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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1101

    1. 안동지역 민중의 실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p align="right"> 배영동(안동대학교 민속학전공 교수)</p>안동지역에서 민중은 과연 누구인가? 아직 이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중세적 신분제 아래서 양반의 지배를 받던 사람들이 신분제가 타파된 이후에도 안동의 여러 마을에 살고 있
    출처 : 유교넷
  • 61102

    2. 안동포 길쌈 전문가였던 여인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안동지역에서는 조선 후기에 안동포를 위시한 직물의 생산이 여인들의 중요한 활동이자 부업이기도 했다. 삼베 길쌈은 부녀자들의 정성이 응결된 전통적인 가내 수공업으로서 농가 차원에서 전승된 세공 기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안동지역 농가의 부녀자들은
    출처 : 유교넷
  • 61103

    3. 병산전투에서 왕건의 승전을 기념하는 차전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안동 차전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것으로, 일명 동채싸움이라고 한다. 동채는 차전놀이의 기구를 가리킨다. 임재해 교수에 따르면, 차전놀이의 유래 전설은 세 가지다. 첫째, 통일신라 말에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태조 왕건과 승부를 겨루고자 안동으로
    출처 : 유교넷
  • 61104

    4. 하회별신굿과 탈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하회별신굿은 하회마을을 지키는 동신(洞神)에게 3년에서 10년 주기 혹은 서낭신의 신탁(神託)이 있을 때 했던 특별한 굿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하회마을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로 별신굿의 일부로 한 것이다. 주술 종교적으로
    출처 : 유교넷
  • 61105

    5. 노국공주 피난에 연원을 둔 놋다리밟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놋다리밟기는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을 올 때 소밤다리[松夜橋]를 건널 즈음에, 안동의 부녀자들이 허리를 굽혀 공민왕비 노국공주를 건너게 해 준 데서 비롯된 놀이로 전해온다. 이 놀이는 1910년 이후에는 중단되었으나, 가정에서 소규
    출처 : 유교넷
  • 61106

    6. 성주 신앙의 본향인 안동, 그리고 성주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안동 제비원에는 성주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전설이 하나 있다. 제비원 미륵의 원력에 의탁하고 있는 신력을 갖춘 ‘대부송’이라는 소나무가 ‘나라 솔’이 되어 그 솔씨가 전국에 뿌려짐으로써 본격적으로 우리의 산야에 폭넓게 소나무가 들어차게 되었다는 내용
    출처 : 유교넷
  • 61107

    7. 공민왕 가족들이 신격화 된 동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안동 외곽 청량산 일대에는 공민왕을 동신(洞神)으로 모시는 마을이 많다. 공민왕이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으로 좌정한 것은 안동지역 주민들에 의하여 공민왕이 신격화되었음을 뜻한다. 공민왕의 신격화와 더불어 그 연장선상에서 공민왕에 대한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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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08

    *참고문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배영동
    <br>권삼문, 2000, 「안동 양반의 경제생활」, 『안동양반의 생활문화』,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김미영, 2000, 「안동 양반의 가족과 친족생활」, 『안동양반의 생활문화』,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김성우, 2001, 『조선중기 국가와 사족』, 역사비평사
    출처 : 유교넷
  • 61109

    화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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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0

    3. 이황이 후세에 끼친 영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퇴계가 지은 책 퇴계는 당시까지 가장 많은 저술을 한 분이다. 전문적 저서로는 「주자서절요」, 「송계원명이학통론」, 「자성록」, 「계몽전의」, 「통서강해」, 「사서석의」, 「삼경석의」, 「심경부주」,「성학십도」, 「성현도학연원」, 「독서설설해」, 「성리제가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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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1

    파괴당하는 농님가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파괴당하는 농민 가족 -장두강- 열명의 꼬맹이 담임선생이 되었다. 3월 초순이라 철부지 어린이의 고사리손이 한층 시려 보였다. 6~9㎞는 예사로 알고 새벽길을 뛰어왔다는 애들이다. 발전적이란 미명아래 개편된 5차 교육과정에 의해 그들의 책가방은 힘에 겨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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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2

    歎水質保護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歎水質保護 姜 大 祚 福州深處兩湖成 秀麗風光似鏡明 公害防除今世事 證淸選好寔人情 川流湜湜看魚躍 蘆諸漪漪聽鷺鳴 治水治山天下泰 禹謨千載永留名 福州(安東) 深處한 곳에 두 湖水(安東湖·臨河湖) 이루니 수려한 風光이 거울 같이 밝구나 公害를 防除하는 것은 今世의 일이고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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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3

    義青會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의성(義城) 김씨(金氏)가 아닌 타성 사람들로서는 ‘의청회(義靑會)’가 무슨 모임인지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의성 김씨 수자(首字)인 ‘의(義)’자와 청년의 ‘청(靑)’자를 따서 ‘의청회(義育會)’라고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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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4

    敎友會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교우회 발족 3주년에 임하여 우리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1989년 8월 현재) 당연히 있어야 할 퇴직교직자단체가 어째서 조직되어 있지 않았던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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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5

    서애 류성룡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서애 류성룡 - 1992년 6월 지정 - 류성룡(중종 37년-선조 40년, 1542-1607)은 경상도 의성현(義城縣) 사촌리(沙村里)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며,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다. 그는 16세에 향시에 들고 안동 도산(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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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6

    1. 류성룡은 누구인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명문(名門) 출신 류성룡은 1542년(중종 37년) 음력10월 1일에 경상도 의성현(義城縣), 사촌리(沙村里)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본래 안동부(安東府) 풍산현(豊山縣) 사람이었으나 6대조때부터 의성현의 하회촌(河回村)으로 옮겨 살았다. 그의 집안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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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7

    2. 경륜(經綸)의 정치가(政治家)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임진왜란 극복의 총책임자 <HXMLPIC ID="001"></HXMLPIC>류성룡은 행정과 정치에 많은 공적을 남겼으나 그중에서도 임란 중의 업적이 가장 컸다. 임진왜란 중에 영의정으로 도체찰사를 겸임하여 군국의 총책임자로서 내정, 외교, 전술 등 난문제를 해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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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8

    3. 류성룡의 성품과 저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류성룡의 성품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나기 직전인 선조 31년(1598) 10월에 정응태(丁應泰) 무고사건 (誣告事件)으로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영의정에서 파직되고 모든 관작(官爵)이 삭탈되어 낙향하였다. 정응태 무고사건이란 명나라 장수 정응태가 본국에 보고하기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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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19

    1. 이천은 누구인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익양공 이천 - 1993년 4월 지정 - 이천은 누구인가 조선조 제 4대 임금이신 세종대왕(1397∼1450)은 재위 32년 동안 민본주의 구현과 민족 문화 창달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종대왕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칭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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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0

    1) 천문 과학 기기 분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세종조의 천문의기 제작사업을 관장 <HXMLPIC ID="001"></HXMLPIC>세종조(世宗朝)의 대표적인 문화업적의 하나로 천문학의 발달을 꼽을 수 있으며,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혼의(渾儀), 간의(簡驚) 등의 천체 관측 기구와 앙부일귀(仰釜日晷),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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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1

    2) 금속활자 인쇄의 개량 발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이천(李蕆) 이전의 금속활자 인쇄 금속활자 인쇄술은 일찍이 고려에서 우리 조상들의 창의적 슬기에 의해 고안된 위대한 문화적 소산이다. 그것을 조선의 새로운 왕조가 계승하여 단계적으로 개량 발전시켜 마침내 그 인쇄술을 절정에 이르게 했음은, 세계인쇄문화사상 유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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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2

    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한겨레의 운명을 결정짓는 근원적 힘은 그 민족의 예술적 문화적 창의력이다’고 「문예중흥선언」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우리 안동은 빛나는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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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3

    3) 이천의 화약무기분야 업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천은 천부적으로 과학적인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26세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군인생활을 하며 과학에 관심이 많던 이천은 자연히 무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당시로서는 새로운 병기인 화약병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1) 병선(兵船)의 개량 그의 첫 업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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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4

    4) 악기의 제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천은 경자자를 완성하고 갑인자를 만들기까지의 10여년 동안, 한편으로는 악기(樂器)의 제작에 직접 참여하였고, 병선(兵船)·군기(軍器)·화포(火砲) 등의 전술 무기 개량과 여러 가지 천문관측기기(天文觀測機器)의 제작에도 온갖 정성을 기울여 우리 나라 역사상 불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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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5

    3. 민족사에 남긴 발자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천은 위대한 과학자이며 국토를 개척한 전략가이다. 그는 성군 세종을 보좌하여 경자가·갑인자를 주조하였고, 악기(樂器)·간의(簡儀)·혼천의(渾天儀)·규표(圭表)·해시계·자격루(自擊漏)·흠경각(欽敬閣)의 옥루(玉漏)등 첨문관측기기(天文觀測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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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6

    1. 충성의 길 30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살아가면서 본인 스스로가 참으로 자랑스러워 질 때가 있다. 본인이 잘 나서가 아니다. 군의 최고 영예인 장군이라서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를 품어 길러준 땅 안동이 나에게 가르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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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7

    1) 緖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나라의 姓氏를 조사한 최초의 기록은 「世宗實錄」 地理志라 여겨진다. 여기에는 265종의 姓氏가 수록되어 있다. 이 「世宗實錄」 地理志 安東大都護府와 禮安縣條의 姓氏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安東大都護府 本 府 土姓七 權·金·姜·曹·張·高·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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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8

    2) 우리 고장의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 安東府와 禮安縣의 옛 地名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열거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옛 安東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다음과 같다. 1) 安東 金氏 1985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김씨 인구가 제일 많다. 본관만도 285개나 된다 한다. 그 중 우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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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29

    3) 안동지방에 移居하여 정착한 성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3. 안동지방에 移居하여 정착한 성씨 안동지방을 본관으로 사용하는 성씨 외에 타처에서 移居하여 지금까지 동족부락을 이루어서 繼居하는 성씨도 많다. 처음 이거할 때는 고려가 망하여 不事二君의 節義를 지키기 위하여 또는 士禍와 戰亂으로 인하여 피난하였다든지 妻鄕·外鄕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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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0

    축간사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우리 고장의 번영을 위한 새 안동 건설의 희망과 기대 속에 시민의 오랜 여망이던 「안동문화」의 창간을 12만 시민과 더불어 축하드리며 우리 고장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이해의 폭을 더욱 증진시키고 향토문화의 계승발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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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1

    4) 結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상으로 우리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성씨에 대한 정착과정을 기술하였다. 이 외에도 많은 성씨가 來居하여 정착하였으나 일일이 조사치 못하여 다 기술하지 못하였다. 우리 지방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성씨가 살고 있었을 것이나 고려이전에는 기록이 없어 고증할 수가 없으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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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2

    I. 서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향토음식은 지리적, 사회적 환경사를 내재하는 문화요소이므로 긴 역정이 배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향토음식은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부농, 평민지주의 대두, 사림문화(士林文化)의 등장환경에서 토산식품을 중심으로 더욱 발전한 것으로 본다. 즉 식생활은 사용식품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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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3

    II. 안동지역의 향토음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식생활 행동은 사회정체감(Social identity)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은 우리를 사회의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규명해주며 한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함과 동시에 자의식과 사회정체감화를 통해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미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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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4

    1. 장(醬)의 종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음식맛의 기본을 이루는 간장과 된장은 그 쓰이는 비율이 지방에 따라 달라지는데 충청도에서는 간장 전용의 진간장이 많이 이용되지만 경상도에서는 된장을 많이 썼다. 특히 된장 전용의 ‘막장’과 ‘빠짐장’을 담구어 이용한다. 또한 겨울철에 콩나물 등의 여러가지 야채와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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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5

    2. 날콩가루 이용음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 지역의 교통오지가 단백질 급원 식품인 콩의 이용을 가져다 준 지혜로운 음식이 바로 날콩가루 이용의 조리법이라고 본다. ◦ 시래기국 : 푹 삶은 시래기(무우청 또는 배추 말린것 외에 여러가지 야채도 이용함)에 날콩가루를 듬뿍 묻혀 멸치 토장국에 넣어 한번 익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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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6

    3. 안동식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음식으로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식혜가 있다. 구전(ㅁ傳)에 의하면 이 식혜에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것을 ‘백식혜’라 하고, 무우를 넣었다고 하여 ‘무우식혜’라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저 식혜라고 한다. 또한 타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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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7

    4. 헛제사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유교문화의 본 고장인 이 지역에서는 의례 중 제사를 더욱 숭상하여 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유명한 서원(書院)이 많은 이곳 유생들이 쌀이 귀한 시절양반이라도 드러내 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스러워 제사음식을 차려놓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로 제사를 지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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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8

    5. 가양주[민속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나라 아낙네들은 특히 술빚기에 온갖 정성을 다 하였기에 세계에 자랑할만한 맛과 향기, 빛깔, 마신 후의 느낌 등이 빼어난 전통민속의 명주(名酒)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술빚는 방법이 일과 손에서 전해져 오는 동안에 점점 발전하였다. 그것을 마침내 뜻있는 남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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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39

    6. 기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 만두 : 무우를 숟가락으로 긁은 것과 김치 다진 것을 물기없이 짜서 만두소로 한 메밀만두는 산촌이나 농가에서 이용하고, 반가에서는 다진 쇠고기 또는 꿩고기에 두부와 김을 섞어서 쓰거나, 닭을 삶아서 소를 넣은 메밀만두(도산 이씨문중)가 있다. ◦ 지짐 : 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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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0

    축간사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예로부터 우리 안동은 우리 민족사 발전에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해 온 고장으로 조상들의 숨결이 깃든 찬연한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이번에 안동문화원에서 한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담은 「안동문화」책자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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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1

    III.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지역은 많은 명문세가의 존재와 효행을 인간의 근본 도덕으로 삼는 숭유주의가 이 지역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과, 그리고 지형적인 특성 등으로 본 지역 고유의 전래 향토 음식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고도의 산업화와 국제화 그리고 정보화 및 고령화 등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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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2

    1.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左傳」 (哀公, 24)에 의하면, 인간사에는 ‘三不朽’가 있으니 立德·立功·立言이라 하였다. 첫째, 立德이라 함은 人格實現으로서 도덕적인 자아의 높은 성취이다. 사람됨의 길에서 希聖, 希賢하는 삶의 자세를 지녀야 德을 세울 수 있다. 둘째, 立功이란 장부가 큰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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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3

    2. 龍潭 선생의 가계와 학통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嶺南人物老」(正祖때 蔡弘遠, 丁若銓 등이 왕명에 의하여 영남인물 450여명의 약전을 기록한 책, 10권 10책)에는 龍潭 任屹(1557, 명종 12∼1620, 광해군 12) 선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任屹의 字는 卓爾요 號는 龍潭이요, 本貫은 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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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4

    3. 龍潭 선생과 壬辰抗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임진년 7월 9일, 龍潭은 學論 柳宗介公과 함께 倡義하기로 協謀하고 원근고을에 飛書하였는데 이때 모인 의병이 1백여명이었다. 이들을 일컬어 ‘乃城兵’이라 하였다. 이때 柳公은 大將으로 선생은 副將으로 추대되었으며 「陣中約束 16條」를 정하였다. ① 無敢訛言 (유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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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5

    4. 龍潭 선생의 學者的 姿勢와 그 遺事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介潔한 선비들이 다 그러하였던 것처럼 龍潭 선생 또한 文章을 餘事로 알았다. 그러나 家狀에 의하면 저술이 매우 많았으나 임란과 같은 민족의 대전란을 겪고 난 뒤 그의 평생 저술의 태반이 散佚되었다고 한다. 실지로 우리나라 文翰가운데 16세기 이전의 것은 매우 희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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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6

    5.「龍潭集」의 내용과 문헌적 가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龍潭集」은 우리나라 문집의 典型을 많고 있어서 詩·書·雜著·祭文·行狀·附錄의 순으로 되어 있다. 卷之一詩 龍潭快閣題詠 3首 龍潭雜詠 41絶 龍潭 10景 奉呈嘯皐先生 (1) 伏次嘯皐先生益松韻 (2) 羅浮雜詠 28首 閑居 20詠 西行路中作 典性署參奉 肅命後疏斥權貴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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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7

    6.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나라 사림파의 전통은 절의를 숭상한 데 있고 불의에 항거하는 데 있었다. 더구나 영남사림은 재야적 위치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온존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재야적인 성격은 일종의 특수한 士風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벼슬이 높은 것을 취하지 않고 行儉이 높은 것을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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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148

    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9세기 후반에 들면서 한국은 안팎으로 격동의 시대를 맞았다. 안으로는 근대화를 지향하는 개화사상과 이에 저항하는 척사사상이 부딪치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민족적 위기상황의 극복 방법으로 1894년 이래 의병항쟁이, 그리고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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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간사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우리 안동의 문화도 선사시대로부터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서 신라시대의 귀중한 수많은 불교문화유적과 고려조 창건주를 보필(輪弼)한 공신의 업적과 여말 공민왕 파천(播遷)에 얽힌 유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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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석주의 가계와 학통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석주는 1858년(철종 9) 11월 24일(음)에 안동시 법흥동 20번지 소재 임청각(臨淸閣, 보물 182호)에 승목(承穆)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초명은 상희((象羲), 호는 석주였고, 1911년에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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