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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4일. 패초(牌招)를 받들어 입궐하여 숙배하고 사국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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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5일.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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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6일. 사국에 나아갔고, 직숙(直宿)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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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7일. 그대로 입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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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8일. 출직(出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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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9일. 29일까지 계속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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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0일. 사국에 나아갔다. 큰형님이 사촌에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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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2월. 1일. 큰형님 생신이라 작은 술자리가 있었다. 저녁에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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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일.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친림하여 감제(柑製)를 설행했다. 수석을 차지한 송익연(宋翼淵)을 사제(賜第)했다. 나는 대독관(對讀官)으로 참여했으며 밤이 깊어서야 마치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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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일. 6일까지 계속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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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7일. 경모궁(景慕宮) 납향 대제(臘享大祭)의 당상 집례(堂上執禮)로 차정되었다. 사국에 나아갔다가 재숙(齋宿)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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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8일. 그대로 입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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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9일. 향(香)을 따라 향소(享所)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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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0일. 제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저녁에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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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1일.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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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2일. 사국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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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3일. 새벽에 입궐하여 왕대비전의 탄신의 문후 반열에 참여하고 사국을 들렀다가 돌아왔다. 저녁에 인정전(仁政殿)에 불이 나서 아버님을 모시고 대궐로 나아갔다. 밤이 깊어서야 불이 꺼졌으므로 이에 모시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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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4일. 19일까지 계속 사국에 나아갔다. 그 사이에 응교로 체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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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0일. 차대(次對)를 행했다. 좌의정 서용보(徐龍輔)가 교리 홍석주(洪奭周), 수찬 김매순(金邁淳), 전 교리 신현(申絢), 대교 이교신(李敎信)을 경술(經術)에 밝고 문예(文藝)를 지녔으므로 모두 경연 자리에 구임(久任)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우러러 아뢰었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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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1일. 새벽에 입궐하여 숙배하고, 이어 이교신(李敎信)과 반직(伴直)했다. 신시(申時)에 임금이 편전에 나아와 소대를 행했다. 옥당 신현·이교신, 승지 윤익렬(尹益烈), 각신 김근순(金近淳), 가주서 홍재민(洪在敏), 사관 홍병철(洪秉喆)·조운익(趙雲翊)이 차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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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2일. 그대로 입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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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3일. 그대로 입직했다. 신시(申時)에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소대(召對)를 행했다. 옥당 신현(申絢)·이교신(李敎信), 승지 서형수(徐瀅修), 각신 김근순(金近淳), 주서 박종훈(朴宗薰), 사관 홍병철(洪秉喆)·김시근(金蓍根)이 차례로 나아와 엎드렸다. 임금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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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4일. 그대로 입직했다. 미시(未時)에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소대(召對)를 행했다. 옥당 신현(申絢)·이교신(李敎信), 승지 김종선(金宗善), 각신 심상규(沈象奎), 주서 박종훈(朴宗薰), 사관 홍병철(洪秉喆)·김시근(金蓍根)이 차례로 나아와 엎드렸다. 임금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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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5일. 그대로 입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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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6일. 상소하고 지레 나왔으니, 20일에 대료(大僚)가 올린 계사가 막 내려 왔는데 자랑하는 것이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이날 내가 올린 상소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무릅쓰기 어려운 실상을 감히 아뢰고, 절박한 마음을 아울러 아룁니다. 짧은 글을 급하게 지어 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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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7일. 정전(正殿)에서 화재가 난 후에 임금이 대내(大內)에서 거처를 옮겼다가 이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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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8일.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입궐하여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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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9일. 입궐하여 제석(除夕)의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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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월. 1일. 가끔 흐리고 눈발이 흩날림. 새벽에 입궐하여 정조(正朝)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동료 김매순(金邁淳)이 당시 입직하고 있었는데 잠깐 나가 어버이를 뵙고자 하여 간절하게 대신 입직해 주기를 요청했기에 그대로 머물러 김매순이 돌아와 입직할 때까지 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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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일. 가끔 흐리고 맑음. 응자 노인(應資老人)에 대한 정사를 당일에 하라고 명했는데 이조판서 서매수(徐邁修), 병조판서 김달순(金達淳)이 연일 패초를 어겼다. 아버님이 올해에 으레 가자(加資)되어야 하지만 오랫동안 정사가 행해지지 못하여 지체되었다. 응자 노인(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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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일. 맑음.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세수 호궤(歲首犒饋)를 행했다. 대왕대비가 언문으로 하교하여 흉측한 상소를 올린 조진정(趙鎭井)과 패려한 통문을 올린 유생 등을 엄히 신문하여 구두로 초사(招辭)를 받게 한 뒤 보고하도록 하자, 전 현감 홍이유(洪履猷), 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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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4일. 가끔 흐리고 맑음.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이날 처음으로 소대를 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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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5일. 정사가 있었다.【이조참판 김면주(金勉柱)와 이조참의 박종래(朴宗來)가 정사를 행했다.】 이조에서 아버님이 시종신(侍從臣)의 부친으로서 나이가 70이 되었으니 전례대로 가자(加資)하겠다는 일로 초기(草記)를 올리자, 오늘 정사에서 하비(下批)하라는 명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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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6일. 맑다가 가끔 흐리고 눈발이 흩날림. 임금이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 경모궁(景慕宮)에 행행(行幸)하여 전배례(展拜禮)를 행했다. 내가 시종신으로서 참석하러 나아갔다가 환궁한 뒤에 파하여 돌아왔다. 어가 앞에서 시끄럽게 떠든 일로 병조판서 김달순(金達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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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7일. 맑다가 저녁에 흐림. 이른 아침에 사국에 들렀다가 이어 입궐하여 옥당에 입직했으니 상번(上番)은 이회상(李晦祥)이었다. 신시(申時)에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소대를 행했다. 옥당 이회상·신현, 승지 한치응(韓致應), 각신 김근순, 가주서 이조(李潮), 사관 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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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8일. 맑음. 그대로 입직했다. 동료 홍석주(洪奭周)가 상번에 입번했다. 우의정 김관주(金觀柱)가 대간의 상소와 유생의 통문에 모두 그가 지시하여 떠들썩한 말을 하게 했다고 해서 상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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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9일. 맑음. 종묘 고유제(告由祭) 대축(大祝)에 차정되었다. 주렴이 거두어진 뒤에 임금이 직접 정무를 보니, 고유(告由)를 진하(陳賀)했다. 향을 따라 향소(享所)에 나아갔고, 헌관(獻官)은 청성위(靑城尉) 심능건(沈能建)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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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0일. 흐림. 새벽에 고유제를 지내고 파하여 돌아왔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입궐했다.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백관의 진하를 받는데, 나아가 참여하고 이어서 입직했다. 전교하기를, “이해 이달 11일은 곧 혜경궁 가례(嘉禮)의 주갑(周甲)이 되는 날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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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1일. 흐리고 가끔 맑음. 임금이 경모궁에 행행하여 시신(侍臣)으로서 반열에 참여했고,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친히 작헌례를 행하여 나는 대축으로서 일을 맡았다. 환궁하여 또 시신으로서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서 파하고 돌아왔다. 이날 아버님이 입궐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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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2일. 흐리고 가끔 맑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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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3일. 의금부가 여러 죄수에게 형벌을 가할 것을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윤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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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4일. 일찍 입궐하여 홍문관에 입직했으며 타락죽[酪粥] 1기(器)를 하사받았다. 대신(臺臣) 정언인(鄭彦仁)의 상소로 인하여 의금부의 여러 죄수를 잡아다 국문(鞫問)할 것으로 칭하라고 하교했다. 이날 저녁 직차(直次)에 옥등(玉燈)을 걸고 지나갔는데 상번은 권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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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5일. 맑고 가끔 흐림. 그대로 입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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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6일. 그대로 입직했다.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 숙선옹주(淑善翁主)의 부마(駙馬) 간택을 행했는데 표임(豹壬)이 참여했다. 표임을 데리고 승정원에 가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직차로 돌아왔는데, 표임이 상으로 찬물(饌物) 및 종이·붓·먹을 받아 왔다. 중일장(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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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7일. 임금이 영희전(永禧殿), 저경궁(儲慶宮)에 거둥하여 직소(直所)에서 나아가 시신의 반열에 참여했다가 환궁하여 따라 들어가고 그대로 홍문관에 입직했다. 병조판서 김달순(金達淳)이 패초를 어겨 경기 연해(沿海)에 정배되었다. 병조 … 정배되었다: 1804년(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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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8일. 일찍 출직(出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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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9일. 다음 날 인일제(人日製) 대독관(對讀官)에 수의로 하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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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0일.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인일제를 행하여 여러 시관(試官)과 함께 참석했다.【독권관(讀券官)은 이만수(李晩秀)·황승원(黃昇源)·이면긍(李勉兢)이고, 대독관은 박종래(朴宗來)·민명혁(閔命爀)·신현·김재창(金在昌)이었다.】 어제(御題)는 ‘춘왕정월(春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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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1일. 일찍 입궐하여 홍문관에 입직했고 상번은 권준(權晙)이었다. 신시에 임금이 관물헌(觀物軒) 나아가 소대(召對)를 행했다. 홍문관 권준·신현, 승지 홍의호(洪義浩), 각신(閣臣) 김근순(金近淳), 가주서 정조영(鄭祖榮), 사관(史官) 홍병철(洪秉喆)·조운익(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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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2일. 그대로 입직했다. 의금부 당상이 연명(聯名)으로 상소하여 다시 두 죄수에게 더욱 자세히 캐묻기를 청하는 승정원의 의론을 발계(發啓)했는데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여러 관료와 일제히 모여서 이것을 가지고 연명으로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차자를 보고 자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