 유림에서 정한 유림불천위가 있다. 김령의 불천위는 지방 유림들의 천거에 의해 지금까지 모셔지고 있다. 김령의 제삿날은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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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시풍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집안 어른들께 올리는 정초 세배 새해 첫날인 설날은 가장 먼저 세배를 올린다. 종가에서는 사당에 문을 열고 참배하고 난 다음 세배를 하고 사당이 없는 경우는 장손집에 모여 웃어른들에게 세배부터 드리고 차례를 올리게 된다. 이때 설날 음식과 술을 함께 올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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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른 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윷놀이(개별놀이, 문중윷놀이) 윷놀이는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놀이로 안동지방에 정초에 많이 놀았던 놀이다. 남성들이 사랑방에서 종경도와 같이 조용하게 윷놀이를 대신하여 놀았다면 여성들은 안방에서 자녀들과 함께 윷놀이를 즐겼다. 때에 따라 작은 밤윷을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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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들 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동태(굴렁쇠) 굴리기 굴렁쇠 굴리기는 주로 남자 아이들이 놀았던 놀이이다. 10살에서 15살 정도의 남자 아이들이 마을을 돌면서 놀던 놀이로 평형감각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굴렁쇠는 혼자서 굴리지만 여럿이 함께 굴리기도 한다. 또 넓은 공터에서도 많이 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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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날의 외내 마을과 군자리의 미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세칭 우리말로 ‘외내’라 불려온 역사와 전통이 고동치던 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의 세거지로서, 예전에는 이곳 유적지에서 2km 정도 아래에 있었다. 영남 땅 북쪽 낙동강 유역에 역사의 고장 안동이 있고, 지금은 안동의 한 지역에 불과하지만 옛적에는 독립된 현이었던 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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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천 마을의 인구 현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오천 군자리에 대한 상세한 인구 통계는 남아 있지 않다. 1968년에 발간된 안동군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예안면의 인구가 2,061가구에 12,984명이었다. 당시의 통계 자료는 마을별 현황을 싣고 있지 않았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행정구역의 개편이 이루어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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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산김씨 득성(得姓)의 유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광산김씨의 시조는 신라 왕자 ‘흥광(興光)’이다. 시조 흥광은 당시 신라가 어지러워 장차 국난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경주를 떠나, 광주 서일동(西一洞)에 자리를 옮겨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으며 살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선조의 세거지(世居地)인 ‘광산(光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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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범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본 책자는 ‘安東의 家訓’이라 하였다. 2. 전통이 지배하던 시대의 家庭에서 이루어진 말씀이 文字로 정착되고 그것이 文集 등 자료로 전해진 것으로 한정하여 수록했다. 지역적으로는 현 행정단위인 안동시•군으로 하고 특별한 경우는 이 지역에서 거주한 경우도 포함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