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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維歲次) 신해년(1731, 영조7) 9월 신유삭(辛酉朔) 초2일 임술(壬戌)에, 전라우도 부안현(扶安縣) 입하면(立下面) 우반리(愚磻里)에 사는 유학(幼學) 김방길(金邦佶:1715〜42)-을미생(乙未生)-은 천지일월성신(天地日月星辰)의 신령께 감히 밝게 고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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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維歲次) 임자년(1732, 영조8) 3월 무오삭(戊午朔) 20일 정축(丁丑)에, 전라도 부안현(扶安縣) 입하면(立下面) 우반리(愚磻里)에 사는 진사(進士) 김수종(金守宗:1671〜1736)-신해생(辛亥生)-은 감히 묻사옵니다. 신병이 오랫동안 낫지 않기에 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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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입의(立議) 우리 마을에는 옛날부터 향약(鄕約)이 있었으며 규모(規模)가 잘 갖추어져 준행(遵行)된 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근래에 기근(飢饉)과 질역(疾疫)을 겪은 뒤에 상하가 상패(喪敗)됨에 따라서 향약의 규모가 점점 쇠퇴되어 모양을 갖출 길이 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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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마을 규약 조[洞約條] 1. 무릇 모여서 공사(公事)할 때는 삼계장(三契長) 이하 모두가 의관을 정제하고 바르게 앉으며, 이를 어기면 제마수(齊馬首)에 처한다. 2. 계원은 모든 진퇴거동에서 장유의 질서를 지키고 항상 온화한 태도를 하여 공경하기를 게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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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 입의(立議) 우리 마을에는 예로부터 향약(香約)을 실행한 지 오래되었는데 근래에는 약규(約規, 향약 규칙)가 점차 무너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의 회의를 거쳐 조항을 정하여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하나, 상하를 따지지 않고 수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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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입의(立議) 하나. 우리 계는 설립된 지 이미 10년의 긴 세월이 지났다. 돈이 아니면 곡물로, 곡물이 아니면 돈으로 편리를 쫓아 이식(利殖)을 늘린 것이 한 두 해가 아니지만, 계에 모인 자본[본전]은 아직 충분치 못하다. 이제부터 만약 계의 성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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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결락)… 제 정간하▣ 계유년(1753) 10월 〈2〉 계유년(1753) 10월 26일 최시만이 부상(父喪) 때에 밧자(捧上) 술덕 밧자기(捧上記)이다. 매원에 수리 5되(刀), 덕개 4되, 보자(保資) 쌀(米) 1되, 차 1되, 가리 1되, 누룩(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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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입의(立議) 입의(立議)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근래의 약계(約契)는 물력(物力)이 조잔하여 상계(上契)와 하계(下契)에 예급(例給)할 때에 정해진 곡식을 갖추어 지급할 수가 없어서 해마다 논을 파니 매번 부족함을 걱정한다. 이와 같은 것이 그치지 않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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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규약 제정. 계유년(1753) 정월 일 개정 1. 모든 회의와 행사 때에는 세 계장 이하 모두 의관을 단정히 하고 반듯하게 앉는다. 아니면 제마수에 처한다. 2. 계원들은 모든 행동에서 노소의 서열을 삼가 행하여 온화하게 지내며 공경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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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진(庚辰) 12월 20일 좌목(座目)함. 〈2〉 1동장(洞長)에 강돌상이 2동장(洞長)에 손귀세 김정선이 노막산이 이봉선이 문육정이 최 김근창이 양원적이 임돌이 〈3〉 이봉서 양명석이 황강아지 박한재〔着押〕 최 만수 김 김험돌이 손정술이〔着押〕 오천삼이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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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維歲次) 계미년(癸未年) 6월 정해삭(丁亥朔) 초6일 임진(壬辰)에, 주인 김득문(金得文:1732〜67)은 정성껏 향을 피우고 단정하게 절하며 새로 지은 초가집인 위재(偉齋)의 신령께 삼가 고합니다. 10년 동안 집을 지어 이번에야 비로소 완성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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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모선정종회록(慕先亭宗會錄) 서문 모선정(慕先亭)은 우리 9세 조고(祖考) 참봉공이 여묘살이 하던 곳인데, 병란(兵亂)이 일어난 이후로 흥폐(興廢)가 무상하여 무성한 풀밭[鞠爲茂草]이 되었다. 지난 계미년(1763, 영조39) 겨울에 재정을 모으고 공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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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입의(立議) 아래는 입의(立議)하는 일이다. 기묘년 입의의 경우, 을해년(1695, 숙종21)과 병자년(1696) 큰 흉년의 풍파에 계(契)의 물력(物力)이 쇠약(衰弱)해져서 이제까지 으레 지급하던 곡식과 포를 감하기로 정하였는데, 근래 연이어 풍년을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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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태 1말 명중이 1말 늦삼이 2말 흥삼이 1말 담이 1말 이복이 1말 용귀 1말 덕봉이 1말 정학이 1말 우봉이 1말 중재 2말 수삼이 1말 옥단이 1말 범봉이 1말 광손이 1말 원석이 1말 계태 1말 쇠태 1말 윤기 1말 함안댁 2말 〈3〉 제벼[租]치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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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안 〈2〉 강돌상 백산 손귀세 훕시 김정선 노막산 시삼 이봉선 이삼 문육정 명선 중태 〈3〉 양원적 오체 미수파 오체 미수파 이봉서 오체 미수파 황강아지 박한재 손정술〔착압〕 황열쇠〔착압〕 이수재〔착압〕 이시동 이험석 김일천 문명선이〔착압〕 계 갑오(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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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미년 2월 8일 삼성암(三聖菴) 전장기(傳掌記) 〈2〜8〉 대불기(大佛器) 2좌 소불기(小佛器) 11좌 불판(佛板) 1좌 유향합(鍮香盒) 1좌 향로(香爐) 3좌 태쟁(太鏳) 3좌 유촉대(鍮燭臺) 3쌍 목촉대(木燭臺) 2쌍 목향합(木香盒) 3개 요령(搖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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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오계첩(金吾稧帖) 〈2〉 우연히 읊다[偶吟] 달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月步不速又不緩 내 행보는 다다르지도 떠나지도 않소 行步不赴又不去 달 그림자 밝지도 흐릿하지도 않아 桂影不明又不微 노래 소리 편하지도 어렵지도 않네 歌聲不易又不難 병오년(1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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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정조 5)부터 1792년(정조 16)까지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이루어진 강회에서 읽은 책에 대한 목록이다. 학생들을 모아 『대학』을 강하고 이를 병산서원에 기록하였다. 옛날에는 서원을 세워 학문을 강의하는 규범이 있었다. 원외에 남공 용진과 박사 정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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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자(戊子) 12월 25일 병오년(1786) 초(初) 일(日) 흥돌이 부상(父喪) 때에 나락(租) 1섬(石), 누룩(曲子) 4개(介), 상포(喪布) 1필(疋) 전수(全數)를 전급(錢給). 삭담이 부상(父喪) 때 나락 1섬, 누룩 4개, 상포 1필 전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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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동약(洞約) 서문 원래 동약은 오래되었다. 옛날 선인(先人)들인 여러 군자들이 정미년(1667)에 창시했고, 그 후학들이 계유년(1753)에 윤색했다. 그 규모와 절목은 대개 난정(蘭亭)의 계음(禊飮)과 남전(籃田)의 향약(鄕約)에서 취했다. 한가할 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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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냥(兩) 5전(戔) 5푼(分) 중에서 상포(喪布) 3필(疋) …(원문 결락)… 9전이 들고 곡자(曲子) 6개(介) 대금(代金)으로 6전 …(원문 결락)… 남은 돈(在錢) 1냥은 복동이 쓰고 빚 중태 삼 8줌(把) 있고 삼 2줌 큰댁에 쓰고 흥손이 삼밭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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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정조 13)년 병산서원에서 이루어진 강안이다. 강안에는 총 110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이 강학했던 책으로는 사서(四書) · 육경(六經) 과 『소학(小學)』, 『대학혹문(大學或問)』등이다. 평가에 따라 략(略), 통(通), 순통(順通)으로 점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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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종회록(宗會錄) 서문 지난 갑신년(1764, 영조40) 겨울에 중수했던 모선정(慕先亭)이 완성되자 종중의 어른과 젊은이가 모두 모여 낙성식을 거행했으니 소목(昭穆)과 차례와 이름과 호(號), 자(字)와 나이가 모두 근거할 말이 있어서 기록하게 되었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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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순조4)〜1811년(순조11)에 작성된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보관되어 있는 경로회안(慶老會案) 2책은 갑자년(1804, 순조4) 10월 그믐날에 유규(柳{氵+奎})가 짓고 이인형(李寅炯)이 쓴 경로안서(慶老案序)와 갑자년(1804), 무진년(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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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동약(洞約) 서문 원래 동약은 오래되었다. 옛날 선인(先人)들인 여러 군자들이 정미년(1667)에 창시했고, 그 후학들이 계유년(1753)에 윤색했다. 그 규모와 절목은 대개 난정(蘭亭)의 계음(禊飮)과 남전(籃田)의 향약(鄕約)에서 취했다. 한가할 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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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순조 7)〜1885년(고종 22) 병산서원의 운영을 담당한 임원 즉 원장(院長), 유사(有司) 등의 명단을 정리하여 간행한 책이다. 정묘년[1807] 원장 생원 김상섭(金相燮) 재유사 유학 유일조(柳一祚) 이정하(李禎夏) 무진년[1808] 원장 유학 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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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경(嘉慶) 16년 신미년(辛未年, 1811) 2월 16일 향사(享祀) 때. 선생(先生)의 본손(本孫)이자 의계(義契)의 유사(有司)인 전 현감(前縣監) 조용완(曺龍玩)이 전과 같이 명문(明文)함. 오른쪽과 같이 글을 지은 것은 조씨(曺氏)의 의계(義契)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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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순조 23)〜1826년(순조 26)의 기간 동안 병산서원에서 분향례를 거행한 분향자 명단을 기록한 분향록이다. 1823년 7월 15일의 기록부터 1826년 11월 1일까지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7월15일 이한봉(李漢鳳) 류가조(柳家祚) 8월초1일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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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미년 추수곡 도합 10섬 11말 내에 묵은 빚 값으로 벼[租] 2섬 5말, 보자(補資) 값으로 벼 1섬, 상사논야 일호 값으로 벼 7말, 금년 복가[卜價=結價]로 벼 18말, 갑신년 종자 벼 18말, 〈2〉 벼 2섬은 여러 계원들에게 본곡으로 지급하고 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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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북(枝北) 동안(洞案) 〈2〜3〉 도광 9년(1829, 순조29) 4월 25일 아, 우리 동네가 취락을 이룬 지 몇백 년이나 오래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상재(桑梓, 향리)의 고사(古査, 오래된 나무의 그루터기)가 완연히 어제와 같고 분유(枌楡)의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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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안(先案) 〈2〉 도광 9년(1829, 순조29) 4월 25일 본동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풍속은 이미 동안(洞案)에서 말하였다. 동적(洞蹟)은 기록할 만하여 상임(上任)에게 말하였으니, 존중함이 자별(自別)하다. 그러므로 또 하나의 안(案)을 만드니 뒤에 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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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오늘날 모선정(慕先亭)을 만든 사람은 모두 우리 선조(先祖) 모선공(慕先公)의 운잉(雲仍)들이다. 우리 집안의 입안(立案)은 기사년(1629, 인조7)년에 시작되었는데, 선전공(宣傳公)과 사과공(司果公)의 삼종(三從) 5원(五員)이 재산을 덜어 수계(修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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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민이 씨[種子] 2말, 복가(卜價) 4말▣▣, 분(分) 1섬 4말 덕장이 씨 3말, 복가 9말, 분 1섬 5말 늦심이 씨 4말, 복가 18말 5되, 분 18말 억상이 씨 3말, 복가 11말, 분 1섬 15말 영산댁이 씨 1말 3되, 복 16말, 분 18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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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초5일 득발이 모(母) …(원문 결락)… 수를 맞추어 받다. 복의 부상(父喪) 시에 벼[租] 1섬, 곡자(曲子) 2개 저중만이 모상(母喪) 시에 상포(喪布) 40척(尺) 받음. 10월 19일 시쇠 모상 시에 상포 1필(疋) 값에 해당하는 벼 15말 5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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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유학(幼學) 이정모(李貞模)가 병산서원(屛山書院) 원장으로 재임할 때 서원에 재거(齋居)하던 유생 김이숙(金彛叔)과 유경협(柳景恊)이 서원의 전토와 노비 현황 등을 정리한 치부기와 완의. 원안요람(院案要覽) 신유년(1801, 순조1) 3월 일. 유점(鍮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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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북동중절목(枝北洞中節目) 〈2〉 을묘년(1855, 철종6) 2월 24일 개절목(改節目) 이 글은 완정(完定)하기 위한 일이다. 저 우리 마을 터의 북쪽이 텅 비었기 때문에 경술년(1850, 철종1)에 각각 소나무를 심을 만한 곳들을 ▣하고 주인 있는 세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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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미년 2월 초7일 추약. 위는 추가로 약조하는 일이다. 당초 동성(同姓)과 이성(異姓)이 함께 서재(書齋)에서 계를 만들었다가, 다른 성씨는 계의 재물을 계산하여 5냥 5전씩 받고 원하는 대로 계에서 내보냈다. 뒤에 이름을 ‘서계(書契)’라고 하여 문계(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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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서재계(書齋稧) 서문 계를 마련하여 학문을 흥성시키는 것은 대개 옛날의 규례이다. 고려의 문성공 안향과 조선의 문순공 이황 두 선생이 향약계를 설치하였는데 문성공은 병산서실을 창설하여 후학을 장려하였고, 문순공은 도산정사를 건립하여 후예를 힘써 나아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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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미년 5월 제삼치부기 수백이 삼 3단 반, 피삼 3단 반, 피삼 1단 9춤 복동이 삼 3단, 피삼 1단 8춤 흥태 보리 씨(種子) 17말, 분(分) 1섬 3말 서안이 보리 씨 4말, 분 1섬 7말 흥태 보리 2섬 작전(作錢) 3냥 3전 2푼 서안이 보리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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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미년 12월 일 중만이 초기(初忌)에 곡자(曲子) 2개 주고 무신년 5월 초일 문복이 초기에 상포(喪布) 40척(尺). 수를 맞추어 받다. 귀만이 초기에 곡자 2개 주고 셕봉이 초기에 곡자 1개 주고 담리 곡자 2개 주고 득발이 초기에 벼[租] 15말 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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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숨은 현인 81명을 기록한 책인 『방은록(訪隱錄)』 을 짓게 된 경위를 담은 서문과 그 명단 「방은록서, 이덕호의 환송을 겸하다」 2월 계묘월 재생명(哉生明) 2일 정해일에 얼핏 듣기에 한 나그네가 있어 찌그러진 관과 해진 옷을 입고 시화를 적은 두루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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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임선안(上任先案) 〈2〜4〉 옛날의 동장(洞長)은 지금의 상임(上任)이다. 옛 동장 손여지(孫汝智)씨는 지난 경술년간(1730, 영조6)에 잠시 본리[校北]에 거주하였다. 본리 터의 형국(形局)을 보면 금강산(金剛山)의 숨은 산기슭이요, 독산(獨山)의 지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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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영호계 서문 계의 이름은 속되지만 그 의리는 옛 것을 숭상하는데 비롯하였다. 무릇 태일(泰壹)이 처음 판가름되어 음양(陰陽)이 한데 뒤엉켜 만물을 화생(化生)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둥근 머리에 각진 발을 하고 두 눈이 가로로 찢어진 사람은 모두 우리 동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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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약문(鄕約文) 수산(水山) 윗마을 〈2〜7〉 향약문(鄕約文) 수산리(水山里) 윗마을의 백성을 훈계하기 위한 글. 향약(鄕約)은 네 가지인데 1. 덕업(德業)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2. 과실(過失)은 서로 바로 잡아주고[過失相規], 3. 예절에 맞는 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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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장기(傳掌記) 〈2〉 사중잡역절목책자(寺中雜役節目冊子) 수효기(數爻記) 잡역견감책(雜役蠲減冊) 1건 진영납동지사책(鎭營納冬至使冊) 합(合) 1건 서악사수번사어사책(西岳寺守番事御史冊) 1건 각화수번사어사책(覺華守番事御史冊) 1건 진향진주고계주청성균관책(進香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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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 계회는 매년 4월 15일에 개최한다. 하나. 계회는 안동ㆍ예안ㆍ영주 세 읍이 해를 돌아가며 개최한다. 하나. 이름이 잘못되어 정정하지 못하였으면, 매년 계회할 때 들어오는 대로 기록한다. 하나. 계의 모든 인원 중에 이유 없이 불참한 사람은 벌을 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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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과계서(科禊序) 계(禊)를 세우는 의미는 그 근원이 대개 서로 도와주고 구원하는 뜻에서 나온다. 나는 어촌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집이 본디 가난했지만, 다행히 문과(文科)로 등과(登科)했던 것은 이는 조상님께서 쌓으신 음덕(蔭德) 덕택이자 부모님께서 권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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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대장전(大藏殿) 불량계(佛糧稧) 서(序) 듣건대, ‘연못에 임하여 물고기를 부러워하느니 물러나 그물을 짜는 것만 못하다.’라 하였고, ‘풍교를 보아 사물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나아가서 풍속을 물어야 한다.’ 라 하였다. 예로부터 이와 같은데 지금이라고 어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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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성군 고성읍 덕선리 〈2〉 화수계안 하석봉 기묘생 자는 치삼 하명현 병자생 자는 종극 하상현 경진생 자는 영숙 하재윤 정유생 자는 성훈 하재희 무술생 자는 대운 하재상 계묘생 하재관 계묘생 〈3〉 하재오 임자생 하경현 을해생 자는 선칠 하영현 무인생 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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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미년(1883, 고종20) 4월 일 경렴정계첩(景濂亭稧帖) 〈2〜3〉 연정계첩(蓮亭稧帖) 구서(舊序) 도곡(陶谷)의 연정(蓮亭)은 바로 우리 도와(陶窩) 선생께서 왕래하시던 곳이다. 선생께서 원고(元皐)로부터 이곳에 터를 정하고는 담을 쌓아 못을 만들고 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