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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一綱八目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일강팔목소」는 서두에서 문과급제 이후 당시까지 자신이 걸어온 정치역정을 간략히 서술하고, 이어서 광해군의 등극을 축하하면서 백성들이 그(광해군)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時事의 急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진술하고자 한다고 했다. 매창은 현실정치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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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飮酒禮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 향음주례(鄕飮酒禮)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어진이를 존중하고 노인을 공경하는데 뜻을 두고, 학문과 덕망이 있는 주빈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향촌의례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수령이 주인이 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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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箕子朝周受封辯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다음은 매창의 역사인식에 대해 살필 차례이다. 여기서는 그가 남긴 「箕子朝周受封辯」을 통해 본 箕子와 箕子朝鮮, 즉 상고시대에 대한 ‘역사인식’을 살피기로 한다. 매창은 기자가 周나라에 조회하였고 武王이 기자를 封해 주었다는 設을 괴이하다고 하여 부정한다. 이를 본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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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宗直의 嶺南 歷史風俗의 詩的 形象化 樣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李源桀 안동대학교 국학부 강사 </center> Ⅰ. 머리말 Ⅱ. 金宗直의 自主的 鄕村 意識 Ⅲ. 善山의 遺風과 情緖 : 「十絶歌」 Ⅳ. 慶州의 風俗과 民歌의 形象化 : 「東都樂府」 Ⅴ. 맺음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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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점필재 김종직은 조선 전기 문물제도가 융성하던 세조-성종대에 활동했던 바, 그는 사상·정치·문학사에서 비중이 있게 거론되어 온 인물이다. 그는 사상사적 측면에서 성리학의 초기 전수자로, 정치적 측면에서는 성종대 新進士流의 후견인으로, 문학사적인 면에서 조선 전기를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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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金宗直의 自主的 鄕村 意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그의 향촌 의식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그의 가문 내력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의 가문은 길재의 경우와 비슷하게 선산의 土姓吏族에서 여말에 비로소 사족으로 성장하였다. 부친 김숙자는 길재의 학통을 이어 내외 관직을 역임하고 박홍신 무남독녀의 사위가 되면서부터 처가인 밀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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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善山의 遺風과 情緖 :「十絶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선산은 김종직에게 각별한 의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은 자신의 유학적 소양을 키워 주었고, 유교적 유풍이 깃든 고장이라고 늘 자부했었다. 일찍이 이중환도 이곳 선산이 산수가 수려하며 인재의 寶庫라고 천명한 바 있다. <HXMLSUP ID="001"></HX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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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慶州의 史話와 民歌의 形象化-「東都樂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동도악부」는 신라의 수도 경주의 풍속과 역사의 시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김종직 문학 논의상 특징적인 국면을 들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만큼 소중한 작품이다. 이는 이미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은 성격의 것이면서, 개인적인 감회를 지양하고 전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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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김종직의 영남 지방을 배경으로 창작된 연작 역사풍속시를 검토하였다. 그는 생장 공간이며 주거지인 영남 일대의 향토에 대한 관심이 유별했다. 이곳은 그의 생활 근거지 및 정신적 고향으로서도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신진사류를 대표하는 입장으로 지방의 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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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 이덕홍 선생의 학문과 사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이제곤 온혜초등학교 교사 </center>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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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올해는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경상북도와 안동시 주최로 10월 5일에서 31일까지 약 1달간 세계유교문화축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사실 퇴계 이황(1501~1570)은 안동이 낳은 세계적인 위인임에 틀림없다. 그는 뛰어난 학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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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간재의 생애와 저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간재의 가계 간재의 본관은 永川으로, 시조는 고려초 平章事를 지낸 高鬱君 文漢이고, 중시조(1세)는 克仁의 후손 영양군 대영이다. 그의 5대손 군기시 소윤 헌이 고려말에 벼슬을 버리고 영천에서 예안현 汾川(부내)으로 이거하면서부터 그의 자손이 안동 예안 지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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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암송(강경)대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행사목적 「세계유교문화축제」 중의 한 행사로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하나였던 經典暗誦(講經)大會를 통하여 사라진 전통의 經典暗誦法을 되살려 사서삼경의 핵심 내용을 알리고, 전국의 참신한 선비들을 발굴하고자 하는 것임. ◆ 講經試---경전암송 과거고시 <HXMLPI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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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간재의 사제 및 교우관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퇴계와의 사제관계 간재는 그의 나이 18세 되던 명종 13년(1558) 가을에 그의 학구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때 청량산에 머물면서 퇴계의 제자 琴蘭秀에게서 『고문』을 배웠고, 다음해 봄에 琴公이 惺惺齋에 머물러 있을 때 찾아가서 한 달 동안 있었는데, 琴公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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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리학에의 경도(傾倒)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간재는 퇴계의 성리학을 그대로 전수하였으면서도 나아가 심성론에 대해 음양의 역학적 논리를 관통시키는 독자적 면모를 구축하였다. 간재는 33세 때 조목과 未發已發의 문제를 변론하였고, 權宇와의 토론에서 性과 道의 체용관계를 분석하면서 性體道用說을 전제하고, 이를 솔개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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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석서의 집대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영조 19년(1743) 이광정이 쓴 서문에는 “간재 선생은 어릴 때부터 老先生(이황)이 서거하실 때까지 12년간을 질병이나 사고가 없는 날에는 언제나 侍側하였다. 노선생이 이름을 지어 주시고 큰 기대를 하셨고, 선기옥형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서적의 관리도 맡기셨다.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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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극한 스승 존모(尊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간재는 스승의 사후 「만장」, 「제문」, 「묘지서」, 「묘지명」 및 『계산기선록』을 짓기도 하였다. 이 중에서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 스승의 언행을 기록한 『계산기선록』이다. 이 책의 목판본과 필사본은 모두 『간재집』에 실려 있는데, 전체적으로 내용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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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용성의 중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간재는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兵略·算學·曆法에도 정통하였다. 역법에 있어서는 선기옥형의 제조도 있었거니와 「육십갑자음양변」·「연월일시운세설」 등이 있고, 산학에는 「산법도」가 있으며, 병략에는 「상왕세자서」와 「상행재소」에서 왜적을 방어하는 계책을 진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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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퇴계문하에서의 간재의 위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종전에는 퇴계의 주요 제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간재를 크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마 간재의 경우 나름대로의 학맥을 이어가지 못해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 아닌데다가 퇴계 문인들에 대한 연구도 미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월천 조목과 간재 이덕홍 두 사람은 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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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결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간재는 조선조 嶺南士林派 가문의 후예로 태어나 약관의 나이에 퇴계문하에 들어가 12년 동안이나 퇴계를 가까이 모시고 그의 학문적 요체를 잘 학습·체득한 결과 易學·經學·心學·天文學 등에 있어서 고루 재질을 갖춘 뛰어난 도학자였다. 도학자로서 그가 남긴 학문적 성과 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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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이현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권오신 경안중학교 교사 </center>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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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 誕辰 五百周年儒林崇慕祭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행사목적 퇴계선생 탄신 500주년을 기념하여 전국의 유림단체 대표 및 유림지도자들과 퇴계선생의 급문, 사숙제현 후예들이 한 자리에 모여 퇴계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유교문화의 진작을 위한 제향을 올리는 것임 ◆ 행사개요 ◦일시 : 2001. 10. 14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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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농암 이현보의 연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자 : 비중(棐仲) 호 : 농암(聾巖) 본 : 영천(永川) 1467년(1세) : 세조 13년 음력 7월 29일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출생 1486년(20세) :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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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농암 이현보의 생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농암 이현보 선생은 1467년(세조 13) 예안현 분천리(현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에서 강원도 인제현감(麟蹄縣監)을 역임한 이흠(李欽)과 호군(護軍) 권겸(權謙)의 따님인 안동권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천이씨는 원래 경상도 영천에서 세거해왔으나 농암의 고조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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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농암 이현보의 시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개관 농암은 조선시대 대부분의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시문을 남겼다. 그 많은 시문 중 조선시대 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로 올려놓은 것은 많은 한시 작품이 아니라 「어부가(漁父歌)」와 「귀전록(歸田錄)」에 실린 네 편의 국문시가이다. 농암은 자신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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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농암 이현보에 대한 기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경은 충효가 완전하며 나이와 덕이 고매하여 진실로 천하대로(天下大老)요, 당세원구(當世元龜)라. …염퇴이양(恬退頤養)이 이미 명철보신(明哲保身)을 넘었으며, 정관선기(靜觀先幾)를 헤아려 보았노라. 나라의 장래에 경국의 계책 세움이 허다하였고, 진표(塵表)에 그 고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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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권오신 경안중학교 교사 </center> <HXMLPIC ID="001"></HXMLPIC>안동은 예로부터 영남의 웅부요 인재의 보고였다. ‘조선인재 반재영남 영남인재 반재안동(朝鮮人才 半在嶺南 嶺南人才 半在安東)’이라 할 정도로 많은 명현거유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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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양초 권혁모 </center> 추억이여! 촛불이 타서 천 년이 무너지는 눈물이 내게는 없으랴 그 흔적 왜 없으랴 한 조각 사리(舍利)도 없이 네 앞에서 불타 오른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河回洞 所見」 당선 (84년), 중앙일보 제정 제13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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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달맞이꽃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달맞이꽃 김여선 안동용상초등학교 교사 </center> 달맞이꽃을 닮은 그 애의 모습은 이제 하현달 아래 달맞이꽃처럼 희미하다. 도산서원 가는 길 달맞이 꽃잎으로 구불어진 그 길에서 낮은 솔바람 소리로 속삭이던 그 애. 노란 달맞이꽃 한 송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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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름 가송리(佳松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여름 가송리(佳松里) 주영욱 </center> 마루에 오르자. 강 건너 단애가 서늘하다. 매미소리 들으며 한 잔 차를 마신다. 강가에 늘어선 미루나무 잎새에 눈부신 햇빛 흐른다 갑짜기 매미소리 뚝 끊어진다 고요한 허공에 거친 바람소리 미루나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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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안동문화원 이모저모 그림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HXMLPIC ID="004"></HXMLPIC>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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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김시백 (한국시조문학작가회 부회장·목사)</center> 기독교 하면 구교인 카톨릭과 신교인 프로테스탄트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편의상 카톨릭을 천주교로 프로테스탄트를 기독교로 호칭하여 혼선을 피하기로 하였다. 마침 올해는 안동땅에 기독교회가 세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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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연당 김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호연당 김씨 부인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정리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는 우의정을 역임한 김상용의 후손으로, 안동 김씨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하였으므로, 문예에 일가견을 이루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浩然堂 金氏(1681-1722)는 高城 郡守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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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죽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雪竹의 본명은 月蓮이며, 자호는 孼玄•雪窓•翠仙•翠竹 등으로 불려졌다. 그녀는 冲齋 權橃(1487~1547)의 손자 石泉 權來(1562-1617)의 侍廳婢였는데, 여종의 신분으로 여성 정감이 담뿍 담긴 한시를 다수 창작했다. 설죽과 관련된 학적 관심은 洪萬宗의 『詩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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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광산 김씨 부인에 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선시대 일반 사대부 집안 여성의 경우, 아무리 뛰어난 시문을 짓더라도 후대에 전해지는 일에 있어서는 매우 인색해하던 당대 시대 흐름에 의해 작품이 후대에 전해지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여성이 남긴 글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게 일반적 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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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광산 김시 부인의 한시 정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인이 남긴 작품의 대부분이 신변에 관한 것이다. 부인은 매우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 전체의 시에 관류하는 것이 애환과 고독의 정서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지만 절제된 감정의 표현과 가족과 친지에 대한 진지한 사랑의 표현 등은 퍽 감동적으로, 부인에게서 따뜻한 인간 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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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 친지에 대한 애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광산 김씨 부인이 남긴 시 가운데 가족과 친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작품이 매우 많다. 이는 그만큼 부인이 가족과 친족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깊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 정담을 나누다 보니 삼경이 되었다는 표현의 시를 보기로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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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독한 여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인은 여타 여성 시인처럼 여성으로서 느끼는 고독한 마음을 시로 남긴 것이 많다. 이러한 고독 정서 표출의 원인은 부인의 개인 신변 문제나 가정의 크고 작은 일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부인의 시에서 다소 격한 감정의 표현은 조카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 외에 그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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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 그리는 마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김씨 부인 역시 여성 입장에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을 상당수 남겼다. 비록 부인이 사대부 가문의 여성이었을지라도 여성으로 지아비를 그리는 심정을 절실히 표현한 점은 일반 여성 한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부인의 시에는 여성 정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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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선 시대 여성의 경우, 뛰어난 시문을 창작하였을지라도 후대에 전해지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여류 한시 작가는 200명이며, 남긴 작품수가 약 2000여 수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작품은 구전되거나 남성의 문집 말미에 한 두 구절이 전해져서 오늘날까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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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안동 사람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이 대 걸 (예천교육청 장학사)</center>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안동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품성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무뚝뚝하다. 붙임성 없다. 고집스럽다. 격식을 잘 따지고 과거 지향적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허례 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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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안동문화원 이모저모 그림판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HXMLPIC ID="004"></HXMLPIC> <HXMLPIC ID="005"></HXML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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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천주교의 전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천주교의 한국 전래 한국의 천주교라면 이승훈(李承薰)을 첫 신자로 든다. 이승훈은 사신을 따라 베이징에 갔다가 1784년 예수회(Jesuit)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귀국한다. 그는 권철신(權哲身)•정약용(丁若鏞)•이벽(李蘗) 등과 그 해 겨울부터 김범우(金範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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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기독교의 전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 기독교와의 접촉 한국에 첫 전도를 시작한 사람으로 화란계 독일 선교사 꾸즐라프(Karl F. A. Gutzlaff)를 든다. 그는 1832년 금강 입구에 상륙하여 1개월 여 머무는 동안 한국인을 통해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성경 번역의 시발점을 이룬다. 18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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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의 지역적 특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은 일찍이 경북 북부 17개 군을 관할하던 대도호부였다. 그리고 불교의 전탑과 유학의 서원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HXMLSUP ID="001"></HXMLSUP> 그래서 고려조까지는 불교 문화를 꽃피웠고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퇴계(退溪)의 성리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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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 최초의 교회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에서 제일 먼저 선 교회는 일직면 국곡교회이다. <HXMLSUP ID="001"></HXMLSUP> 1902년 3월 아담스 선교사가 안동지방 순행길에 귀미시장에서 전도를 하며 복음서를 팔기도 하였다. 이 때 국곡 사람 권수백(權秀伯)이 쪽복음을 받아 읽던 중 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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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교부의 설치와 교회의 사회 참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에 미북장로회 선교부가 설치된 것은 1908년이었다. 초대 상주(常駐) 선교사 쏘텔(C. C. Sawtell) 목사에 이어 웰번(A. G. Welbon)목사와 프레쳐(A. G. Fletcher)의사가 조사 김영옥(金泳玉)과 함께 1909년 2월에 안동에 오게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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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회의 설립이후 동란을 겪기까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경안노회는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제10회 총회시 설립 허락을 받고 1921년 12월 20일 조직되었는데 초대 회장은 김영옥 목사였다. 그 당시는 국내의 사회적 풍조가 임시정부를 돕자는 쪽으로 돌고 있을 때였다. 노회는 1926년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외지 전도비란 명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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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회의 재건과 성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1953년 대한예수회 장로회 제 39회 총회가 안동교회에서 열려 총회장에 이원영 목사가 피선되었다. 1954년에는 노회기관으로 고아원과 모자원 및 학교를 세웠고 1956년에는 성소병원을 신축 이전했다. 학교는 1954년 경안고등학교를 시작으로 1961년에 경안중학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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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맺는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안동의 교회 한 세기를 돌아보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의 진원지가 된 이 고장에서 기독교의 놀라운 발전상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만인소(萬人疏)와 같은 유림의 폐쇄적 보수사상을 잠재우고 개화정책을 편 정부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