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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몇 리를 가서 왼쪽으로 만하(灣河)를 끼고 북쪽을 향해 20리를 가서 고죽군묘(孤竹君廟)에 도착했는데 사당에는 소상(塑像)을 설치했다. 배를 타고 만하를 건너 고죽성(孤竹城)으로 들어갔다. 성안에는 이제묘(夷齊廟)가 있었고 또한 두 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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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흐림. 일찍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강우교(扛牛橋)·청룡교(靑龍橋)를 지나 진자점(榛子店)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출발하여 20리를 가서 소령하(小鈴河)를 지났고 또 30리를 가서 저녁에 풍윤현(豐潤縣)에 도착했다. 부사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 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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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흐림. 일찍 출발하여 15리를 가서 고려포(高麗鋪)를 지났다. 책문에 들어오면서부터 산골짜기와 벌판은 모두 밭이었는데 이곳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논 몇 이랑[頃]이 있었으며, 점사에서는 떡을 팔았는데 또한 우리나라의 절편[切餠]이었다. 또 25리를 가서 사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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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맑음. 출발하여 25리를 가서 대소고수점(大小枯樹店)을 지났는데 대소고수점 북쪽 두 봉우리 사이에 마른 나무가 홀로 서 있었다. 꽃과 잎이 나지 않은지가 몇 백 년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인데 성인이 나온 이후로 비로소 꽃과 잎이 났다고 한다. 20리를 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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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맑음. 늦게 출발하여 20리를 가서 어양교(漁陽橋)에 도착했다. 고려관(高麗館)부터 이곳까지 100여 리 사이에 왼쪽에는 들판에 나무가 있었는데 죽 늘어선 나무 너머까지 눈길이 닿았으며 구름 낀 하늘이 아득하고 공중에 떠다니는 기운이 넘쳐 이따금 바다 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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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0일. 맑음.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방균점(邦均店)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하여 10리를 가서 백간점(白幹店)을 지났는데 황제가 아침에 여기를 지났다고 들었다. 백간점 안에는 큰 사찰이 있고 사찰 뜰에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가지와 줄기가 모두 하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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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월. 1일. 흐리고 바람이 붊.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연교보(燕郊堡)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20리를 가서 통주하(通州河)의 다리를 건넜는데 다리의 문은 높고 커서 배가 다닐 수 있으며, 동남쪽의 조선(漕船)이 이곳을 경유하여 연경에 도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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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흐리고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그침. 삼사 이하가 표문과 자문을 받들어 예부에 이르러 바치자 시랑(侍郞) 유약운(劉躍雲)이 나와서 받았으며, 다 마치고 파하여 관차(館次)로 돌아왔다. 연경은 지금 순천부(順天府)에 있는데 본래 「우공(禹貢)」에 나타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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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새벽에 비가 내리고 저녁에 그침. 황제가 태묘(太廟)에 행행하는데 예부의 지회【알리는 것이다.】로 인해 삼사가 가서 황제의 행차를 영접했다.【공경히 맞는 것이다.】 동안문(東安門)을 경유하여 단문을 지나 오문 밖에 이르니 조정 관원이 차례대로 반열을 이루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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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맑음. 황제가 원명원(圓明園)으로 행행하여 새벽에 부사와 함께 삼좌문(三座門) 밖【황성(皇城)의 협문(夾門)이다.】에 가서 기다렸다. 동틀 무렵에 행차가 지나가며 떡과 고기 세 종류를 하사했는데 이후 행차를 영접할 때마다 모두 이러한 하사가 있었다. 원명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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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일. 맑음. 감기를 앓아 매우 고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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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맑음.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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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맑음. 조금 나았다. 황제가 원명원에서 환궁했는데 백관이 행차를 영접하는 것은 모두 없앴다고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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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감기가 나았다. -
649015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황제가 천단(天壇)으로 행행하여 상사와 부사는 오문 밖 행차를 영접하는 데 참여했으나, 나는 병이 이제 막 나아서 불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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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황제가 새벽에 교제(郊祭)를 지낸 뒤에 환궁하고 이어서 원명원으로 향하여 부사와 함께 오문 밖 행차를 영접하는 데 참여하고 곧바로 관차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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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맑음. 홍려시(鴻臚寺)에서 책봉 연례(冊封演禮)【예행 연습[習儀]이다.】를 행하여 삼사가 가서 참여하고 바로 돌아왔다. 무릇 삼사가 공고에 가서 참여하는 것은 모두 예부의 지회로 인하여 하는 것이 규례이다. 방물이 책문에서부터 뒤처진 뒤 비로 인해 중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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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맑음. 관차에 머물렀다. 일이 없어 『일하구문(日下舊聞)』을 보았다. 일하구문(日下舊聞): 청나라 학자 주이존(朱彝尊, 1629~1709)이 찬한 전 42권의 책이다. 각종 서책에서 찾은 연경의 고사(古事)와 구문(舊聞)을 바탕으로 연경의 연혁, 문화,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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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맑음. 일이 없어 『일하구문』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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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맑음. 부사와 함께 10리 거리의 태학에 갔다. 태학은 성의 북쪽 안정문 안 숭교방(崇敎坊)에 있다. 정전(正殿)에는 부자(夫子)의 위판을 봉안했는데 ‘지성선사공자신위(至聖先師孔子神位)’라고 쓰여 있으며, 좌우에는 사성(四聖)의 위판을 두고 좌우 벽 아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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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맑음. 황후 책봉례를 행했는데 삼사도 예부의 지회로 인하여 참석했다. 오문을 경유하여 들어가 태화전(太和殿) 뜰에서 조금 쉬었다. 태화전은 곧 정전(正殿)으로 무릇 큰 조회(朝會)가 있을 때 모두 이 정전에서 행하며, 전우(殿宇)는 지극히 으리으리하고 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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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6일. 맑음. 천안문(天安門)【황성 밖 남문으로 곧 승천문이다.】에서 책봉 조서(冊封詔書)를 반포하는데 예부에서 우리 사신도 참석하라 했고, 황제가 원명원으로 행행하는데 예부에서 또 우리 사신도 행차를 영접하라 했다. 상사는 곧바로 조서를 반포하는 곳에 가서 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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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7일. 맑음. 일이 없어 일기를 수정했다. 서장관이 복명(復命)할 때 일기를 올리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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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8일. 맑음. 일이 없어 일기를 수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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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맑음. 일이 없어 『일하구문』과 『사기』를 보았다. -
649026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0일. 맑음. 일이 없어 『일하구문』을 보았다. -
649027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맑음. 일이 없어 일기를 수정했다. -
649028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맑음. 일이 없어 일기를 수정했다. 방물이 들어온 뒤에 예부에 계속 사고가 있었다가 이날에야 비로소 와서 올리라는 지회가 있었다. 임역(任譯)들이 수량을 맞추어 태화전 앞 각 창고에 납부했는데 모두 무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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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3일. 맑음. 일이 없어 『일하구문』을 보았다. -
649030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흐리고 뇌우(雷雨)가 내림. 황제가 원명원에서 환궁했다. 저녁에 상사·부사와 오룡정(五龍亭)에 갔다. 오룡정은 궁성의 서쪽에 있는데 황성 안 어구(御溝)에서 물이 흐르고 고여 호수가 되었다. 맑고 푸른 물이 드넓고 둘레는 몇 리 정도 되었으며 다리와 누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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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맑음. 일이 없어 일기를 수정했다. 황제가 다시 원명원에 행행했는데 왕래할 때 위종(衛從)이 원래 단출하고 백관이 어가를 영접하는 것도 모두 임시로 없애서 성안에 사는 사람이 많은데도 출입한 것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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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맑음. 연경의 기후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찍 더운데 이때에 이르러 불볕더위가 한여름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이 북쪽 지역인데 도리어 일찍 더우니 사뭇 이상했다. 대체로 지형이 평평하고 낮으며 가옥이 즐비해서 비록 한겨울이라도 추위가 심하지 않다고 한다. 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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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맑음. 아침 일찍 선래 역관(先來驛官) 정이호(鄭履祜)·최도완(崔道完) 및 부방 비장(副房稗將) 김연복(金淵復)을 보냈다. 사상(私商) 2인이 함께 가는데 장계(狀啓)와 집에 보낼 편지를 부쳤으며, 기한에 맞추어 이틀 길을 달려서 다음 달 보름 사이까지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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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맑음. 사행 일이 이미 끝나서 장차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부에서 이를 기꺼이 제기해서 아뢰려하지 않았다.【예부에서 제기하여 아뢰고 황제가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 뒤에 출발하는 것이 관례이다.】 임역들이 은전(銀錢)을 써서 예부 관원에게 뇌물을 보낸 후에야 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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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그믐. 맑음. 일기를 수정하고 『일하구문』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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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월. 1일. 맑음. 일기를 수정했다. -
649037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맑음. 일기 수정하는 것을 이날이 되어서야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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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맑음. 예부의 지회가 있었는데 내일 상을 받으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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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저녁에 흐림. 아침 일찍 삼사와 일행이 상을 받기 위해 오문 밖에 모두 모였다. 황제가 지금 원명원에 있어서 신하들이 모두 따라갔으므로 해가 저문 뒤에 예부 시랑 유약운(劉躍雲)이 비로소 원명원에서 와서 상을 나누어 주었다. 서장관은 으레 크고 작은 상단(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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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45리를 가서 하점(夏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45리를 가서 저녁에 단가령(段家嶺)에 도착했으며 곽성(郭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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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맑고 매우 더움. 일찍 출발하여 55리를 가서 계주성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서문을 경유하여 성에 들어가 와불사(臥佛寺)를 들렀다. 사찰에는 큰 금불(金佛)을 안치했는데 길이가 10여 장(丈)은 되었고 층루(層樓)를 설치하여 성 내외 및 넓은 들과 안개 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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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맑고 매우 더움. 일찍 출발하여 45리를 가서 옥전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가고 저녁에 사류하에 도착하여 허성(許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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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8일. 맑고 매우 더움.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풍윤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50리를 가고 저녁에 진자점에 도착하여 장성(張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649044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9일. 아침에 맑고 저녁에 비가 내림. 일찍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사하역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망해점(望海店)에 이르러 말을 먹이고, 20리를 가서 저녁에 영평부에 도착하여 사성(史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649045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0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45리를 가서 배음포(背陰鋪)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저녁에 유관에 도착하고 한성(韓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649046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1일. 가끔 흐림. 수역(首譯)이 예부의 자문 39장을 받아서 왔다. 출발하여 35리를 가서 봉황점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35리를 가서 홍화점에 이르러 사성(謝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밤에 뜰 가운데를 거니는데 한군(漢軍) 한 사람이 마침 수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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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2일. 가끔 흐림. 장차 산해관을 나가려고 하는데 병부의 표문이 아직 관에 도착하지 않아 관인(關人)이 문을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병부에서 조선의 사신이 나간다는 뜻으로 산해관에 보내는 표문이 있은 뒤에야 내보내는 것이 전례이다.】 임역들을 보내 행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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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3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45리를 가서 양수하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저녁에 중후소(中後所)에 도착하고 한성(韓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649049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4일. 가끔 맑음. 새벽에 출발하여 10여 리를 가서 동관(東關)에 이르렀다. 이곳은 해변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침 해 아래에 구름이 생겨서 볼 수 없었다. 30리를 가서 사하소(沙河所)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 30리를 가서 저녁에 -
649050
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5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영녕사에 이르렀다. 영원(寧遠) 지부(知府) 유대관(劉大觀)은 일찍이 상사와 서로 알았는데【상사가 이전에 연행을 갔을 때 서로 알았다.】 이때 사행이 이곳을 지난다는 것을 듣고, 그의 아우 대균(大均)과 술과 반찬을 가지고 와서 별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