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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6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송산보(松山堡)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 30리를 가서 저녁에 생양촌에 도착하여 금성(金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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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7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망산점(望山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곧바로 길을 떠나 50리를 가서 저녁에 상흥점(常興店)에 도착하여 이성(李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밤에 뇌우가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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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8일. 흐리고 가끔 비가 내림. 비가 내린 뒤에 더운 기운은 조금 물러났지만 도로가 진흙탕이 되어 길을 가기 어려웠다.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이대자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나 50리를 가서 저녁에 소흑산에 도착하여 소성(蕭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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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19일. 비가 내림. 진흙길에 50리를 가서 이도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저녁에 백기보에 도착하여 장성(張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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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0일. 종일 비가 내림. 진흙길에 50리를 가서 신민둔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저녁에 고가자에 도착하고 점사(店舍)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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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1일. 가끔 비가 내림.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대방신점(大方身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45리를 가서 저녁에 심양에 도착하여 견성(甄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요동과 심양 지역은 조금 가뭄이 들면 먼지가 나고 조금 비가 내리면 진흙탕이 되는데, 이때에 이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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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2일. 가끔 비가 내림. 처음에 노새 1마리와 말 1마리가 끄는 수레를 얻었으나 노새가 뒷발질하고 깨물기를 잘하여 강제로 부릴 수 없었고, 어자(馭者)가 제어할 방법이 있는 수레는 진흙을 평지처럼 달려 덕분에 산 넘고 물 건널 수 있었다.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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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3일. 맑음. 어제 일행이 피곤하여 오늘 늦게 서야 출발했고 30리를 가서 영수사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저녁에 냉정에 도착하고 왕성(王姓)의 민가에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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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4일. 종일 비가 내림.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낭자산에서 점심을 먹고, 20리를 가서 청석령을 넘고 20리를 갔다. 저녁에 첨수참에 도착하여 합성(郃姓)의 민가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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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5일. 비가 내림. 일찍 출발하여 25리를 가서 회령령을 넘고 15리를 가서 연산관에 도착했다. 의주 아전이 으레 삼사의 집에서 보낸 편지와 음식물을 가지고 이곳에서 맞이하는데 소식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저녁에 답동에 이르렀는데,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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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6일. 이슬비가 내림. 일찍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통원보에 이르렀다. 냉정을 지난 이후부터 산골짜기에 난 길은 비록 질척거릴 걱정이 적었지만, 크고 작은 도랑이 모두 넘쳤다. 물이 얕은 곳은 오히려 바퀴가 빠지고 깊은 곳은 배를 많이 부리게 되어 배참(排站)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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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7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건자포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40리를 갔다. 책문에 도착하니 의주 노가 모두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날이 이미 저물어갔다. 용복(龍福)이 책문 밖에서 서울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들어서 서둘러 책문을 나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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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8일. 비가 내림. 말을 먹이고 조금 있다가 동틀 무렵에 바로 출발하여 70리를 가서 삼강(三江)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비가 퍼붓듯이 내리고 뒤이어 거센 바람이 불었으며 강물이 넘쳐 건너기가 어려웠다. 중강(中江)에 이르러 비가 더 심해졌는데 물은 바야흐로 조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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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9일. 흐림. 새벽에 출발하는데 숙부님은 더위로 인해 계속 편치 않았기 때문에 이틀 길을 하루에 가는 것을 하지 못했다. 35리를 가서 소관참(所串站)에 이르렀고 40리를 가서 낭책참(良策站)에 이르렀으며 30리를 가서 한밤중에 철산참(鐵山站)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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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0일. 흐림. 새벽에 출발하여 45리를 가서 선천참(宣川站)에 이르렀고 40리를 가서 곽산참(郭山站)에 이르렀으며 30리를 가서 해질녘에 정주참(定州站)에 도착했다. 승동은 그대로 뒤처졌고 삼금이 서울까지 수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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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월. 1일. 맑고 매우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60리를 가서 가산참(嘉山站)에 이르렀고 60리를 가서 해질녘에 안주성(安州城) 외참(外站)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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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2일. 맑고 매우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60리를 가서 숙천참(肅川站)에 이르렀고 60리를 가서 저녁에 순안참(順安站)에 도착했다. 자형이 와서 조문했는데 누님은 이미 3월 그믐 사이에 서울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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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3일. 맑고 매우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평양참(平壤站)에 이르렀고 50리를 가서 중화참(中和站)에 이르렀으며, 50리를 가서 한밤중에 황주성(黃州城) 외참(外站)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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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4일. 맑고 매우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봉산참(鳳山站)에 이르렀고 30리를 가서 검수참(黔藪站)에 이르렀으며 40리를 가서 해질녘에 서흥참(瑞興站)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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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5일. 맑고 매우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50리를 가서 총수참(蔥秀站)에 이르렀고 30리를 가서 평산참(平山站)에 이르렀으며 30리를 가서 해질녘에 금천(金川) 신읍참(新邑站)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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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6일. 맑고 매우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60리를 가서 송도에 이르렀고 이 이형(李姨兄)이 와서 조문했다. 40리를 가서 장단참(長湍站)에 이르렀고 40리를 가서 한밤중에 파주참(坡州站)에 도착했다. 순업이 서울에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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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이(二) / 미상
7일. 맑고 더움. 새벽에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고양에 이르렀고 40리를 가서 오후에 달려가 곡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13일. 상사가 복명(復命)하고 문견사건(聞見事件)을 올렸다. 대개 서장관이 연행하면 으레 일기와 문견사건을 올리는데 상사가 대신 올렸으며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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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월. 12일. 연행(燕行)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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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7일. 〔두주〕아우 신관(申綰)이 중부님의 후사가 되어 이날 신주를 고쳐 쓰고, 이 해를 중부님의 회갑(回甲)으로 삼아 다음 날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중부님: 신대우의 동생 신대익(申大翼, 1741~1762)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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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8일. 〔두주〕새벽에 중부님의 제사를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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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0일. 증광 감시(增廣監試) 초시(初試)의 초장 일소(初場一所) 상시관(上試官)은 박종순(朴鍾淳)이었다. 증광감시(增廣監試): 증광(增廣)은 나라의 큰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는 과거를 말한다. 감시(監試)는 생원(生員)·진사(進士)의 시험이고, 감(監)은 국자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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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2일. 종장(終場)의 의제(義題)는 “그릇의 무늬를 성글게 하여 통달하게 한다.[其器疏以達]”이다. 종장(終場): 사흘에 나누어 보는 과거의 마지막 날 시험장을 이른다. 첫날의 시험장을 초장(初場), 둘째 날의 시험장을 중장(中場)이라고 한다. 의제(義題): 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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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5일. 방(榜)이 나온 다음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모두 종장에서 초시를 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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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월. 3일. 내가 강을 건너 길을 나설 때 어머님께서 본래 앓고 있던 환후가 오래 낫지 않았고, 도중에도 조금 편안해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나는 깊이 염려할 줄도 까마득히 모르고 일을 행하는 것도 중지할 길이 없었다. 이날 마침내 강을 건넜고 이후로 집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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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1일. 병환이 매우 중하여 숙부님, 계부님 및 표형(表兄)이 이날부터 와서 성복(成服)할 때까지 머물렀다. 성복(成服): 빈(殯)을 한 다음 날, 즉 사망한 지 4일째 되는 날에 복인(服人)들이 규정된 관(冠)·최복(衰服)·신발 등 상복(喪服)을 착용하는 절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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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3일. 신시(申時, 오후 3시~5시)에 고복(皐復)했는데 망극하고 망극했다. 이날의 조문객은 아사(雅士) 이진회(李晉會)이다. 고복(皐復): 상을 당했을 때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초혼(招魂)하는 것이다. 여기서 고(皐)는 길게 빼어 부르는 소리를 뜻하고, 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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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4일. 저녁에 습(襲)과 소렴(小斂)을 했다. 옷과 이불 등의 제구(諸具)는 대략적으로 갖출 시간이 있었지만 관재(棺材)는 무오년(1798년, 정조 22)에 불이 난 뒤에 다시 갖출 수 없었다. 이때 호동(壺洞) 이 판서(判書) 어른이 그 집에 있던 수기(壽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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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5일. 아침에 대렴(大斂)과 입관(入棺)을 했고 건넌방으로 옮겨 봉안했다. 이날의 조문객은 정언(正言) 권준(權晙), 진사(進士) 이면눌(李勉訥), 안성군수 박종우(朴宗羽), 아사 정시용(鄭是容), 아사 조석현(曺錫玄), 아사 이면백(李勉伯), 유생 조영진(曺永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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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6일. 아침 일찍 성복을 했다. 칠(漆)을 첫 번째로 했는데 칠장(漆匠) 정득성(鄭得成)이 와서 일을 했다. 이날의 조문객은 영동현감(永同縣監) 윤성기(尹星基), 안성군수 조윤식, 주서 조석정(曺錫正), 정언 권준, 유생 홍하섭(洪夏燮), 유생 이문오(李文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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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7일. 조문객은 아사 심영지(沈永之), 아사 이발원(李發遠), 아사 신효선(申孝善), 아사 권양(權暘), 아사 홍희렴(洪羲濂)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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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8일. 칠을 두 번째로 했다. 이날의 조문객은 유생 이상원(李祥遠), 아사 정기익(鄭基翼), 장령(掌令) 신흔(申昕), 아사 박종화(朴鍾華), 병조 좌랑(兵曹佐郎) 권식(權烒), 유생 조명주(趙明周)이다. 신흔(申昕): 1775년(영조 51) 5월 5일에 장령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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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9일. 칠을 세 번째로 했다. 조문객은 익산군수(益山郡守) 윤행순(尹行醇), 유생 이천회(李千會), 아사 심구지(沈久之), 영릉 참봉(永陵叅奉) 이면구(李勉求)이다. 윤행순(尹行醇): 윤행순이 익산군수에 임명된 기사는 찾을 수 없으나 1795년(정조 19)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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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0일. 큰형님과 영남의 지사(地師) 서의봉(徐儀鳳)이 광주(廣州)로 갔다. 이날의 조문객은 주부(主簿) 이현시(李玄始), 광흥창 주부 신대이(申大儞), 유생 이재량(李在樑), 영동 현감 성긍주(成肯柱), 유생 박중평(朴重枰)이다. 신대이(申大儞): 신대이가 광흥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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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1일. 칠을 네 번째로 했다. 조문객은 안의현감(安義縣監) 박정규(朴正圭), 청주목사(淸州牧使) 유한준(兪漢雋), 덕산현감(德山縣監) 박민순(朴民淳), 족형(族兄) 신집(申緝), 진사 김낙흠(金樂欽)【강동(江東) 사람】이다. 유한준(兪漢雋): 유한준이 청주 목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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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2일. 조문객은 유생 이원조(李遠祚), 아사 박영철, 아사 조봉진(曺鳳振), 아사 송희정(宋喜鼎), 아사 박금원(朴錦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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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3일. 칠을 다섯 번째로 했다. 조문객은 중부 도사(中部都事) 윤치민(尹致民), 이조참판 조윤대(曺允大)이다. 윤치민(尹致民): 1799년(정조 23) 8월 6일에 중부 도사에 임명되었다.(『승정원일기』) 조윤대(曺允大): 1800년(정조 24) 1월 30일에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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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5일. 큰형님이 광주에서 돌아왔다. 무갑산(鍪甲山) 아래에 묏자리를 잡았다. 조문객은 아사 권엽(權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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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6일. 조문객은 김해부사(金海府使) 이신경(李身敬)이다. 이신경(李身敬): 1796년(정조 20) 6월 22일에 김해 부사에 임명되었고 1799년(정조 23) 5월 25일부터 김해전부사(金海前府使)로 불리었으며 1802년(순조 2) 8월 19일에 부호군(副護軍)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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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7일. 차대(次對)에 입시 했을 때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병모(李秉模)가 아뢰기를, “다스림의 방도는 인재 등용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인재 등용은 그 길이 매우 좁아서 쓸 만한 인재가 대부분 음로(蔭路)에 있기 때문에 일찍이 선조(先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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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8일. 전교하기를, “신모와 임욱은 바로 주연(冑筵)에서 나를 가르쳤던 옛 요속(僚屬)인데, 신모에게는 요속 때부터 계방(桂坊)에 있을 때까지 도움을 받은 것이 매우 많았다. 전군수 신모, 전 목사 임욱은 이미 가자했으니 현재 자리가 비어있는 승지에 제수하고 패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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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9일. 추고(推考)만 하고 다시 패초하라는 명이 있었다. 아버님이 즉시 들어와 사은하고, 입시하여 권강(勸講)하라는 특교(特敎)가 있어 그대로 좌직(坐直)했다. 이날 감회(監會)의 종장(終場)에서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초시를 치러야 했는데 그대로 진시(陳試)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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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0일. 아버님이 그대로 직숙(直宿)했다. -
649098
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4월. 1일. 아버님이 삭전(朔奠)과 곡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그대로 신시에 퇴청했다. 큰형님이 지사 서의봉(徐儀鳳)과 함께 용인(龍仁)으로 갔다. 조문객은 유생 권사현(權士顯), 아사 남진화(南進和), 홍주목사(洪州牧使) 정동유(鄭東愈)이다. 정동유(鄭東愈): 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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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일. 아버님이 사진(仕進)했다. 최중규(崔重奎)의 상소를 받아 들여서는 안 되는데 받아 들였기 때문에 해당 승지를 파직하라는 명이 있었다.【임욱(任焴)이다.】 그리고 승정원에 있는 승지는 모두 체차(遞差)되었고 아버님도 체직 당했는데, 아직 후임을 차출하지 않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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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일. 정사(政事)에서 숙인(淑人)이 남편의 관직을 따르는 예에 따라 숙부인(淑夫人)으로 증직(贈職)하라고 계하(啓下)했다. 누님은 순안(順安)의 관아에서 상사를 듣고 성복했는데, 이날 집에 이르러 분곡례(奔哭禮)를 했다. 고모와 그 딸들이 분상(奔喪)했는데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