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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9701

    9일. 홍문관에서 패초하기를 청하는 계사에 대해 윤허했다. 저녁에 패초를 받들어 궐에 들어가 사은하고, 아울러 실록 편수관으로서 숙배했으며, 이어서 사국(史局)에 갔다가 곧바로 돌아왔다.【실록청은 서리(書吏) 19명, 사령(使令) 12명, 군사 5명이다. 처음에는
  • 649702

    10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03

    11일. 아버님을 모시고 각교(閣橋)에 가서 명흡(命洽)의 혼례를 보고 그대로 사국에 나아가 직숙했다.
  • 649704

    12일. 일찍 입궐하여 그대로 옥당에서 입직했다. 종묘 망제(望祭)의 대축(大祝)에 차정되어 재숙(齋宿)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진강을 행했다. 영경연사(領經筵事) 이시수(李時秀), 각신 서영보(徐榮輔), 승지 김재익(金
  • 649705

    13일. 그대로 입직했다. 진시(辰時)에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진강을 행했다. 영경연사 서용보(徐龍輔), 각신 심상규(沈象奎), 승지 김종선(金宗善), 옥당 신현, 주서 심능헌(沈能憲), 한림 김시근(金蓍根)·서유순(徐有恂)이 차례대로 나아와 엎드렸다.
  • 649706

    14일. 향을 받아 종묘의 향소(享所)에 나아갔다.
  • 649707

    15일. 종묘에서 망제(望祭)를 행했고, 파하자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에 아버님을 모시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을 치제(致祭)하는 데 가서 참석했다.
  • 649708

    16일. 판서 한만유(韓晩裕)의 어린 아들인 한용빈(韓用彬)의 관례가 있어서 아버님이 빈(賓)으로 갔고 나는 찬(贊)으로서 빈을 보좌했다. 주인이 심의(深衣)와 폭건(幅巾)으로 예를 행하고 찬은 평복만 착용했다. 저녁에 모시고 돌아왔다.
  • 649709

    17일. 23일까지 계속 사국(史局)에 나아갔다.
  • 649710

    24일. 사국에 나아갔다. 아버님이 형조참의에 부의로 하비되었다.【수의는 임육(任焴), 말의는 이소(李素)였다.】
  • 649711

    25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12

    26일. 아버님이 입궐하여 형조참의로서 사은하고 그대로 형조의 좌기에 나아갔다. 나는 사국에 나아갔다.
  • 649713

    27일. 아버님이 좌기에 나아갔다. 나는 사국에 나아갔다가 그대로 옥당에 입직했다.
  • 649714

    28일. 그대로 입직했다. 미시(未時)에 임금이 중희당(重熙堂)에 나아가 소대를 행했다. 응교 신현, 수찬 원재명(元在明), 승지 강이정(姜彛正), 각신 이교신(李敎信), 주서 홍우섭(洪遇燮), 한림 조운익(趙雲翊)·서유순(徐有恂)이 차례대로 나아와 엎드렸다. 임금
  • 649715

    29일. 그믐. 출직(出直)하여 사국에 나아갔다. 차대(次對)를 행했고, 형조 당상도 참석하라고 명했으므로 아버님이 입시했다가 곧바로 물러났다.
  • 649716

    10월. 1일. 사국(史局)에 나아갔다. 아버님이 좌기(坐起)에 나아갔다.
  • 649717

    2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18

    3일. 중궁전(中宮殿)의 관례(冠禮)에 아버님을 모시고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음식을 하사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국에 들렀다.
  • 649719

    4일. 6일까지 계속 사국에 나아갔다.
  • 649720

    7일. 임금이 추도기(秋到記)에 친림(親臨)했으며 이우재(李愚在)를 사제(賜第)했다. 나는 사국에 나아갔다.
  • 649721

    8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22

    9일. 달경의 관례를 행했으니 이름은 명호(命濩)이고 자는 중소(仲韶)이다. 홍주목사(洪州牧使) 정동유(鄭東愈)가 빈(賓)이 되었고 소찬을 마련했으며 모인 사람이 40여 인이었다. 하휴(何休)의 관례 의식대로 행했다. 관례 하는 자는 평상복 그대로 방에서 명을 기다
  • 649723

    10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24

    11일. 사국에 나아갔다. 임금이 친림하여 문신 전강(文臣殿講)을 행했다.
  • 649725

    12일. 아버님이 좌기(坐起)에 나아갔다. 나는 사국에 나아갔고 이어서 옥당에 입직했다. 근래의 규례에 동벽(東壁)은 굳이 입직하지 않는데 번차(番次)를 정하기가 구차하고 어려우며 또 성상과 멀리 떠나 있던 나머지 경연에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649726

    13일. 진시(辰時)에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진강을 행했다. 영경연사 서용보(徐龍輔), 각신 박종경(朴宗慶), 승지 심상규(沈象奎), 옥당 신현(申絢), 주서 정원용(鄭元容), 한림 조운익(趙雲翊)·서유순(徐有恂)이 차례로 나아와 엎드렸다. 임금이 전에
  • 649727

    14일.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친림하여 구일제(九日製)를 설행(設行)했다. 나는 대독관(對讀官)으로 나아가 참석하고 이어서 출직(出直)했다.
  • 649728

    15일. 계속 사국에 나아갔다.
  • 649729

    17일. 사국에 나아갔다. 아버님이 좌기에 나아갔다.
  • 649730

    18일. 임금이 편전에 친림하여 한학 문신 전강(漢學文臣殿講)을 행했다. 사국에 나아갔다.
  • 649731

    19일. 임금이 편전에 친림하여 무신 전강(武臣殿講)을 행했다. 사국에 나아갔다.
  • 649732

    20일. 사국에 나아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밤에 밀양 부사 박종우(朴宗羽)의 집에서 납채(納采)했다.
  • 649733

    21일. 명호(命濩)의 혼례를 치러 밀양 박씨의 딸을 맞이했다. 이날 모인 사람은 30여 인이었다. 아버님이 전망으로 하비되어 우부승지(右副承旨)가 되었다.【열세 번째이다.】 입궐하여 숙배하고 신시(申時)에 퇴청했다.
  • 649734

    22일. 임금이 편전에 친림하여 이문제술(吏文製述)을 행했다. 나는 참석하여 시권(試券)을 제출하고 오후에 나와서 명호(命濩) 신부의 신례(新禮)를 행했다. 이날 아버님은 사진(仕進)하지 않았고 체차(遞差)를 허락받았다.
  • 649735

    23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36

    24일. 사국에 나아갔다. 명호가 3일이 지나 돌아왔다.
  • 649737

    25일. 명호 신부의 해현례(解見禮)를 했고 이어 신부의 관례(冠禮)를 행했다.
  • 649738

    26일. 신부가 돌아왔다. 나는 사국에 나아갔다.
  • 649739

    27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40

    28일. 입궐하여 옥당에서 직숙했다. 번차(番次)를 정하기가 구차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동료가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진시(辰時)에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진강(進講)을 행했다. 영경연사 서용보(徐龍輔), 각신 김근순(金近淳), 옥당 신현(申絢), 가주서
  • 649741

    29일. 출직(出直)하고 사국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큰형님이 사촌(社村)으로 출발했는데 오래 머물며 과의(科義)를 공부하고자 했으니 감시 회시(監試會試) 공부 계획 때문이었다.
  • 649742

    30일. 사국에 나아갔다.
  • 649743

    11월. 1일. 5일까지 사국에 나아갔다. 그 사이에 응교로 체직되었다.
  • 649744

    6일. 건릉(健陵) 동지 제향(冬至祭享)의 대축(大祝)으로 차정되었으니, 차정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 649745

    7일. 헌관(獻官) 구익(具㢞)과 함께 향과 축문을 받들고 출발하여 과천(果川)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화성(華城)에 도착했다. 들어가 화성 유수 조윤대(曺允大)를 뵙고, 밤에 음악을 들으며 약간 취했다. 이날 나는 교리에 제수되었는데 지방에 있었으므로 체직을 허락
  • 649746

    8일. 화성 판관 홍양묵(洪養默)과 제물(祭物)을 싸서 봉하고 함께 향소(享所)로 나아갔다.
  • 649747

    9일. 향소에 있으면서 제수(祭需)를 차리는 것을 보았다.
  • 649748

    10일. 제사가 끝난 뒤에 화성으로 돌아왔다. 유수 및 헌관과 함께 서울로 출발하여 과천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집에 도착했다.
  • 649749

    11, 12일. 계속 사국에 나아갔다.
  • 649750

    13일. 사국에 나아갔다. 전망(前望)으로 하비되어 다시 응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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