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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舟津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주진리는 낙동강 가의 나루터가 되므로 배나드리, 배나들, 또는 주진(舟津)이라 하였다. 행정구역상 안동군 동후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왜정초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노천리와 임북면의 박곡리와 예안군 읍내면의 천전동 일부를 병합하여 주진동(리)이 되고, 19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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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川前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고려 공민왕 때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최초로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지며, 임하면의 내앞〔川前〕마을처럼 마을 앞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으므로 내앞 또는 천전(川前), 천전동이라 하였다. 행정구역상 예안군 읍내면 지역에 속하였으나 왜정초인 1914년 행정구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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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台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예안면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뒤에 태봉(胎峯)이 있으므로 이름을 탯골, 또는 태곡(台谷), 태동(台洞)이라 부른다. 예안읍지인 선성지(宣城誌) 서문에서 ‘...송(宋)나라 대중(大中), 천성(天聖) 연간인 현종대(顯宗代)에는 길주(吉州; 옛 안동)에 속했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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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龍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지역은 안동부(安東府)의 동쪽과 북쪽에 위치해 있어서 부동(府東)과 부북(府北)이라 불렀으며 구한말 광무(光武) 10년(1906)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동선면(東先面), 북선면(北先面)을 두었다가,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선면 14개리, 동후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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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佳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가구리는 와룡면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5km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HXMLPIC ID="001"></HXMLPIC>와룡산이 대치하고 서쪽으로 진봉산(振鳳山)의 봉우리와 계곡이 첩첩이 쌓여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구한말 안동시 동선면의 지역으로서 가구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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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加流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가류리는 구한말 안동군 동후면에 속한 지역으로 낙동강이 갈쿠리(갈고리)처럼 되어 흘러가므로 붙여진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과 대부분의 마을이 호수로 변하였다. 이 마을은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안동군 가류동이 되었으며, 1934년에는 안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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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佳野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가야리는 구한말 안동군 동선면의 지역으로서 개실, 계실, 가야촌이라 하였는데,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눌곡, 석산을 병합하여 가야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최근에는 안동시군 통폐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가야리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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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甘厓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영가지에는 전민(田民)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였으며, 감메촌(甘亇村)이라 표기하였다. 구한말 북선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가마형국이므로 가마골, 가마촌(加麻村), 부곡(釜谷), 감이촌(甘爾村), 감애(甘厓)라 하였는데,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감애동, 외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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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羅所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예부터 안동부(安東府) 동(東, 1710), 안동부 동후(東後, 1786), 안동부 동후면(東後面, 1832) 나소곡리(羅所谷里)‧미남리(美南里)‧요촌리(蓼村里), 관찰부(觀察府, 1895) 동후면 나소곡리‧미남리‧요촌리, 안동군(安東郡, 1896) 동후면 나소곡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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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道谷理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영가지에는 부의 동쪽 25리에 있으며 와룡산의 동편 기슭, 낙동강 서편 가에 두 골짜기 사이에 있으며, 사직(司直) 이복원(李復元) 공이 선영을 위해 재사를 세웠다고 하였다. 도곡리는 구한말 안동군 동후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돗질, 도질, 도질질이라 하였으며, 왜정초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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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泰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원래 소산리는 금산촌이라 했다. 영가지의 기록에 의하면 “금산촌은 현의 서편 5리에 위치한다. 앞에 큰 들을 놓고 땅이 기름져 온갖 곡식이 잘 된다.(金山村 在縣西五里許 南臨大野 土地沃饒 百穀皆宜)”고 적고 있다. 금산촌은 소가 누운 형국이라 하여 쇠미 또는 금산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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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山野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산야리는 구한말 안동군 동선면에 속해있었으나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물야동, 산동과 동후면의 구접리, 우곡리를 병합하여, 산동과 물야의 이름을 따서 산야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는데 안동댐으로 말미암아 수몰지구가 되었으며, 199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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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西枝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서지리는 안동시에서 북쪽으로 4km의 지점에 있는 마을로 구한말에 안동군 북선면 지역에 속한 지역이다. 서가재, 또는 서가현이라 하였는데 변하여 서가지, 서지라 하였으며,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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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西峴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서현리는 구한말에 안동군 북선면의 지역으로 서티재 밑이 되므로 서티, 서현, 서현촌이라 하였는데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으로 대동리, 거인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서현동(리)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최근에는 안동시군 통폐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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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烏川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오천리는 구한말 예안군 읍내면 지역으로서 외내, 오천이라 하였는데, 왜정초인 1914년 <HXMLPIC ID="001"></HXMLPIC>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양동 일부와 안동군 북선면의 외감애동 일부와 같은 군 동후면의 나소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천동(리)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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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伊上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구한말 안동군 북선면(北先面)에 속한 마을로 왜정초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우리, 황새골을 병합하여, 이우리의 윗쪽이 되므로 이상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는 시군통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이상리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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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伊下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하리는 구한말 안동군 북선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로동, 왕상곡, 율미곡, 미월, 서지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이우리 아래쪽이 되므로 이하동(리)라 하여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최근에는 시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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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浙江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절강리는 구한말 안동군 동후면에 속한 지역으로 낙동강이 마을을 휘돌아서 흘러가는 풍광이 수려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보고 중국의 절강성(浙江省)과 같다하여 절강, 또는 절강촌(浙江村)이라고 칭하였다하며, 또 골이 깊어 옛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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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周溪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구한말에 안동군 동선면에 속하였으나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두골, 원강이, 인두루, 가야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주계리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는데, 이는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과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선생을 모신 주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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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周下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주하리는 구한말에 안동군 북선면의 지역으로서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동, 노송정, 죽전동, 산리동, 신건곡을 병합하여 주하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최근에는 안동시군 통폐합에 따라 안동시에 속하게 되었다. 주하리는 현재 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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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中佳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구한말 안동군 동선면(東先面)의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흥, 장사리, 가장리, 성남골, 세곡, 무학과 부내면의 율세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구들의 중앙이 되므로 중가구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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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水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수리는 안동군 서선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상동, 중동, 하동과 풍현내면의 마애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수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안동시‧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 풍산읍에 수리로 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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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池內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지내리는 구한말 안동군 동선면의 지역으로서 큰 못 안쪽이 되므로 못안, 또는 지내(池內), 변하여 모산이라 하였는데, 조선시대 때 약포(藥圃) 정탁(鄭琢),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등이 생장한 유서 깊은 곳이다.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수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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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台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태리는 구한말 안동군 북선면에 속한 지역으로 태골, 탯골, 태곡이라 하였는데, 왜정초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암동 일부와 동선면 일부와 동선면의 하가구동 일부를 병합하여 태동(리)이라 하여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으며, 최근에는 시군 통폐합에 따라 안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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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直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일직면은 면적이 84.58㎢이고 인구는 4,486명인데 안동시의 남부에 위치해 있고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면이다. 원래 안동부에 딸린 일직현으로 1914년에 일직면이라 개칭했다. 행정리로는 운산, 구미, 구천, 망호, 원, 광연, 명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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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光淵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리, 안망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HXMLPIC ID="001"></HXMLPIC>단촌면의 유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광연리라 한다. ◇ 고양터‧괭이테‧광연리 이 마을은 고려 현감이 살던 터가 있어 고양터, 괭이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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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龜尾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구미‧안귀미‧귀미 이 마을은 산이 둘러있고 물이 켜 안은 듯 하고 거북과 뱀이 모인 듯 하여 구미라 하였다고 영가지에 실려 있다. 또 한편으로는 미천이 굽이쳐 흐르므로 구비라 하던 것이 변하여 구미라고 하게 되었다 한다. ◦ 신감산(神感山):마을의 중간에 있는 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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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九川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원래 일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보리리, 원호리, 구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천리라 했다. ◇ 바랭이‧바룡‧팔룡‧구천 이 마을에서 용을 현몽하여 꿈을 꾸고는 거듭 여덟의 형제를 낳아 8형제 모두가 등과를 했다고 팔용이란 이름이 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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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菊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약 180년전 하국곡에서 이조참판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주변의 산세가 국화꽃을 닮았다 하여 국곡이란 이름이 주어졌으나 국싯골로도 불리어 진다. ◇ 상국곡 이 마을은 국싯골 위쪽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상국곡이라 일컫는데 안마와 거릿마가 있다. ◦ 모상재:상국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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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望湖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본래 일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호리, 안망실, 지실, 성남, 노래곡을 병합하여 안망실과 소호리의 이름을 따서 망호리라 한다. ◇ 소호리(蘇湖里) <HXMLPIC ID="001"></HXMLPIC> 이 마을은 고려 말 소시랑(蘇侍郞)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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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明津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리, 덕리와 광연리 평팔리의 각 일부와 의성군 단촌면의 망진리를 병합하여 명리와 망진의 이름을 따서 명진리라 한다. ◇ 더붓골‧대복골‧도복골‧덕동(德洞)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마을로 옛날에는 마을 주위에 대나무 밭이 많았으므로 대밭골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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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松里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현마‧현촌(縣村) 이 마을은 일직현(一直縣)의 소재지였으므로 현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현마 또는 현촌이라고도 부른다. ◦ 됫골:현마 뒤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뒷재:현마 뒷산에 있는 밭이다. ◦ 앞냇들:현마 앞에 있는 들이다. ◦ 하나께:현마 동쪽에 있는 밭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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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嘉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수곡리는 안동군 서선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부, 군, 면 통폐합에 따라 증수동, 탄곡리, 상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증수의 수 자와 탄곡의 곡 자를 따서 수곡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안동시‧군이 통합됨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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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龍角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지형이 용의 뿔처럼 생겼으므로 용뿌리, 용각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탑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각리라 한다. ◇ 상용각(上龍角) 이 마을은 용각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상용각이라 한다. ◦ 살구나무재:용각머리에서 의성군 안평면으로 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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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雲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운산리, 소호리, 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운산리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운산역(雲山驛)이 있었고 현재는 일직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경찰지서, 우체국, 초등학교, 시장 등이 있다. ◇ 굴티‧구르티‧구티‧운산(雲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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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院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원골‧원리‧원곡(院谷) 조선시대에 원(院) 집에서 행인들의 편의를 제공했다고 하여 원곡, 원리, 원곡이라 칭했으며 지금은 두 개의 마을로 되어 있어 안쪽에 있는 마을을 안원골, 바깥쪽의 마을을 거리원골이라 일컫는다. ◦ 구장터:원곡 북동쪽에 있는 장터인데 구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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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遠湖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머무리‧멈물‧원호(遠湖) <HXMLPIC ID="001"></HXMLPIC> 높은 산이 사방으로 애워 쌌으며 물이 멀다하여 멈물 또는 머무리라 하다가 변하여 원호가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호리라 한다. 조선(朝鮮)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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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造塔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조탑‧탑골‧탑마‧탑곡‧조탑동(造塔洞) 고려말에 일직현에 속하게 되었고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 고창군(古昌郡) 남단 표지로 칠층전탑을 세웠다 하여 조탑리로 불리어진다. ◦ 안동조탑동5층전탑:이 탑은 보물 제57호 이고 돌로 만든 기단 위에 벽돌로 쌓은 탑신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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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坪八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별마을‧성곡‧성읍‧평팔리 옛날 성읍(星邑)이 있었으므로 별마을 또는 성곡(星谷)‧성읍이라 하였던 것이 변하여 평팔리로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전곡(薪田谷)‧계곡(桂谷)‧검무곡(劒舞谷)‧환당곡(丸堂谷)‧사기점(沙器店)을 병합하여 평팔리가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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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東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임동면은 안동시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 청송군 진보면, 영양군 입암면과 접하고 남으로는 안동시 길안면, 북으로는 안동시 예안면과 접하고 있다. 임동면의 면적은 151.07㎢이며 인구는 2,924명이고 1,115세대가 살고 있다. 임동면은 원래 임하현에 속해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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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葛田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갈전리는 안동시에서 청송군으로 넘어가는 가래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원래 임하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23년(1895)에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정리에 따라 추곡과 신곡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갈전리는 1리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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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高川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고천리는 안동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가래재 아래에 위치한다. 갈전교를 지나 가래재를 오르기 전 우측에 난 도로를 따라 산굽이를 돌아서 3km 정도 들어간 동쪽에 위치한다. 고천리는 1리와 2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현재 145가구에 359명의 주민들이 거주한다. 임하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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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大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대곡리는 임동면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1리와 2리로 구성되었으며 임동면 위리와 예안면과 접하여 있다. 대곡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이었으나 고종 32년(1895)에 안동군 임동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복수천, 해천, 신평, 고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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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新陽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신양리는 영가지에 의하면 ‘만운(晩雲) 서쪽 5리에 있으며 풍산현에서는 10리 떨어져 있다. 옛날에는 부곡(部曲)이 되었다가 지금은 촌리(村里)로 되고 본 현에 예속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후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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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馬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가면 망천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망천2리가 나온다. 마리는 망천2리에서 성진재라는 고개를 넘으면 나타난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예전의 마을은 거의 대부분 수몰되어 사라지고 수몰지역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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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馬嶺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임동면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임동면의 소재지인 중평리에서 청송방면으로 2km 정도 가다가 왼쪽에 난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마령교라는 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5km 정도 가면 우측에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마령단지이다. 수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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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輞川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15km 정도 가면 오른쪽에 임하댐의 본댐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부터 망천리로 접어드는데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망천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망천교를 건너서 바로 좌측 길로 접어들면 망천2리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리고 망천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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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朴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박곡리는 임동의 동남쪽에 있다. 박곡리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개 있는데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은 수곡리를 거쳐서 가는 것이다. 수곡리에서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4km 정도 가면 마을이 나타난다. 박곡리는 원래 임하현에 속한 지역이었다. 고종 32년(189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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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沙月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사월리는 임하면 소재지가 있는 중평리의 뒤쪽에 난 도로를 따라 4km 정도 가서 금당이재라는 높은 재를 넘으면 나타난다. 원래 안동군 임북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지형이 달과 같이 생기고 강에 모래가 많았어 사월, 사드레, 사들, 사월천, 사평 등이라 하였다. 191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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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水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수곡리는 전주류씨의 동성마을이다. 조선 명종(明宗) 때 류성(柳城) 선생이 이곳에 입향하였으며 당시 마을 뒤 아기산(峨岐山)에서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싼 형상으로 흐르고 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현재 수곡리는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신단지를 만들어 마을을 새로이 형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