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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8601

    17일. 서울로 가는 인편을 보냈다. 민의 소장이 82장이었다.
  • 648602

    18일. 광양현감이 와서 동추했다. 민의 소장이 41장이었다.
  • 648603

    19일. 자유가 산을 유람하는 행차를 했다. 민의 소장이 43장이었다.
  • 648604

    20일. 민의 소장이 38장이었다. 저치창(儲置倉)【부성(府城) 안에 있다.】에 환곡 거두기를 마치고 창고를 봉했다.【미 2,710석】
  • 648605

    21일. 서울로 가는 인편을 보냈다. 부창(富倉)【부의 동쪽 70리에 있다.】·진창·해창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부창 미 6,195석, 조(粗) 2,023석, 콩 233석, 메밀 16석. ○진창 미 3,372석, 조 609석, 콩 141석, 메밀 3석
  • 648606

    22일. 민의 소장이 93장이었다. 본창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미 2,511석, 조(租) 1,651석, 콩 205석, 메밀 14석.】 〔두주〕 22일. 원자궁이 『맹자』 제2권 강독을 마쳤다. 아버님이 강석에 참석하고 타락죽[駱粥] 1그릇[器], 생
  • 648607

    23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순을 쏴서 6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22장이었다. 석창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미 5,202석, 조 1,590석, 콩 106석, 메밀 10석.】 각 창고에서 환곡을 다 거두어들였다는 문서를 순영으로 발송했다.
  • 648608

    24일. 서울로 간 인편이 돌아왔다. 민의 소장이 64장이었다. 이날 관속들이 방(房)을 바꾸었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납약 3종을 하사받았다.
  • 648609

    25일. 민의 소장이 71장이었다.
  • 648610

    26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5장이었다. 사창(社倉)【부성 안에 있다.】에서 환곡을 다 거두고 창고를 봉했다. 사창은 민창(民倉)이니, 해마다 곡물의 10분의 1을 이자로 받아 민고의 쓰임에 부응하지만 그 곡식이 상사(上司)와 관련 없는 까닭에 본 수량에서 축
  • 648611

    27일. 환선정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쏴서 11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81장이었다. 배편이 있어 죽개(竹介)와 책기(冊機) 소나무 재목을 실어 보냈다. 읍의 전례에 연말마다 향임을 개차하는데 개차할 때에 뇌물을 받는 폐단이 있으므로 모두 잉임(仍任)시켰다.
  • 648612

    28일. 민의 소장이 42장이었다. 저녁에 송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했다.
  • 648613

    29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3장이었다.
  • 648614

    30일. 아침에 맑다가 저물녘에 흐리고 눈이 내림. 서울 간 인편이 돌아와서 집안이 편안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두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48615

    부록 순천지략(順天志略) 지방(地方).【동쪽은 광양현 경계까지 15리, 좌수영까지 80리, 방답진(防踏鎭)까지 150리이다. ○서쪽은 낙안군 경계까지 31리, 동복현 경계까지 94리이다. ○남쪽은 바다까지 25리이다. ○북쪽은 구례현 경계까지 61리, 곡성현 경계까
  • 648616

    〔1월.〕 1일. 맑음. 새벽에 객사(客舍)에 나아가 하례(賀禮)를 행했다. 이날 문후하는 반열(班列)에서 대신과 재상이 일제히 모여 왕세자의 책례(冊禮) 및 관례(冠禮)의 길일을 택일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2월 2일로 택일했다. 이날 정사(政事)에서 세자시강원(世
  • 648617

    2일. 맑음. 이날 정사에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를 차출했는데, 아버님이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에서 체직되고 요속(僚屬)으로서 그대로 우익위(右翊衛)에 제수되었다.【수의로 하비되었고, 부의는 김기응(金箕應), 말의(末擬)는 이희복(李羲復)이었다.】 좌익위(左翊衛
  • 648618

    3일. 맑음. 서울 인편을 보냈다. 지방의 3품 수령에게 수령과 변장(邊將)에 적합한 사람을 천거하는 규정이 있어 수령에 적합한 사람 3인으로 이현시(李玄始)·윤상기(尹象基)·박상영(朴尙榮)을 단자(單子)에 써서 순영(巡營)에 보내 조정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날 이
  • 648619

    6일. 맑음. 해가 뜰 무렵에 개좌(開坐)하여 일을 처리했다. 읍례(邑例)에, 동지(冬至)와 정월 초하루에 모여서 향장(鄕將)과 제임(諸任)이 관속(官屬)을 점검하는데 이를 동지대례(冬至大禮), 정조대례(正朝大禮)라고 한다. 이날 민의 소장이 76장이었다.
  • 648620

    7일. 맑음. 민의 소장이 122장이었다.
  • 648621

    8일. 맑음. 서울 인편이 와서 1일에 보덕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즉시 장부를 마감하고 행장을 꾸렸다.
  • 648622

    9일. 맑음. 서울 인편이 와서 2일에 잉임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제수되자마자 다시 전직(前職)에 잉임된 것 또한 특별한 은혜다.
  • 648623

    10일. 맑음. 민의 소장이 44장이었다.
  • 648624

    11일. 아침에 흐림. 밤에 음악을 연주했다. 영장(營將)이 왔다. 민의 소장이 31장이었다.
  • 648625

    12일. 맑음. 본창에 가서 환곡을 나누어주었다. 민의 소장이 36장이었다.
  • 648626

    13일. 아침에 흐림. 해창(海倉)에 가서 환곡을 나누어주고 나서 창고를 열어 세미(稅米)를 받기 시작했다.【본부(本府)에서 세미를 받는 것은 으레 해창에서 한다. 올해 전세미(田稅米)의 원상납(元上納)은 1,714석 남짓이고, 잡비(雜費)는 602석 남짓이다. 삼
  • 648627

    14일. 맑음. 민의 소장이 23장이었다.
  • 648628

    15일. 맑음. 서울 인편이 왔다. 새벽에 객사에 나아가 하례(賀禮)를 행했다.
  • 648629

    16일. 흐리고 눈이 내림. 경례(慶禮)가 이미 정해져서 즉시 서울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관아가 텅 비어 (어머니의) 곁에 모실 사람이 없는 까닭에 바로 출발하지 못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큰형님이 10일 전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머지않아 관아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
  • 648630

    17일. 흐림. 일찍 출발하여 구례(求禮)에서 점심을 먹고, 산동원(山東院)에서 말을 먹였으며, 저녁에 남원(南原)의 광한루(廣寒樓)에서 묵었다. 규백(圭伯)이 와서 술을 마셨는데, 밤에 크게 취했다.【규백의 아버지는 안정환(安廷瓛) 어른으로, 이때 남원부사(南原府
  • 648631

    18일. 맑음. 큰형님의 행차를 만나 인사드리고 머무르다가 늦은 아침에 작별하고 출발해서 저녁에 오수역(獒樹驛)에서 묵었다.
  • 648632

    19일. 흐리고 거센 바람이 불다가 눈이 내리고 추움. 일찍 출발하여 노암(爐巖)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 인편을 만났다. 저녁에 전주(全州)에 도착하여 순찰사 조종현(趙宗鉉) 어른에게 인사드렸다. 밤에 비장(裨將) 김광속(金光涑)이 왔다. 노암(爐巖): 노구암(爐口
  • 648633

    20일. 맑다가 흐리다가 가끔 눈이 내림. 들어가서 순찰사를 뵙고 바로 출발하여 삼례역(參禮驛)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여산(礪山)에서 묵었다.
  • 648634

    21일. 춥고 가끔 흐림. 일찍 출발하여 은진(恩律)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경천참(鏡川站) 참사(站舍)에서 묵었다. 경천참(鏡川站): 성환도(成歡道)에 속역인 경천역(敬天驛)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 공주목에 위치해 있었으며,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했다.
  • 648635

    22일. 맑음. 서울 인편을 만났다. 일찍 출발하여 일신점(日新店)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상경하는 옥구현감(沃溝縣監) 정내백(鄭來百)의 행차를 만났기에 동행했다. 저녁에 모루원(暮樓院)에 도착했는데, 상경하는 부안현감(扶安縣監) 조만원(趙萬元)의 행차를 만나 함께
  • 648636

    23일. 가끔 흐림. 두 수령과 함께 출발하여 덕평참(德坪站)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덕산현감(德山縣監) 박민순(朴民淳)의 차사원(差使員) 행차를 만났다. 저녁에 부토참(富土站)에서 묵었는데, 정언(正言) 김효수(金孝秀)의 행차를 만났다. 덕평참(德坪站): 지금의 청
  • 648637

    24일. 맑음. 두 수령과 함께 일찍 출발하여 소사참(素沙站)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중본참(中本站)에서 묵었다. 소사참(素沙站): 양성현(陽城縣) 소사천(素沙川)에 있는 역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선원천(禪院川)과 안성군(安城郡) 남천(南川)의 물이 합쳐져
  • 648638

    25일. 맑음. 두 수령과 함께 일찍 출발하여 군포천참(軍布川站)에서 점심을 먹고, 얼음이 언 노량(鷺梁)을 건넜다. 청파(靑坡)에 이르러 두 수령과 헤어졌다. 저녁에 집에 도착하여 아버님을 뵙고 인사드렸다. 〔두주〕 아버님은 우익위(右翊衛)로서 숙배(肅拜)하고,
  • 648639

    26일. 맑음. 새벽에 입궐(入闕)하여 입래 단자(入來單子)를 올렸다. 칙사(勅使)가 건륭황제(乾隆皇帝)를 하늘에 배향한 조서(詔書)를 가지고 왔기에 임금이 모화관(慕華館)에 행행하여 칙사를 맞이하고, 인정전(仁政殿)에 돌아와서 조서를 받았다. 입래 단자(入來單子)
  • 648640

    29일. 맑음. 임금이 모화관에 행행하여 칙사를 전송했다. 주자소(鑄字所)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나왔다.
  • 648641

    2월. 2일. 맑음. 묘시(卯時)에 왕세자의 관례(冠禮) 및 책례(冊禮)를 집복헌(集福軒)에서 거행하여 아버님을 모시고 하례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이날 날씨가 청명하여 경사스러운 의례가 순조롭게 치러졌다. 숭호(嵩呼)하며 축하를 올리니 환호하는 소리에 땅이 울렸다.
  • 648642

    6일. 맑음. 이날 내행차(內行次)가 순천 관아에서 출발했다. 내행차(內行次): 어머니 연일 정씨(延日鄭氏)의 행차를 가리킨다. 『석천유집후집(石泉遺集後集)』 권8, 「일승(日乘)」 1800년 2월 16일 기록에, 신현의 큰형인 신진(申縉)이 어머니를 모시고 순천
  • 648643

    8일. 밤에 비가 내림. 봄 농사를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수령을 재촉하여 내려 보내라는 하교(下敎)가 있었다. 즉시 내각(內閣)에 들어가 하직 단자(下直單子)를 올리고 주자소에 들렀다가 나왔다.
  • 648644

    9일. 숙정(叔正)이 와서 이별했다. 아침에 비가 내리고 늦은 아침에 갰다. 순천 관아로 행차를 출발해서 남동(藍洞)에서 묵었다. 숙정(叔正): 조석중(曺錫中, 1763~1816)의 자.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조휘진(曺翬振),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
  • 648645

    10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동작진을 건너 정매(鄭妹)의 묘소에 들렀다. 과천(果川)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화성(華城)에서 묵었다. 서울 인편을 보냈다.
  • 648646

    11일. 맑음.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성환(成歡)에서 묵었다. 성환(成歡): 성환역(成歡驛)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성환역은 성환도(成歡道)의 본역으로, 종6품의 찰방이 임명되었다.
  • 648647

    12일. 맑음. 출발하여 가다가 길에서 승지 조홍진(趙弘鎭)의 행차를 만났다. 천안(天安)에서 점심을 먹고, 원기(院基)에서 말을 먹였으며, 저녁에 신점(新店)에서 묵었다. 〔두주〕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入直)하고 다음 날 출직(出直)했다. 조홍진(趙弘鎭):
  • 648648

    13일. 금강(錦江)에 이르러 어머님과 큰형님의 행차를 만났기에 모시고 돌아가서 신점에 이르러 반나절을 머물렀다. 오시(午時)에 작별하고 길을 가다가 부안 현감 조만원의 행차를 만나서 동행했다. 저녁에 이성(尼城, 논산)에 도착하여 감역 윤영진(尹永鎭)을 만나고 나
  • 648649

    14일. 맑음. 부안 현감과 함께 일찍 출발하여 여산에서 점심을 먹고 삼례(參禮)에서 말을 먹이고, 관아로 돌아가는 부안 현감을 보냈다. 어두워질 무렵에 전주에 도착하여 순찰사 조종현 어른에게 인사드렸다. 밤에 비장 김광속이 와서 만났다.
  • 648650

    15일. 맑음. 일찍 출발했다. 순천 관아의 인편을 만났는데 그대로 서울에 보냈다. 노암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오수역점(獒樹驛店)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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