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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상수원 수질 개선특별조치법안」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告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상수도수질개선특별조치법안』과 관련하여 國民 여러분께 告함!</center> 존경하는 國民 여러분! 21세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정보사회라는 새로운 문명사의 거대한 풍랑 속에 조국과 민족의 진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방방곡곡에서 얼마나 노고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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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풍수지리설 고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安東府城內를 中心한 陽基說- 류희걸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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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序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安東댐 進入路 臨淸閣 앞 道路 가운데 한 그루의 늙은 檜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로 因하여 수많은 交通의 障碍가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除去하지 못하는 理由는 風水說의 信奉 때문인 것 같다. 그 옛날 安東府內에는 靑年들이 夭壽하여 水系를 바꾸고 큰 나무를 심어 水와 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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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風水地理說의 理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가. 風水地理說의 槪念 “風水地理說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라고 簡單하게 答辯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近來에 와서 여러 學者들이 남긴 著書와 論文을 通해서 風水地理說을 理解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崔昌祚 敎授는, ‘韓國의 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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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住居風水說의 接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가. 陽基의 意味 陽基란 住居地를 뜻하는 것으로 사람이 살아 있으면 陽이고 죽으면 陰이 된다. 그래서 死者가 사는 곳은 陰基 또는 陰宅이고 生者가 살 곳은 陽基, 陽宅이라 하여, 風水地理說에서는 陰과 陽을 區別하고 있다. 陰宅은 單純히 墓를 意味하는데 反해서 陽基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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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安東의 地形 分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가. 安東府의 形勝 安東府의 形勝은 옛날과 달라 至今은 몹시 變貌되어 舊地의 形態는 상상키 어렵다. 山이 잘려 아파트가 建立되고, 江이 막혀 댐과 다리가 놓이고, 길이 넓혀져 포장이 되고, 철도는 가로질러 汽笛소리가 높고 군데군데 工場까지 들어섰으니, 名賢들이 極讚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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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安東地方의 裨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가. 裨補 信仰의 意義 地氣가 充滿한 自然의 吉地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積善之家에 必有餘慶’이란 말처럼 吉地를 卜居함에는 적어도 三代에 걸쳐 적선을 베풀어야 된다고 한다. 이렇게 공들여 얻은 吉地라고 할지라도 完全無缺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陽基는 陰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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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다시 문화를 위하여 -김인한(안동문화원장) <HXMLPIC ID="001"></HXMLPIC>1997년도 역사의 저 편으로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대한항공 괌 참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고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한 해였습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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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風水地理의 所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가. 所應의 意義 都邑이나 聚落과 住宅의 陽基에 있어서는 風水說을 絶對로 信奉하여 한때는 이것이 民間信仰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살만한 땅이 風水에 의하여 選定되었고 또 住居나 都邑의 虛한 點과 災厄의 防止策도 역시 風水說로 解決된다고 믿어진 것은 바로 그 結果 所應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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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結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安東은 風水地理說에 의하면 邑基는 行舟形이다. 行舟形은 平壤, 淸州, 公州, 茂朱와 함께 邑地로서는 으뜸이라고 한다. 그러나 落東江이 허리띠처럼 둘러서 生氣를 머물게 할 수는 있어도 成局이 지나치게도 開豁하고 넓은 空野가 많아 이로 因해 그 生氣를 貯積하는데는 期待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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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풍수지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완규 <HXMLSUP ID="001"></HXMLSUP> 풍수는 오랜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풍수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것은 생활의 한 지혜입니다. 허나, 숱한 풍수책과 흔히 지관이라 불리는 풍수사의 이야기를 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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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東을 背景으로 한 野談의 特性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李源杰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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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조선 후기 사회 변동과 야담의 형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선 후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 과정 가운데 농업 경영상의 변화는 특히 주목된다. 이모작의 발달과 시비법의 개발 등으로 인한 농업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원예‧특용 작물의 재배로 인해 농촌 사회는 분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농민 계층은 부농층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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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조상에 대한 추모심을 높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해당 작품은 『천예록(天倪錄)』 소재의 것인데, <HXMLSUP ID="005"></HXMLSUP> 조상의 혼령들이 후대 자손들에게 현몽하여 조상 추모에 대해 소홀히 하고 있는 후손을 꾸짖고 무지를 개선시킨다는 것이다. 대본은 일본 천리대본 『천예록』 26,‧29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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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외조부의 음덕에 의해 성현 퇴계가 태어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작품은 『청구야담』에 실린 것으로, <HXMLSUP ID="010"></HXMLSUP> 여러 야담집에 동시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다소 신이적인 장치가 구비된 작품인데, 퇴계 외조부의 음덕에 의해 동방의 대현(大賢) 퇴계가 탄생했다고 결말짓고 있다. 문제는 이 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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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영남의 문흥(文興)과 문벌 과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예부터 영남은 문흥의 고장이며, 족세를 형성한 족성(族姓)을 중심으로 각자의 문벌을 중시하고 과시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안동을 중심한 야담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예외가 아니었다. 예천과 순흥, 안동의 지인(知印) <HXMLSUP ID="012"></HXMLSUP>들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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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평범한 인물의 국난 극복 역량 고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리 역사상 국가적 위기 앞에 수많은 인물들이 애국의기를 보여왔다. 국난 극복에 있어서 전 국민적 참여하에 숱한 국가위기가 극복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의 뒤안길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국가위기 극복에 있어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간과되는 안타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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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가부장의 전형 안동 권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는 조선 후기 모든 종류의 야담집에 단골격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즉, 『동패락송』, 『기관』, 『계서야담』, 『청구야담』, 『선언편』, 『동야휘집』 등에 골고루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여타 화집에도 예외없이 체록되어 있다. 그리고 작중 전달하기 어려운 권생의 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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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9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권두현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현실과 전망 편집자 - 34년만에 안동에 온 하회탈 편집자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관련기사 재수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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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여성 의식의 향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위에서 검토한 안동 지방의 야담은 너무 고답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신분을 넘는 남녀의 진솔한 애정을 반영한 것도 있으며, 남성들의 완력 앞에 굴종하지 않은 여성들의 작품도 있다. 이제 마지막 대목에서 이런 점을 부각해 보기로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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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선 후기 우리 사회의 변동 양상과 야담의 형성 배경을 토대로 여섯 항목에 걸쳐 안동을 배경으로 해서 창작된 야담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안동 지방의 문집류에는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도서관에 수장되었다가 역수입되어 학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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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주교의 어제와 오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윤대영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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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man Catholicism: 천주교의 이름에 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그리스도교에서 신교에 대한 구교 즉 가톨릭의 총칭이다. 천주교라는 말은 가톨릭교가 동양에 전래되면서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불린 명칭이다. 따라서 천주교라고 하면 가톨릭교를 뜻하는 말이지만 단순히 가톨릭교라 할 때는 동방정교회 그리스 정교회까지를 포함하여 지칭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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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현재 가톨릭 교회는 약 6억의 신도를 가진 세계 최대의 종교단체로 유럽,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여러 나라에 퍼져 있으며 그 거대한 인간집단은 일정한 조직을 가지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조직을 만드는 원리를 “히에라르키아” hi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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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천주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동양에 천주교를 처음 전파한 성직자들은 인류애의 사상과 개척정신에 불타고 있던 예수회 신부들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한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 중우론(重友論) 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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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 본당 설립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유학의 본고장인 안동은 경상도 북부 지방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고을이다. 조선조 세조 때부터 안동 부사에게 병마절도사를 겸하게 하였다. 진보 머루산, 영양의 곧은정, 봉화 우련밭 신자촌에서 김종한, 안드레아 등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안동진영에서 혹형으로 순교하거나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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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성경 공동번역 사업 등 교회 일치운동이 번져가는 무렵 안동에서 신 구교간의 친목과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965년 말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신교를 대표하여 낙은 김인한(洛隱 金仁漢) 장로와 구교에서는 하남 류한상(何南 柳漢尙) 일창 윤대영(一昌 尹大榮) 등의 발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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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동 교구 설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로마 가톨릭 교황청은 1969년 5월 29일 대구교구 감목 대리구를 승격 안동 교구로 설정하여 초대 주교로 두봉(Dupont) 주교를 명하였다. 두봉 주교는 프랑스인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신부이다. 안동 목성동 성당은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하고 1969년 5월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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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념 교육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 교구 설정 25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교육관을 설립 1997년 9월 22일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 57에 대지 12,000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1,239평의 농은(隴隱) 수련원을 준공하여 봉헌하였다. ∙수련원을 농은으로 한 까닭 농은 홍유한(隴隱 洪儒漢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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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현실과 전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문화축제‧관광자원으로서의 탈춤축제- 권두현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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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카톨릭이 안동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교육 사업 ∙성심유치원 안동에서의 유치원 시설의 효시였던 대건(大建) 유치원이 6.25사변으로 소실되어 없어지고 안동지방에 유치원 시설이 전혀 없던 시기에 어린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62년 1월 5일 목성동 성당 구내에 여동찬 신부가 성심 유치원을 설립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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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화회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 교구 두봉 주교가 취임하여 첫 사업으로 안동 시내에 문화시설이라고는 전무한 시절에 문화회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1970년 4월 29일에 부지와 건축 중이던 구 시민극장을 매입하고 1971년 9월 13일에 건평 696평의 규모로 착공하여 1973년 9월 23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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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동 학생 회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정규의 학교를 다니지 못한 직장인들의 야간 학교를 운영하며, 지방 대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며, 영어 강습을 목적으로 1974년 2월 21일 마리스다 수도회에서 처음 사설 영어강습소를 인가받아 운영하기 시작하였으며, 1976년 1월 15일에 마리스다 회관의 준공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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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시 종합사회 복지관 운영 룩셈부르크의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가 한국에 파견한 관구는 가톨릭 상지전문대학, 기숙사, 유치원 등 사업 이외에도 1991년 8월 20일 안동시 옥동 974번지에 종합 복지관을 짓기로 결정하여 1993년 8월 27일에 준공을 보았다. 원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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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안동신용협동조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리 사회가 너무나 신용 없는 사회로 치닫는 감이 짙은 시기에 은행 문턱도 높아서 서민들의 소자본 이용에도 손쉽게 해결되면서 사회를 신용사회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충정으로 본당 이길준 신부의 명으로 당시 사목 확장으로 있던 윤대영 글레멘스가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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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안동 가톨릭 농민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농민 스스로의 단결과 협력으로, 농민 권익을 옹호하고, 인간적 발전을 도모하며, 사회 정의의 실현을 통한 농촌 사회와 인류 공동체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한국 가톨릭 농민회 회칙 제3조에 그 목적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초까지 농업 국가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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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안동 교구 가톨릭 농민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976년대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저임금, 저곡가에 바탕한 대외 종속적인 경제구조가 심화되고 기층 민중들의 생활은 날로 위협받았다. 교회 안에서는 정의 구현 사제단과 정의 평화 위원회 활동이 활발했으며, 개신교와의 연대도 활발하였다. 한편 이 시기는 민중들의 대응도 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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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맺는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나는 이 지구상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훨씬 이전에 공산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를 세계 치과의사 총연맹 총회에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문한 일이 있었다. 수도인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 입국 수속을 받는데 다른 나라 대표들은 쉽게 잘도 빠져나가는데 유독 우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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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退溪先生 이야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道를 찾는 學問의 길 金龜鉉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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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어떤 예쁜 여인을 보고는 보자마자 그 여인의 아름다움을 알아 마음으로 그 여인을 좋아하게 되어 사랑이 이루어졌고, 고약한 냄새는 맡으면 맡자마자 그 냄새의 고약함을 알고는 마음은 제절로 그 냄새를 싫어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는 안다는 것과 그렇게 알게 된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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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검토를 통해 거듭나는 탈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이 글은 관심과 기대 속에서 열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하 탈춤축제)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어설프게나마 검토하고자 함에 있다. 이제 한 번을 치룬 탈춤축제가 모든 부분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미진한 부분을 엮어간다면 살아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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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퇴계는 유학자(儒學者)이면서 도학자(道學者)이시다. 사람이 지켜나갈 길을 추구하는 학문을 하신 분이다. 그에게 있어서 학문이란 훌륭한 인격을 갖춘 성인(聖人)이 되는 길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성인(聖人)이 되려면 도(道)를, 바꾸어 말하면 인생이 나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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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추연(禹秋淵)은 중종36(1542)년 서울에서 출생한 분으로 고려말(高麗末)의 석학(碩學) 우역동(禹易東)의 후손으로 휘(諱)는 성전(性傳)이다. 일찍부터 도산으로 내려와 퇴계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분으로 역학(易學)과 예학(禮學)에 높은 조예가 있었다. 선조(宣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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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퇴계선생의 학문은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를 표준으로 한다. 경(敬)과 의(義)의 학문론을 살펴 보는데 먼저 퇴계의 배우는 자세를 말해 본다. 경과 의를 양쪽에서 지탱한다. <경의협지(敬義夾持)>라 했다. 이 말은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의 「경의직내 의이방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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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퇴계는 세상사람이 항상 명예나 이익에 따르는 것을 보기를 마치 도둑을 피하듯 하였으니, 곧 자신의 마음에 더럽힘이 주는 듯이 생각하였다. 그는 집에 있어서도 집안 재산을 늘리느냐 하는 일에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집안 사람에게는 절용하기를 훈계하였고, 하인들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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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퇴계선생은 많은 저술을 남겨 놓았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으뜸이냐 하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문화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와 정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보는 등, 마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상적(思想的), 특히 철학적(哲學的)인 면에 치중한다 하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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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聖 金生 小考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박문환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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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라명필 김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리나라 최초의 명필 김생은 신라 성덕왕 10년(서기 711년) 경주에서 태어나 원성왕 7년(791년)에 서가하기까지 80평생을 오직 붓 하나만을 천직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김생의 별명은 구(玖)요, 자는 지서(知瑞)로 서예의 각체, 즉 전서, 행서, 해서, 초서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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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 열 마지기 먹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김생에게는 서예에 얽힌 일화도 많고 전설도 많다. 후세에 단편적으로 기록된 이런 이야기들이 김생의 필력을 평가하고 그의 일대를 더듬는 유일한 증거들이다. 지금의 경주, 옛날 신라의 서울 서라벌 교외 어느 조용한 곳에 있던 아담한 집에 김생은 살고 있었다. 64~65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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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성 일인자의 왕희지와 김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고려 때 명필로 알려진 학사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에 들어가서 변경의 객관에 머물렀는데 이때 송의 한림대조(翰林待詔)인 양구(楊球)와 이혁봉(李革奉)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객관에 이르러 족자에 글씨를 청하였다. 홍관이 김생의 행초 1권을 내어 보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