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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9651

    7월. 1일. 다례를 행했다. 백포(白袍)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5월에 상을 들었으므로 이달에 이르러 담제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남양댁 숙모의 궤연(几筵)에 가서 곡하고 시복(緦服)을 받았으며, 길을 돌려 남동(藍洞)으로 갔다. 승지 박종순(朴鍾淳)이 찾아왔다.
  • 649652

    2일. 주서 조석정(曺錫正), 교리 권준(權晙), 안변부사(安邊府使) 정내백(鄭來百), 승지 김종선(金宗善)이 찾아왔다.
  • 649653

    5일. 회양부사(淮陽府使) 박종경(朴宗京)이 찾아왔다. 주서 조종영(趙鍾永)이 와서 조문했다. 저녁에 송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했다.
  • 649654

    6일. 영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체차되었다. 저녁에 송독을 다시 시작했다.
  • 649655

    8일. 안동 부사 정동관이 찾아왔다.
  • 649656

    9일. 교리 구득로(具得魯)가 찾아왔다.
  • 649657

    13일. 교리 윤행직(尹行直)이 찾아왔다. 이날 밤 정사가 있었는데,【이조참판 이면긍(李勉兢), 이조참의 김이영(金履永)이 주관했다.】 내가 응교에 수의로 하비되어【부의는 김재창(金在昌), 말의는 윤행직이었다.】 패초하라는 명이 있었다. 옛사람은 담제가 지나면 출사
  • 649658

    16일. 밀양 부사 이경로(李敬魯)가 찾아왔다.【부수찬 서장보가 병조판서를 논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상소 내용이 실상에 어긋나 엄한 비답이 있었고 서용하지 않는 법을 시행했다.】
  • 649659

    17일. 아사 이면진(李勉進)이 찾아왔는데 표임의 혼사 때문이었다.
  • 649660

    18일. 날씨가 더워서 오랫동안 강연과 소대를 정지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서늘해지자 소대를 시행했다. 승지 한치응(韓致應)이 와서 조문했다.【부교리 이동면(李東冕)이 패초를 어겨 체차되었다.】
  • 649661

    19일. 소대를 행했다. 아버님이 전망으로 하비되어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는데,【열두 번째이다.】 패초를 어기자, 추고만 하고 다시 패초하라는 명이 있었으므로 즉시 패초를 받들어 궐에 나아갔지만, 날이 이미 저물어 그대로 대루원에 가서 궐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 649662

    20일. 아버님이 사진하여 사은하고 그대로 어가를 수행하여 춘당대(春塘臺)에서 재숙(齋宿)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이날 교리 정동간(鄭東幹), 상주목사(尙州牧使) 이노수(李潞秀)가 와서 조문했다. 이노수(李潞秀): 1802년(순조 2) 6월 19일, 8월 30일
  • 649663

    21일. 신종황제(神宗皇帝)의 기신(忌辰)이므로 임금이 대보단(大報壇)에 행행하여 망배례를 행하려 했는데, 비가 내려 거둥하지 못하고 그대로 북원(北苑)의 재소(齋所)에서 예를 행하고 환궁했다. 아버님이 그대로 좌직(坐直)했다.【이날 정사에서 윤행직을 부교리로, 심
  • 649664

    22일. 아침 일찍 아버님이 수자(須資)로 인해 집으로 돌아왔고, 소대를 행했다. 예조참판 이노춘(李魯春)이 찾아왔다.
  • 649665

    23일. 진강을 시행했고, 패초하기를 청하는 계사에 대해 윤허했으므로 아버님이 패를 받들어 사진하고 소대에 입시했다가 그대로 좌직했다.
  • 649666

    24일. 진강과 소대를 행했고, 아버님이 신시에 퇴청했는데, 체차하라고 명했다. 병조판서 조상진을 체차하고 서매수(徐邁修)를 병조판서로 삼았다. 큰형님이 선산 아래에 갔다가 그대로 머물렀다.
  • 649667

    25일. 임금이 종묘와 경모궁(景慕宮)에 행행하여 추계 전알례(秋季展謁禮)를 행하고 곧바로 환궁했다.
  • 649668

    26일. 진강과 소대를 행했다.
  • 649669

    27일. 교리 이호민(李好敏)이 패초를 어겨 파직되었고, 김굉(金硡)이 그를 대신했다.
  • 649670

    28일. 진강과 소대를 행했다. 홍문관 응교 신현, 교리 김굉이 모두 지방에 있어서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하기를 청하는 사안으로 입계했는데, 체차하라고 명했다.【이날 들인 전망 단자(前望單子)에서 원재명(元在明)을 응교로, 민사선(閔師宣)을 교리로 삼았다.】
  • 649671

    29일. 진강과 소대를 행했다.
  • 649672

    30일. 판서 한만유(韓晩裕)가 찾아왔다.
  • 649673

    8월. 1일. 길복(吉服)으로 다례에 참석했다.
  • 649674

    2일. 선산 아래에 가려고 출발하여 산성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사촌(社村)에 이르러 큰형님을 뵈었다. 주서 조양진(趙良鎭)이 왔다.
  • 649675

    3일. 성묘했다. 아사 조운명(趙雲明)이 찾아왔다. 소포(小布)를 설치하고 활쏘기 연습 10여 순(巡)을 했으며, 저녁에 조운명과 함께 수촌(水村)에 갔다가 그대로 유숙했다.
  • 649676

    4일. 서울에 가려고 일찍 출발하여 쌍령참(雙嶺站)에 이르러 계부님을 만나 뵈었는데, 곤암(昆巖)에서 서울로 행차한다고 하므로 그대로 모시고 가서 산성에 이르렀다. 판관 이상정(李象鼎)이 와서 보았고, 판관이 또 와서 보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저녁에 집에
  • 649677

    5일. 큰형님이 사촌에서 돌아왔다. 이조판서 이서구(李書九)가 체차되었다.
  • 649678

    6일. 판서 김화진(金華鎭)이 졸서(卒逝)했다.
  • 649679

    10일. 능행(陵幸) 때 서반(西班) 배종관(陪從官)에 나를 계하했으나,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현탈했다.
  • 649680

    12일. 『불기록(不欺錄)』 1책을 베껴 쓰고 아울러 소서(小序)를 작성하여 『불기록』에 있는 동료들에게 보내서 보게 한 다음 각각 시와 문을 써 보낼 것을 요구했다.【『불기록』에 대한 일은 무오년(1798년, 정조 22) 11월 일기에 보인다. 『불기록』에 있는
  • 649681

    13일. 둘째 형님이 선산 아래에 갔다. 서매수(徐邁修)를 이조판서로 삼았고, 나는 금위영 종사관에 부의로 의망되었는데, 금위대장 박준원(朴準源)이 자벽(自辟)한 자리였다.【수의로 의망된 이회상(李晦祥)을 종사관으로 삼았다.】 자벽(自辟): 특정 관직의 관원을 해당
  • 649682

    14일. 밤에 정사가 있었는데, 나는 집의에 수의로 하비되었다.【부의는 한흥유(韓興裕), 말의는 심수(沈銖)였다.】 조진관(趙鎭寬)을 병조판서로, 이서구를 호조판서로 삼았다.
  • 649683

    15일. 사촌에 가려고 새벽에 출발했다. 능행(陵幸)이 머지않았지만 일단 출사하지 않았고 대간의 직임은 거취가 어렵기 때문에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현탈하고 그대로 선산 아래에 가서 머물렀다. 산성에서 점심을 먹고 참차(站次)에서 둘째 형님을 만나 뵈었다가, 저녁에
  • 649684

    16일. 밥을 먹은 뒤에 앞뜰에서 활쏘기 연습 10여 순을 했다. 이날 건원릉(健元陵)과 원릉(元陵)에 행행하여 당일에 환궁했는데, 아버님이 지송(祗送)하고 지영(祗迎)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여했다.
  • 649685

    17일. 활쏘기 연습 수십 순을 했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와 우박이 내렸다. 저녁에 수촌(水村)에 가서 조 우(趙友)의 집에서 잤다.
  • 649686

    18일. 조사목(趙士牧)의 아들이 관례(冠禮)를 행했다. 주인과 술을 조금 마시고 활쏘기 연습 몇 순을 하다가 그대로 유숙했다. 서울에서 편안하다는 소식을 받았고, 관직에서 체차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 649687

    19일. 다시 선산 아래로 돌아갔다가 그대로 서울로 출발하여 저녁에 산성에 도착했고, 이면수(李勉秀)의 집에서 잤다. 천둥번개가 크게 치고 비와 우박이 내렸다. 밤에 판관이 왕림했다.
  • 649688

    20일. 아침 일찍 들어가 판관을 뵙고 함께 과녁에 활쏘기 10순을 하여 각각 11발을 맞혔고, 소포(小布)에 4순을 쏘아 6발을 맞혔다. 저물고 난 뒤에 출발하여 집에 이르러 아버님을 뵈었다. 이때 감시(監試)의 시관(試官)을 아울러 행해야 했는데, 잠시 피할 생
  • 649689

    22일. 감시의 종장(終場)에 큰형님과 둘째 형님 모두 이소에 들어갔는데 이미 진시(陳試)가 있고 초시이므로 시권(試券)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서수(書手) 두 사람은 일찍 시권을 제출했다.【26인을 출방(出榜)했는데, 서수인 권녕(權甯)은 초시이기 때문이다.】 실록
  • 649690

    24일. 숙부님이 학교(鶴橋)에서 용호(龍湖)로 집을 옮기고 계부님이 곤암(昆巖)으로 이사하므로 큰형님을 모시고 용호의 새집으로 갔다가 그대로 곤암으로 가는 행차를 전송했다. 큰형님은 먼저 돌아왔고 나는 노량(鷺梁)의 촌가에서 유숙했다. 계부님의 온 집안 식구들이
  • 649691

    25일. 새벽에 노량진을 건너 계부님이 있는 곳에 갔더니 계부님은 다시 다른 배를 구하여 출발했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 649692

    27일. 모화관(慕華館)에 친림하여 서총대 시사(瑞蔥臺試射)를 행하고 환궁했다. 아버님이 반열에 나아가 참여했다.
  • 649693

    29일. 큰형님이 선산 아래에 갔다.
  • 649694

    9월. 1일. 감기에 걸렸다. 교리 윤상규(尹尙圭)가 찾아왔다.
  • 649695

    3일. 정사가 있었고, 교리에 옮겨 제수되었다.【부의는 이호민(李好敏), 말의는 한흥유(韓興裕)였다.】 차대(次對)를 행했다. 김달순(金達淳)·이노춘(李魯春)·임시철(林蓍喆)이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했다. 소대(召對)를 행했다.
  • 649696

    4일. 소대에 나아가 진강을 행하는데, 패초를 어기자 추고만 하라고 했고 두 번째 패초도 어겼다.
  • 649697

    5일. 진강과 소대를 행하는데, 신현은 무슨 까닭으로 두 번째 패초를 어겼는지 하문했다. 승지가 새로 상(喪)을 겪은 것이 정리상 남과 다른 점이 있어 곧바로 출사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추고만 하라고 명했다. 이날 나의 상소의 대개는 오래전부터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 649698

    6일. 진강과 소대를 행했다. 정사가 있었는데, 응교에 수의로 하비되었다.【부의는 김재창(金在昌), 말의는 윤행직(尹行直)이었다.】 이때 부응교는 김재창, 교리는 이회상(李晦祥), 부교리는 강준흠(姜俊欽)·이동만(李東萬), 수찬은 신서(申漵)·심반(沈盤), 부수찬은
  • 649699

    7일. 승지 조석중(曺錫中)과 주서 조양진(趙良鎭)이 왔고, 자형(姊兄) 박성규(朴成圭)가 왕림했다.
  • 649700

    8일. 아버지를 보살피라는 사흘의 기한이 찼지만, 국기(國忌) 당일이므로 패초하기를 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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