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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8451

    3일. 정희(丁喜)가 처음으로 천연두 증세가 있어 원기를 보양하는 약을 거듭 복용하여 무사히 나았다.
  • 648452

    5일. 비가 내림. 하교로 인해 대궐 아래로 나아갔으나 집에 천연두가 있었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어 밖에만 있다가 돌아왔다. 이날 김근순·이존수·홍석주·김계온이 주자소 입직(入直)을 빼먹은 일로 엄히 가두었다가 바로 석방했다.
  • 648453

    6일. 둘째 형님과 함께 남동에 우거하면서 표(表)를 지었다. 둘째 형님: 신현의 둘째 형 신작(申綽, 1760~1828)이다.
  • 648454

    7일. 친시(親試) 추시(追試)를 지었는데, 시제(試題)는 ‘조나라의 신하들이 상국 공중련(公仲連)이 우축(牛畜)·순흔(荀欣)·서월(徐越)을 추천하자 노래하는 사람에게 전지(田地) 내리는 것을 그만둔 것을 하례한다.[趙羣臣賀相國公仲連進牛畜荀欣徐越歌者之田且止]’라는
  • 648455

    8일. 친시 추시를 지었는데 시제는 ‘제나라의 바위 아래에서 구슬을 꿰던 자가 소고기와 술을 내린 것에 사례한다.[齊巖下貫珠者謝賜牛酒]’라는 전문이다. 이후에 써서 올려 삼하(三下)를 받았다.
  • 648456

    9일. 친시 추시를 지었는데 시제는 ‘한나라 장건이 포도를 바친다.[漢張騫進葡萄]’라는 표(表)이다. 이후에 써서 올려 이하(二下)를 받았다.
  • 648457

    10일. 과시(課試) 추시를 지었는데 시제는 ‘당나라 황제가 근신에게 고운 갈포옷과 향기로운 비단을 하사했다.[唐賜近臣細葛香羅]’라는 조(詔)이다. 이후에 써서 올려 삼상(三上)을 받았다.
  • 648458

    11일. 과시 추시를 지었는데 시제는 ‘본조의 농민들이 아래로 농서를 구하는 것에 감사한다는 윤음[本朝農民等謝下求農書綸音]’이라는 전문이다. 이후에 써서 올려 삼중(三中)을 받았다. 이상의 다섯 시제로써 친시 세 시험응시에 계획(計畫)이 11분(分)이 되고, 과시
  • 648459

    12일. 표를 지었다. 승지 숙부님 회갑에 가서 뵈었다.
  • 648460

    13일. 비가 내림. 표를 지었다.
  • 648461

    14일. 비가 내림. 둘째 형님이 재임(齋任)에서 탈면(頉免)받는 일과 개명(改名)하는 일로 반장(泮長) 이만수를 가서 만나보았다.【그사이 승지 숙부님이 입시했을 때 임금이 말하기를, “두 신경(申絅)이 같은 이름에 멀지 않은 족당(族䣊)인데 같은 이름이 있으면 어
  • 648462

    15일. 더움. 이후로 연이어 남동에 있으면서 과제를 지었다.
  • 648463

    19일. 도목 정사를 행했는데 이조판서 김문순이 참석했다.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 648464

    21일. 남동에서 철수하여 돌아왔다.
  • 648465

    25일. 하교로 인해 선인문(宣仁門) 밖에 나아갔는데 금기에 구애되어 대궐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만 있다가 돌아왔다.
  • 648466

    26일. 친시를 행하지 않고 고식(故寔)을 지어 바치라는 일로 하교했다. 이후로 연달아 고식하는 일을 했다. 고식(故寔): 옥당(玉堂)과 춘방(春坊)에서 고사(故事)를 써 올리는 규례를 모방하여 문신들을 시험 보던 방법이다. 정조가 주로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시험
  • 648467

    29일. 그믐. 『대학』에서 고식 15조목의 정서를 마쳤다. 금기에 구애되어 대궐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올리지 못했다.
  • 648468

    7월.1일. 큰형님과 둘째 형님을 모시고 신문(新門) 밖에 가서 연꽃을 감상했다.
  • 648469

    6일. 비로소 주자소에 나아갔다가 즉시 나왔다.
  • 648470

    7일. 『주자대전(朱子大全)』의 봉사(封事)와 주차(奏箚)를 읽었다.
  • 648471

    12일. 주자소에 나아가 『육률(陸律)』 비권(批圈)을 옮겨 베꼈다. 그대로 직숙하고 다음 날 저물녘에 물러났다. 육률(陸律): 송나라 육유(陸游)의 시집이다.
  • 648472

    13일. 주자소에 나아가 『육률』 비권을 옮겨 베꼈다. 저물녘에 물러나고, 다음 날 또 나아갔다가 저물녘에 물러났다.
  • 648473

    15일. 아침에 비가 내림. 옮겨 베끼는 것을 마쳐서 올리고, 저물녘에 물러났다.
  • 648474

    16일. 주자소에 나아가 『마경(馬經)』을 교정했다. 그대로 직숙하고 다음 날 저녁에 물러났다.
  • 648475

    18일. 주자소에 나아가 『마경』을 교정하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 648476

    19일. 주자소에 들어가서 『육률』 비권(批圈)을 교정하여 올리고 저녁에 나왔다.
  • 648477

    20일. 처음으로 『주자대전』 고식을 지었다.
  • 648478

    24일. 주자소에 나아가 『마경』을 교정했다. 그대로 직숙하고 다음 날 저녁에 물러났다.
  • 648479

    26일. 주자소에 나아가 『마경』을 교정했다. 그대로 직숙하고 다음 날 저녁에 물러났다.
  • 648480

    29일. 주자소에 나아갔다가 『육률』을 등서(謄書)하는 일이 있어 저녁에 물러났다.
  • 648481

    30일. 주자소(鑄字所)에 나아가 『아송(雅誦)』을 교정하여 올렸다. 어제 『육률』을 등서한 일은 여러 사람들이 베낀 것에 오자가 많아 엄한 분부가 내려졌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신현과 조석중에게 이 일을 주관하게 했는데 이와 같이 소홀했구나. 신현은 순실하다
  • 648482

    8월.5일. 『주자대전』의 봉사와 주차를 읽는 것을 마쳤다.
  • 648483

    6일. 하교하기를, “신현이 올렸던 고식 가운데 주자소 조항은 잘 했다. 그를 이전대로 입직시키는 것이 좋겠다.” 했다. 즉시 주자소에 나아갔다. 경모궁(景慕宮) 추향대제(秋享大祭) 당상 집례에 차정되어 곧바로 혜청(惠廳) 문밖으로 나가서 재계했다.
  • 648484

    7일. 새벽에 대궐 밖에 나아가서 향을 따라 경모궁에 들어갔다. 임금이 친히 임하여 생기(牲器)와 이의(肄儀)를 살피니, 즉시 나아가서 생기를 살필 때의 집례에 참여했다. 마땅히 조복(朝服)을 입어야 하는데 내가 환복을 하지 못해 흑단령(黑團領)으로 참여했으므로 승
  • 648485

    8일. 새벽에 예를 행하고 마치자 돌아와서 즉시 주자소에 나아가 『육률』을 교정하여 올렸다. 저녁에 『두율(杜律)』을 내려주며 분부하기를, “신현에게 새로 분간하는 명이 있는데 이런 일은 반드시 상세히 살펴보고 해야 한다. 이를 신현으로 하여금 교정해서 들이게 하라
  • 648486

    9일. 교정이 끝나서 올렸다. 저녁에 나왔다.
  • 648487

    10일. 주자소에 나아가 『육률』을 교정하여 올렸다. 이날 정사에서 좌통례(左通禮)의 수의(首擬)에 들었다.【나는 지난겨울에 첨지가 붙은 이후 여전히 지난번 작업으로 서장관에 차정되고 특명으로 호서 어사가 되었지만 기타 관직에는 모두 의망되지 않았는데 이에 이르러
  • 648488

    11일. 비가 내림. 패초(牌招)하여 조방(朝房)으로 나아가 패를 반납하고 나아가지는 않았다. 첨지가 붙은 뒤로 비록 분간하라는 명이 있었지만 감히 즉시 나가 공무를 행할 수는 없었다. 추고만 하라고 명했다. 조방(朝房):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조회 시간을 기다릴 때
  • 648489

    12일. 건원릉(健元陵) 추석제(秋夕祭)의 전사관 겸 대축(典祀官兼大祝)에 차정되었다.
  • 648490

    13일. 봉상시에 가서 제물(祭物)을 배위하여 능소에 나아갔다. 김근순도 원릉(元陵) 전사관(典祀官)으로서 동행했다.
  • 648491

    14일. 하루 종일 제수(祭需)의 숙설(熟設)을 감독했다. 오후에 헌관 김달순(金達淳)이 향을 받들고 나왔다. 헌릉(獻陵)과 현륭원(顯隆園)을 행행(幸行)한다는 명이 있었다. 이날 구전(口傳)으로 하교하기를, “오늘은 거의 명령하면 시행되고 금지하면 중지되어야 하는
  • 648492

    15일. 새벽에 예를 행하고 마치자 돌아왔다. 즉시 입궐하여 좌의정 이병모와 유사 당상 이서구를 만나 뵙고 공경히 명을 받들고 나왔다. 우의정 이시수를 찾아가서 뵙고 즉시 출발했는데 사익(士益)이 따라왔다. 노량진(鷺梁津)을 건너 과천을 경유하여 헌릉에 들어갔다가
  • 648493

    16일. 다시 과천을 경유하여 화성에 도착했다. 즉시 길을 되돌아왔으니 밤이 되어서 승방(僧房) 참사에 도착했다.【과천 경계이다.】
  • 648494

    17일. 새벽에 출발하여 성도곡(成道谷) 묘사(墓舍)에 도착했다. 수본 초고를 수정하고 즉시 출발하여 노량진을 건너서 비변사에 도착했다. 수본을 정서하여 좌의정·우의정에게 보내고 곧바로 집에 돌아왔다. 이날 정사에서【이조참의 이서구가 주관했다.】 순천부사(順天府使)
  • 648495

    18일. 새벽에 입궐하여 사은숙배를 했다. 이날 문비랑을 감하(減下)했다. 저녁에 노량에 나가 공경히 대가(大駕)를 전송했다.
  • 648496

    19일. 새벽에 임금이 헌릉과 현륭원을 행행했다. 삼경(三更, 밤 11시~새벽 1시)에 대가가 궁을 나가서 나는 여러 관원들과 함께 노차(路次)에서 공경히 전송했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노차(路次): 임금이 거둥할 때 도중에 잠깐 쉬기 위하
  • 648497

    21일. 임금이 환궁하여 여러 동료들과 함께 노량에 나아가 공경히 맞았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48498

    22일. 수령을 재촉하여 내려 보내라는 명이 있어 즉시 입궐하여 하직했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48499

    24일. 맑음. 저물녘에 순천에 부임하는 행차를 출발했다. 사익과 천석·용복이 따라나섰다. 30리를 가서 시흥에서 점심을 먹고, 20리를 가서 저녁에 사근평(肆覲坪)에서 묵었다. 신연(新延) 하인 등을 만났으니 이방 이응신(李應臣)과 수배(隨陪) 정준표(鄭俊杓),
  • 648500

    25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중미참(重味站)에서 점심을 먹고, 50리를 가서 저녁에 소사참(素沙站)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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