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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현종9) 윤선거가 창강(滄江) 조속(趙涑)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창강(滄江) 조 선생(趙先生)에 대한 만시 내가 조 창강을 사랑하는 까닭은 몸소 실천하는 군자이기 때문이지. 그 미덕을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거늘 종유를 청하기도 전에 먼저 덕을 베풀었네. -
641002
1668년(현종9) 윤선거가 판관(判官) 권흔(權俒)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 판관(判官) 권완중(權完仲)에 대한 만시 소싯적 승가사에서 형, 수부(秀夫)와 함께 경술 생 동갑내기 세 명이 몇 달 간 같이 독서했는데 시문을 써 내려가는 재주는 민첩했고 호련(瑚璉)의 그 -
641003
1668년(현종9) 윤선거가 27세에 요절한 조카사위 심해(沈楷)와 그 부인을 애도하며 지은 애사 심식여(沈式汝)에 대한 애사(哀辭) 아! 우리 식여(式汝)는 옛 시랑(侍郎) 심공(沈公)의 넷째 아들이다. 우리 형님 석호(石湖) 가문에 장가온 뒤 나를 종유하며 몇 -
641004
1669년(현종10) 윤선거가 이유택(李惟澤)을 애도하며 지은 애사 이택지(李澤之)에 대한 애사(哀辭) 월성(月城) 이공(李公) 유곡(柳谷) 어르신이 예순아홉의 나이에 상을 당해 몸이 상하도록 슬퍼하여 악실(堊室)에서 세상을 떠났다. 모든 벗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 -
641005
[1677년(숙종3) 윤증(尹拯)]이 윤문거(尹文擧)의 행적 및 손록(孫錄)을 적은 묘표(墓表) 묘표(墓表) 선생의 성은 윤(尹)이며 휘는 문거(文擧)로 자는 여망(汝望)이다. 아버지의 휘는 황(煌)으로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이며 호는 팔송(八松)이다. 어머니는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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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司馬) 윤상갑(尹相甲)이 신해년(1731년, 영조 7) 8월 13일에 죽은 유규(柳奎)의 행적과 선계 및 손록(孫錄)을 적은 묘갈명. 유공(柳公)의 휘는 규(奎)로 자는 취오(聚五)이며 호는 일아정(日哦亭)이다. 그 선계(先系)는 고흥(高興)에서 나와 대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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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秀才) 조시현(曹時鉉)의 행적과 선계(先系) 등을 적은 묘갈명(墓碣銘) 조수재 시현 묘갈명(曹秀才時鉉墓碣銘) 예전 명도(明道) 정 선생(程先生)에게 재주 있는 아들이 있었는데 일찍 죽었다. 선생이 그의 지문(誌文)에 “이 아이는 맑은 기운을 받았지만 운수가 한 -
641008
광산김씨세장산비문(光山金氏世葬山碑文) / 미상
기미년(1919년) 5월 신현중(申鉉中)이 광산김씨(光山金氏) 집안에서 정려를 받은 다섯 사람의 행적과 삼강려(三綱閭)의 내력, 선조의 묘소 위치 및 자손록(子孫錄)에 대해 지은 광산김씨세장산비(光山金氏世葬山碑) 광산김씨 세장산의 비(光山金氏世葬山碑) 송사(松沙)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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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비실적(三綱碑實蹟) / 미상
광산김씨(光山金氏) 집안에서 정려를 받은 다섯 사람의 행적과 정려각(旌閭閣)의 내력 등을 기록한 삼강비실적(三綱碑實蹟) 삼강비실적(三綱碑實蹟) 공의 휘는 순(純)으로 자는 덕후(德厚)이며 호는 포월당(抱月堂)이다. 어버이가 병을 앓자 근심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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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선생 서원상량문(魯西先生書院上樑文) 노서선생 서원상량문(魯西先生書院上樑文) 박태상(朴泰尙) 제술(製述). 군자가 무덤에서 애도를 말하는 것은 이에 인지상정에 본래 있는 것이고 훌륭한 선비께 제사를 올리는 것은 또한 국가의 예의로 마땅한 바이네 이미 추모하는 정성 -
641011
병자년(1936) 6월 하순 강천수(姜天秀)가 파평윤씨(坡平尹氏) 집안의 세거지에 있는 옥하정사(玉下精舍)에 대해 지은 옥하정사기(玉下精舍記) 옥하정사기(玉下精舍記) 선인이 거처하는 당(堂)이 있으면 자손이 그곳을 대대로 지키며 또한 이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
641012
병자년(1936) 3월 하순 권호(權浩)가 윤석우(尹錫雨)의 옥하정사(玉下精舍)에 대해 지은 옥하정사기(玉下精舍記) 옥하정사기(玉下精舍記) 윤군(尹君) 석우(錫雨)가 그 거처하는 방을 ‘옥하정사(玉下精舍)’라 편액하고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하며, “제가 방을 ‘옥 -
641013
함평이씨오세유고서(咸平李氏五世遺稿序) / 미상
쌍천공(雙泉公)에서 연빙재(淵氷齋)에 이르는 함평이씨(咸平李氏) 다섯 대의 유고(遺稿)에 대한 서문으로 지은 함풍이씨오세유고서(咸豊李氏五世遺稿序) 함풍이씨 오세유고 서(咸豊李氏五世遺稿序) 이씨(李氏) 다섯 대의 세고(世稿)가 모두 2책 9편이니 쌍천공(雙泉公)부터 -
641014
무오년(1738년, 영조14) 10월 하순 윤동원(尹東源)이 박이현(朴而絢)과 박영서(朴永緖)의 순충록(殉忠錄)에 대한 발문(跋文)으로 지은 박씨의민공충장공양세순충록발(朴氏毅愍公忠壯公兩世殉忠錄跋) 박씨 의민공ㆍ충장공 양세순충록발(朴氏毅愍公忠壯公兩世殉忠錄跋) 정자(程 -
641015
을유년(1885년, 고종22) 가을 하순 윤상작(尹相爵)이 경승재(敬勝齋)의 중건(重建)에 대해 지은 기문(記文) 생각건대 우리 명재선생(明齋先生)이 순수한 덕과 깊은 학문으로 유봉(酉峰)이 도를 강론함에 사방의 배우는 자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대문에 먼지가 일 -
641016
윤혜교(尹惠敎)가 박이현(朴而絢)과 박영서(朴永緖)의 순충록(殉忠錄)에 대해 지은 발문(跋文) 대저 절의(節義)는 인정(人情)이 같이 숭상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한 집안에 모여 있는 것은 더욱 드물다. 예전에 들으니 옛날 변씨(卞氏)의 사적은 비록 아녀자와 어린아이도 -
641017
〈읊조린 뒤 유장(柳丈) 청불(淸拂)에 바치다〉 堪托貧隣契 가난한 이웃의 정분을 의탁할 만하여 幾年同樂憂 즐거움과 근심을 함께한 지 몇 해던가! 勅窮專死辱 반듯한 몸가짐은 죽을 만큼 치욕이요 忍惡半生羞 미움을 참아온 것은 반평생의 수치네. 盤錯非吾分 복잡하고 어려운 -
641018
1889년(고종26) 권경하(權經夏)가 갈천(葛川) 김빈(金{賓/灬}) 문집을 위해 지은 서(序) 갈천(葛川) 김선생(金先生) 유계(儒稧) 서문 갈천 김선생은 명릉(明陵:숙종) 연간 여러 현인들이 동료를 이끌고 나란히 출사하던 시기에 일찌감치 명성을 떨치면서 화려한 -
641019
시 不見西菴欲聽鍾 서암이 보이지 않지만 범종 소리 듣고 싶으니 春天樹色□□峰 봄날의 수목 빛깔이 온 봉우리를 에워쌌구나. 入山多日慣□俗 산속에 들어온 지 여러 날이라 산중 생활에 익숙하고 出洞慊人□客蹤 산골에서 나가면 사람이 꺼려져 손님 자취 끊어졌지. 家夢舊從愁裡 -
641020
〈우헌(迂軒) 김○(金○)에 대한 만사〉 昌運重回出震初 등극 초기에 창대한 운수가 거듭 돌아오자 沈淪召收進茅茹 영락한 자 불러들여 띠풀처럼 나란히 진출했지. 英華夙著儕流最 일찌감치 드러난 재능이 동료들 가운데 으뜸이니 望實爭推問學餘 학문하는 여가에 명망과 실력을 다 -
641021
천지(天地)가 혼돈에서 개벽하니 구주(九州)의 산천이 되었네. 천주(天柱)가 나란히 서고 지축(地軸)이 펼쳐지니 덮고 싣는 천지(天地)의 양의(兩儀) 사이에 사해(四海)가 가장 크고 동서남북 사해 가운데 창해(滄海)가 으뜸이라. 부상목(扶桑木) 가지 위에서 일월(日 -
641022
제자 윤동규(尹東奎)가 스승 성호 이익(李瀷)에 대하여 쓴 제문 일부. 잣나무 우뚝 빼어나듯 ……. 지금 와서 당(堂)에 오르니 시렁 위의 서책은 손때가 만져질 듯하고 자상한 덕음(德音)은 다시 들리는 듯한데, 궤연(几筵)의 흰 휘장은 바람에 흔들리고 상여 앞엔 혼 -
641023
조선시대에 작자 미상의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시 그대가 작성한 금강록(金剛錄) 읽어보니 / 讀君金剛錄 금강산 명승지 많이들 말하였지 / 多說金剛勝 일찍이 금강산 명승지 들었으니 / 夙聞金剛勝 듣고서 빼어난 흥취가 일렁이오 / 聞來動逸興 급하게 인사치레하고 떠나가니 -
641024
18세기 안정복 제자 이재복이 안정복의 시에 차운한 시 고목에 드리운 그늘 이 고을에 떨어지고 / 古木遺陰落此鄕 냇물은 콸콸콸 흘러 몇 사람이 마주하나 / 流川決決幾人當 …(원문 결락)… 봉우리는 참다워 / ▣▣▣▣▣峰眞 하늘과 나란히 맑고 멀어 계곡물 길어지네 / -
641025
1791년 안정복 제자 권우가 안정복의 시에 차운한 시 거북이나 학 같은 몸이라 노쇠한 적 없어 / 身如龜鶴不曾衰 하늘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문에 드러냈소 / 天以嘉名表厥楣 햇빛 따라 기우는 해바라기 마음만으로도 / 只應葵藿傾陽意 용루(龍樓) 향해 묵묵히 기도해 날로 -
641026
1779년 안정복 제자 한동린이 안정복의 시에 차운한 시 호서의 문물일랑 이 고장에 풍부하고 / 湖西文物富玆鄕 태수의 풍류는 태평성세 만나 넘치오 / 太守風流聖世當 다섯 가문의 의표는 태산처럼 빼어나 / 五姓高標山如秀 천년토록 유학은 동으로 길이 흐르리 / 千年吾道 -
641027
18세기 안정복 제자들이 안정복의 시에 차운한 시첩 삼가 광성군(廣成君) 스승님 운에 차운(次韻)하다 근원 깊이 선 쌓은 경사는 끝없이 드넓어 / 源深積慶浩無津 큰 덕 지닌 명문가에 대대로 돌고 도누나 / 碩德名門世世輪 익헌공(翼憲公)은 경학이 진중해서 금초관(金貂 -
641028
조선시대 안정복 제자 이덕명이 안정복의 시에 차운한 시 삼가 순암선생(順菴先生)의 「읍지(邑誌)」시 운에 화답하다 사년 동안 황폐한 고을 다스리니/ 四年莅弊鄕 읍지 찬수하는데 가장 정밀하셨소 / 寫誌最精當 풍속 예스럽고 풍토 또한 좋아서 / 俗古風仍好 산은 높고 물 -
641029
김안국(金安國)이 지은 경세청(慶世淸)의 묘표이다. 유명 조선국(有明朝鮮國) 현신교위(顯信校尉) 충무위(忠武衛) 부사직(副司直) 경군(慶君, 慶世淸:1465∼1537) 묘표(墓表) 경 군(慶君)의 휘는 세청(世淸)이고 자는 자아(子雅)로 계파는 청주(淸州)이나 여주 -
641030
순암 안정복이 작성한 수암 선생(睡菴先生) 한복윤(韓復胤) 묘비문(墓碑文)의 초(草) 수암(睡菴) 한공(韓公)의 휘(諱)는 복윤(復胤)이고 자(字)는 원길(元吉)이니, 서원(西原)사람이다. … ■(좌)익공신(佐翼功臣) 좌의정(左議政)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시호는 -
641031
당시 이조참판 윤용식(尹容植)이 1895년 이듬해 홍주부관찰사로 부임하는 김상덕(金商悳)과 이별하는 소감을 7언 율시의 형식으로 적어 보낸 시 간찰이다. [전면] 근심 가득한 돛단배 하나 한강가로 다가오매, 글과 거문고만 싣고 있으니 더욱 쓸쓸해 보이네. 천 리 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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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김갑수가 당시 규장각에서 같이 근무하던 김상덕과 헤어지면서 소식을 주고 받자는 내용의 7언 율시를 적어 보낸 편지이다. [전면] 이별에 부쳐 위관 인형의 행헌에 올립니다. 학사가 능을 배알하매 낙수 주변이 밝았네 응당 여행에는 글과 거문고 있으니 속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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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가 김상덕(金商悳)과 이별하는 소감을 7언 율시의 형식으로 적어 보낸 시 간찰이다. 헤아려보건대 그대는 겹겹이 둘러진 바닷가에서 휴가 얻어 돌아오면 도정절(연명)의 시 읊으며 금을 탔었지 남포 사람의 마음은 푸르른 봄물같이 녹아나려나 낙교에서 머리 돌리면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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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가은씨가 김상덕(金商悳)과 이별하는 소감을 7언 율시의 형식으로 적어 보낸 시 간찰이다. 배다리 금강가에 놓기를 좋아하여 끝내 거문고 타는 뜻이 있어 들고 가니 참으로 한탄스럽소 요 근래에 항상 의논하던 어렸을 적 한 금년에는 현을 맺기를 다시금 깊이 확인하겠소 -
641035
김상덕이 낙향하면서 민영환으로부터 받은 시를 1908년 옮겨 적은 것과, 1895년 유상부가 김상덕을 전송하기 위해 지은 두보의 시 〈유화문〉을 차운한 시를 옮겨 적은 것이다. 민영환으로부터 받은 시 편지의 종이와 글자가 오랜 세월에 탈락하여 옮겨적었다는 내력이 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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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 유상전이 김상덕과 작별하며 지은 시 두보(杜甫)의 오언고시 〈유화문〉 십사운에 차운하여 수레를 타고 내려가는 위관 김영공(김상덕)과 작별하다. 을미년 봄 유상전이 절하며 올린다. 도(道)가 쇠하여 광란의 물결이 일어나니 진퇴(進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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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관(韋觀) 김상덕(金商悳, 1852∼1924)이 유배형에 처하자 이우면(李愚冕, 1850∼?)이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한 3편의 한시 ○ [皮封] 아정(雅正)한 학자이신 위관(韋觀) 대인께 참판(參判) 이우면(李愚冕)의 시 ○ [2-3→2-1→2-2] 영재(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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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의 낙향을 기념하기 위해 민영환이 지은 시의 운자를 차운하여 김홍이 짓고 보낸 시 간찰이다. 본래 성균관 직학으로 계시던 위당 학사께서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심을 받들어. 계속되는 정의 뜻으로써 계정 민 판서(민영환)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강물은 맑아 한강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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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이 김상덕과 이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5언 배율 형식의 시 간찰이다. 빠르게 써 전별하다(走筆奉別) 위관(韋觀) 동기 형님께 은대에 처음 오를 때 얼굴 하얗다 놀리었는데 금오에서 머리 다시 맞댈 줄이야 주상전하의 성스러운 은혜가 아닌 것이 없으나 하지만 이 -
641040
용문초부라는 사람이 김상덕에게 보낸 시 간찰이다. 시는 오언시 5수를 연작한 연시이다. 칠표자(桼瓢子)에게 듣기에, 내가 써서 부친 시 가운데 ‘옛날 말라죽은 계획에(於往枯死計)’ 라는 구를 읽고 포숙과 관중의 의리를 다섯 글자로 썼다고 했다. 마침내 오언으로 나누 -
641041
김상덕이 차운하며 지은 시 위관 김상덕 영형(令兄)의 시 「고향으로 돌아가며」에 삼가 차운하다. 들어보니 그대가 남쪽 고향으로 내려가며 쓸쓸한 한 필의 말에 거문고 가져갔다 하네 다리 끝에 여린 버드나무 누가 꺾었나 구름 너머 청산 아래 나의 집이 머네 천 리 멀리 -
641042
우당(嵎堂)의 시문 눈쌓인 쌀쌀한 날씨에 적막한 물가 포단(蒲團)에서 평소처럼 무생(無生)함을 생각한다 나에게 부지런히 할 것은 항이리 안의 술이니 술기운에 사람간의 다소의 정리를 털어낸다 우당 아우가 때마침 크게 취하여 거칠게 이와 같이 써내려갔으니 형께서 용서하 -
641043
조중국(趙重國)이 위관 김상덕(金商悳)의 수운(壽韻)에 맞춰 지은 시[1912] 삼가 축하합니다. 위관각하 수운에 따라 규화(奎華)각하 남극성 가까이에 이웃한 듯 장수하여 자연에 사는 것을 바라더니 완연히 그곳에 있는 사람 건강한 몸 환갑을 맞이하니 청명의 앞날 묘 -
641044
작자 연대 미상의 시 봄의 버드나무 긴 둑에 버들 새 실을 떨어내고 연록의 하늘 맑아 멀리 못가에 비친다 해가 지는데 까마귀는 머무를 곳 정하지 못하고 동풍이 부는데 나그네의 말은 오래도록 매어있네 꺼질 것 같은 불은 황량한 언덕에 피어있고 눈을 먼저 뜨게 하는 눈 -
641045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 위관 김상덕(金商悳)에게 보낸 시 똑바로 정신 차리면 속을 필요가 없는데 자기의 마음 일은 자기가 편안하게 청매실을 달라 먹겠다는데 응하지나 말 것을 먹더니 하필이면 또 시다고 말하는지 밤에 집에서 어리석은 동생 건창이 청실에서 -
641046
관양 이광덕(李匡德:1690〜1748)의 시 요순 같은 뛰어난 임금이요 관중과 제갈량 같은 뛰어난 신하 당시와 같은 지혜와 기지는 또한 뛰어나네 치우지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도 홀로 기이한 사람이 되어 삼향기 중에 장사꾼을 꾸짖고 석류꽃 그늘아래 굶주린 백성들이 운다 -
641047
김병일(金炳日)의 시 산(山), 중(中), 춘(春), 추(秋)로 운을 나누어 시를 지어 옆에서 지내는 아이에게 주다 남북으로 서로 이어진 한 물줄기 사이에 고사리 캐는 곳 따라 높은 산 있네 흐르는 세월은 무정한 것 흰 머리의 그 사람 환갑이 되었구나 기이(其二) -
641048
우당(嵎堂)이 위관(韋觀) 김상덕(金商悳)에게 보내는 시 (누락됨) 그대의 뜻 이루지 못했는데 먼 바다와 여러 산의 천리 길 외로운 신하 눈물 흘리며 이 길을 거듭 간다 고래를 탄 이백은 신선의 고을로 들어갔고 여관의 등불도 외로워 스스로를 슬퍼하는구나 물고기와 새 -
641049
시랑(侍郞) 이경석(李經石)이 통혼의 교분이 있는 이공(李公)에게 지은 시 나는 패강(浿江)가에서 성장하며 여덟 살에 노래하고 열 살에 거문고 탔네 초년에 화려함을 일삼다 몸이 이미 늙어서 만년에 도사(圖史)를 익히며 깊이 한스러워하네 기꺼이 선아(仙娥)가 되어 비 -
641050
작자 수신자 미상의 전별시 석거각(石居閣)의 학사가 장차 군산으로 가려는 가마를 멈추고 시로 이별을 하시기에 운에 맞춰 지어 다시 드린다. 오희가(五噫歌)는 오랜 세월 동조(同調)하니 공을 위해 눈물이 나니 이런 날이 많을 터 하늘은 맑고 말없이 성의 모퉁이에서 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