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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는 알 수 없으나 당나라와 송나라의 명시, 명구를 필사한 것이다. 칠언절구 1수, 명(銘) 1수, 오언절구 2수이다. 칠언절구는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종산에서 저녁에 걷다[鍾山晚步]〉이다. 명은 송나라 주희(朱熹)의 〈서자명(書字銘)〉이다. 오언절구 첫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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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東軒), 번포(樊圃), 호은(湖隱)이라는 호를 사용하는 이들이 지은 칠언율시 3수이다. 동일한 운(韻)을 사용한 차운시이다. 제목의 ‘심영(沁營)’은 강화부(江華府)이다. ‘이 생원’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지은 시기도 1월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다.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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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병부(長淵病夫)라고 자칭하는 알 수 없는 인물이 지은 칠언율시이다. 본 문서가 창원황씨 고문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목의 의주 부윤은 황일호(黃一皓)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다. 시의 5구와 시 말미에 덧붙인 글에서 언급한 경신년은 1620년으로 추정된다. 〈의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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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화(鄭太和)가 황일호(黃一皓)에게 준 시로 추정된다. 이 시는 정태화의 『양파유고(陽坡遺稿)』 권1에 〈앞의 운을 다시 써서 대윤의 책상에 바치다[又用前韻呈大尹案下]〉 2수 중 제2수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1640년을 전후하여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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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의 오언율시 3수이다. 첫 번째 시는 앞부분이 탈락되었으나 신유(申濡, 1610〜1665)의 『죽당집(竹堂集)』 권1에 실려 있는 〈용만수세(龍灣守歲)〉 4수 중 제1수이다. 이 시는 신유가 1639년 심양(瀋陽)으로 들어가며 지은 것이다. 뒤의 2수는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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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를 알 수 없는 원운과 역시 작자를 알 수 없는 차운시이다. 차운시의 작자는 ‘창해’로 표기되어 있으나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시의 내용상 명나라 말기 후금의 세력이 강성해지는 상황에서 해안 지역으로 부임하는 관원을 전송하는 시로 추정된다. 의주 부윤으로 부임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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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所 黃一皓(1588-1641)가 雲峯縣監의 임기를 마치고 1624년(인조 2) 가을에 부여에 돌아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假漁翁의 입장에서 지은 漁父歌類의 長歌이다. 10년 전 귀양살이로 암울하고 고독했던 시절과 6년간의 벼슬살이를 회고하며 고향에서의 은거생활을 맹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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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이 부여에 소재한 당산(堂山)을 위해 지은 기문 「당산기」 나는 『산해경(山海經)』 과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전을 보고서 천하에 명산(名山), 대천(大川), 오악(五嶽), 구독(九瀆)의 크고 작으며 아름답고 기이한 형상으로도 기록하기를 꺼린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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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원(黃景源)이 부여의 정자 몽뢰정을 위해 지은 기문과 부여10경의 명단 「몽뢰정기」 내가 어려서 부여현을 지날 때 저녁에 작은 배를 타고 유람하며 위로부터 흐름을 타고 고란사에서 유숙하였다. 따라온 노승에게 산천에 대해 묻자 동쪽으로는 고청봉이 있는데 계룡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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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종이 가상의 공간인 입덕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설명한 기문 「입덕문기」 1811년 2월 기축일 별립산인이 쓰다【윤종(潤鍾)】 융흥 9년 봄 정월 일. 나종언(羅從彦)이 나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자의 입덕문(入德門)을 보았는가. 선비 중에 뜻 있는 자도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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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黃璡)이 충노(忠奴) 김말산(金末山)이 죽자 그의 평소 충성스러운 행동을 기록하여 남긴 애도문 「충노 김말산 행실【아술당이 기록한 친필】」 우리 가문 옛 노복[蒼頭]이 있었는데 성은 김이고 이름은 말산으로 용모는 작고 왜소하지만 굳세고 침착하며 성실하여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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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黃愼)이 1596년(선조 29) 8월 25일에 일본에 통신사(通信使)로 가면서 바다 앞에서 맹세하면서 쓴 글을 옮겨 적은 기록 「서해문(誓海文)」 1596년(선조 29) 8월 25일 경신. 이리와 범이 우글거리는 가운데 이미 2년이나 부절(符節)을 가졌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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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권씨(醴泉權氏) 세고(世稿)의 서문인데 졸재(拙齋) 권오기(權五紀)의 11대손 유환(裕煥)의 부탁으로 지은 것으로 내용은 대략 본래 흔성(昕姓)이었지만 왕의 휘(諱)를 피하여 권섬(權暹)을 시조로 예천(醴泉) 권씨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권씨 집안 현인들의 행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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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6월 하순(下旬)에 식암(息庵) 황섬(黃暹)의 학업의 연원과 과거에 급제한 뒤에 현요직(顯要職)을 역임하면서 행한 업적, 주상을 호종하는 등의 행적과 훌륭한 문장 등에 대한 내용으로 쓴 식암문집의 발문. 황식암문집발(黃息庵文集跋) 영남(嶺南)은 본래 인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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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1723, 경종3)에 후계(后溪) 김범(金範)의 외손인 조해(趙瀣)가 공헌왕(恭憲王)의 신한(宸翰)과 임금이 하사한 제문(祭文) 및 여러 공의 용장(容狀)과 전(傳)과 효문(孝門)의 발문(跋文) 등을 모아 후계집(后溪集)을 판각(辦刻)하면서 정규양(鄭葵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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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불구당유사(先祖不求堂遺事)는 불구당 김왕(金迬)의 행적에 대한 유사인데 모두 4편으로, 무인년(1638, 인조16) 8월 9일에 김왕이 성균관 장의가 되어 임금에게 지어 올린 척조병소(斥助兵疏), 경오년(1750) 동짓날에 이광정(李光庭)이 지은 행장(行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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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1670, 현종11) 9월 29일에 유원지(柳元之)가 외고조(外高祖)인 풍뢰헌(風雷軒) 김시추(金是樞)에 관하여 지은 것으로 당호를 정한 일 등의 훌륭한 행적과 수암공(修巖公) 유진(柳袗) 등에게 들은 일을 인용하여 기록한 유사(遺事)로 뒷부분에 제문(祭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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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7월에 손자인 김정준(金定浚)이 김해 김씨의 연원과 역대 벼슬한 선대의 과거에 급제한 이력과 관직과 조부 김영락(金榮洛)이 평소에 행한 공적과 성품, 학업의 성취 후손들을 기록한 유사(遺事). 유사(遺事) 부군(府君)의 휘(諱)는 김영락(金榮洛)이고 자는 원 -
615119
개장(改葬)할 때, 영역(塋域)을 열고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 때 남녀의 위차와 옷차림과 전(奠)을 설행하는 일과 장례를 지내는 일 사당에 고하는 일 등의 의식 절차 및 축문을 적어 놓은 글이다. 개장 개영역 사토지축(改葬開塋域祠土地祝) 개장(改葬) 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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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이화곡(梨花谷)에 無狀梨花谷 봄날의 짧은 해 지려 하는데 將埋少日春 계문(繼聞)은 상중에 있으니 繼聞方艸土 누가 상여 줄 잡고 만가 부를까 誰是紼謳人 그대 보내는 것을 어찌 차마 말하리 送君那忍說 그대는 옛 친구의 아이인데 君是故人兒 옛 친구에게 무슨 한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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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9일 밤, 꿈에서 깨어 읊조리다〉 孤苦平生恨我生 외롭고 고달픈 이내 삶이 한스럽더니 二兒晩幸聯綿得 다행히도 두 아이를 연이어 얻었다네. 世間萬事我何求 세상만사 가운데 내가 무엇을 구할까? 其壽其賢願天錫 부디 하늘이 장수와 어짊을 내려주길. 【수붕(壽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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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萬曆) 24년(1596, 선조29) 병신(丙申) 10월 갑자삭(甲子朔) 7일 경오(庚午)에 외형(外兄) 통덕랑(通德郞) 전 공조 정랑(工曹正郞) 박성(朴惺)은 감히 술과 과일로써 내제(內弟) 한림(翰林) 김공(金公)의 무덤에 드리면서 고하네. 예장(櫲樟)나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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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일에게 작별하며 지은 시 청심루(淸心樓)에 가는 권장곡(權藏谷)과 작별하며 奉別權藏谷赴淸心樓 【이름은 태일(泰一)이다】 五馬元非賁一身 다섯 필의 말은 원래 일신을 꾸미는 게 아니요 專城自是爲雙親 지방관이란 본디 부친과 모친을 위한 것이라네. 東華花柳沿庭色 흐드러 -
615124
미상 년 이익(李瀷)이 지은 안서우(安瑞羽)와 안극(安極)의 묘갈명, 윤창희(尹昌喜)ㆍ안신형(安信亨)ㆍ안윤겸(安允謙)이 지은 안극(安極)의 만사(輓詞), 박사정(朴思正)이 지은 안극의 처 공인(恭人) 이씨(李氏) 묘지명, 이익(李瀷)이 지은 『이자수어(李子粹語)』 -
615125
1606년(선조 39) 5월 22일, 황신(黃愼, 1562〜1617)이 지은 4언 운문이다. 당시 황신은 관직에서 물러나 충남 부여에 우거하고 있었다. 행장에 따르면 부여로 이사한 것은 1607년의 일이나, 이 글로 보건대 그에 앞서 이미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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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민루서(樂民樓序)【누(樓)는 함흥(咸興)에 있다. 등제(登第)하던 해에 장인 유천공(柳川公)이 함경감사로 재직하면서 경일(慶日)날 과거(科擧)를 설행(設行)했는데 사위 정백창(鄭百昌)이 구호(口號)로 읊조리면서 통판(通判) 윤명지(尹命之)에게 빨리 기록하도록 하였 -
615127
해산헌(海山軒) 팔경(八景)을 읊조린다. 아득히 물안개 낀 바다의 외로운 섬에 雲海茫茫島嶼孤 지는 노울 지는 석양이 허무를 비추네 落霞殘照映虛無 그대가 용면의 솜씨를 모방할 수는 있겠지만 饒君倩得龍眠手 이곳 경치처럼 똑같이 그리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箇裡難容着色摹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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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낙조(虎岩落照) 만고토록 호암(虎岩)은 해변(海邊)을 베개하고 萬古盤陀枕海邊 서쪽 산꼭대기에서 쪼인 낙조가 가장 예쁘더라 最宜殘照下西巔 이글이글 붉은 낙조가 걷혀가는 것 봤는데 戎戎漸看紅將斂 조금 남은 노을빛 언뜻 시야에서 소멸하네 一抹餘光送瞥然 위도귀범(蝟島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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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인조7)에 정경세(鄭經世)가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을 다시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봉안할 때에 지은 제문(祭文) 다시 봉안할 때의 제문[復享時祭文] 숭정2년 기사년(1629, 인조7) 3월 1일 정우복(鄭愚伏) 문충공(文忠公) 서 -
615130
1659년(효종10)에 종향할 때의 제문과 때 사유를 고하는 글, 수암선생(修巖先生)을 봉안하는 제문과 정위 고사문(正位告事文), 신위 부향문(新位祔享文) 등의 병산서원(屛山書院)의 제문(祭文) 종향할 때의 제문[從享時祭文] 정위제문(正位祭文) 역책(易簀)한 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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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1670년, 현종11) 윤원거(尹元擧)가 짓고 윤문거(尹文擧)가 글씨를 쓴 윤선거(尹宣擧)의 묘표(墓表) 조선국(朝鮮國) 고(故) 징사(徵士) 노서선생((魯西先生) 파평(坡平) 윤군(尹君) 선거(宣擧) 길보(吉甫)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 한두 형제가 아직 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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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겸(黃載謙)과 황탁(黃鐸)이 황재천(黃載天)의 화갑을 축하하며 지은 칠언율시이다. 임자년(1672) 8월 갑신은 우리 종형(宗兄) 남포공(南圃公)의 회갑이다. 백발에 색동옷 차림으로 내외가 함께 –2자 빠짐- 즐거워하고 자손이 줄지었으니 참으로 한 집안의 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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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40) 숙종이 행 판중추부사 윤증(尹拯)에게 내려준 치제문. 강희 53년 유세차 갑오년(1714, 숙종 40) 3월 임인삭(壬寅朔) 14일 을묘에 국왕은 예조 좌랑 홍정상(洪廷相)을 보내어 죽은 행 판중추부사 윤증(尹拯)의 영전에 유제(諭祭)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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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40) 왕세자가 행 판중추부사 윤증(尹拯)에게 내려준 치제문. 강희 53년 유세차 갑오년(1714, 숙종 40) 3월 임인삭(壬寅朔) 25일 병인에 왕세자는 궁광(宮官) 문학(文學) 홍상빈(洪尙賓)을 보내어 죽은 행 판중추부사 윤증(尹拯)의 영전에 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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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숙종 43) 3월 6일, 숙종이 충남 직산 영소정(靈沼亭)에 쓴 시이다. 이 시는 『열성어제(列聖御製)』에도 실려 있다. 당시 숙종은 온양 온천으로 행차하던 중 직산 행궁에 머물렀는데, 이곳에 영소정이 있다. 앞서 현종이 1665년 온양 온천에서 돌아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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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維歲次) 정사년(1737, 영조13) 4월 기미삭(己未朔) 13일은 곧 동애 이공(東厓李公)이 대귀(大歸)하는 날입니다. 하루 전 경오일(庚午日)에 친우 광산(光山) 김대(金岱)는 눈물을 흘리며 글을 지어 영위(靈位) 앞에서 삼가 고하며 곡합니다. 아, 슬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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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守分) 김선생(金先生) 행장(行狀) 공(公)은 휘가 단(湍)이고, 자(字)가 지숙(止叔)이다. 김씨(金氏)는 부령(扶寧)에서 계파(系派)가 진출(進出)하였으니 부령(扶寧)은 지금의 부안현(扶安縣)이다. 본(本)은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후예(後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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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인조17)에 병산서원을 중수하는 공사를 마무리하는 낙성식을 거행할 때 류규(柳{氵+奎})가 지어 올린 상량문 금상(영조) 47년[신묘, 1771] 5월 2일[임인] 오시(午時) 상량문 【숭정기원후 세 번째 신묘년인 건륭 36년에 중수함.】 필방의 재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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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40) 민정경(閔禎敬)이 윤증(尹拯)을 애도하며 지은 치제문. 숭정 기원후 유세차 갑오년(1714, 숙종 40) 3월 정사일에 후학 여흥(驪興) 민정경(閔禎敬)이 한 마리 닭과 한 잔 술을 가지고 고 명재(明齋) 선생의 영전에 두 번 절하고 곡하며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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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40) 문인 신명휴(申命休)가 스승 윤증(尹拯)을 애도하며 지은 치제문. 유세차 갑오년(1714, 숙종 40) 3월 임인삭(壬寅朔) 16일 정사에 문인 평산(平山) 신명휴(申命休)가 삼가 변변찮은 제물을 가지고 명재(明齋) 윤 선생(尹先生)의 관 앞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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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40) 문인 민준(閔晙)이 스승 윤증(尹拯)을 애도하며 지은 치제문. 유세차 갑오년(1714, 숙종 40) 3월 임인삭(壬寅朔) 14일 을묘에 문인 민준(閔晙)이 삼가 술과 떡, 물고기와 과일을 가지고 명재(明齋) 윤 선생(尹先生)의 영전에 전을 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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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40) 박필모(朴弼謨)가 종조(從祖) 윤증(尹拯)을 애도하며 지은 치제문. 유세차 갑오년(1714, 숙종 40) 3월 임인삭(壬寅朔) 초6일 정미에 후손 박필모(朴弼謨)가 삼가 닭 한 마리와 술 한 잔을 가져와 종조(從祖)인 명재(明齋) 선생의 영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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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관찰사로 떠나는 오사(五沙) 이공회(李公會)를 전송하면서〉 千尋藥峀護神京 천 길 높은 약봉(藥峰)이 한양을 보호하면서 培得壇楓化國楨 풍단(楓壇)을 배양하여 국가의 기둥 만들었네. 已是此身皆聖渥 이 몸은 이미 성상의 은혜가 아님이 없거늘 居然方岳又門生 어느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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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曙光微 ■■■■ 새벽빛 희미할 때 驚■■人寫別詩 ■■ 깜짝 놀라 이별시 적노라. 共枕窓前情不盡 창 앞에서 함께 자도 애틋함이 가시지 않거늘 分裾程■恨難支 길 위에서 헤어지자니 회한을 주체하기 어렵네. 溪流曲曲忝君語 굽이굽이 시냇물은 그대의 말을 더럽히고 山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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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생계(長生契) 〈1〉 무릇 ‘계(契)’라는 것은 어찌하여 만든 것인가? 옛말에 이르기를 계라는 것은 ‘합한다’는 것이니 여러 마음을 합쳐서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우리들은 취미가 서로 같고 의기가 서로 뜻을 같이하여 믿지만 말세의 의론이 번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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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대암(蓮臺庵) 갑오년(1894) 2월 칠성계성책(七星稧成冊) 〈3〜5〉 옥천사(玉泉寺) 연대암(蓮坮庵) 칠성계(七星契) 서(序) 이의(二儀)가 처음 판가름 나고, 삼재(三才)가 비로소 나열되면 이내 천지가 생겨나고 곧바로 해와 달, 성군(星君)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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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종(甲種) 12호 지통(紙筒) 유진(留鎭) 병오년 여름 4월 일 옥천사(玉泉寺) 신중단(神衆壇) 장등계책(長燈契冊) 〈3〉 신중계(神衆稧) 장등(長燈) 서(序) 〈4〜7〉 옥천사(玉泉寺) 신중단(神衆壇) 장등계(長燈契) 서(序) 하늘의 밝은 해는 긴 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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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축생계첩(丁丑生契帖) 〈2〉 내가 홀로 정축생 공(公)들을 부러워하기만 하다가 궐연히 계(契)를 만들지 못한 지가 59년이 되었다. 이에 지난해부터 비로소 계를 만들 수 있었으니 한탄스럽지만 늦고 만 것이다. 그러나 계원 가운데에 무고한 인원이 아직도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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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신미갑계(辛未甲契) 좌목(座目) 55원(員) 응교 최후상(崔後尙) 주경(周卿) 1월15일유시 갑오사마 갑진정시 완산인 유학 민계도(閔啓道) 군옥(君沃) 1월19일자시 여흥인 유학 이상기(李相夔) 일경(一卿) 1월24일신시 완산인 판관 이수전(李粹全) 자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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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유년(1693, 숙종19) 1월 15일 수양정씨(首陽鄭氏) 종계좌목(宗稧座目) 〈2〜7〉 종계좌목(宗稧座目) 정수(鄭樹) 만엽(萬葉) 계해 정직(鄭樴) 수부(秀夫) 기축 정억(鄭檍) 수춘(壽春) 갑오 정빈(鄭彬) 여회(汝晦) 기해 경오식년무과 정해(鄭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