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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0251

    7. 後彫堂 金富弼(1516~157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富 弼(1516, 중종11~1577, 선조10) 光山人. 자는 彦遇. 호는 後彫堂이다. 雲巖 綠의 아들이다. 퇴계 선생의 문인으로 선생이 그의 논거가 的確함을 칭탄하였다. 사마출신으로서 인종이 승하한 후에 벼슬에 나가지 않고 뜰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어 ‘後彫堂’
    출처 : 유교넷
  • 60252

    8. 栢潭 具鳳齡(1526~158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具 鳳 齡(1526, 중종31~1586, 선조19) 綾城人. 자는 景瑞. 호는 栢潭이다. 吏曹參判에 증직된 謙의 子요, 퇴계 선생의 문인으로 義理를 講論하여 그 眞髓를 터득하였다. 생원과 문과 급제로 호당을 거쳐 관은 이조참판에 이르니 사람들이 ‘唐虞의 人物이요, 漢
    출처 : 유교넷
  • 60253

    9. 雪月堂 金富倫(1531~1598)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富倫 (1531, 중종26~1598, 선조31) 光山人. 자는 惇敍, 호는 雪月堂이다. 濯淸亭 綏의 子요 퇴계 선생의 문인이다. 『啓蒙傳疑』와 『小學』을 선생에게 물어서 크게 칭찬을 받았다. 명종 10년(1555) 司馬試에 합격하고 參奉과 同福縣監을 거쳐 牧使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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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54

    10. 松巖 權好文(1532~158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權好文 (1532, 중종27~1587, 선조20) 安東人. 자는 章仲. 호는 松巖이며 교수 稑의 子요, 판서 靷의 后이다. 15세에 퇴계 선생의 문인이 되었으며 18세에 친상을 당하여 廬墓 3년을 하였고 30세되는 명종 16년(1561)에 司馬試에 응하여 2등으로
    출처 : 유교넷
  • 60255

    11. 臨淵齋 裵三益(1534~1588)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裵三益 (1534, 중종29~1588, 선조 21) 興海人. 자는 汝友, 호는 臨淵齋이다. 柏竹堂 尙志의 七代孫 天錫의 아들이다. 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나아가 크게 칭찬을 받았는데 선생이 ‘臨淵齋桃木村’이라는 六大字와 ‘敬齋箴’. ‘夙興夜寐箴’을 써주었다. 명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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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56

    12. 鶴峯 金誠一(1538~159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誠一(1538, 중종33~1593, 선조26) 義城人. 자는 士純, 호는 鶴峯이니 靑溪 璡의 四子요, 퇴계 선생의 문인이다. 퇴계선생께서 行高學精함을 칭찬하여 心學淵源을 屛銘 으로 써 주었다. 27세 때 진사에 합격하고 선조 1년 (1568)31세로 增廣文科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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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57

    13. 謙菴 柳雲龍(1539~160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雲龍 (1539, 중종34~1601, 선조 34) 豊山人. 자는應見, 호는 謙菴 이다. 立嚴 仲영의 子이다. 처음으로 퇴계선생의 문하에 올라 여러 제자가 따라 왔다. 퇴계 선생이 임존 前日에 ‘孔聖猶箴擇里仁 曾云文會輔成仁’이라는 詩를 지어주어 학문에 힘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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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58

    14. 西厓 柳成龍(1542~160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 成 龍 (1542, 중종37~1607, 선조40) 豊山人. 자는 而見 호는 西厓로 立巖 仲郢의 자요, 謙菴 雲龍의 弟이다. 퇴계 선생의 문인으로 날때부터 瑩粹하여 선생께서 ‘이 아이는 하늘이 낸 아이이다’라고 稱歎하였다. 講明踐履로 선생의 淵源正脈이 되었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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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59

    15. 芝軒 鄭士誠(1545~160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鄭 士 誠 (1545, 인종1 ~ 1607, 선조41) 淸州人. 자는 子明, 호는 芝軒이다. 竹軒 枓의 子요. 퇴계 선생의 문인이다. 선생께서 箴銘을 써서 주었다. 薦參奉으로 官은 縣監이다. 임진왜란 때 太祖影幀을 받들고 亂이 평정된 뒤 奉安하였다. 문집2책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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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0

    16. 北厓 金圻(1547~160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圻 (1547, 명종2 ~ 1603, 선조36) 光山人. 자는 止叔, 호는 北厓로 山南 金富仁의 아들이요, 聾巖 李賢輔의 外孫子 이다. 仲兄 九峯公과 함께 퇴계의 문하에 나아가 性理書를 배웠다. 冠禮 때에는 퇴계 선생이 字를 지어주었다. 임진왜란 때는 從弟인 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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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1

    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本 文化院에서는 수년간의 자료조사와 번역 그리고 윤문, 교정 등 여러 어려운 과정을 두 선생께 의뢰하여 비로을 비로소 금번에 「安東의 家訓」이란 소책자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새삼 그 감회를 이기지 못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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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2

    17. 玉峯 權偉(1552~161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權 暐 (1552, 명종7 ~ 1616, 인조4) 安東人. 자는 叔晦. 호는 玉峯으로 高麗 朝의 禮儀判書 靷의 后요. 先員 審行의 子이다. 鶴峯 金誠一• 惟一齋 金彦璣• 月川 趙穆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약관에 東堂試 別試에 합격하였고 선조 34년(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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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3

    18. 悠然堂 金大賢(1553~160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大 賢 (1553, 명종8~1602, 선조35) 豊山人, 자는 希之, 호는 悠然堂이다. 潛庵 義貞의 孫이요, 퇴계 선생의 문인이다. 官은 縣監이요, 氣度가 渾厚하고 학문이 淵深하여 다섯 아들이 등과하여 吏參을 제수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鄕兵을 모아 按集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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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4

    19. 琴易堂 裵龍吉(1556~160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裵 龍 吉 (1556, 명종11~1607, 광해군1) 興海人, 자는 明瑞, 호는 琴易堂이다. 臨淵齋 三益의 아들이요, 鶴峯과 西厓의 문인이다. 文章으로서 ‘鳳凰千仞氣象’이 있어 자주 直疏를 올렸다. 선조 18년 진사, 선조 35년(1602)에 문과에 급제했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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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5

    20. 雲川 金涌(1557~162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涌 (1577, 명종12~ 1620, 광해군12) 義城人. 자는 道源, 호는 雲川이다. 龜峯 守一의 子로 一直 龜尾에서 태어났다. 儀表가 준수하고 총명하여 學問에 精進함으로 祖父 璡으로부터 傳해오는 寶劒을 수상하였다. 鶴峯에게 受業하여 선조 23년(1590)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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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6

    21. 湖陽 權益昌(1562~1645)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權 益 昌 (1562, 명종17~ 1645, 인조23) 安東人. 자는 茂卿, 호는 湖陽이며 成均館學論를 지낸 城谷 宣의 아들이다. 鶴峯 金誠一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배움에 篤實하고 經書와 性理學에도 깊이 通達하였다. 鶴巖書院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이 있다. 石溪 李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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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7

    22. 敬堂 張興孝(1564~163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張 興 孝 (1564, 명종19~1633, 인조11) 安東人. 자는 行原, 호는 敬堂이다. 太師 貞弼의 后요, 彭壽의 아들이며 鶴峯과 西厓의 門人이다. 타고난 바탕이 純粹하여 心學을 傳受받았으며 科擧에는 응시하지 않았고 學問과 行誼로 인조때 參奉에 추천되었으나 직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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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8

    23. 開湖 金是柱(1575~161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是 柱 (1575, 선조8~ 1617, 광해군9) 義城人. 자는 而立, 호는 開湖이다. 靑溪 璡의 曾孫이며 雲川 涌의 長子이다. 35세에 司馬試에 壯元으로 합격하고 4년 뒤 문과에 급제하여 承政院注書를 거쳐 兵曹佐郞이 되었다. 문집이 있다. <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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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69

    24. 敬窩 金烋(1597~1628)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烋 (1597, 선조20~ 1628, 인조16) 義城人. 자는 謙可, 호는 敬窩 是楨의 子요, 雲川 涌의 孫이며 栢巖 金玏륵의 外孫이다. 당당한 의표로 기상과 재주가 뛰어났다. 敬菴 盧景任과 族軒 張顯光의 門人이다. 인조5년 司馬試에 합격하였다. 우리나라의 散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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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0

    25. 瓢隱 金是榲(1598~1669)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是 榲 (1598, 선조21~ 1669, 현종10) 義城人. 자는 以承, 호는 瓢隱으로 藥峯 克一의 손자요, 大朴 澈의 아들이다. 安東府使 光陵參奉에 추천했으나 나가지 않고 병자호란 뒤에 出仕를 단념하고 臥龍山 밑 陶淵 위에 臥龍草堂을 짓고 40년 동안을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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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1

    26. 拙庵 金學逵(1618~167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學 逵 (1618, 광해군 10~1671, 현종12) 義城人. 자는 天衢, 호는 拙庵. 雲巖 明一의 후손이다. 효성과 우애가 독실한 處士였다. <HXMLPIC ID="001"></HXMLPIC> 常戒諸子曰 執虛如執盁 臨財無苟得 出典 拙庵集 항상 자제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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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2

    서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원래 家訓이란 祖先이 그의 자손들에게 훈계를 남겨놓은 一家의 敎誡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家訓’ 또는 ‘庭訓’이라고도 한다. 가훈의 유래는 인류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확실한 문헌자료는 없으나 서책으로 전해진 것으로는 북부 北齊시대 顔之推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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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3

    27. 芝村 金邦杰(1623~1695)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邦 杰 (1623, 인조1~1695, 숙종21) 義城人. 자는 士與, 호는 芝村이다. 靑溪 璡의 玄孫으로 川前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父親인 瓢隱의 가르침을 받아 행동거지가 고결하고 세상의 名利에 초연했다. 현종 1년(1660) 文科에 及第하여 典籍. 監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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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4

    28. 乖厓 柳榰(1626~170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 榰 (1626, 인조4 ~ 1701, 숙종27) 全州人. 자는 重吾, 호는 乖厓로 希潛의 子요, 從兄 百拙庵의 門人이다. 효종 5년(1654) 式年文科에 壯元으로 급제하여 慶州府尹을 지냈다. 孝誠이 至極했고 官職生活에 淸白하여 구하러 오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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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5

    29. 葛菴 李玄逸(1627~170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玄 逸 (1627, 인조5~1704, 숙종30) 載寧人. 자는 翼升, 호는 葛菴이다. 石溪 李時明의 아들이다. 퇴계 선생의 학통을 계승한 巨儒이다. 30세때 慈懿大妃의 服喪問題로 尤菴 宋時烈을 論駁하는 상소문을 지어 儒林의 重望을 받았다. 숙종 즉위년에 遺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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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6

    30. 錦翁 金學培(1628~167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學 培 (1628, 正祖6~1673, 현종14) 義城人. 자는 天休, 호는 錦翁이다. 雲巖 明一의 후예로 豁翁의 아들이다. 瓢隱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효종 2년(1651) 생원시를 거쳐 현종 4년(1663)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 • 전적 • 좌랑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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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7

    31. 恒齋 李嵩逸(1631~1698)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嵩 逸 (1631, 인조9~ 1698, 숙종24) 載寧人. 자는 應中, 호는 恒齋로 石溪 李時明의 아들이며 葛菴 李玄逸의 季氏로 學德이 뛰어나 士林의 推重을 받았다. 문집6권 3책이 있다. <HXMLPIC ID="001"></HXMLPIC> <H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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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8

    32. 密菴 李栽(1657~173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栽 (1657, 효종8~1730, 영조6) 載寧人. 자는 幼材, 호는 密菴이다. 葛菴 李玄逸의 아들로 벼슬은 主簿에 이르렀다. 숙종 39년(1713) 『朱書講錄利補』를 지어 安東의 虎溪書院에서 간행했다. 문집이 있다. <HXMLPIC ID="001"></H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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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79

    33. 顧齋 李楞(1669~173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楞 (1669, 현종10~1734, 영조10) 載寧人. 자는 君直, 호는 顧齋로 石溪 李時明의 손자요, 平齋 李隆逸의 셋째 아들이다. 안동 墨洞에 집을 짓고 학문에 힘쓰니 원근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歸鹿 趙顯命이 경상도 감사로 부임하여 顧齋의 聲望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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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0

    34. 伊湖 金世鏞(1673~174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世 鏞 (1673, 현종14~1742, 영조18) 義城人. 자는 嗚宇, 호는 伊湖로 錦翁 金學培의 아들이다. 1700년에 適庵公의 명으로 葛菴 李玄逸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에 힘썼다. 1721년 스승의 신원을 상소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못했고, 1723년 겨울 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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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1

    35. 無窩 權舜經(1676~174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權 舜 經 (1676, 숙종2~1744, 영조20) 安東人. 자는 聖則, 호는 無窩로 是昌의 子이다. 어려서부터 學問에 전념하여 숙종 39년(1713) 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後進 양성에 힘썼다. 編書에 『喪祭輯略』이 있고 『龍川聯稿』에 글이 실려 있다. 密菴 李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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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2

    36. 遠臺 李榘(1681~176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榘 (1681, 숙종7~1761, 영조37) 眞城人. 자는 大方, 호는 遠臺로 퇴계 선생의 5世孫이요, 葛峯 克哲의 子이다. 문을 닫고 앉아 선조의 글을 즐겨 읽으며 名利를 뜬 구름같이 여겼다. 향년 81세로 졸하니 1794년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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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3

    1. 易東 禹倬(1263~134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禹 倬 (1263, 원종4~1342, 충혜왕3) 丹陽人 자는 天章, 호는 白雲堂 또는 易東으로 晦軒 安裕의 문인이다 『周易』이 東方에 전래되었을 때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月餘동안 연구하여 해득하였다한다. 선비로서 忠宣王의 失德을 忠鍊하였다. 官은 國子祭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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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4

    37. 栢峯 李起三(1683~175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起 三 (1683, 숙종9~1756, 영조32) 眞城人. 자는 文翁, 호는 栢峯으로 李廷英의 아들이다. 逋軒 權先生에게 글을 배워 德性이 簡重하고 廉潔로 自修했다. <HXMLPIC ID="001"></HXMLPIC> 늘 子弟들에게 ‘報本 追遠하는 일은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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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5

    38. 霽山 金聖鐔(1684~174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聖 鐸 (1684, 숙종10~1747, 영조23) 義城人. 자는 振伯. 호는 霽山이다. 藥峯 克一의 후손이요, 瓢隱의 曾孫이며 葛菴 李玄逸의 문인이다. 歸鹿 趙顯命의 薦으로 御前에서 講論하고 遺逸로 단성현감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영조 11년(1735) 增光文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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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6

    39. 陽坡 柳觀鉉(1692~176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 觀 鉉 (1692년, 숙종18~1764, 영조40) 全州人. 자는 用賓, 호는 陽坡로 慵窩의 弟이다. 영조 11년 (1735) 增廣文科에 及第하여 官은 형조참의를 지냈다. 外職에 있을 때 牧民官으로 善政을 베풀어 『牧民心書』에도 治績이 나타나 있다. 鄕里에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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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7

    40. 三山 柳正源(1702~176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 正 源 (1702, 숙종28~1761, 영조37) 全州人. 자는 淳伯, 호는 三山으로 錫龜의 아들이다. 先員試를 거쳐 영조11년(1735) 增廣文科에 乙科로 급제하여 官은 大司諫을 지냈다. 經筵에 入侍하여 莊獻世子에게 進講했다.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善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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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8

    41. 李守元(1703~178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守 元 (1703, 숙종29~1780, 정조4) 眞城人. 자는 善長으로, 퇴계 선생의 6世孫이며 遠臺處士의 아들이다. 이조참판에 중직되었다. <HXMLPIC ID="001"></HXMLPIC> 敎子孫曰 吾儒家文學行檢 本非兩伴物事 一有不足 得無傀吾家人乎 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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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89

    42. 九思堂 金樂行(1708~176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樂 行 (1708, 숙종34~1766, 영조42) 義城人. 자는 艮夫, 호는 九思堂이다. 霽山 聖鐸의 아들이다. 密菴 李栽의 문하에 있었으며 大山 李象靖과 契誼가 매우 긴밀하였다. 일찍이 朱子의 ‘愛人之理說’에 대해 끝내 서로 합치되지 못하였는데 배우는 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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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90

    43. 大山 李象靖(1711~178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象 靖 (1711, 숙종37 ~ 1781, 정조5) 韓山人. 자는 景文, 호는 大山이다. 睡隱 弘祚의 玄孫이요, 密菴 李栽의 門人으로 퇴계 선생의 학문을 講明하여 儒林宗師가 되었다. 영조 10년(1734) 문과에 급제하고 官은 예조참의다. 『退溪書節要』.『敬齋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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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91

    44. 芝巖 李祥奎(1714~178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祥 奎 (1714, 숙종40~1784, 정조8) 永川人. 자는 而晦, 호는 芝巖으로 良齋 李德弘의 8세손이다. 筆法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斯學之大 聖賢迭興 昭示其方 切問近思 明辦篤行 孝諸是本 誠敬斯程 出典 芝巖集 학문의 大要는 성현이 번걸아 태어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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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92

    45. 蘆厓 柳道遠(1721~179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 道 源 (1721, 경종1~1791, 정조15) 全州人. 자는 叔文, 호는 蘆厓다. 慵窩 升鉉의 子요, 大山 李象靖의 문인이다. 글 재주가 뛰어나 13세에 이미 百韻詩를 지를 정도였다. 오로지 道學에 뜻을 두어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進士로 參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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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293

    46. 雨皐 金道行(1728~181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 道 行 (1728, 영조4~1812, 순조12) 義城人. 자는 中立, 호는 雨皐로 正鐸의 아들이다. 伯父인 霽山 金聖鐸에게 受學하였으며 그가 光陽으로 流配된 후에 從兄 九思堂 金樂行에게 受學하여 經史를 깊이 연구했다. 영조 41년(1765) 司馬試에 합격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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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孝靖公 李貞幹(1360~1439)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貞 軒 (1360, 공민왕9~1439, 세종21) 金義人.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字 는 固夫, 원종공신 丘直의 맏아들. 음직으로 벼슬에 나아가 내외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세종때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러 사임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노모 봉양에 힘썼다. <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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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龍谷 李程涥(1764~184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程 淳 (1764, 영조40~1844, 헌종10) 眞城人. 자는 景伯. 호는 龍谷으로 퇴계선생의 9世孫이요, 형조참판을 지낸 仕隱 李龜雲의 아들이다. 순조 14년에 생원 • 진사시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아산현감 겸 홍주진관 병마절도위에 이르렀다. 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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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方谷 柳洛文(1766~180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 洛 文 (1766, 영조42~1807, 순조7) 全州人. 자는 景範, 호는 方谷으로, 月湖堂 世源의 손자이고 泰休의 둘째아들이다. 東巖에게 글을 배워 ‘爲己之學’에 힘썼다. 부친상을 나고서는 그 묘 아래에다 집을 짓고 벽에다 ‘守素衡門 對越聖經’이라는 八字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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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霞溪 李家淳(1768~184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 家 淳 (1768, 영조44~1844, 헌종 10) 眞城人. 자는 學源, 호는 霞溪로 퇴계 선생의 9世孫이다. 성균에서 수학할 때 正祖의 총애를 받았으며 참봉으로서 1813년 중관문과에 급제하여 1831년 정언 • 수찬 • 장령 • 응교 • 교리 등의 역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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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近齋 徐有洛(1770~1834)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徐 有 洛 (1770, 영조46~1834, 순조34) 大丘人. 자는 景濂, 호는 近齋며, 藥峯의 渻의 后孫이다. 沈潛切問하고 居敬涵養하였다. 문집이 있다. <HXMLPIC ID="001"></HXMLPIC> <pre> 戒酒色 주색을 멀리하라. 節飮食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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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定齋 柳致明(1777~186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柳致明(1777, 정조1~1861, 철종12) 全州人. 자는 誠伯, 허는 定齋러 陽坡 觀鉉의 玄孫이요, 寒坪 晦文의 아들이다. 損齋 南漢朝의 문인으로 퇴계 선생의 ‘淵源嫡傳’이라 칭한다. 大山 李象靖의 학문을 講明하여 後進을 啓蒙하였다. 순조 5년(1805) 增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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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農窩 權得錘(1788~186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權 得 錘 (1788, 정조12~1860, 철종11) 安東人. 자는 汝衡, 호는 農窩로 龍巒 權紀의 후손이다. 龜窩와 면庵의 문인으로 재능이 뛰어나고 學行이 높았으며 문집 3책이 있다. <HXMLPIC ID="001"></HXMLPIC> <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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