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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0751

    10. 渭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위리는 임동면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안면과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위리는 원래 임하현에 속하였으며 마을이 위쪽에 있다고 하여 윗골, 위곡, 위동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위리 앞에 흐르는 작은 하천이 있는데 현재의 대곡천이다. 대곡천이라 하기 전에는 위
    출처 : 유교넷
  • 60752

    11. 中平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중평리는 임동면의 소재지이다. 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25㎞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중평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으로 두 하천이 합치는 중간 지역이라 하여 <HXMLPIC ID="001"></HXMLPIC>중드루, 또는 중평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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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53

    12. 枝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지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이었다. 그러나 고종 32년에 임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지동, 하지동, 검단리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지동이라 하고 길안면에 속하였다. 그 후 1974년에 다시 임동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HXM
    출처 : 유교넷
  • 60754

    臨河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임하면은 안동시내에서 남동쪽으로 1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구려시대(高句麗時代)에는 굴화군(屈火郡)으로 칭하고 신라시대(新羅時代)에는 곡성군(曲城郡)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초(高麗初)에 임하현(臨河縣)이 되었다. 조선말(朝鮮末)에 임하면과 임서면(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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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55

    14. 安郊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원래 이 지역은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현내면에 편입되고 1914년 부, 군, 면 통폐합에 따라 상리, 하리의 일부와 풍북면의 우안동 일부와 풍서면의 소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안교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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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56

    1. 古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가다가 안동대학교 앞 포진교를 건너 좌회전을 하여 6km 정도를 가면 오른쪽에 고곡리라는 입석이 보인다. 고곡리는 원래 안동군 임서면의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소리 일부를 병합하여 고곡동(리)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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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57

    2. 琴韶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금수(錦水)‧금양‧금소역마‧역마‧금소(琴韶)‧금소역촌(琴韶驛村) 금소리는 안동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원래 안동군 임서면의 지역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소동(리)이 되고 그 후 임하면에 편입되었다. 금소1‧2리로 분리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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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58

    3. 老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임하보조댐이 나온다. 여기서 200m 가면 왼쪽에 천전2리의 안내판이 있다. 이 길을 따라서 2km 정도 가면 왼쪽에 천전2리의 자연마을인 광산이 나온다. 광산으로 들어가 마을 중앙도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다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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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59

    4. 新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신덕리는 안동시내에서 동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임하면의 소재지이다. 이 마을은 원래 안동군 임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당동과 인덕동, 평지동 그리고 남선면의 이곡동 일부와 임현내면의 추월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덕동이라고 하였다. 신덕이란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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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0

    5. 梧垈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오대리는 안동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길안으로 가는 국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있는데 오른쪽은 나천이라는 마을이 있고 나머지 마을은 왼쪽 산 아래에 있다. 오대리는 원래 안동군 임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나천리, 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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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1

    6. 臨河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임하리는 임하현의 관아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현내, 현내동이라고 하였으며 또 반변천이 흐르는 강가에 있다고 하여 임하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에 안동군 임현내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에 추월리 일부를 병합하였으며 1931년에 임하면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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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2

    7. 川前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시내에서 청송방면의 국도를 따라 11km 정도 가면 임하보조댐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천전리이다. 천전리는 1리와 2리로 분리되어 있으며 1리는 임하보조댐에서 1km 정도 국도를 따라 가면 왼편에 있다. 2리는 임하보조댐에서 도로 건너에 있는 작은 도로를 따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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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3

    8. 楸木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추목리는 임하면에서 남서쪽에 있다. 안동시내에서 12km 정도 가면 이천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서 곧 바로 우회전하여 도로를 따라 3km 정도 가면 추목리로 접어들게 된다. 추목리는 원래 안동군 임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1914년에 점리, 평지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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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4

    豊川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풍천면은 안동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삼국시대에는 하지현(下枝縣)에 속했고 고려시대에는 풍산현(豊山縣)에 속했으며 조선후기에 와서 풍산면과 분리하여 풍남면(豊南面)과 풍서면(豊西面)으로 분리되었다. 그후 1934년 4월 1일 풍남면과 풍서면, 소산리를 병합(倂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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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5

    1. 佳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안동시내에서 풍산읍을 거쳐 하회나 구담으로 가는 길목에 가일이 있다. 본래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일, 지곡촌, 갈전리의 일부와 풍남면의 하회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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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6

    15. 五美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오미리는 원래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고 1914년 부, 군, 면 통폐합에 따라 괴정리의 일부와 예천군 위라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오미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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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7

    2. 葛田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풍산읍에서 구담으로 연결되는 916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와 중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서면 여자못을 만난다. 이 못을 감싸 돌면 검무산 자락에 펼쳐져 있는 갈전리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에 작은 꽃동산을 만들어 오랜 세월을 이겨낸 볼품 있는 소나무를 심어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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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8

    3. 廣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광덕리는 하회마을과 화천(花川)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의 물줄기가 하회마을을 완전히 휘감아 돈 후 화천서원 앞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광덕리를 감아 돌아 완연한 산태극‧수태극의 형국을 이루고 있다. 낙동강의 흐름에 의하여 형성된 퇴적지에 마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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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69

    4. 九潭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구담리는 원래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에 있은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안동군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그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예천군 용궁면 신상면 암천리의 일부와 예천군 호명면 금릉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구담동이라 하였으며 1934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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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0

    5. 九湖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풍천면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구호리는 의성군 신평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지형은 대부분 비교적 높은 봉화산과 오선당의 지맥에 의해 형성된 산지에 속하며 을곡천(乙曲川)이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다. 마을의 역사는 본래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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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1

    6. 錦溪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풍천면 광덕리에서 신립광산으로 통하는 지방도를 따라 재를 넘어 마늘봉의 남사면에 자리잡은 마을이 금계리이다. 이 길은 어담리와 인금리로 통하고 일직면과 의성으로 연결되는 지방도이다. 금계리도 역시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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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2

    7. 箕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구담리에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구담교를 건너 넓게 펼쳐진 들에 형성된 마을이다. 기산리는 낙동강에 의하여 형성된 퇴적지와 강변의 기름진 땅으로 인하여 풍천면에서도 넓은 농토를 보유하고 있다. 낙동강의 남쪽에 자리잡아 마을의 북쪽이 넓은 평야지역이고 남쪽이 산간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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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3

    8. 道陽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본래 풍산면 지역으로 양지쪽이 되므로 되양골 또는 도양골이라 하였는데 중종(中宗) 때 관찰사(觀察使) 김연(金緣)이 살면서 도왕동으로 고쳤으며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안동군 풍서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자방동, 상좌동, 구담동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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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4

    9. 屛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풍천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마을로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풍산현의 상리와 하리의 일부, 풍서면의 가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병산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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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5

    10. 申城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풍천면 신성리는 풍산홍씨의 세거지였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가고 광산김씨가 들어와 살고 있는 마을이다. 신성리를 찾아가는 길은 풍천면 구담리에서 927번 지방도를 따라 의성군 신평면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구담리에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구담교를 지나면 경지정리가 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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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6

    11. 漁潭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어담리는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개동과 일직면의 거물억리, 국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어담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풍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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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7

    16. 竹田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죽전리는 원래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고 1914년 부, 군, 면 통폐합에 따라 관음동, 악대, 악심리, 탑골을 병합하여 죽전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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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8

    12. 仁今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인금리는 풍천면 하회리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마을이다. 그렇지만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어서 이 마을에 가려면 풍천면 광덕리를 거쳐서 겸암정사와 상봉정을 지나 신성광산으로 연결되는 지방도를 따라 재를 넘어 약 25km를 우회하여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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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79

    13. 河回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하회리는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남면에 편입되었으며 그후 1934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풍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시‧군 통합에 의해 안동시 풍천면으로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회마을은 물이 돌아 흐른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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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0

    1. 明倫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향교골‧교동(校洞)‧명륜동(明倫洞) 옛날 향교가 있었던 골이라 하여 향교골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향교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의 이름을 따서 명륜동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이 향교 터는 안동에서 이름난 명당(明堂)으로 안동에 신식학교가 세워질 때는 대개 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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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1

    2. 象牙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상앗골‧쌍아골‧상아동(象牙洞) 상아동의 원마을로 지형이 상아(象牙)처럼 생긴데서 연유되었으며 코끼리 이빨에 해당하는 자리에 큰 나무를 심었다고 하나 현재는 빈터로 남아 있다. 1914년에 안막동에 편입되었다가 1947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상아동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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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2

    3. 新安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치이골‧쳉이골‧치곡(雉谷)‧냉천(冷泉)‧화장실곡(火葬室谷) 마을의 모습이 꿩처럼 생겼다고 하여 치곡이라 불렀으며 주로 산골의 전답으로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화장장(火葬場)을 설치하여 화장실골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화장장은 딴 곳으로 옮겼고 깨끗한 주택들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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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3

    4. 安幕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안막골, 안막곡(安幕谷) 이 마을은 안막동의 원마을으로서 원래 안동부의 서부지역이었다. <HXMLPIC ID="001"></HXMLPIC>고려 공민왕 때 현 길원여고(吉原女高) 자리에 순흥(順興) 안효자(安孝子)의 대묘막(大墓幕)이 있었기 때문에 안막골이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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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4

    1. 金谷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세실‧왕곡‧금곡(金谷)‧금시동(金是洞) 이 마을은 본래 안동부의 서부지역으로서 세실 또는 왕곡, 금시동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고종 22년(1885)에 권영준(權寧準) 선생이 금곡서당(金谷書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한데서 금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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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5

    2. 法尙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법석골‧법석곡(法石谷) 법석골은 안동부 서부지역으로서 통일 신라 시대에 법상사(法尙寺)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安東邑制) 실시에 의하여 5구역 즉, 법상정(法尙町) 1‧2‧3‧4‧5정목으로 구분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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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6

    일러두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1. 본 총서는 2002년 한해동안 안동지방의 地名由來를 조사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2. 조사방법은 文獻調査와 現地調査를 竝行하였다. 3. 총서의 내용은 안동시 1邑, 13面, 10洞의 小地名을 全數調査하여 그 由來와 傳說 등을 밝히고,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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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7

    17. 下里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하리리는 원래 풍산현에 속하였으나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안동군 풍현내면에 편입되고 1914년 부, 군, 면 통폐합에 따라 상리, 마애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하리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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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8

    3. 花城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꼬재‧잿골‧성지동(城池洞) 이 마을을 옛날에는 꼬재라 부르다가 당시 산중턱에 집이 2채 있어서 사람이 법상동에서 재를 넘고 다녔다 하여 잿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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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89

    1. 廣石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너븐돌‧광석(廣石) 마을 안에 넓은 돌이 있었다 하여 너븐돌 또는 광석이라 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地方官制) 실시에 의하여 부내면 옥리(玉里)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정(法尙町) 4정목(町目)이 되었다가 1947년 광석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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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0

    2. 堂北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옥안마‧당북(堂北) 안동부의 옥이 있었던 안마을이라 하여 옥안마라 불렀다고 한다.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의해 당북동이라고 하였다. 법룡사(法龍寺)의 법당(法堂) 뒤에 당집이 있었는데 그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당북동의 원마을로 법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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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1

    3. 大石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법석골거리‧대석동(大石洞) 이 마을은 현재 안동여고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법상사가 있었던 골짜기 입구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법석골거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원래 법상동(法尙洞)에 포함되어 있었다.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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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2

    4. 水上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영락(嶺洛)‧마지(磨芝) 조선조 숙종 때 이용우(李龍佑) 선생이 한양에서 내려와 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영락이라 하였다. 그 후 이용우(李龍佑) 선생의 삼대손(三代孫) 이종협(李鍾協) 선생이 마지라 개칭하였다고 구전되고 있으며 마지락골이라고도 한다. ◇ 건지기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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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3

    5. 水下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무주무(無主無) 조선 명종 때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마을 앞의 하천의 물이 맑고 들이 넓으며 비옥(肥沃)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강변에 넓은 늪이 있었으나 주인이 없다 하여 무주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안동군 남후면에 속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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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4

    6. 安興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구무탕‧개변늪‧갱변늪 안동시 사장뚝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안흥동의 터로서 넓이가 10마지기 정도가 된다. 모래 천방이 터져서 물이 넘어 늪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구무탕 또는 개변늪 갱변늪이라고 하였다. 안흥동의 유일한 자연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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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5

    7. 沃野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옥거리‧옥리(獄里‧玉里) 이 마을에 안동부의 옥(獄)이 있었다고 하여 옥거리 또는 옥리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동(玉洞)에 편입되고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安東邑制) 실시에 의하여 옥동 일부를 잘라서 팔광정 4정목(町目)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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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6

    8. 亭上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두들마‧강정(江亭)‧정촌(亭村) 안동시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정상동은 정자촌의 윗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HXMLPIC ID="001"></HXMLPIC>두들마는 정상동의 자연마을이며 명칭의 유래는 강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12개의 강정(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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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7

    18. 玄厓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예천군의 호명면과 보문면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현애리는 대봉산(大鳳山)을 배산(背山)으로 하여 안동김씨가 약 400여 년을 이어온 동성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풍산현에 속하였으며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 때에 안동군 풍북면에 편입되고 다시 1914년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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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98

    9. 亭下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원다리‧먼달‧먼다리‧정하동(亭下洞) 정하동은 한말(韓末)에 건축된 주원정(注源亭)이 있는 정자 밑 동리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먼다리라고 하는 것은 낙동강이 안동부를 돌아 나가는 곳에 있는 다리 길이가 670m에 이르는 긴 다리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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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鷺下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노하동 노하동은 서후면과 경계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원래 안동부 부내면의 지역으로서 마당재 들에 백로(白鷺)가 내렸다 해서 백로하전(白鷺下田)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어 노하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동과 서후면의 경광동, 서선면의 막곡동을 병합하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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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松峴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 솔티‧송현(松峴) 본래 안동부 부내면 지역으로서 솔티고개가 있으므로 솔티라 했으며 느티나무골과 수고내미골로 나뉘어지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송자(松字)가 든 곳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 마을은 안전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서 거대한 아파트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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