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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8651

    16일. 아침에 흐림. 관아의 인편을 만나 서울로 보내고 출발하여, 남원에서 점심을 먹고 규백(圭伯)과 광한루에 올랐다. 저녁에 곡성(谷城)에서 묵었는데,현감(縣監) 정창기(鄭昌耆)가 와서 만났다. 내행차가 이날 서울에 도착했다. 정창기(鄭昌耆): 1759~미상.
  • 648652

    17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덕양서원(德陽書院)에 들러 배알했다. 서원은 곡성현(谷城縣)에서 남쪽으로 10리에 있는데, 만력(萬曆) 17년(1589년, 선조 22)에 현감 신옥(申沃)과 관찰사 이광(李洸)이 여기에 사우(祠宇)를 처음으로 세워 장절공(壯節公)을 제
  • 648653

    18일. 민의 소장이 23장이었다.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두주〕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하고 다음 날 출직했다.
  • 648654

    19일. 비가 내림. 서울 인편을 보냈다. 민의 소장이 4장이었다. 〔두주〕 동궁(東宮)의 묘알(廟謁)을 비 때문에 정지했다. 묘알(廟謁): 묘알례(廟謁禮). 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기 전에 종묘(宗廟)에 가서 배알하는 것을 말한다.
  • 648655

    20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21장이었다. 다음 날 비가 내렸다. 민의 소장이 15장이었다.
  • 648656

    22일. 속오군병(束伍軍兵)을 취점(聚點)했고, 민의 소장이 66장이었다. 과사(課射)를 시작하여 환선정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巡)을 쏘았다. 과사(課射): 계획을 세워서 하는 활쏘기를 말한다. 10순(巡): 1순에 5발의 화살을 쏘고, 10순은 모두 50발의
  • 648657

    23일. 해창(海倉)에 가서 세금을 받았다. 서울 인편이 돌아왔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44장이었다.
  • 648658

    24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59장이었다.
  • 648659

    25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34장이었다.
  • 648660

    26일. 광양현감(光陽縣監)이 와서 함께 추문했고, 곡성현감(谷城縣監)이 들렀다. 서울 인편이 돌아와서 내행차가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서울 인편을 보냈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두주〕 동궁이 묘알례(廟謁禮)를 행했다. 광양현감(光陽
  • 648661

    27일. 환선정에 가서 아전과 노비, 아병(牙兵)을 점열(點閱)하고,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84장이었다. 아병(牙兵): 지방의 감영·병영, 중앙의 군문(軍門)에 소속되어 각 기관의 대장을 수행하는 기간병이다. 임무에 따라 초아병(哨牙兵)·별아병천
  • 648662

    28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51장이었다.
  • 648663

    29일. 그믐. 환선정에 가서 속오군병을 점열하고,【별장(別將)·천총(千摠)부터 군병(軍兵)·보인(保人)까지 모두 1,536명이다.】 그대로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서울 인편이 왔다.
  • 648664

    3월. 1일. 새벽에 객사에 가서 하례를 행했다. 본창에 가서 환곡을 나누어 주고 나서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00장이었다. 『송과(誦課)』를 베끼기 시작했는데, 삼경(三經)을 저녁에 외운 차례에 따라 편집하여 베낀 것으로 일찍이 베
  • 648665

    2일. 환선정에 가서 어영군(御營軍)을 점열하고 나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75장이었다. 어영군(御營軍): 인조 즉위 이후 왕의 호위와 도성의 방아를 담당하던 상번군(上番軍)을 말한다.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지방에서 소집했으며, 상번하는 민은
  • 648666

    3일. 민의 소장이 21장이었다.
  • 648667

    4일. 서울 인편을 보냈다. 민의 소장이 55장이었다. 다음 날 민의 소장은 24장이었다.
  • 648668

    6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2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2장이었다.
  • 648669

    7일. 지원정(志遠亭)에 가서 과녁에 활 1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49장이었다.
  • 648670

    8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30순을 쏘았는데, 두 번째 10순에서 12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30장이었다.
  • 648671

    9일. 비가 내림. 민의 소장이 16장이었다.
  • 648672

    10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4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29장이었다. 인편으로 서울에 편지를 보냈다.
  • 648673

    11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29장이었다. 다음 날 비가 내렸다. 민의 소장이 9장이었다.
  • 648674

    13일. 아침에 비가 내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3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5장이었다.
  • 648675

    14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3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20장이었다.
  • 648676

    15일. 새벽에 망궐례(望闕禮)를 행했다. 향소(鄕所)를 석창(石倉)에 보내 종자로 쓸 환곡을 나누어 주었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4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5장이었다. 서울 인편을 보냈다. 향소(鄕所): 조선 시대 각 고을 수령(守令)의 자문 기관으로서
  • 648677

    16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4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6장이었다.
  • 648678

    17일. 본창과 진창에 가서 종자로 쓸 환곡을 나누어 주었다. 민의 소장이 41장이었다. 어영군의 봉초(捧招)를 시작했다. 본부의 어영군은 항상 5년을 간격으로 상번(上番)하는데, 매번 상번하는 해가 되면 각면(各面)의 면임(面任)을 시켜 적합한 사람을 후보자로 뽑
  • 648679

    18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30순을 쏘았는데, 첫 번째 10순에서 14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10장이었다.
  • 648680

    19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30순을 쏘았는데, 두 번째 10순에서 15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26장이었다.
  • 648681

    20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4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7장이었다. 이날 호적(戶籍)을 마감하여 올려 보냈는데, 민호(民戶)가 13,785호였고, 남자가 22,414구, 여자가 25,491구였다. 서울 인편이 돌아왔다.
  • 648682

    21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는데, 두 번째와 네 번째 10순에서 각각 15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25장이었다. 이날 세미(稅米)를 다 받았다. 〔두주〕 21일. 임금이 건원릉(健元陵)과 원릉(元陵)에 행행하고 당일 환궁했다. 이날 정시(庭試)의
  • 648683

    22일. 환선정에 가서 과녁에 활 3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56장이었다.
  • 648684

    23일. 어영군의 충원을 마치고 점고(點考)를 행했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40순을 쏘았다.
  • 648685

    24일. 서울 인편을 보냈다. 부창(富倉)에 갔는데, 선원(鐥院)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부창에서 묵었다.
  • 648686

    25일. 종자를 나누어 주고 나서 송광사(松廣寺)에 갔다. 임경대(臨鏡臺)에 올라 물고기를 보고, 불당(佛堂)에 가서 불기(佛器)와 불화(佛畫) 등의 고적(古跡)을 보고 나서 그대로 송광사에서 잤다.【자세한 것은 모두 위에 보인다.】 민의 소장이 19장이었다.
  • 648687

    26일. 일찍 출발하여 선암사(仙巖寺)에 들렀다가 선원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관아에 도착했다. 민의 소장이 3장이었다.
  • 648688

    27일. 아침에 비가 내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4장이었다.
  • 648689

    28일. 서울 인편을 보냈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4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47장이었다.
  • 648690

    29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26장이었다. 다음 날에는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고, 민의 소장은 27장이었다.
  • 648691

    4월. 1일. 일식(日食)이 있어서 관아의 문밖에 자리를 만들고 구식(救蝕)을 했다. 민의 소장이 26장이었다. 이날 세선(稅船)을 꾸려서 보냈다. 구식(救蝕): 일식과 월식으로 인해 훼손된 일월(日月)을 구하는 재변 의례를 말한다.
  • 648692

    2일. 환선정에 가서 과녁에 활 7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40장이었다.【이날 정시의 전시(殿試)가 있었는데, 큰형님이 시험장에 들어가고 둘째 형님도 기미년(1799년, 정조 23) 도기과(到記科) 때 초시로서 함께 시험장에 들어갔다. 4일이 되어 전시의 합격자
  • 648693

    3일. 부(府)의 성곽을 순시했는데, 둘레는 3,383척(尺), 높이는 14척이다. 이어서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는데, 다섯 번째 10순에서 16발을 맞혔다. 어영군의 신군(新軍)과 구군(舊軍)을 점열했다. 서울 인편이 돌아왔다. 민의 소장이 56장이
  • 648694

    4일. 객사에 가서 어영군의 신군과 구군을 점열하고 자보전(資保錢)을 내어 주고 나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다. 서울 인편이 돌아왔다. 민의 소장이 19장이었다.
  • 648695

    5일. 예교(曳橋)를 가서 보고,【바로 망해대(望海臺)이다. 자세한 것은 위에 보인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2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19장이었다.
  • 648696

    6일. 저녁에 비가 내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2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22장이었다.
  • 648697

    7일. 비가 내림. 서울 인편을 보냈다. 민의 소장이 8장이었다. 〔두주〕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하고 다음 날 출직했다.
  • 648698

    8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7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22장이었다. 본부의 남문(南門) 누각의 이름은 ‘연자(燕子)’인데, 여러 차례 무너졌다. 경술년(1790년, 정조 14) 가을, 윤광안(尹光顔)이 순천부사가 되어 재목을 모아 중건(重建)하면서 단청은 하
  • 648699

    9일. 어영군 124명을 서울로 보내면서 서울에 보내는 편지를 부치고, 과거를 보러 갔던 유생(儒生) 편에 서울 소식을 들었다. 광양현감이 와서 동추(同推)했다.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다. 민의 소장이 46장이었다.
  • 648700

    10일. 객사에 가서 과녁에 활 50순을 쏘았는데, 첫 번째와 다섯 번째 10순에서 각각 16발을 맞혔다. 민의 소장이 11장이었다. 서울 인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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