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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安奇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안기골‧안기역마‧안기동(安奇洞) 안기동은 원래 안동부 부내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에 안기역(安奇驛)이 있었다고 하여 안기역마 혹은 안기골이라 하였다. 1964년 3월 20일 동기구 개편에 따라 안기동이 되었다. ◇ 서당골‧감나무골‧서당곡(書堂谷) 조선시대에 서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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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泥川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지르내‧이천(泥川)‧도천(陶川) 원래 안동부 부내면의 지역으로 왕달봉에서 발원한 하천이 남서쪽으로 흘러 마을 앞을 가로지르고 꺾어서 북서쪽으로 흐른다고 하여 지르내라 하였다. 하천 윗쪽을 웃지르내, 아랫쪽을 아랫지르내라 한다. 또 이 마을에는 진흙이 많고 그 질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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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玉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옥마‧옥(獄)거리‧옥동(玉洞) <HXMLPIC ID="001"></HXMLPIC> 안동부의 감옥이 있던 곳이라 하여 옥거리, 옥마, 옥리 등으로 불렀으나, 1914년 7월 5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옥동이라 하였다가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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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檜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회곡리는 안동군 서선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청사동, 상계곡동, 증수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회곡리라 하였다. 그후 1934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안동시‧군이 통합됨에 따라 안동시 풍산읍에 속하였다. 지명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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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石東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석실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배찬(裵讚)이라는 선비가 처음으로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지형이 떡을 찌는 시루 모양으로 되어 있고 방 모양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석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삼밭골 이 마을은 안동포(安東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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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城谷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선왕데이 이 마을은 신비의 수박으로 잘 알려져 있는 평화사(平和寺)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고려 공민왕이 피난을 왔을 때 이곳에서 궁녀와 마부가 죽자 그 후 안동에 역질과 흉년이 돌아 사당을 짓고 제사를 올리니 변고(變故)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 한집 두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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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松川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솔뫼‧솔걸‧송걸 반변천 안쪽에 시냇물이 있고 마을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서 솔뫼, 솔걸, 송걸이라 한다. 1984년 행정 구역 변경으로 임하면에서 안동시에 편입되었다. 현재 안동대학교가 마을 동쪽에 들어서 있어서 대학촌으로 변하였다. ◇ 논골‧답곡(沓谷)‧양전(羊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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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龍上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맛들‧마뜰‧마평(馬坪)‧용상(龍上)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안동에 피난왔을 때 기산(岐山)에다 성을 쌓고 이곳에서 말을 먹였다고 한다. 옛날 맹사성이 안동부사로 부임했을 당시 비만 오면 낙동강가의 제방이 유실되더니 하루는 마씨(馬氏) 성을 가진 사람의 꿈에 청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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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南門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남문거리‧남문가(南門街) 본래 안동부의 지역으로서 안동부성(安東府城)의 남문 부근에 있었다고 하여 남문거리 또는 남문가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여기를 지나서 대구로 가는 도로가 있었고 남문 앞에는 집때거리라는 큰 돛대가 세워져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어졌다. 현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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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南部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남문거리‧남부동(南部洞) 안동부의 남쪽에 있었다고 해서 남문거리하고 하며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동부동의 일부를 잘라서 남문정(南門町) 1정목이라 하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남부동이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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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東門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동문거리‧동문 본래 안동부의 동부지역으로서 안동성(安東城)의 동문 부근에 있었으므로 동문거리 또는 동문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부동에 편입되었고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 실시에 의하여 본정(本町) 1정목(町目)으로 되었다. 그 후 1947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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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東部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동부동(東部洞) 안동부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부라 한다. 용흥, 운흥, 입석, 율곡, 신정, 원북등 6개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문내동, 운흥리, 서문내동, 천리, 신세리, 용하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부동이라 하였다. 그 후 1931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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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木城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목성(木城) 목성산(木城山)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목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산 모양이 누에 머리 모양으로 생겼고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많이 먹였다고 한다. ◦ 목성산:안동시내 북쪽에 지금 목성동 성당이 잡고 있는 나즈막한 산을 목성산이라 한다. 목성산을 다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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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安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길안면은 안동시 남동쪽에 위치한다. 2002년 기준으로 면적은 199.7㎢이고 세대수는 1,647가구, 주민수는 4,118명이며 면소재지는 천지리이다. 길안면은 고려시대 초기에 길안부곡(吉安部曲)이었다가 충선왕(忠宣王) 때 길안현(吉安縣)이 되었다. 길안현은 조선시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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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法興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법흥골‧법흥(法興) 지금의 임청각(臨淸閣) 부근으로 신라 때 법흥사(法興寺)가 있어서 이 일대를 법흥이라 하였다. 그 당시에는 탑골과 평지가 포함되었다. 고성이씨가 그 지역에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 고갯길‧괘목‧괴목(槐木) 현재 안동댐 입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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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北門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북문거리‧북문가(北門街) 본래 안동부 동부의 지역으로서 안동부성의 북문이 있었으므로 그에 접한 거리를 <HXMLPIC ID="001"></HXMLPIC>북문거리 또는 북문통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세동(栗世洞)의 일부를 잘라서 이곳에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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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三山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삼뭇돌‧삼맷돌 현재 안동시보건소 앞에서 동쪽으로 삼뭇들, 장거리들이 있어서 삼뭇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당시 이 지역에는 객사(客舍)가 많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의 삼산동 일대로 안동시 중심부이며 인구가 밀접해 있고 조흥은행, 우체국, 농협중앙회 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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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象牙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명륜동의 상아동 참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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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西部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구장터‧구시장(舊市場) 대밭골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5일마다 서는 안동의 큰 장터였다. 현재 이 자리에 상설시장이 들어섰다. 안동의 중요한 상가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옥야동의 신시장에 비해 일찍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 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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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新世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성지골(聖智谷)‧성진골(聖眞谷) 신라시대 성지도사가 법흥사 창건 후 이 법흥사를 중심으로 북암(北庵), 남암(南庵), 동암(東庵), 서암(西庵) 등 4개의 암자(庵子)를 설립하였다. 성지도사가 4개의 암자 중 북암에서 기거하였기 때문에 성지골이라 일컬었으며 지금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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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玉井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신정리(新井里)‧옥정동(玉井洞) 본래 안동부 동부의 지역으로서 맑고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신정리라 하였다. 1914년 7월 5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세동에 편입되고 1931년 4월 1일 안동읍제(安東邑制) 실시에 따라 율세동의 일부를 잘라서 앵정이라 부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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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雲興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운흥(雲興) 본래 안동부 동부의 지역으로서 운흥사(雲興寺)가 있었으므로 운흥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부동에 편입되고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의하여 팔광정 1정목이 되었다가 1947년 일본식 동명 변경에 따라 운흥동으로 다시 고치게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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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栗世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밤적골‧밤저골‧율세동(栗世洞) 이 마을의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불리던 지명이며 밤나무가 많이 있는 골이라 하여 밤적골이라고 하였다. 또 안동의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서 큰 절이 있었으므로 밤절골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세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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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泉里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나무둑‧조산(造山) 이 마을에 천리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 하천의 둑에 회나무가 3그루 있었는데 수백 년 묵은 고목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없어졌다. 회나무를 심었던 곳이라 하여 조산, 나무둑이라 한다. ◇ 사장터‧사장뚝‧사장(射場) 구한말(舊韓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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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古蘭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고란리는 길안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7km 정도를 가서 왼쪽에 난 작은 도로를 따라 가면 나타난다. 이 길의 입구에서 1km 정도 들어가면 마을이 있다. 마을 뒤쪽에는 계명산이 있는데 요즘 여기에 자연휴양림이 개발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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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太華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공원마‧공원촌(公園村) 서악사(西岳寺) 아래에 있는 터로 전에 안동시민의 공원이 있었다고 하며 광복 후에 이곳에서 동채싸움도 하였다. 현재는 중앙고등학교와 경덕중학교가 있다. ◇ 삼거리‧삼걸 공원마 북쪽에 있는 마을로 세 갈래의 긴 길이 있어 삼거리라 불렀고 현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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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雲安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관거리‧간척골 안기동과 운안동 경계지점으로 공민왕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감옥이 있어 관청 사람이 많이 왕래하였다고 붙여진 명칭이다. ◇ 새골‧샛골‧봉곡(鳳谷) 관거리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부터 경치가 아름답고 새가 많은 곳으로 이름이 나서 붙여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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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平和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서경지‧서겅지 옛날 서경이라는 들에 못이 있어서 서경지라고 한다. 여기에 서정(西亭)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하며 안동부에서 귀빈을 마중하는 오리정(五里亭)을 짓고, 그 앞에 장승을 세워 귀빈을 맞는 장소라는 표시를 했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은 영가초등학교가 들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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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九水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구수리는 길안면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청송방면의 도로를 따라 6km 정도 가면 구수리의 원구수가 나타난다. 원구수에서 직진을 하면 대곡리와 배방리 그리고 청송군으로 갈 수 있으며 좌회전을 하면 구수2리와 용계리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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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金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금곡리는 길안면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의 백자리와 고란리, 송사리 그리고 의성의 옥산면과 접하고 있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9km 정도 가면 오른쪽에 작은 도로가 나오는데 이 길이 금곡리로 가는 길이다. 금곡이라는 명칭은 쇠가 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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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大谷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대곡리는 길안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청송방면의 도로를 따라 양곡재를 넘고 구수리를 지나서 7.5km 정도 가면 왼쪽에 작은 길이 나타난다. 이 길에서 산고개를 넘어 3.5km 정도 가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대곡2리로 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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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大寺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대사리는 길안면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왼쪽에 대사리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가 나타난다. 이 도로로 접어들어서 2km 정도 가면 대사리가 나타난다. 대사리는 청송군과 인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1리와 2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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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晩隱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만음리는 길안면의 남쪽에 있으며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면사무소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영천, 포항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1.7km 정도 가면 왼쪽에 만음2리를 나타내는 입석이 있다. 여기서 700m 정도 더 가면 오른쪽에 만음1리를 가리키는 입석이 나타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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豊山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우리 고장의 지명은 고타야(古陁耶), 고창(古昌), 창녕(昌寧), 일계(一界), 지평(地平), 화산(花山), 고령(古寧), 고장(古藏), 석릉(石陵), 능라(陵羅), 안동(安東), 영가(永嘉), 길주(吉州), 복주(福州)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의 지명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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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默溪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묵계는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5km 정도 가면 나타난다. 옛날부터 길안현에 속하여 오다가 1914년 오락을 병합하여 현재의 묵계리의 모습을 갖췄다. 현재 1리와 2리로 구분되며 1리에는 선항, 상리, 하리, 새마을, 국만 등 5개의 자연마을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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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杯芳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배방리는 길안면의 동쪽 끝자락에 있다. 동쪽으로는 청송군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의성군과 경계를 하고 있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청송방면의 도로를 따라 8.5km 정도 가면 배방리가 나타난다. 현재 이 마을에는 65가구에 144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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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栢子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백자리는 길안면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만음리로 접어들어 서쪽으로 3km 정도 가면 나타난다. 백자리는 처음부터 길안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전의곡, 우음산, 신방동을 합하여 백자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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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松仕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송사리는 길안면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길안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영천방면의 국도를 따라 12km 정도 가면 송사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송사리인데 왼쪽으로 들어가면 대사리로 가는 길이다. 현재 1리와 2리로 구별되어있는 송사리는 원래 임하현의 지역이었으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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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龍溪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용계리는 길안면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 검박골과 교회마 등 2개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그전에는 원용계를 비롯하여 도랫마, 도연, 길목 등의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모두 수몰되어 사라지고 현재의 마을들이 새로 형성된 것이다. 용계리는 원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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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泉旨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천지리는 길안면의 면사무소가 있는 소재지이다. 안동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1리와 2리, 3리로 나누어져 있다. 면의 중심부에 해당되는 것만큼 번화가라고 할 수 있다. 자연마을도 장터 위주로 발달하였으며 2002년 11월 30일 기준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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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縣下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현하리는 길안면의 서남쪽에 있으며 1리, 2리, 3리로 구분된다. 길안면의 남쪽에 있어서 의성과 인접하고 있기도 하다. 현하리는 원래 길안현(吉安縣)의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 숙종 때 길안면이 되고 고종 32년(1895)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임서면에 편입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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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先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남선면은 안동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이 59.43㎢, 인구가 3,216명이다. 본래 안동부의 남쪽이 되므로 부남면이라 하다가, 숙종 때 남선면과 남후면으로 분리되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임서면의 평지리를 병합하였으며, 1983년 정상리와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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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九尾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구미천(九尾川)이 구비 쳐 흐르므로 구비‧구미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백일동을 병합하여 구미리라고 한다. ◇ 양지마‧양지(陽地) 마을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어 양지마라 부른다. 초등학교, 농협, 교회가 있으며 안정된 마을 형태를 이루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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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道老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본래 남선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로곡, 신사동, 백양동, 사부곡, 도율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율과 지로의 이름을 따서 도로리라 한다. ◇ 사부골‧사부곡(巳浮谷‧沙夫谷) 이 마을은 둔지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산이 높고 골이 깊어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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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桂平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낙동강을 따라서 마을이 형성된 계평리는 안동군 서선면에 속하였으나 <HXMLPIC ID="001"></HXMLPIC>1914년 부, 군, 면 통폐합에 따라 와평리, 상계곡리, 회곡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계곡리의 계(桂) 자와 와평리의 평(平) 자를 취하여 계평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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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申石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본래 안동시 남선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천평리와 구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석리라고 했다. ◇ 납돌‧납들(申坪) 납들은 납(원숭이)처럼 생긴 바위가 들 가운데 있다 하여 납돌 또는 신석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고려 공민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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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新興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 망실(望實)‧신흥(新興) 고려시대 윤씨(尹氏)가 이 마을을 개척하여 망실(望實)이라 칭하고 살아오다가 마을이 운수가 없어 망해갈 무렵 노승이 신흥으로 이름을 고치고부터 부유한 마을이 되었다 한다. 지금도 윤씨(尹氏)의 집단 마을이다. ◦ 채윷놀이:이 마을은 윷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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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外下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본래 안동시 남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수무, 중리, 신기, 음지, 양지를 병합하여 외하리라 한다. ◇ 무수무‧상무수무‧무선동(舞仙洞):이 마을은 장수지 남쪽에 있는 마을로 갈라산에서 선녀(仙女)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전설에 따라 무선동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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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院林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은 본래 남선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노암리, 노림리, 원리, 토파동, 외하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리와 노림의 이름을 따서 원림리라고 한다. ◇ 노암(魯岩) 서원마 남쪽에 있는 마을로 현재 살고 있는 권씨(權氏)가 일직에서 이곳에 처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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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梨泉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마을도 본래 남선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곡동, 하신석리, 천평동의 각 일부와 임서면의 평지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곡동과 천평의 이름을 따서 이천리라 한다. ◇ 뱁실‧이곡(梨谷) 이 마을은 마을 중앙에 아주 큰 배나무가 있어서 뱁실이라 부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