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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8401

    30일. 아침에 비가 내리고 저물녘에 바람이 붊. 조생과 현리를 모두 만나 늦게 출발했다. 20리를 가서 저녁에 신례원(新禮院) 참사에서 묵었다.【신창과 예산(禮山)의 경계이다.】
  • 648402

    4월.1일. 조생과 현리를 각지에 나누어 보냈다. 즉시 출발하여 15리를 가서 삼거리(三巨里)를 배로 건너서 포구 주변의 민가에서 아침을 먹었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면천(沔川) 읍내 참사에 도착했다. 〔두주〕 김조순(金祖淳)·윤광안(尹光顏)이 요속(僚屬)으로 더
  • 648403

    2일. 출발하여 20리를 가서 당진(唐津) 읍내 참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40리를 가서 저녁에 서산(瑞山) 읍내 참사에서 묵었다.
  • 648404

    3일. 아침에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태안(泰安) 읍내 참사에서 점심을 먹었다. 현리를 만나서 그를 다른 곳으로 돌아서 가게 했다. 10리를 가서 저녁에 흥주사(興住寺)에 도착하여 묵었다.
  • 648405

    4일.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안흥성(安興城)에 도착했다. 도중에 조생을 만나서 그를 다른 곳으로 가게 했다. 이날 태안에서 진휼곡을 나누어주었으므로 조생에게 들어가 살펴보게 했다. 그대로 안흥성 내 민가에서 묵었다.
  • 648406

    5일.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갔는데 다시 태안 읍내 참사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이날은 태안 장날이었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대교(大橋)에 도착하여【서산 경계이다.】 민가에서 묵었다.
  • 648407

    6일. 출발하여 10리를 가서 해미(海美) 읍내 참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50리를 가서 저녁에 덕산(德山)의 삽교(鍤橋)에 도착하여 민가에서 묵었다.
  • 648408

    7일.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신례원 참사에서 아침을 먹고, 현리를 만났다. 10리를 가서 다시 예산역촌에 도착하여 역노(驛奴) 박검철(朴儉哲)의 집에서 묵었다.
  • 648409

    8일. 조생이 와서 만나보고 천석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타고 다니던 역마가 병이 나서 오석과 가천역마 두 마리를 그대로 풀어서 보내주었다. 피명득은 그대로 따라다니게 했다.
  • 648410

    9일. 조생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현리는 그대로 따라다니게 했다. 파마 두 필과 마부 김삼관(金三觀)·김늦손(金㗡孫)이 따라 왔다. 30리를 가서 사현(莎峴) 참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광천(廣川)에 도착했다.【홍주(洪州)·결성(結城)·보령(保
  • 648411

    10일.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수영성(水營城) 안에서 아침을 먹었다.【수영은 보령에 속한다.】 영보정(永保亭)을 올랐다가 해변에 내려가서 전선(戰船)을 보았다. 바로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저녁에 대천(大川)에 도착하여【보령 경계이다.】 민가에서 묵었다. 이날 종
  • 648412

    11일.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습의참(習儀站)에서 아침을 먹었다.【남포 경계이다.】 30리를 가서 비인(庇仁) 읍내를 지나 저녁에 서천(舒川) 읍내에 도착했고 참사에서 묵었다.
  • 648413

    12일.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한산(韓山) 읍내를 지나 홍애참(洪艾站)에서 아침을 먹었다.【임천(林川) 경계이다.】 40리를 가서 백마진(白馬津) 하류를 건넜고, 저녁에 강경(江景)에 도착하여【은진(恩津) 경계이다.】 김복채(金復采)의 집에서 묵었다.
  • 648414

    13일. 비가 내림. 연이어 김복채의 집에 머물다가 저녁에 봉대(烽臺)를 올랐다.
  • 648415

    14일. 강경 시장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10리를 가서 논산포(論山浦)에서 아침을 먹었다.【이성(尼城) 경계이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경천(鏡天) 참사에서 묵었다.【공주(公州) 경계이다.】
  • 648416

    15일. 일찍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공주 쌍수산성(雙樹山城) 참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날 산성에서 식량을 나누어 주기에 자취를 숨겨 들어가 보았다. 공북루(拱北樓)를 올라가 보고 저녁에 공주 대교(大橋)에 도착하여 참사에서 묵었다.
  • 648417

    16일. 일찍 출발하여 길에서 조생을 만났다. 20리를 가서 연기(燕岐) 월곡(月谷)의 박담양(朴潭陽) 집 묘막(墓幕)에서 아침을 먹었다. 15리를 가서 동면(東面) 물가현(物可峴)을 가서 보고 저녁에 월곡으로 돌아왔다. 박담양(朴潭陽): 1797년(정조 21) 1
  • 648418

    17일.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모로원(毛老院)에서 아침을 먹었다.【공주 경계이다.】 천석이 서울에서 내려와 집안이 편안하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연이어 참사에서 묵었다. 이날은 모로원 장날이다.
  • 648419

    18일.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인주원(引柱院)에서 아침을 먹었다.【공주 경계이다.】 40리를 가서 저녁에 삼거리참에서 묵었다.【천안 경계이다.】
  • 648420

    19일.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당곡(唐谷)의 민가에서 아침을 먹었다.【직산(稷山) 경계이다.】 40리를 가서 저녁에 진위 삼거리에 도착하여 묵었다. 〔두주〕 원자궁(元子宮)이 좌우유선들과 상견례를 했다.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48421

    20일.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장천참(長川站)에서 아침을 먹었다.【수원(水原) 경계이다.】 50리를 가서 화성을 지나 저녁에 미륵당(彌勒堂)에서 묵었다.【수원 경계이다.】 〔두주〕 송시연(宋時淵)·박종우(朴宗羽)·유한준(兪漢雋)을 요속으로 추가로 차하했다.
  • 648422

    21일. 일찍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과천(果川) 읍내의 참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명득을 놓아 보내주었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성도곡(成道谷) 묘사(墓舍)에 도착했다. 예산역 인마(人馬)를 놓아 보내주었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講席)에 참석했다.
  • 648423

    22일. 서계(書啓) 초고 작성이 끝나지 않았다.
  • 648424

    23일. 서계 초고는 완성했으나 별단(別單) 초고 작성이 끝나지 않았다. 천석을 서울로 보냈다.
  • 648425

    24일. 별단 초고가 완성되었다. 〔두주〕 아버님이 근수(跟隨) 장표(掌標) 1개를 하사받았다. 근수(跟隨): 사람 뒤를 따라 다니는 노를 말한다.
  • 648426

    25일. 조생이 서울로 올라갔다가 곧바로 돌아왔다. 하교가 있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신현이 만약 근처에 도착하면 서울로 들어오지 말게 하고, 다시 화성과 새로 소속된 다섯 읍에 가서【과천·시흥(始興)·진위·안산·용인이다.】 여러 일을 자세히 탐지해서 오게 하라.
  • 648427

    26일. 용복(龍福)이 집에서 말을 가지고 왔고 천석도 왔다. 조생과 현리를 각지에 나누어 보냈다. 늦게 출발하여 과천 토구원(菟丘原)을 들렀다가 정매(鄭妹)의 묘를 지나갔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인덕원(仁德院) 참사에서 묵었다.【수원 경계이다.】 정매(鄭妹):
  • 648428

    27일. 아침에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서동(西垌)의 신축한 곳을 가서 살펴보고 늦게 화성에 도착했다. 저녁에 성을 순찰하고 북문 안의 참사에서 묵었다. 현리를 만났다.
  • 648429

    28일. 아침에 장대(將臺)를 올랐다가 동문으로 나왔다. 15리를 가서 갈천(葛川)에서 점심을 먹었다.【용인 경계이다.】 40리를 가서 저녁에 진위 읍내 참사에서 묵었다.
  • 648430

    29일. 그믐. 다시 출발하여 독용산성(禿用山城)을 들러서 올라 가보고, 조생을 만났다. 40리를 가서 하류천(下柳川) 참사에서 점심을 먹었다. 천석을 서울로 보내고, 바로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저녁에 명고서원(鳴皐書院)에 도착하여 참사에서 묵었다.
  • 648431

    5월.1일. 아침에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안산 읍내에 도착했고, 노씨(盧氏) 성의 아전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30리를 가서 저녁에 시흥 읍내의 참사에 도착했다. 천석이 내려갔다. 15리를 가서 밤에 성도곡 묘사(墓舍)에 도착했고, 조생과 현리가 모두 모였다. 〔
  • 648432

    2일. 화성 별단의 초기를 작성했다.
  • 648433

    3일. 비가 내림. 천석을 서울로 보냈다. 저녁에 노량(鷺梁)을 건넜고, 어두워져서 남대문 밖에 도착하여 무관(武官) 최씨의 집에서 묵었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648434

    4일. 화성 별단의 초고를 끝냈다.
  • 648435

    5일. 호서 별단을 썼는데 다음 날이 되어 끝냈다.
  • 648436

    7일. 서계 쓰는 것을 끝냈다.
  • 648437

    8일. 호서 별단의 아래에 화성 별단을 이어서 쓰기를 마치고 곧바로 교정을 더했다. 〔두주〕 가순궁(嘉順宮) 생신이다.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48438

    9일. 새벽에 승정원에 찾아가서 들어가 숙배하고 서계와 별단을 바치고 마패와 유척 및 봉서를 반납했다. 조금 있다가 봉서를 되돌려 주며 말하기를, “이는 어사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니 반납할 필요가 없다.” 했다. 곧바로 내일 차대(次對)를 오늘로 진정(進
  • 648439

    11일. 하교가 내려와서 승정원에 들어가 상현궁 1장을 상으로 받아 나왔다.
  • 648440

    12일. 하교가 내려와서 승정원에 들어갔다. 심상규·김근순은 나와 함께 중희당(重熙堂)에 입시하라 명하고, 세 사람에게 살옥(殺獄) 판부(判付)를 쓰도록 명했다. 임금이 때마침 임해서 글씨를 쓰는 곳에 앉아 분부하기를, “신현은 이번에 어사를 다녀온 뒤로 서법에 재
  • 648441

    14일. 『삼례수권(三禮手圈)』을 내려주며 말하기를, “신현으로 하여금 집에 돌아가서 교정해서 바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했다. 즉시 출직했다.
  • 648442

    20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웅어 1급을 하사받았다.
  • 648443

    21일. 연이어 직숙했다. 늦게 여러 도의 유생들의 농서(農書)를 쓰도록 명했는데 비지(批旨)가 밤에 도착했다.【임금이 널리 농무(農務)를 물으면서 향외(鄕外)의 유생들에게 허락하니 모두 농무로써 진달했다.】
  • 648444

    22일. 『삼례수권』의 교정이 끝나서 들어가 올리고 즉시 출직했다. 저자도(楮子島)에서 재차 올리는 기우제(祈雨祭) 집례(執禮)에 차정되어 즉시 주자소에 도로 들어가 재계하며 묵었다. 〔두주〕 원자궁이 처음으로 『대학(大學)』을 강했다.
  • 648445

    23일. 아침에 향(香)을 따라가서 봉상시(奉常寺)에 나아가 신위(神位)를 모시고 저도(楮島)에 나아갔다. 헌관은 남공철(南公轍), 대축은 홍석주였다.
  • 648446

    24일. 새벽에 예식을 행하고 마치자 돌아왔다. 처음 귀비탕(歸脾湯)을 복용했는데 인삼 5푼[分]을 넣었다. 20첩을 복용하고 그쳤다. 귀비탕(歸脾湯): 생각이 많거나 신경을 지나치게 써서 생기는 여러 증상에 쓰이는 처방이다.
  • 648447

    25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오경백편』 현토 건을 교정하여 바쳤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648448

    26일. 늦게 출직했다.
  • 648449

    28일. 비가 내림. 죽은 처의 소상(小祥)을 지냈다. 〔두주〕 29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648450

    6월.1일. 큰형님이 장단의 이 이형(李姨兄) 댁에 갔다가 다음 날 돌아왔다. 큰형님: 신현의 큰형 신진(申縉, 1756~1835)이다. 이 이형(李姨兄): 이충익(李忠翊)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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