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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맑음. 신임 수사 김선(金璿)과 전임 수사 조대(趙岱)가 와서 모여 교귀(交龜)를 행했다. 신임 수사는 수영을 향해 출발하고, 전임 수사는 그대로 묵었다. 낙안군수(樂安郡守) 이겸회(李謙會)가 왔다가 갔다. 교귀(交龜): 관찰사, 수군통제사, 병마절도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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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맑음. 전임 수사가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민의 소장이 104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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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3일. 큰형님이 왜교(倭橋)를 가서 보고【부의 남쪽 20리에 있다. 임진왜란 때 왜인들이 웅거했던 보루인데 아직도 보루 터가 남아 있다.】 그날로 돌아왔다. 관찰사가 편지를 보내 왔고 아울러 직각(直閣) 심상규(沈象奎)의 편지도 보내왔는데, 「어제만천명월주인옹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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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형님이 서울로 올라가므로 환선정에 나가서 인사하고 바로 돌아왔다. 글씨 쓰는 일을 아직 끝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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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글씨 쓰는 일을 끝냈으므로 봉해서 보냈다. 민의 소장이 4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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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민의 소장이 34장이었다. 읍유(邑儒)의 습속이 향전(鄕戰)을 좋아하는데 향전의 발단이 된 두 사람을 엄히 다스려 징계했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3순을 쏘아 7발을 맞혔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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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환선정에 가서 문무과(文武科) 백일장(白日場)을 설행했다. 시제(詩題)는 ‘육생(陸生)의 말을 음미하니 날마다 듣지 못한 바를 듣는다.[留飮陸生語. 日聞所不聞.]’이고,【압운은 문(聞) 자이다.】 부제(賦題)는 ‘급히 일어나 사죄한다.[蹶然起謝]’이고,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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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방문(榜文)을 게시했다. 시와 부에서 각각 25인을 뽑고, 고풍에서 20인을 뽑고, 무인(武人) 백일장은 영장을 시관(試官)으로 정해서 20인을 뽑게 했다. 시·부·고풍에서 각각 또 1인씩 추가로 뽑아 모두 93인이었다. 시·부·고풍은 모두 이하(二下)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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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그믐. 옥천서원(玉川書院)에 가서 찾아서 배알하고 그로 인해 백일장을 설행했다. 시제는 ‘우리 밭이 이미 좋음은 농부의 복이로다.[我田旣臧, 農夫之慶.]’이고,【압운은 농(農) 자이다.】 부제는 ‘올해도 벌써 시월이네.[歲亦陽止]’이고, 의제(義題)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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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월. 1일. 새벽에 객사에 들어가서 망궐례를 행했다. 민의 소장이 66장이었다.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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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본창에 가서【읍의 창고이다.】 환곡 들이는 것을 감독했다. 민의 소장이 97장이었다. 27일은 읍내의 장시가 열리므로 매번 이날은 민의 소장이 배나 많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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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하사면(下沙面) 10리 되는 곳에 가서 제언(堤堰)을 축조하는 것을 보았다. 가을에 조정에서 축조하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대신들이 경연(經筵)에서 홍주·순천 등지에 장차 비국 낭청(備局郞 廳)이 적간해야 한다고 아뢰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가서 살펴보았다. 제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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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민의 소장이 48장이었다. 서울로 인편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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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일. 순영(巡營)의 동지전문(冬至箋文)과 수영의 전문을 지어 보냈다. 서면(西面)에 가서 제언 축조를 살펴보고 제언 아래 농민들을 부역에 참여하게 했다. 곧바로 해촌(海村)의 갈치언(葛峙堰)에 갔는데 이 제언이 읍중에서 가장 큰 곳이고 받는 이득도 넓어서 다시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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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민의 소장이 43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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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토하고 설사하는 증세가 있어 업무를 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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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읍에 호민(豪民)이 많았는데 간간이 살찐 말을 타고 종인을 데리고 경내의 부유한 집을 두루 다니며 나락 가마니와 무명 뭉텅이를 탈취하는 부류가 있어서 이를 잡아다가 엄히 다스렸다. 민의 소장이 47장이었다. 서울로 인편을 보냈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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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창고에 가서 환곡을 거두었다. 민의 소장이 43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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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11장이었다. 〔두주〕 아버님이 직소에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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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석창(石倉)에 가서 환곡을 거두고 돌아서 수영에 가서 수사를 만났다. 영속(營屬)의 정원 외에 보솔(保率)은 68석을 추쇄하여 와서 군역(軍役)에 충정했다. 영속(營屬): 각 군영(軍營)이나 감영(監營) 등에 딸려 있는 아전(衙前)과 노비를 말한다. 보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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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새벽에 출발하여 관아에 돌아왔다. 환선정에 도착하여 과녁에 활 5순을 쏘아 6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9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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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경내의 반족(班族) 양성국(梁聖國)이 한 읍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양민(良民)을 침탈하므로 잡아다가 엄히 다스렸다. 민의 소장이 77장이었다. 서울 간 인편이 돌아왔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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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양성국이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받았으므로 불러와서 정황을 물어 성국의 간악한 실상을 알아냈다. 영문에 보고하여 형장(刑杖)을 써서 추문했는데 수차례 방면해 주었다. 민의 소장이 19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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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영장과 함께 객사에 가서 망궐례를 행했다. 민의 소장이 23장이었다. 조명계와 이경술(李慶戌)이 서울에서 내려와 그대로 머물렀다. 인편을 통해 서울에 편지를 부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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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6일. 민의 소장이 52장이었고, 다음 날 민의 소장이 87장이었다. 인편을 통해 서울에 편지를 부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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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8일. 비가 내림. 팽동(彭同)이 전주에서 돌아왔다. 민의 소장이 46장이었다. 〔두주〕 원자궁이 『맹자』 제1권 강독을 마쳤다. 아버님이 전복 2관(串)·민어(民魚) 1미(尾)·조기[石魚] 2속·곶감[乾柹] 1첩·감동해(甘冬醢) 1항(缸)·소목(燒木) 3단을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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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눈이 조금씩 내림. 민의 소장이 57장이었다. 병영에서 마감한 군정은 169명이었다. 이날 대정(代定)했다. 대정(代定): 군대에서 결원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을 투입해 정원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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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0일. 눈바람이 붊. 호적별유사(戶籍別有司)가 호를 누락시키고 뇌물을 받은 것이 조사에서 나와 엄히 다스렸다. 자유(子牖)가 강진에 갔다. 민의 소장이 41장이었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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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민의 소장이 28장이었다. 서울로 인편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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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신임 우후(虞候)가 지나갔다. 민의 소장이 74장이고, 다음 날 민의 소장이 50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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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전임 우후가 지나갔다. 비변랑(備邊郞) 윤민동(尹敏東)이 제언을 적간하는 일로 내려왔다. 민의 소장이 56장이고, 다음 날 민의 소장이 31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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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동지(冬至)이다. 새벽에 객사에 들어가서 하례(賀禮)를 행하면서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숭호(嵩呼)했다. 관속(官屬)과 면임(面任), 장교(將校)들을 점검했다. 민의 소장이 39장이었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숭호(嵩呼): 숭호만세(嵩呼萬歲)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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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나가서 비국낭청을 만나보았는데 이날 떠나갔다. 민의 소장이 70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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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북창(北倉)에 가서【부의 북쪽 40리에 있다.】 환곡을 거두어들이고 저녁에 관아로 돌아왔다. 수영에서 마감한 군정은 223명이었다. 이날 대정했다. 〔두주〕 아버님이 사복시에서 입직하고 5일 만에 출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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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그믐.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50장이었다. 서울로 인편을 보냈다. 〔두주〕 아버님이 직소에서 강석에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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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월. 1일. 객사에 가서 하례를 행했다. 밥을 먹은 뒤에 창고에 가서 환곡을 거두어들였다. 민의 소장이 75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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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비가 내리다가 밤에 눈이 내림. 각 면에 전령(傳令)을 보내 환곡 거두는 일을 독촉했다. 민의 소장이 44장이었다. 팽동이 왔고, 서울로 보낸 인편이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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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민의 소장이 54장이었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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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내처(內處)에서 읍의 폐단과 도내의 폐단을 초록했는데, 기록해서 올리라는 하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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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일. 자유【바로 조명계(趙明啓)이다.】가 돌아왔다. 다음 날 초록이 완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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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천석을 보내 서울로 올라가게 했다. 관속을 점검한 것은 이들이 몰래 여리(閭里)에 나가서 곡식을 빌리는 폐단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두주〕 아버님이 소목 3단을 하사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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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석창의 감색(監色)이 환곡을 거두어들이는 데 폐해가 생겼기에 잡아와서 죄를 다스렸다. 민의 소장이 48장이었다. 서울로 간 인편이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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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호남의 각 읍에 고복채(考卜債)라는 명목이 있으니 대개 서원들이 으레 민간에서 벼를 거두어서 전결(田結) 문안(文案)을 작성하는 비용으로 삼았다. 저번에 대간의 상소로 혁파했는데, 구애되는 단서가 많아 다시 전례대로 거두어들이라고 명령하여 비변사에서 알려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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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광양현감이 와서 동추(同推)를 행했다. 민의 소장이 50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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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저녁에 눈이 내림. 해창(海倉)【부의 남쪽 20리에 있다.】에 가서 환곡을 거두들이고 바로 돌아왔다. 민의 소장이 60장이었다. 북창(北倉)은 다 거두어들이고 창고를 봉했다.【미(米) 3,300석, 조(租) 1,038석, 콩[太] 142석, 메밀[木麥]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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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서울에서 온 인편이 있어 하사한 신력(新曆) 2건을 공경히 받았다. 이어서 유향(儒鄕)과 관속들에게 월력을 반사하는데 300건이 들었다. 민의 소장이 41장이었다. 서울에서 온 인편이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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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제수(祭需)를 가져가는 인편과 정조 호장(正朝戶長)을 보내면서 주자소의 여러 동료들에게 편지를 썼다. 민의 소장이 51장이었다. 선소창(船所倉)【부의 남쪽 70리에 있다.】에 환곡을 다 거두어들이고 창고를 봉했다.【미 714석】 정조 호장(正朝戶長):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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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진창(賑倉)【부의 성 안에 있다.】에 가서 환곡을 거두었다. 바로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순을 쏘아 4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40장이었다. 서울로 간 인편이 돌아왔다. 〔두주〕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하고 바로 입직했다. 진창(賑倉): 진휼창(賑恤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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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영장과 함께 망궐례를 행했다. 서울로 세찬(歲饌)을 가져가는 인편을 보냈다. 민의 소장이 46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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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6일. 전최(殿最) 방목(榜目)이 왔는데 제목이 ‘문재가 추앙을 받을만하고, 관리의 일을 소홀하지 않았네.[文華所推, 吏事不疎.]’이다. 민의 소장이 40장이었다. 서울로 간 인편이 돌아왔다. 전최(殿最): 관찰사가 각 고을 수령의 근무 성적을 심사하여 중앙에 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