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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국내에서의 활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의병항쟁 석주의 국내에서의 구국활동은 두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병항쟁을 시도했던 시기이며, 둘째는 항일항쟁을 통해 방략상의 한계를 절감하고 투쟁방략의 전환을 위해 새로운 국제정세의 분석에 몰두하고 아울러 신사상과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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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만주 망명의 경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석주는 53세 되던 1911년 음력 1월에 만주로 망명했다. 그의 망명은 신민회와의 연계로 이루어졌다. 신민회는 당초(1907년) 구국계몽단체로서 비밀지하조직을 펴다가 1909년 봄부터 해외 독립군기지 개척을 계획하여 독립전쟁방략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이 구국계몽운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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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국외에서의 활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한인동포사회를 위한 활동 석주는 한국동포에게서 정신적 기반조성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민족사관의 재인식 문제와 광복운동의 정신적 기반 조성, 그리고 반제항일투쟁을 위한 여러 가지 방략을 세계사 속에서도 찾아 제시하고, 한민족도 구국투쟁을 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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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사상과 학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석주의 학문이나 사상은 시기에 따라 큰 변화를 보였다. 혁신유림으로 전환하기 이전에는 그의 학통에서 뚜렷이 드러나듯이 퇴계의 학설을 추종하고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의 초기 사상과 학문의 성향은 이기사칠론(理氣四七論)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와 그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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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석주는 안동이 낳은 혁신 유학자요, 민족운동의 지도자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세계 열강의 침략에 직면하게 되자, 민족운동은 위정척사·구국계몽운동 등으로 전개되었고, 대체로 유림은 위정척사운동의 방법을 택했다. 석주는 이러한 시기에 국내에서의 독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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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리 고장에서의 읍지 편찬에 대한 역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용만 권기에 의해 정리된 「영가지」와 늑정 권시중에 의해 정리된 「선성지」가 그 일례이다. 여기서 「영가지」란 안동부(安東府)의 읍지를 그리고 「선성지」란 예안현의 읍지를 말하는데, 안동부의 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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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선성지」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선성지(宣城誌)」는 예안(禮安) 읍지(邑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성지라고 부르나 예안지(禮安誌)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두 명칭은 예안 고을의 역사적 변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의 예안은 안동군에 딸린 1읍 14개면 가운데의 하나이지만 「선성지」가 만들어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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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지방지로서의 「선성읍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정리하는 시도가 없지 않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뒤 왕에게 올린 표문에서 “옛날 열국에서도 또한 각기 사관을 두어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의 승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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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편찬자 권시중(權是中)에 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입향조 권겸(權謙, 1413-1505)은 권시중의 고조부가 되는 분이다. 그는 진사로 부호군에까지 이른 분으로 안동에서 예안현 부라촌으로 시거(始居)했다. 3남 2녀를 두었는데 맏아들인 권수익은 문과에 급제했고, 그의 둘째 아들 제월당 권운은 중종 11년(1516)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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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선성지」본(本) 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초고본 『선성지』 초고본 『선성지』는 모두 5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 이 책의 서두 부분이 한 두장 떨어진 관계로 원래는 그보다 좀 더 많은 분량이었을 것이다. 필사된 서체는 비교적 해서로 되어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행서로 씌어 있다. 또한 이 책이 초고본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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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맺는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선성지」는 예안읍지로 지금 살필 수 있는 최초의 것은 늑정 권시중이 지은 초고본 형태의 1책이며, 가장 널리 소개된 것은 일제시대에 석판본으로 제작된 1책이다. 초고본 「선성지」는 「영가지」의 편찬자 용만 권기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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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사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法興洞 7層 塼塔. 안동 유일의 국보. 그러나 섣부르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주지 않는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어느 봄날 포착했다고나 할까. <HXMLPIC ID="002"></HXMLPIC>安東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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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문화의 나아갈 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안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적 전통이 뛰어난 곳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 우리 안동인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안동 지역의 주민들이 과거의 밝은 전통에만 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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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의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도청유치의 절규 안동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벌어지고 있는 경북도청 북부지역 유치운동은 낙후된 안동 주민들의 울분과 한을 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땅에 산업화가 시작된 지난 30년 동안 개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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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慈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우리 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하자 발빠른 몇몇은 친일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대다수의 우리 민족은 직업·교육정도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나라 되찾기 운동에 앞장섰다. 여성들도 이런 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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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묵계서원(默溪書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묵계서원(黙溪書院) 서원의 위치는 길안면 묵계리(黙溪里) 선항리(仙巷里 : 선당리, 仙塘里)이며 뒷산이 계명산(鷄鳴山)이고 계명산 줄기가 쭉 뻗어 사람이 팔을 뻗고 있는 듯 한 형상이며 그 끝의 손과 같이 된 곳이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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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관광지 개발의 소지(素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천지갑산(天地甲山) 일명 관악봉(冠岳峯, 山) 천지갑산은 연점산(鉛店山)의 지봉(枝峯)으로 위치는 안동군 길안면 송사 1리의 송제마을(松堤里)의 앞산이며 연점산(鉛店山)은 길안면 송사리, 대사리와 청송군 부동면 안덕면 지역과의 경계에 위치하며 높이는 871고지이고 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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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천고을의 유래 고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송제리(松堤里 : 吉安面 松仕 1里) 원래 이 지역은 고려시대에 송천고을이었다고 한다. 이 고증은 1964년 고려대학교 백철기(白鐵基) 교수가「한국고사(韓國古史)」에서 확인하고 두 번이나 이곳에 들려 이 지역의 지명유래와 고증자료를 대조해 본 결과, 틀림없음을 확인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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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연극(安東演劇)의 오늘과 내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내가 알고 있는 오늘의 안동연극(安東演劇) 현황과 활동을 살펴보면, 1984년 11월 28일 발족한 극단관객(이용사 대표)이 있고 1989년 10월 5일에 출발한 극단관객 한맥[김창규]을 비롯하여 안동대학교에 토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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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가신신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과학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이 재어지는 시대, 논리적이 아니면 부조건 미신으로 여겨버리는 시대, 서구의 정신과 물질에 우리의 안방을 내줘버린 듯 한 시대, 그렇다면 진정한 우리민족의 심성이, 우리민족의 문화가 살아 숨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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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근대적 의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孔 繁 현대 중국에서는 「유교(儒敎)」라 호칭하지 않고 「유학(儒學)」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유교가 일반화된 것과는 다르나. 여기에는 「공자교(孔子敎)」를 서양의 그리스도교와 같이 중국의 국교로 하려는 움직임이 중국의 근대기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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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근대사회에서 유학의 의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중국은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근대기로 접어든다. 근대 민주주의 혁명으로의 길이 시작되는 큰 흐름의 물결 속에서 중국 전통유학(傳統儒學)도 역사적인 커다란 전환기를 맞게 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근대적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개혁자·혁명가는 서방을 향하여 서양사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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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재 중국의 유학 연구 상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근래 10년 사이에 중국의 유학연구는 대단하게 진척되어 문화혁명이 끝나고부터는 부유가 없어져서 유학의 역사적 작용과 그리고 경제적 가치에 대하여 재평가의 가능성을 검토하게 되었다. 학자도 많이 불어나고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도 많이 늘어 났다. 1984년에는 중국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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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국 학술계에서 유학의 역사적 임무 및 현대적 가치와 평가에 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여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두가지의 다른 시각이 있다. 공자와 그를 대표로 하는 유학사상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평가에 관한 문제이지만, 여기에도 두가지의 시각이 있다. 첫째는 공자와 유학사상은 2000년에 걸친 중국의 봉건사회에 있어서 통치사상으로 받들여졌고, 이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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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계 이황의 생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어디에서 태어났나 퇴계는 1501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 현 노송정(老松亭) 종택(宗宅) 태실(胎室)에서 탄생했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이식(李埴)이고, 어머니는 의성(義城) 김씨(金氏)와 춘천(春川) 박씨(朴氏) 두 분이다. 전모 김씨는 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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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七日渡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二十七日渡江 ‘이십칠일에 압록강을 건너며’ 石洲 李 相 龍 作 (1858~1932) 朔風利於釰 漂漂削我肌 肌削猶堪忍 腸割寧不悲 沃土三千里 生齒二十兆 樂我父母國 而今誰據了 旣奪我田宅 復謀我妻孥 此頭寧可所 此膝不可奴 出門未一月 已過鴨江水 爲誰欲遲留 浩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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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夜寒十絶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夜寒十絶 - 夜風寒大作擁爐坐爲賦此夜寒十絶 - 東山 柳 寅 植 作 (1865~1928) 突丌坡亭此夜寒 霜擬紙壁雪堆欄 東隣却羨農家子 自手擔薪暖養親 板屋風嗚此夜寒 莊嚴奇氣薄秋旻 定知愛國靑年血 不作囹圄凍館魂 海外同胞此夜寒 六洲風雨張空拳 由來時勢英雄造 民國元年朝日鮮 薊雪遼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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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心在寡欲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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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李 沫 昌 Lee Soo-Chang ·대학·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 ·안동대학교 예체능대학 학장 ·안동대학교 교수 ·예총안동지부장(1988~ ) ·일본축파대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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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92-F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宋 基 錫 Song Ki-Suk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개인전 4회 ·단체전 국내외 130여회 출품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운영 심사 ·홍익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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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활리 계곡의 운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權 奇 允 Kwon Ki-Yoon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회화과 졸업 ·제1회 개인전(1990. 서울 백악미술관) ·제2회 개인전(1992. 안동 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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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權 容 泰 Kwon Yong-Tae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졸업 ·경북산업 디자인전 심사위원 ·겨욱 디자인색장진흥위원 ·한국현대디자인학회 회원 ·현 상지전문대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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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황의 교육과 철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어떻게 교육시켰는가 퇴계의 교육을 요약해서 가장 잘 평가한 학자로는 정약용을 들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집약해서 말했다. ‘일일이 실천을 통해서 많은 인재를 길렀으며, 누구든 어떤 부문이든 가르쳐 모두 대도 (大道)에 이르게 했다. 중도에 폐하는 사람이 없이 끝까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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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열차를 타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중앙선(中央線) 열차를 타고 -강 인 순- 떨치고 돌아섰던 서울 숱한 얼굴들 팔당을 지날때쯤 그제서야 생각는 건 우리가 길들여진 것은 낙동강 물맛이라는 걸. 항상 돌아가는 길은 차표속에 있었다. 들뜬 마음 구석에 금 하나 그었다가도. 죽령(竹嶺)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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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연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하늘 연서(戀書) -권 세 홍- 오늘도 한 나절 텅- 비워 두고 그대 부치신 구름, 구름만 읽었어요. 그저께 보내주신 바람은 내 마음 수평(水平)에 잠시 파랑으로 잠 재웠습니다. 저녁비 발 빠르게 뒷마당을 두드리다 가고 사막같이 서걱이던 혀엔 긴 측백나무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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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비요일 -권 혁 모- 이 우기(雨期) 처마 밑 물소리 그림자로 따르는구나. 마릴린 먼로의 흰 살결이 빗방울에 억만 분의 일이라도 섞여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황진이의 치마폭을 적신 술이 조금이라도 스며 있을듯 해서가 아니라, 이 땅 비둘기를 안고 잠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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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박새 생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동박새 생각 -주 영 욱- 봄비 내린다 읽던 책 덮고 무심히 창밖을 보니 뜨락의 목련 꽃잎은 지고 초록잎 돋는 가지에 동박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젖은 몸이 추운지 가끔 꽁지깃을 털기도 하면서 고개 갸웃갸웃 쫑긋거리며 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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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하회탈춤 -조 영 일- 어허 저 놈 보소 빈 하늘 쓸어 안고 전신을 풀어날리는 마디 굵은 춤사위 한마당 불길을 이룬 신명을 쏟아 낸다 우두둑 살점이 뜯긴 아픔을 베어 물고 두 눈 껌벅이며 익혀 든 뜨거운 말 꼬아서 목줄이 붉은 한을 풀어낸다 휘영청 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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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들의 흠구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반쪽들의 흠구덕 -강 영- 결혼 예식장에서 주례사를 듣노라면 이런 말이 귀에 와 닿는다. “둘이 하나가 되었으니‥‥‥”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남편의 반쪽은 아내가 될 테고, 아내의 반쪽은 역시 남편들이 되어 반쪽 더하기 반쪽은 하나가 되는 이치라고. 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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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백일홍[安東 市花] -權 寧 漢- 안동을 상징하는 안동의 시화는 백일홍입니다. 백일홍은 수 천년 동안 온갖 자랑스러운 문화의 꽃을 잘 피운 우리 안동인들처럼 무더운 여름에도 생기를 잃지 않고 오래오래 꽃을 잘 피우는 원기 왕성한 꽃입니다. 예로부터 화무십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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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도 화 촌 -권오신- 학가산 한 자락이 서쪽으로 한참을 내리뻗다가 멈춰서서 새가 알을 품듯 안아있는 조그마한 산 마을이었다. 뒤에는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앞에는 맑은 내가 흐르며, 그 사이 스무 남은 치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땅의 어디에서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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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띄운 케익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강물에 띄운 케익 -김영주- 내 동생은 생일이 없었다. 세상 사람중 생일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는 반문도 가질 수 있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생일을 챙겨준 날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팔월 한가위날 조상 차례를 올리고 낳았다고 하였으니 추석이 생일인 것은 분명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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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HXMLPIC ID="004"></HXMLPIC> <HXMLPIC ID="005"></HXML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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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藥峯은 仁祖反正과 동시에 新王의 부름을 받아 다시 入朝하며 그로부터 그는 同年 9년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可謂 朝廷 重臣의 하나로서 國政에 참여한다. 仁祖反正이 일어나는 것은 光海 15년(1623) 癸亥 3월 13일이다. 전날밤에 金瑬李貴 등이 擧義하여 光海를 축출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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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山 柳寅植의 愛國啓蒙運動과 大東史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金龜鉉 <HXMLSUP ID="*"></HXMLSUP> 東山 柳寅植 선생은 지금의 慶尙北道 安東郡 禮安面 三山里에서 當代의 鋸儒 西坡 柳必永의 二男 二女 가운데 長男으로 태어났다. 西坡 柳必永은 當代에 알려진 鋸儒로서 1919年 俛宇 郭鍾錫 등과 함께 世稱 儒林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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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史」는 어떤 冊인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大東史의 特徵과 編成 東山은 革命家인 同時에 偉大한 史學家이다. 東山의 著述인 『大東史』는 다른 史書와는 그 體制와 性格을 달리하고 尨大함에도, 한 분의 著述이라는 點에서 보면 硏究와 編纂 前述의 期間이 不過 10年도 短期間이라는데 미루어 본다면 前無後無한 巨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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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史 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檀氏朝鮮記 檀君(姓은 桓 또 一說에는 檀이라 姓했다. 諱는 儉이며, 桓因의 孫이고, 桓雄의 子이다. 或은 神化人이라 하기도 한다) 在位 93年 壽217 元年 戊辰(紀元前 2333 國人이 壬儉으로 王으로 推戴(神檀實紀日, 10月 3日 卽位) 國號曰 檀(實紀曰 俗語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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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東山 柳先生의 大東史는, 첫째가 東史라 적었던 旣存의 國史冊과는 다르게 ‘大’를 더하여 題目함이 日帝 때 出刊한 崔南善氏의 『故事通』과는 다른 著述의 志向이다. 大日本라 부른 日本의 大國 根性에 맞서 『大東史』라는 책이름에 드러나는 愛國精神이다. 둘째는 旣存한 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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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시작하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李大杰 <HXMLSUP ID="*"></HXMLSUP> 요즈음 우리 사회는 物質的 豊饒 속에서 精神文化가 병들고 시들어 간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러한 指摘은 우리 사회가 物質的 貧困에서 脫皮하기 위하여 추진된 産業化의 過程을 거치는 동안 지나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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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君子의 쓰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君子라는 말은 周易, 詩經, 書經 등에도 보이는 말로서 이러한 古典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쓰이던 君子란 意味는 社會的 地位나 身分을 나타내는 말로서 個人의 品性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다. 君子란 말이 個人의 品性을 나타내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