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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7일. 서울로 가는 인편을 보냈다. 민의 소장이 82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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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8일. 광양현감이 와서 동추했다. 민의 소장이 41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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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자유가 산을 유람하는 행차를 했다. 민의 소장이 43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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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0일. 민의 소장이 38장이었다. 저치창(儲置倉)【부성(府城) 안에 있다.】에 환곡 거두기를 마치고 창고를 봉했다.【미 2,710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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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서울로 가는 인편을 보냈다. 부창(富倉)【부의 동쪽 70리에 있다.】·진창·해창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부창 미 6,195석, 조(粗) 2,023석, 콩 233석, 메밀 16석. ○진창 미 3,372석, 조 609석, 콩 141석, 메밀 3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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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민의 소장이 93장이었다. 본창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미 2,511석, 조(租) 1,651석, 콩 205석, 메밀 14석.】 〔두주〕 22일. 원자궁이 『맹자』 제2권 강독을 마쳤다.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하고 타락죽[駱粥] 1그릇[器],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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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3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순을 쏴서 6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22장이었다. 석창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미 5,202석, 조 1,590석, 콩 106석, 메밀 10석.】 각 창고에서 환곡을 다 거두어들였다는 문서를 순영으로 발송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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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서울로 간 인편이 돌아왔다. 민의 소장이 64장이었다. 이날 관속들이 방(房)을 바꾸었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납약 3종을 하사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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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민의 소장이 71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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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5장이었다. 사창(社倉)【부성 안에 있다.】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 사창은 민창(民倉)이니, 해마다 곡물의 10분의 1을 이자로 받아 민고의 쓰임에 부응하지만 그 곡식이 상사(上司)와 관련 없는 까닭에 본 수량에서 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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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환선정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쏴서 11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81장이었다. 배편이 있어 죽개(竹介)와 책기(冊機) 소나무 재목을 실어 보냈다. 읍의 전례에 연말마다 향임을 개차하는데 개차할 때에 뇌물을 받는 폐단이 있으므로 모두 잉임(仍任)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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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민의 소장이 42장이었다. 저녁에 송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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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3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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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0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녘에 흐리고 눈이 내림. 서울 간 인편이 돌아와서 집안이 편안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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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부록 순천지략(順天志略) 지방(地方).【동쪽은 광양현 경계까지 15리, 좌수영까지 80리, 방답진(防踏鎭)까지 150리이다. ○서쪽은 낙안군 경계까지 31리, 동복현 경계까지 94리이다. ○남쪽은 바다까지 25리이다. ○북쪽은 구례현 경계까지 61리, 곡성현 경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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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월.〕 1일. 맑음. 새벽에 객사(客舍)에 나아가 하례(賀禮)를 행했다. 이날 문후하는 반열(班列)에서 대신과 재상이 일제히 모여 왕세자의 책례(冊禮) 및 관례(冠禮)의 길일을 택일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2월 2일로 택일했다. 이날 정사(政事)에서 세자시강원(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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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맑음. 이날 정사에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를 차출했는데, 아버님이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에서 체직되고 요속(僚屬)으로서 그대로 우익위(右翊衛)에 제수되었다.【수의로 하비되었고, 부의는 김기응(金箕應), 말의(末擬)는 이희복(李羲復)이었다.】 좌익위(左翊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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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맑음. 서울 인편을 보냈다. 지방의 3품 수령에게 수령과 변장(邊將)에 적합한 사람을 천거하는 규정이 있어 수령에 적합한 사람 3인으로 이현시(李玄始)·윤상기(尹象基)·박상영(朴尙榮)을 단자(單子)에 써서 순영(巡營)에 보내 조정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날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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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맑음. 해가 뜰 무렵에 개좌(開坐)하여 일을 처리했다. 읍례(邑例)에, 동지(冬至)와 정월 초하루에 모여서 향장(鄕將)과 제임(諸任)이 관속(官屬)을 점검하는데 이를 동지대례(冬至大禮), 정조대례(正朝大禮)라고 한다. 이날 민의 소장이 76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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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맑음. 민의 소장이 122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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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맑음. 서울 인편이 와서 1일에 보덕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즉시 장부를 마감하고 행장을 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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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맑음. 서울 인편이 와서 2일에 잉임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제수되자마자 다시 전직(前職)에 잉임된 것 또한 특별한 은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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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맑음. 민의 소장이 44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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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아침에 흐림. 밤에 음악을 연주했다. 영장(營將)이 왔다. 민의 소장이 31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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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맑음. 본창에 가서 환곡을 나누어주었다. 민의 소장이 36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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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아침에 흐림. 해창(海倉)에 가서 환곡을 나누어주고 나서 창고를 열어 세미(稅米)를 받기 시작했다.【본부(本府)에서 세미를 받는 것은 으레 해창에서 한다. 올해 전세미(田稅米)의 원상납(元上納)은 1,714석 남짓이고, 잡비(雜費)는 602석 남짓이다. 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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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맑음. 민의 소장이 23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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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맑음. 서울 인편이 왔다. 새벽에 객사에 나아가 하례(賀禮)를 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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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6일. 흐리고 눈이 내림. 경례(慶禮)가 이미 정해져서 즉시 서울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관아가 텅 비어 (어머니의) 곁에 모실 사람이 없는 까닭에 바로 출발하지 못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큰형님이 10일 전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머지않아 관아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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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7일. 흐림. 일찍 출발하여 구례(求禮)에서 점심을 먹고, 산동원(山東院)에서 말을 먹였으며, 저녁에 남원(南原)의 광한루(廣寒樓)에서 묵었다. 규백(圭伯)이 와서 술을 마셨는데, 밤에 크게 취했다.【규백의 아버지는 안정환(安廷瓛) 어른으로, 이때 남원부사(南原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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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8일. 맑음. 큰형님의 행차를 만나 인사드리고 머무르다가 늦은 아침에 작별하고 출발해서 저녁에 오수역(獒樹驛)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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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흐리고 거센 바람이 불다가 눈이 내리고 추움. 일찍 출발하여 노암(爐巖)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 인편을 만났다. 저녁에 전주(全州)에 도착하여 순찰사 조종현(趙宗鉉) 어른에게 인사드렸다. 밤에 비장(裨將) 김광속(金光涑)이 왔다. 노암(爐巖): 노구암(爐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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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0일. 맑다가 흐리다가 가끔 눈이 내림. 들어가서 순찰사를 뵙고 바로 출발하여 삼례역(參禮驛)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여산(礪山)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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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춥고 가끔 흐림. 일찍 출발하여 은진(恩律)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경천참(鏡川站) 참사(站舍)에서 묵었다. 경천참(鏡川站): 성환도(成歡道)에 속역인 경천역(敬天驛)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 공주목에 위치해 있었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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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맑음. 서울 인편을 만났다. 일찍 출발하여 일신점(日新店)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상경하는 옥구현감(沃溝縣監) 정내백(鄭來百)의 행차를 만났기에 동행했다. 저녁에 모루원(暮樓院)에 도착했는데, 상경하는 부안현감(扶安縣監) 조만원(趙萬元)의 행차를 만나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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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3일. 가끔 흐림. 두 수령과 함께 출발하여 덕평참(德坪站)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덕산현감(德山縣監) 박민순(朴民淳)의 차사원(差使員) 행차를 만났다. 저녁에 부토참(富土站)에서 묵었는데, 정언(正言) 김효수(金孝秀)의 행차를 만났다. 덕평참(德坪站): 지금의 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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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맑음. 두 수령과 함께 일찍 출발하여 소사참(素沙站)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중본참(中本站)에서 묵었다. 소사참(素沙站): 양성현(陽城縣) 소사천(素沙川)에 있는 역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선원천(禪院川)과 안성군(安城郡) 남천(南川)의 물이 합쳐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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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맑음. 두 수령과 함께 일찍 출발하여 군포천참(軍布川站)에서 점심을 먹고, 얼음이 언 노량(鷺梁)을 건넜다. 청파(靑坡)에 이르러 두 수령과 헤어졌다. 저녁에 집에 도착하여 아버님을 뵙고 인사드렸다. 〔두주〕 아버님은 우익위(右翊衛)로서 숙배(肅拜)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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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맑음. 새벽에 입궐(入闕)하여 입래 단자(入來單子)를 올렸다. 칙사(勅使)가 건륭황제(乾隆皇帝)를 하늘에 배향한 조서(詔書)를 가지고 왔기에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행행하여 칙사를 맞이하고, 인정전(仁政殿)에 돌아와서 조서를 받았다. 입래 단자(入來單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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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맑음. 임금이 모화관에 행행하여 칙사를 전송했다. 주자소(鑄字所)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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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월. 2일. 맑음. 묘시(卯時)에 왕세자의 관례(冠禮) 및 책례(冊禮)를 집복헌(集福軒)에서 거행하여 아버님을 모시고 하례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이날 날씨가 청명하여 경사스러운 의례가 순조롭게 치러졌다. 숭호(嵩呼)하며 축하를 올리니 환호하는 소리에 땅이 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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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맑음. 이날 내행차(內行次)가 순천 관아에서 출발했다. 내행차(內行次): 어머니 연일 정씨(延日鄭氏)의 행차를 가리킨다. 『석천유집후집(石泉遺集後集)』 권8, 「일승(日乘)」 1800년 2월 16일 기록에, 신현의 큰형인 신진(申縉)이 어머니를 모시고 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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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밤에 비가 내림. 봄 농사를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수령을 재촉하여 내려 보내라는 하교(下敎)가 있었다. 즉시 내각(內閣)에 들어가 하직 단자(下直單子)를 올리고 주자소에 들렀다가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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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숙정(叔正)이 와서 이별했다. 아침에 비가 내리고 늦은 아침에 갰다. 순천 관아로 행차를 출발해서 남동(藍洞)에서 묵었다. 숙정(叔正): 조석중(曺錫中, 1763~1816)의 자.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조휘진(曺翬振),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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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동작진을 건너 정매(鄭妹)의 묘소에 들렀다. 과천(果川)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화성(華城)에서 묵었다. 서울 인편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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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맑음.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성환(成歡)에서 묵었다. 성환(成歡): 성환역(成歡驛)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성환역은 성환도(成歡道)의 본역으로, 종6품의 찰방이 임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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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맑음. 출발하여 가다가 길에서 승지 조홍진(趙弘鎭)의 행차를 만났다. 천안(天安)에서 점심을 먹고, 원기(院基)에서 말을 먹였으며, 저녁에 신점(新店)에서 묵었다. 〔두주〕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入直)하고 다음 날 출직(出直)했다. 조홍진(趙弘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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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금강(錦江)에 이르러 어머님과 큰형님의 행차를 만났기에 모시고 돌아가서 신점에 이르러 반나절을 머물렀다. 오시(午時)에 작별하고 길을 가다가 부안 현감 조만원의 행차를 만나서 동행했다. 저녁에 이성(尼城, 논산)에 도착하여 감역 윤영진(尹永鎭)을 만나고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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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맑음. 부안 현감과 함께 일찍 출발하여 여산에서 점심을 먹고 삼례(參禮)에서 말을 먹이고, 관아로 돌아가는 부안 현감을 보냈다. 어두워질 무렵에 전주에 도착하여 순찰사 조종현 어른에게 인사드렸다. 밤에 비장 김광속이 와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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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맑음. 일찍 출발했다. 순천 관아의 인편을 만났는데 그대로 서울에 보냈다. 노암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오수역점(獒樹驛店)에서 묵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