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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8851

    8일. 일찍 출발하여 진위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 현령 정치우를 만났다. 저녁에 화성의 우화관(于華觀)에서 묵었다. 이날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맹자왈욕귀자(孟子曰欲貴者)’부터 ‘고불식야(固不識也)’까지 진강했다. 옥당의 김희주와 박종순이 참석했다.
  • 648852

    9일. 일찍 출발하여 시흥에서 점심을 먹고 현령 이황(李潢)을 만났으며, 성도곡(成道谷)의 산소에 들러 배알했다. 노량을 건너고 나서 역의 말과 마부를 돌려보냈다. 포시(晡時, 오후 3~5시)에 집에 도착했다.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서영보(徐榮輔)가 사직 상소
  • 648853

    10일. 새벽에 입궐하여 조곡(朝哭)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으며, 혼전(魂殿)에 숙배를 행했다. 이어서 내각에 입래 단자를 올리고 나서 사은(謝恩)했으며, 홍문관(弘文館)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임금이 편전(便殿)에 나아가 차대를 행했으며, 이조판서
  • 648854

    11일. 문밖에 갔다가 바로 돌아왔는데, 따라 왔던 관례를 돌려보냈다.【수배(隨陪) 이응민(李應旼), 급창(及唱) 종복(宗福)과 정명(正命), 통인(通引) 김기정(金起正)이다.】
  • 648855

    12일. 이른 아침에 입궐하여 박길원과 입직을 교대했는데, 하번(下番)은 박종순이었다. 이날부터 각신이 돌아가며 입직하여 대내에서 권독(勸讀)했다. 미시(未時, 오후 1~3시)에 소대한다는 명이 있어 상번 신(臣) 신현, 하번 신 박종순, 승지(承旨) 서유문(徐有聞
  • 648856

    13일. 찬바람이 불고 눈발이 흩날림. 새벽에 혼전에 나아가 조곡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소대에서 이어서 강독할 책자를 대신에게 문의하라는 명이 있어 하번이 나가 물어보고 돌아와 아뢰었는데, 영의정은 『강목(綱目)』으로 아뢰고, 좌의정과 우의정은
  • 648857

    14일. 찬바람이 붊. 새벽에 혼전에 나아가 조곡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하번 박종순이 출직하고, 민기현이 입직했다. 이어서 강독할 책자를 『소학(小學)』으로 하고, 춘방(春坊)에 있는 『소학』을 가져다 쓰라고 하교했다.
  • 648858

    15일. 새벽에 혼전에 나아가 조곡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임금이 직접 망전을 거행하여, 바로 나아가 참여하고 이어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조만원과 입직을 교대하고 나와서 남동에 갔다. 홍수호(洪受浩)가 부교리
  • 648859

    16일. 승지 숙부님이 남양부사(南陽府使)가 되었다. 승지 숙부님: 신대윤(申大尹, 1739~미상)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형백(衡伯)이다. 증조부는 신탁(申琢)이고, 조부는 신진하(申鎭夏)이다. 아버지는 신시(申是), 어머니는 윤이손(尹彛遜)의 딸이다.
  • 648860

    17일. 평안도(平安道) 진향제(進香祭)의 대축(大祝)으로 차출되어, 새벽에 입궐하여 혼전에 나아가 진향제를 거행하고 제문(祭文)을 읽었다. 진향관(進香官)은 안주 목사(安州牧使) 김효건(金孝建)이었다. 제향을 마치고 나왔다.
  • 648861

    18일.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맹자왈인지소불학이능자(孟子曰人之所不學而能者)’에서 ‘흔연락이망천하(訢然樂而忘天下)’까지 진강했다. 옥당의 조만원과 윤익렬이 참석했다. 이날 산릉의 개금정(開金井)을 했는데, 혈(穴)의 깊이가 7척(尺) 5촌(寸)이었다.【묘시(卯時,
  • 648862

    19일. 이른 아침에 입궐하여 조만원과 입직을 교대했으며, 하번은 윤익렬이었다. 대청(臺廳)에 나아가 전계(傳啓)를 하고 비답을 받은 후에 직소로 돌아왔다. 신시(申時, 오후 3~5시)에 소대를 한다는 명이 있어서 상번 신 신현, 하번 신 윤익렬, 승지 서유문, 각
  • 648863

    20일. 새벽에 혼전에 나아가 곡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늦은 아침에 대청(臺廳)에 나아가 전계(傳啓)를 한 뒤에 당후(堂后, 주서(注書))에게 가서 비답을 받은 후에 직소로 돌아왔다. 하번 윤익렬이 출직하고 박종순이 입직했다.
  • 648864

    21일. 전라도의 진향제 대축으로 차출되었다. 새벽에 혼전에 나아가 조곡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진향제를 거행하여 제문을 읽었는데, 내가 순천 관아에 있을 때 지어서 보낸 제문이었다. 수정한 부분은 없었으나 대를 이
  • 648865

    22일. 대행대왕의 탄신일이다. 새벽에 혼전에 나아가 조곡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임금이 직접 조전(朝奠)을 거행하기에 즉시 나아가 참여하고, 이어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직소에 돌아와서 김희주와 입직을 교대하
  • 648866

    24일. 안핵사 이서구의 밀계(密啓)로 인하여 여러 대신이 회계(回啓)하기를, “시경과 시욱은 먼저 스스로 죽어서 국법을 펴지 못했으며, 시호와 영태(永太)는 결안(結案)에 대한 다짐을 받고 사형에 처할 것입니다. 윤혁은 역적의 아비로서 본율(本律)에 따라 시행하고
  • 648867

    25일. 누님이 순안(順安) 관아(官衙)로 행차를 출발했다. 차대를 행했다. 이조판서 조진관의 체직이 허락되었고, 이직보(李直輔)가 이조판서가 되었다. 누님이 … 출발했다: 누님은 박성규(朴性圭)와 혼인한 신대우의 딸이다. 남편인 박성규가 1800년(순조 즉위) 8
  • 648868

    26일. 늦은 아침부터 흐리다가 저녁에 비가 내림. 새벽에 입궐하여 혼전에 나아가 내각의 진향제에 참여했다. 신구(新舊) 초계문신은 다 참여하라고 명했기 때문에 좌의정 이하의 초계문신을 지낸 적이 있는 사람과 지금 초계문신인 사람이 모두 참여했다. 뒷방에 거처하기
  • 648869

    29일. 『중용(中庸)』을 읽기 시작했다.
  • 648870

    30일.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 648871

    10월. 1일. 새벽에 입궐했다. 임금이 직접 삭전(朔奠)을 거행하기에 즉시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홍문관에 나아가 조만원과 입직을 교대했으며 하번은 박종순이었다.
  • 648872

    2일. 새벽에 조곡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직소에 돌아왔다. 하번 박종순이 출직하고 민기현이 입직했다.
  • 648873

    3일. 새벽에 조곡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직소에 돌아왔다. 독시책관(讀諡冊官) 예차(預差)로 차출되어서 이날 의정부의 예행연습[肄儀]에 낮 근무를 한다는 초기(草記)를 올린 후에 나가서 참여했다. 저녁에 돌아와 직숙했다. 독시책관(讀諡冊官
  • 648874

    4일. 새벽에 나아가 조곡에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직소로 돌아왔다. 신시(申時, 오후 3~5시)에 소대를 한다는 명이 있어서 상번 신 신현, 하번 신 민기현, 승지 박윤수(朴崙壽), 각신 김근순, 주서 조석정(曺錫正), 사관 이존수·홍석주가 성정
  • 648875

    5일. 새벽에 곡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고 자전이 수렴하여 차대를 행하여, 즉시 참여했다.【양사가 들어가지 않으니, 상번 옥당만 참여했다.】 대신이 채홍원(蔡弘遠)은 영남의 역적의 공초(供招)에서 나왔고 사
  • 648876

    6일. 비가 내림. 새벽에 곡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직소에 돌아와서 김희주와 입직을 교대하고 나왔다. 각신 이만수가 『맹자』는 대내에서의 권강이 거의 끝나가므로 이어서 강할 책자를 (홍문관으로 하여금) 문의하여 정하도록 하겠다는
  • 648877

    7일. 수찬 윤익렬이 하교에 따라 다시 대신에게 문의했는데, 여러 대신이 모두 『중용』으로 이어서 강(講)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여, 즉시 이러한 뜻으로 초기를 올렸다. 임금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했다.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맹자왈세대인즉묘지(孟子
  • 648878

    8일.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소학』 제1권의 ‘고자소학(古者小學)’부터 ‘오필위지학의(吾必謂之學矣)’까지 진강했다. 옥당의 김희주와 이정병이 참석했다.
  • 648879

    9일. 국상(國喪)의 만장 서사관(輓章書寫官)으로 차출되어 도감(都監)에 나아갔는데, 서역(書役)을 마치지 못했다.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소학』의 ‘맹자왈설위상서(孟子曰設爲庠序)’부터 ‘항언불칭로(恒言不稱老)’까지 강했다. 옥당의 김희주와 이정병이 참석했다. 이날
  • 648880

    10일. 일찍 도감에 나아가 만시(輓詩)를 베껴 썼는데, 이틀 동안 쓴 것이 모두 10장이다. 마치고 곧바로 돌아왔다. 임금이 직접 석상식(夕上食)을 거행했다.
  • 648881

    11일. 독시책관 예차로서 압도(鴨島)의 도가(都家)에 나가 재계했다.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강했는데, ‘예기왈효자지유심애(禮記曰孝子之有深愛)’부터 ‘필불과(必不果)’까지 했다. 옥당의 민명혁과 박종순이 참석했다.
  • 648882

    12일. 새벽에 재계하는 곳에서 집에 돌아왔다가 바로 입궐하여 민명혁과 입직을 교대했는데, 하번은 박종순이었다. 임금이 직접 조전을 거행했다. 미시(未時, 오후 1~3시)에 소대(召對)를 한다는 명이 있어서 상번 신 신현, 하번 신 박종순, 승지 김희순, 각신 심상
  • 648883

    13일. 새벽에 조곡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가 직소에 돌아왔다. 미시(未時, 오후 1~3시)에 소대를 한다는 명이 있어서 상번인 신 신현, 하번인 신 민기현, 참찬관 류상조(柳相祚), 각신 심상규, 주서 조종영, 사관 이존수·홍석주가 성정각
  • 648884

    14일. 새벽에 곡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미시(未時)에 소대를 한다는 명이 있어서 상번인 신 신현, 하번인 신 민기현, 승지 이일운(李日運), 각신 이존수, 주서 조종영, 겸춘추 김경환(金景煥), 사관 홍석주가 성정각에 입시하여
  • 648885

    15일. 새벽에 조곡에 나아가 참여하고 나서 망전과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김선이 사간(司諫)으로 옮겨 임명되었고, 조득영이 응교가 되었다.【조득영·임한호(林漢浩)는 이날 동벽(東壁)에 신통(新通)되었다.】 이날 정사에서 대사헌에 (의망한) 조진관·한용귀(韓用龜
  • 648886

    16일. 임금이 직접 빈전(殯殿)에서 시책(諡冊)과 시보(諡寶)를 올리는 예를 거행하여 즉시 나아가 참여하고, 이어서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오시(午時, 오전 11~오후 1시)에 임금이 직접 개명정(改銘旌)과 별다례(別茶禮)을 행한 후에 대내로 돌아갔고, 나는
  • 648887

    17일. 새벽에 사우에 참배했다.【조비(祖妣)의 기일(忌日)인데, 국장(國葬) 전에는 제사를 지낼 수 없다.】 곧바로 국장도감(國葬都監)에 나아가 1차 예행연습을 행했는데, 섭사복정(攝司僕正)으로서 신련(神輦)을 모시고 숭례문(崇禮門) 안까지 갔다가 도감으로 돌아와
  • 648888

    18일. 임금이 직접 주다례(晝茶禮)를 행했다. 주다례(晝茶禮): 왕실에서만 거행하던 의례로, 선대 국왕과 왕비의 국상(國喪) 기간 동안 석상식(夕上食) 전에 올리던 다례이다.
  • 648889

    19일. 임금이 소대에 나아가 (『소학』의) ‘부인복어인야(婦人伏於人也)’에서 ‘일절차이불사야(日切磋而不舍也)’까지 강했다. 옥당의 홍수호와 이정병이 참석했다.
  • 648890

    20일. 차대를 행하여 『중용』 읽기를 마쳤다. 섭사복정에 차출되었는데, 인산(因山) 때 모시고 나아가고 싶어서 차출되기를 구해서 된 것이다.
  • 648891

    21일. 대비전이 전교하기를, “산릉도감의 일은 몹시 놀랍다. 내려간 사초 보토군(莎草補土軍)의 부류에게 역사에 나아가도록 했는데, 돈을 강제로 받아내서 한 사람당 거둔 돈이 적지 않으며, 돈을 바치지 못한 부류는 심지어 연장을 빼앗아 쫓아 보내서 서울과 지방의 원
  • 648892

    22일. 국장도감에 나아가 2차 예행연습을 행했는데, 섭사복정으로서 신련을 모시고 숭례문 안까지 갔다가 도로 도감에 이르러 마치고 돌아왔다. 곧 승정원에 와서 대령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전교하기를, “동부승지(同副承旨) 김근순은 교리 신현과 함께 입시하라.” 했다.
  • 648893

    23일. 새벽에 출발했다. 사익이 따랐고, 관리(館吏) 박윤민(朴潤珉) 및 천석(千石)과 순업(順業)이 따라갔는데, 능소(陵所)에 역사를 살피러 가는 관원이라고 칭했다. 10리를 가서 다리로 노량을 건너고, 10리를 가서 시흥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40리를 가서 저
  • 648894

    24일. 눈발이 흩날림. 20리를 가서, 이른 아침에 산릉에 나아가 역사를 하는 곳을 살펴보았는데, 그곳의 당상과 낭청 및 원역과 공장(工匠)의 무리가 대부분 얼굴을 아는 사람이어서【모두 서울 사람이기 때문이다.】 행적이 드러날 우려가 있을까 걱정되었다. 5리를 가
  • 648895

    25일. 이른 아침에 능소에 갔다가 10리 거리인 독성산성(禿城山城)에 갔고 5리를 가서 산 밑의 세남점(世南店)에 돌아가 묵었다. 이날 전교하기를, “오늘부터 인산 전까지 상식(上食)과 다례(茶禮)는 수시로 직접 행할 것이니, 해당 방(房)에서는 그리 알라.” 했
  • 648896

    26일. 20리를 가서 이른 아침에 하류점(下柳店)에 도착하여 그대로 유숙했다. 종인(從人) 일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날 모두 모였는데, 천석을 서울에 보냈다. 순천의 아전 김태첨(金泰瞻)을 만나 서울에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하류점(下柳店): 수원에 하류천
  • 648897

    27일. 그대로 하류점에 머무르며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의 초안을 대략 작성했다. 사익과 관리 박윤민을 능소에 보냈다.
  • 648898

    28일. 능소에 나아갔다가 장각점(長角店)에 돌아와 묵었는데, 사익이 와서 모였다. 이날 칙사가 온다는 기별이 있어 김문순(金文淳)이 원접사(遠接使)가 되고 김선이 문례관(問禮官)이 되어 나갔다. 송환기가 도성에 들어왔으며, 이만수가 관반사(館伴使)가 되었다. 송환
  • 648899

    29일. 그믐. 종일 비가 내림. 남문 밖 점사(店舍)에 도착했는데, 관리 박윤민이 왔다. 비 때문에 그대로 유숙하면서 별단 몇 조항의 초안을 썼다.
  • 648900

    11월. 1일. 찬바람이 붊. 사익의 집에 머물렀다가 일찍 출발하여 시흥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신촌(新村)에 도착하여 계모님 산소에 절을 올리고 도곡(道谷)에 이르러 진안에서 올라오는 자유를 만났다. 서울의 편지를 받았는데 동지사 이득신·부사 임시철(林蓍喆)·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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