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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8751

    4일. 출발하여 오수역(獒樹驛)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비를 만났다. 서울 인편을 만났으며, 찰방 정경한(鄭敬翰)이 와서 만났다. 저녁에 노암에 도착했다. 정경한(鄭敬翰): 정경한은 1798년(정조 22) 2월 10일에 오수 찰방(獒樹察訪)에 임명되었다.
  • 648752

    5일. 아침에 전주에 도착하여 신임 관찰사에게 연명(延命)하고 즉시 들어가 만났는데, 말미를 얻어 병부를 광양에 보냈다. 서울 인편을 만났으며 작은 수레를 타고 출발하여 저녁에 삼례에 도착했다. 연명(延命): 수령이 관찰사를 처음으로 가서 보는 의식을 말한다.
  • 648753

    6일. 서울 인편을 보내고 바로 출발했다. 은진(恩津)에서 점심을 먹고 작은 길을 통해 등동(藤洞)의 이 나주댁(李羅州宅)에 들러 산소에 배알했다. 저녁에 사교(沙橋)에서 묵었으며 서울 인편을 만났다. 이 나주댁(李羅州宅):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이만저(李曼
  • 648754

    7일. 작은 길을 통해 50리를 가서 부여(扶餘)에 갔다. 현감 류이좌(柳台佐)와 함께 평제탑비(平濟塔碑)를 보고 백마진(白馬津)을 건너 자온대(自溫臺)에 올랐다가 현감과 함께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서 고란정(皐蘭亭)에 올라 낙화암(落花巖)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 648755

    8일. 일찍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귀인교(貴仁橋)에서 말을 먹이고 모루원에서 점심을 먹고, 작은 수레를 타고 40리를 가서 저녁에 원기참(院基站)에 도착했다. 원기참(院基站): 공주(公州)에서 천안(天安)으로 가는 길에 있는데, 차령(車嶺)과 덕평점(德坪店) 사이
  • 648756

    9일. 작은 수레를 타고 20리를 가서 전의(全義)에서 아침을 먹고, 홍 어른에게 인사드리고【홍 어른은 구례에서 전의로 옮겨 제수되었다.】 홍댁(洪宅)을 뵈었으며, 관아로 돌아가는 화순현감(和順縣監) 박우원(朴右源) 어른의 행차를 만나 인사드렸다. 그리고 작은 수레
  • 648757

    10일. 작은 수레를 타고 50리를 가서 진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현령(縣令) 정치우(鄭致愚)가 와서 만났다. 서울 인편을 만나서 작은 수레를 타고 50리를 가서 저녁에 화성에서 묵었다. 서울 인편을 만났다. 정치우(鄭致愚): 1754~미상. 본관은 온양(溫陽)이
  • 648758

    11일. 일찍 출발하여 작은 수레를 타고 50리를 가서 시흥(始興)에서 점심을 먹고 노량(鷺梁)을 건넜다. 오후에 집에 도착하여 부모님을 뵈었다.
  • 648759

    12일. 이른 아침에 입궐하여 입래 단자를 올리고 바로 나왔다. 하교하기를, “신현은 무슨 일로 올라왔는가? 주자소에 입직하는가?” 했다. 곧바로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여 말미를 받아 올라왔다는 내용으로 써서 들였다. 이때 어머님이 적취(積聚)의 증상으로 편찮으셨다
  • 648760

    13일. 비가 크게 쏟아짐.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 648761

    14일. 비가 내림. 관례(官隷)를 보내고, 몇 명만 머물렀다.
  • 648762

    15일. 비가 흩날림. 『송과』를 이어서 썼는데, 관아에 있을 때 마치지 못한 것을 다시 시작했다. 승지 윤광안이 들렀다.
  • 648763

    17일. 비가 내림.
  • 648764

    19일. 조고(祖考)의 기제사를 지냈다. 호동(壺洞)의 이 판서(李判書) 어른이 왔다. 조고(祖考): 신성(申晠, 1710~1753)이다. 조비(祖妣)는 풍천 임씨(豐川任氏)로 10월 17일이 기일이다. 호동(壺洞)의 이 판서(李判書) 어른: 신현의 큰형인 신진의
  • 648765

    26일. 비가 내림. 누님이 와서 며칠 머무르고 돌아갔다. 누님: 박성규(朴性圭)와 혼인한 신대우의 딸을 말한다.
  • 648766

    28일. 죽은 아내의 기제사를 지냈다. 『송과』 쓰기를 마쳤는데, 모두 234장이었고, 3권으로 묶었다.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하여 소대(召對)에 참여하고, 다음 날 출직했다. 죽은 아내: 전의 이씨(全義李氏)로 이숭배(李崇培)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 648767

    30일. 『근사록(近思錄)』을 보기 시작했다. 이조판서 이만수가 김이재(金履載)가 상소로 논박한 것 때문에 벼슬을 사양하여 체직되었고, 김이재는 언양(彦陽)으로 귀양 보냈다. 이날 대신(大臣)이 입시(入侍)하여, 연석(筵席)에서의 하교가 있었다. 김이재(金履載):
  • 648768

    6월. 1일. 비가 흩날림. 대청(大廳)을 수리하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10여 일이 걸려 마쳤다.
  • 648769

    3일. 감영에서 이조에 문서를 보내 관아에 돌아올 것을 재촉했는데, 즉시 부모님의 병환이 낫지 않아 관아에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다. 이병정이 이조판서가 되었다.
  • 648770

    4일. 비가 내림. 이조에서 재촉하여 임소(任所)에 돌려보낼 것을 계청(啓請)하자, 임금이 하교하기를, “신현은 무엇 때문에 올라왔는가?” 했다. 즉시 어머니의 병이 심해져서 곁을 떠나 임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글을 써서 승정원에 올렸다. 다시 하교하기를,
  • 648771

    12일. 아버님이 병조의 폄좌(貶坐)에 참석했다. 『근사록』을 한 차례 보고 그만 두었다. 폄좌(貶坐): 관원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는 포폄(褒貶)을 하는 자리.
  • 648772

    14일. 밤에 소나기가 내림. 임금은 등 부분의 종기 때문에 소요산(逍遙散)을 드셨는데, 하루에 두 번 지어서 들였다. 소요산(逍遙散): 옆구리가 아프고 오슬오슬 추웠다 열이 났다 하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며 식욕이 부진하고 명치 밑이 트적지근한 데, 월경이 고르
  • 648773

    15일. (임금이) 소요산 드시는 것을 정지하고, 백호탕(白虎湯) 1첩을 달여 들였으며, 백호탕에 석고(石膏) 2전(錢)을 추가한 것을 또 1첩 달여서 들였다. 약방(藥房)에서 직숙(直宿)하기를 계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백호탕(白虎湯): 석고, 지모(知母), 감
  • 648774

    16일. 비가 내림. 임금의 병환이 더욱 위중해져 연이어 문후하는 반열이 있었고, 백호탕(白虎湯) 2첩을 지어서 들였다. 임금이 약방(藥房)의 문안에 답하기를, “사순청량음(四順淸涼飮)을 오전에 이미 마셨는데 냉수를 마시는 것 같았고, 오줌이 맑고 잘 나오는 것은
  • 648775

    17일. (임금이) 드실 소요산 3첩을 지어 들였고, 금련차 1첩을 달여 들였다.
  • 648776

    18일. 아버님을 모시고 입궐하여 (세자의) 탄일을 축하하는 문후 반열에 참여하고 돌아서 세자익위사에 나아갔다가 곧바로 나왔다. 아버님은 그대로 입직했다가 다음 날 출직했다. 탄일: 나중에 순조(純祖)가 되는 세자는 1790년 6월 18일에 태어났다.
  • 648777

    19일. 비가 조금 내림. (임금이) 약방에 답하기를, “탕제는 연달아 올릴 필요가 없고, 등의 종기는 뿌리가 사라졌는지 고름은 터졌는지 아직 모르겠다.” 했다.【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48778

    20일. 비가 내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임금이) 약방에 답하기를, “밤에 눈을 붙이지 못했으며, 차도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했다. 이날 드실 것으로 유분탁리산(乳粉托裏散) 1첩을 지어 들이고, 붙일 것으로 삼인전라고(三仁田螺膏)와 메밀밥[
  • 648779

    21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이날 유분내탁산(乳粉內托散) 3첩을 지어 들이고, 붙일 것으로 메밀밥을 들였으며, 우방자(牛蒡子)와 감초(甘草)를 달여 들였다. 유분내탁산(乳粉內托散): 유분탁리산(乳粉托裏散)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우방자(牛蒡子):
  • 648780

    22일. 임금의 종기에서 고름이 나왔다. 드실 것으로 향유조중탕(香薷調中湯) 1첩을 달여서 들이고, 패모고(貝母膏)를 지어 들였으며,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2환(丸)을 조제하여 들이고, 향귤음(香橘飮) 1첩을 달여 들였다. 패모고(貝母膏): 천패모(川貝母), 반하
  • 648781

    23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이날은 붙이는 것으로 찹쌀밥[糯米飯]과 전라고(田螺膏)를 지어 들였다. 호남(湖南)의 전최를 열었는데, 순천부사에 대한 제목은 ‘봉록을 덜어내어 보태고 역(役)을 덜어주었으며, 민의 사정을 곡진히 살폈다.[捐廩蠲役, 曲察
  • 648782

    24일. 비가 내림. 성전고(聖傳膏)와 연훈방(煙燻方)을 지어 들였다.
  • 648783

    25일.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드실 것으로 용뇌안신환(龍腦安神丸)과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각 1환을 들였다. 용뇌안신환(龍腦安神丸): 담(痰)으로 인해 경기를 일으키거나 두창(痘瘡)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하고 헛소리를 하는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 처방이
  • 648784

    26일. 비가 내림. 붙이는 성전고와 연훈방을 세 차례 들이고, 경옥고(瓊玉膏)를 조제하여 올렸으며, 귤강차(橘薑茶)를 달여 들였다. 경옥고(瓊玉膏): 혈액순환을 고르게 하기 위한 보약의 한 가지로, 생지황·인삼·백복령·백밀(白蜜) 따위 약재를 쓴다. 귤강차(橘薑茶
  • 648785

    27일. 비가 내림. 아버님이 세자익위사에 입직했다. (임금이) 드실 팔물탕(八物湯)을 달여 들이고, 인삼 5돈쭝[錢重]을 넣은 속미음(粟米飮)을 세 차례 지어 들였다. 팔물탕(八物湯): 팔진탕(八珍湯)이라고도 한다. 인삼, 백출, 백복령, 자감초, 숙지황(熟地黃)
  • 648786

    28일. 아버님이 출직했다가 오후에 다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그대로 궐 안에 머물렀다. (임금이) 드실 인삼 1냥쭝[兩重]을 넣은 속미음을 달여 들이고, 내탁산(內托散) 1첩을 달여 들였다. 김조순이 승지가 되었다. 의약청(議藥廳)을 규례대로 거행할 것, 종
  • 648787

    29일. 그믐. 가끔 비가 내림. 새벽에 입궐하여 명정전(明政殿)에서 곡(哭)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서 정청(庭請)에 참여했다. 이날 정청하여 왕세자가 왕위를 이어받기를 두 번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대왕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할 것을 두 번 아뢰었으나
  • 648788

    7월. 1일. 비가 내림. 소렴(小斂)하는 정시는 신초3각(申初三刻, 오후 4시 45분)이었다. 정청하여 왕위를 이을 것을 세 번 아뢰고 수렴청정을 세 번 아뢰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이날 나는 새벽에 입궐하여 연이어 명정전 뜰에서 곡하는 반열과 정청에 참여
  • 648789

    2일. 가끔 흐림. 영상(靈床)을 혼전(魂殿)에 옮겨 봉안하는 정시는 오초2각(午初二刻, 오전 11시 30분)인데, 혼전이【정전(政殿)으로 돌아갔다.】 수리되지 않아서 다시 골라서 밤 자시(子時)에 옮겨 봉안했다. 정청하여 왕위를 이를 것을 두 번 아뢰고, 수렴청정
  • 648790

    3일. 가끔 흐림. 대렴(大斂) 및 시신을 재궁(梓宮)에 안치하는 정시는 묘초초각(卯初初刻, 오전 5시)이었다. 정청하여 왕위를 이을 것을 복합(伏閤)하여 두 번 아뢰자, 답하기를, “원통함이 망극한 가운데 누차 위로하고 면려하는 자교(慈敎)를 받고, 또 수렴청정한
  • 648791

    4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성복하고, 묘시에 왕세자가 인정전에서 즉위했다. (왕세자가) 눈물을 감추고 자리에 오름에 슬픔을 스스로 이기지 못했다. 자리에 있던 백관(百官)은 모두 억눌러 참으며 울음을 삼켰다. 대왕대비는 희정당(熙政堂)에서 수렴청정을 했다
  • 648792

    6일. 빈청(賓廳)에서 회의하여, 대행대왕의 시호는 문성무열성인장효(文成武烈聖仁莊孝), 묘호(廟號)는 정종(正宗),【순종(純宗)·선종(宣宗)】 전호(殿號)는 효령(孝寧),【효원(孝元)·효정(孝定)】 능호(陵號)는 건(健)【예릉(睿陵)·문릉(文陵)】으로 올렸는데, 나
  • 648793

    7일. 산릉(山陵)을 간심(看審)하는 일로 서유린(徐有隣)·이만수·윤행임·김조순이 수원(水原) 땅으로 나갔다.【서유린은 산릉도감(山陵都監) 당상, 이만수는 예조판서, 윤행임과 김조순은 관상감 제조로서 나갔다.】
  • 648794

    8일. 비가 내림. 관례, 마부와 말이 올라왔다.
  • 648795

    9일. 소나기가 내림. 약방에서 권도(權道)를 따라 상선(常膳)을 회복하라는 뜻으로 계청하고 전궁(殿宮)에도 청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빈청에서 올린 두 번의 계, 원의(院議), 옥당의 차자(箚子)도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전궁(殿宮):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
  • 648796

    10일. 약방, 빈청, 원의, 옥당의 차자에서 연이어 권도를 따를 것을 청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총융사 김조순이 장용사(壯勇使) 신대현(申大顯)과 자리를 서로 바꾸었다. 산릉을 간심한 여러 당상이 들어와서, 현륭원 국내(局內)에 있는 강무당(講武堂) 옛 터
  • 648797

    11일. 간혹 흐림. 약방, 원의, 각신, 옥당이 연이어 권도를 따를 것을 청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정청하여 세 번 아뢰자 비로소 윤허했다.
  • 648798

    12일. 옛 순찰사 조(趙) 어른의 상(喪)이 지난달 20일쯤 났기에 가서 조문했다. 순찰사 조(趙) 어른: 1799년(정조 23) 6월부터 1800년 윤4월까지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조종현(趙宗鉉)을 가리킨다.
  • 648799

    14일. 의관을 국문하여 처형하는 일을 삼사(三司)와 대신이 연달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날 의관 강명길(康命吉)은 물고(物故)가 났고, 심인(沈鏔)·피재길(皮載吉)·백성일(白成一)·정윤교(鄭允僑)는 모두 원도(遠道)에 찬배(竄配)되었다. 대신이 아뢴 것으로
  • 648800

    15일. 비가 내림. 새벽에 입궐하여 망전(望奠) 곡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하직 단자를 올리고 바로 나왔다. 망전(望奠): 상중(喪中)에, 매달 음력 보름날 아침에 제사 때와 같이 음식을 차려서 지내던 전(奠)을 말한다. 전은 사람이 죽은 뒤부터 장례를 치르기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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