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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출발하여 오수역(獒樹驛)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비를 만났다. 서울 인편을 만났으며, 찰방 정경한(鄭敬翰)이 와서 만났다. 저녁에 노암에 도착했다. 정경한(鄭敬翰): 정경한은 1798년(정조 22) 2월 10일에 오수 찰방(獒樹察訪)에 임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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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일. 아침에 전주에 도착하여 신임 관찰사에게 연명(延命)하고 즉시 들어가 만났는데, 말미를 얻어 병부를 광양에 보냈다. 서울 인편을 만났으며 작은 수레를 타고 출발하여 저녁에 삼례에 도착했다. 연명(延命): 수령이 관찰사를 처음으로 가서 보는 의식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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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서울 인편을 보내고 바로 출발했다. 은진(恩津)에서 점심을 먹고 작은 길을 통해 등동(藤洞)의 이 나주댁(李羅州宅)에 들러 산소에 배알했다. 저녁에 사교(沙橋)에서 묵었으며 서울 인편을 만났다. 이 나주댁(李羅州宅):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이만저(李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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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작은 길을 통해 50리를 가서 부여(扶餘)에 갔다. 현감 류이좌(柳台佐)와 함께 평제탑비(平濟塔碑)를 보고 백마진(白馬津)을 건너 자온대(自溫臺)에 올랐다가 현감과 함께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서 고란정(皐蘭亭)에 올라 낙화암(落花巖)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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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일찍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귀인교(貴仁橋)에서 말을 먹이고 모루원에서 점심을 먹고, 작은 수레를 타고 40리를 가서 저녁에 원기참(院基站)에 도착했다. 원기참(院基站): 공주(公州)에서 천안(天安)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차령(車嶺)과 덕평점(德坪店)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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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작은 수레를 타고 20리를 가서 전의(全義)에서 아침을 먹고, 홍 어른에게 인사드리고【홍 어른은 구례에서 전의로 옮겨 제수되었다.】 홍댁(洪宅)을 뵈었으며, 관아로 돌아가는 화순현감(和順縣監) 박우원(朴右源) 어른의 행차를 만나 인사드렸다. 그리고 작은 수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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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작은 수레를 타고 50리를 가서 진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현령(縣令) 정치우(鄭致愚)가 와서 만났다. 서울 인편을 만나서 작은 수레를 타고 50리를 가서 저녁에 화성에서 묵었다. 서울 인편을 만났다. 정치우(鄭致愚): 1754~미상. 본관은 온양(溫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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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일찍 출발하여 작은 수레를 타고 50리를 가서 시흥(始興)에서 점심을 먹고 노량(鷺梁)을 건넜다. 오후에 집에 도착하여 부모님을 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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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이른 아침에 입궐하여 입래 단자를 올리고 바로 나왔다. 하교하기를, “신현은 무슨 일로 올라왔는가? 주자소에 입직하는가?” 했다. 곧바로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여 말미를 받아 올라왔다는 내용으로 써서 들였다. 이때 어머님이 적취(積聚)의 증상으로 편찮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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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비가 크게 쏟아짐.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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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비가 내림. 관례(官隷)를 보내고, 몇 명만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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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비가 흩날림. 『송과』를 이어서 썼는데, 관아에 있을 때 마치지 못한 것을 다시 시작했다. 승지 윤광안이 들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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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7일. 비가 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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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조고(祖考)의 기제사를 지냈다. 호동(壺洞)의 이 판서(李判書) 어른이 왔다. 조고(祖考): 신성(申晠, 1710~1753)이다. 조비(祖妣)는 풍천 임씨(豐川任氏)로 10월 17일이 기일이다. 호동(壺洞)의 이 판서(李判書) 어른: 신현의 큰형인 신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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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비가 내림. 누님이 와서 며칠 머무르고 돌아갔다. 누님: 박성규(朴性圭)와 혼인한 신대우의 딸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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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죽은 아내의 기제사를 지냈다. 『송과』 쓰기를 마쳤는데, 모두 234장이었고, 3권으로 묶었다.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하여 소대(召對)에 참여하고, 다음 날 출직했다. 죽은 아내: 전의 이씨(全義李氏)로 이숭배(李崇培)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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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0일. 『근사록(近思錄)』을 보기 시작했다. 이조판서 이만수가 김이재(金履載)가 상소로 논박한 것 때문에 벼슬을 사양하여 체직되었고, 김이재는 언양(彦陽)으로 귀양 보냈다. 이날 대신(大臣)이 입시(入侍)하여, 연석(筵席)에서의 하교가 있었다. 김이재(金履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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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월. 1일. 비가 흩날림. 대청(大廳)을 수리하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10여 일이 걸려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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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감영에서 이조에 문서를 보내 관아에 돌아올 것을 재촉했는데, 즉시 부모님의 병환이 낫지 않아 관아에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다. 이병정이 이조판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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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비가 내림. 이조에서 재촉하여 임소(任所)에 돌려보낼 것을 계청(啓請)하자, 임금이 하교하기를, “신현은 무엇 때문에 올라왔는가?” 했다. 즉시 어머니의 병이 심해져서 곁을 떠나 임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글을 써서 승정원에 올렸다. 다시 하교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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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아버님이 병조의 폄좌(貶坐)에 참석했다. 『근사록』을 한 차례 보고 그만 두었다. 폄좌(貶坐): 관원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포폄(褒貶)을 하는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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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밤에 소나기가 내림. 임금은 등 부분의 종기 때문에 소요산(逍遙散)을 드셨는데, 하루에 두 번 지어서 들였다. 소요산(逍遙散): 옆구리가 아프고 오슬오슬 추웠다 열이 났다 하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며 식욕이 부진하고 명치 밑이 트적지근한 데, 월경이 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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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임금이) 소요산 드시는 것을 정지하고, 백호탕(白虎湯) 1첩을 달여 들였으며, 백호탕에 석고(石膏) 2전(錢)을 추가한 것을 또 1첩 달여서 들였다. 약방(藥房)에서 직숙(直宿)하기를 계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백호탕(白虎湯): 석고, 지모(知母), 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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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6일. 비가 내림. 임금의 병환이 더욱 위중해져 연이어 문후하는 반열이 있었고, 백호탕(白虎湯) 2첩을 지어서 들였다. 임금이 약방(藥房)의 문안에 답하기를, “사순청량음(四順淸涼飮)을 오전에 이미 마셨는데 냉수를 마시는 것 같았고, 오줌이 맑고 잘 나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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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7일. (임금이) 드실 소요산 3첩을 지어 들였고, 금련차 1첩을 달여 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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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8일. 아버님을 모시고 입궐하여 (세자의) 탄일을 축하하는 문후 반열에 참여하고 돌아서 세자익위사에 나아갔다가 곧바로 나왔다. 아버님은 그대로 입직했다가 다음 날 출직했다. 탄일: 나중에 순조(純祖)가 되는 세자는 1790년 6월 18일에 태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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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비가 조금 내림. (임금이) 약방에 답하기를, “탕제는 연달아 올릴 필요가 없고, 등의 종기는 뿌리가 사라졌는지 고름은 터졌는지 아직 모르겠다.” 했다.【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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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0일. 비가 내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임금이) 약방에 답하기를, “밤에 눈을 붙이지 못했으며, 차도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했다. 이날 드실 것으로 유분탁리산(乳粉托裏散) 1첩을 지어 들이고, 붙일 것으로 삼인전라고(三仁田螺膏)와 메밀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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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이날 유분내탁산(乳粉內托散) 3첩을 지어 들이고, 붙일 것으로 메밀밥을 들였으며, 우방자(牛蒡子)와 감초(甘草)를 달여 들였다. 유분내탁산(乳粉內托散): 유분탁리산(乳粉托裏散)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우방자(牛蒡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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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임금의 종기에서 고름이 나왔다. 드실 것으로 향유조중탕(香薷調中湯) 1첩을 달여서 들이고, 패모고(貝母膏)를 지어 들였으며,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2환(丸)을 조제하여 들이고, 향귤음(香橘飮) 1첩을 달여 들였다. 패모고(貝母膏): 천패모(川貝母), 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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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3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이날은 붙이는 것으로 찹쌀밥[糯米飯]과 전라고(田螺膏)를 지어 들였다. 호남(湖南)의 전최를 열었는데, 순천부사에 대한 제목은 ‘봉록을 덜어내어 보태고 역(役)을 덜어주었으며, 민의 사정을 곡진히 살폈다.[捐廩蠲役, 曲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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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비가 내림. 성전고(聖傳膏)와 연훈방(煙燻方)을 지어 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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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드실 것으로 용뇌안신환(龍腦安神丸)과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각 1환을 들였다. 용뇌안신환(龍腦安神丸): 담(痰)으로 인해 경기를 일으키거나 두창(痘瘡)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하고 헛소리를 하는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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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비가 내림. 붙이는 성전고와 연훈방을 세 차례 들이고, 경옥고(瓊玉膏)를 조제하여 올렸으며, 귤강차(橘薑茶)를 달여 들였다. 경옥고(瓊玉膏): 혈액순환을 고르게 하기 위한 보약의 한 가지로, 생지황·인삼·백복령·백밀(白蜜) 따위 약재를 쓴다. 귤강차(橘薑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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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비가 내림.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했다. (임금이) 드실 팔물탕(八物湯)을 달여 들이고, 인삼 5돈쭝[錢重]을 넣은 속미음(粟米飮)을 세 차례 지어 들였다. 팔물탕(八物湯): 팔진탕(八珍湯)이라고도 한다. 인삼, 백출, 백복령, 자감초, 숙지황(熟地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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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아버님이 출직했다가 오후에 다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그대로 궐 안에 머물렀다. (임금이) 드실 인삼 1냥쭝[兩重]을 넣은 속미음을 달여 들이고, 내탁산(內托散) 1첩을 달여 들였다. 김조순이 승지가 되었다. 의약청(議藥廳)을 규례대로 거행할 것,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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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그믐. 가끔 비가 내림. 새벽에 입궐하여 명정전(明政殿)에서 곡(哭)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서 정청(庭請)에 참여했다. 이날 정청하여 왕세자가 왕위를 이어받기를 두 번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대왕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할 것을 두 번 아뢰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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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월. 1일. 비가 내림. 소렴(小斂)하는 정시는 신초3각(申初三刻, 오후 4시 45분)이었다. 정청하여 왕위를 이을 것을 세 번 아뢰고 수렴청정을 세 번 아뢰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이날 나는 새벽에 입궐하여 연이어 명정전 뜰에서 곡하는 반열과 정청에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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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가끔 흐림. 영상(靈床)을 혼전(魂殿)에 옮겨 봉안하는 정시는 오초2각(午初二刻, 오전 11시 30분)인데, 혼전이【정전(政殿)으로 돌아갔다.】 수리되지 않아서 다시 골라서 밤 자시(子時)에 옮겨 봉안했다. 정청하여 왕위를 이를 것을 두 번 아뢰고, 수렴청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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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가끔 흐림. 대렴(大斂) 및 시신을 재궁(梓宮)에 안치하는 정시는 묘초초각(卯初初刻, 오전 5시)이었다. 정청하여 왕위를 이을 것을 복합(伏閤)하여 두 번 아뢰자, 답하기를, “원통함이 망극한 가운데 누차 위로하고 면려하는 자교(慈敎)를 받고, 또 수렴청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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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성복하고, 묘시에 왕세자가 인정전에서 즉위했다. (왕세자가) 눈물을 감추고 자리에 오름에 슬픔을 스스로 이기지 못했다. 자리에 있던 백관(百官)은 모두 억눌러 참으며 울음을 삼켰다. 대왕대비는 희정당(熙政堂)에서 수렴청정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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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빈청(賓廳)에서 회의하여, 대행대왕의 시호는 문성무열성인장효(文成武烈聖仁莊孝), 묘호(廟號)는 정종(正宗),【순종(純宗)·선종(宣宗)】 전호(殿號)는 효령(孝寧),【효원(孝元)·효정(孝定)】 능호(陵號)는 건(健)【예릉(睿陵)·문릉(文陵)】으로 올렸는데,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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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산릉(山陵)을 간심(看審)하는 일로 서유린(徐有隣)·이만수·윤행임·김조순이 수원(水原) 땅으로 나갔다.【서유린은 산릉도감(山陵都監) 당상, 이만수는 예조판서, 윤행임과 김조순은 관상감 제조로서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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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비가 내림. 관례, 마부와 말이 올라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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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소나기가 내림. 약방에서 권도(權道)를 따라 상선(常膳)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계청하고 전궁(殿宮)에도 청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빈청에서 올린 두 번의 계, 원의(院議), 옥당의 차자(箚子)도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전궁(殿宮):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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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약방, 빈청, 원의, 옥당의 차자에서 연이어 권도를 따를 것을 청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총융사 김조순이 장용사(壯勇使) 신대현(申大顯)과 자리를 서로 바꾸었다. 산릉을 간심한 여러 당상이 들어와서, 현륭원 국내(局內)에 있는 강무당(講武堂) 옛 터 -
648797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간혹 흐림. 약방, 원의, 각신, 옥당이 연이어 권도를 따를 것을 청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정청하여 세 번 아뢰자 비로소 윤허했다. -
648798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옛 순찰사 조(趙) 어른의 상(喪)이 지난달 20일쯤 났기에 가서 조문했다. 순찰사 조(趙) 어른: 1799년(정조 23) 6월부터 1800년 윤4월까지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조종현(趙宗鉉)을 가리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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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의관을 국문하여 처형하는 일을 삼사(三司)와 대신이 연달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날 의관 강명길(康命吉)은 물고(物故)가 났고, 심인(沈鏔)·피재길(皮載吉)·백성일(白成一)·정윤교(鄭允僑)는 모두 원도(遠道)에 찬배(竄配)되었다. 대신이 아뢴 것으로 -
648800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비가 내림. 새벽에 입궐하여 망전(望奠) 곡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하직 단자를 올리고 바로 나왔다. 망전(望奠): 상중(喪中)에, 매달 음력 보름날 아침에 제사 때와 같이 음식을 차려서 지내던 전(奠)을 말한다. 전은 사람이 죽은 뒤부터 장례를 치르기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