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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9801

    23일. 그대로 입직했다.
  • 649802

    24일. 출직했다. 행 호군 김노충(金魯忠)이 죄수의 공초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이유로 상소하여 위태롭고 급박한 뜻을 아뢰었다. 답하기를, “경의 숙질(叔姪)이 문득 죄수의 공초에 들어갔으니 심히 뜻밖의 일이며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잘 알고 있고 남
  • 649803

    25일. 소대를 행했다.
  • 649804

    26일. 양사(兩司)에서 다시 홍이유 등에게 더욱 자세히 캐어묻도록 발계(發啓)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정배(定配)한 죄인 정대용(鄭大容)·임한호(林漢浩)를 풀어 주었다. 전 이조판서 서매수, 전 병조판서 김달순을 모두 서용하여 다시 전직(前職)에 제수했다. 칭경
  • 649805

    27일. 임금이 소대를 행했다. 형조의 계목에 의해 통문을 보낸 유생 김원희(金元喜)·정재민(鄭在民)·이영복(李榮復)·홍종익(洪宗益)은 모두 형장(刑杖)을 치고 도배(島配)했다. 우의정 김관주(金觀柱)·병조판서 김달순 등이 모두 공무를 행했다. 이날 정사에서 승지
  • 649806

    28일. 사국에 나아가 직숙했다. 공조에서 관찰사 3인을 천거했는데 아버님이 수의(首擬)로 천거 대상에 들었다.【부의(副擬)는 임육(任焴), 말의(末擬)는 윤문동(尹文東)이었다.】 공조판서는 이노춘(李魯春)이다. 집의 이기경(李基慶)이 상소하여 김노충(金魯忠)을 잡
  • 649807

    29일. 출직하여 남촌(南村) 몇 곳에 갔다. 옥당 원재명(元在明)·신귀조(申龜朝)·이회상(李晦祥)·송면재(宋冕載)·신서(申漵)를 모두 체차해 주었다.
  • 649808

    30일. 입궐하여 홍문관에 입직했다. 상번(上番)은 홍석주(洪奭周)였다. 신시(申時)에 임금이 관물헌(觀物軒)에 나아가 소대를 행했다. 옥당 홍석주·신현, 승지 김종선(金宗善), 각신(閣臣) 심상규(沈象奎), 가주서 박종훈(沈象奎), 사관 홍병철(洪秉喆)·김시근(金
  • 649809

    2월. 1일. 그대로 입직했다. 능행(陵幸)을 어떻게 할지 여쭈니, 전교하기를, “이번 봄에 공손히 건릉(健陵)을 찾아뵈려 했는데 전(殿)과 궁(宮)에서 지속적으로 힘써 만류했다.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억누르고 우러러 청을 받들어 가을이 되기를 기다리려 하니 명릉(
  • 649810

    2일. 비가 내림. 그대로 입직했다. 전교하기를, “구임 옥당 외에 모두 체차해 주겠다. 권준(權晙)·송지렴(宋知濂)도 체차한다.” 했다. 저녁에 대청(臺廳)에 가서 삼사(三司)의 합계(合啓)에 참여했다. 병조의 직차(直次)에 들러 참의 박윤수를 보았다. 양사(兩司
  • 649811

    3일. 출직했다. 임금이 소대를 행했다. 옥당 전망 단자(前望單子)에 응교 김재창(金在昌), 부응교 윤행직(尹行直), 교리 이면승(李勉昇), 부교리 김회연(金會淵)·박종정(朴宗正), 수찬 송응규(宋應圭), 부수찬 이호민(李好敏)이 낙점(落點)되었다. 교리 홍석주(洪
  • 649812

    4일. 의정부에 나아가 이의(肄儀)에 참여했다. 구전 정사(口傳政事)에서 아버님이 부총관 수의로서 하비되었다.【부의는 이상경(李尙慶), 말의는 조관진(趙觀鎭)이었다. 병조판서 김달순(金達淳)이 정사를 주관했다.】
  • 649813

    5일. 아버님이 입궐하여 부총관으로서 사은(謝恩)했다. 나는 향관(享官)으로서 재숙(齋宿)했다. 홍문관 대신(大臣)이 예조 당상을 거느리고 대왕대비의 존호를 청했으니 수렴청정을 마치고 나서 자애와 덕스러움이 더욱 빛났기 때문이다. 경재(卿宰)가 일제히 빈청(賓廳)에
  • 649814

    6일. 그대로 재숙했다. 2품 이상이 일제히 빈청에 모여 자전(慈殿)의 존호를 올릴 것을 청하는 초계(初啓)를 내었다. 아버님이 입궐하여 동참하고 즉시 직소에서 나아가 배알했다. 정사가 있었는데 이조참판 김면주(金勉柱), 이조참의 박종래(朴宗來)가 주관했다. 아버님
  • 649815

    7일. 임금이 사직에 거둥하니, 시신(侍臣)으로서 반열에 참여했다. 향소(享所)에 이르러 임금이 친히 희생(犧牲)과 기명(器皿)을 살펴보는 예에 참여했다.
  • 649816

    8일. 새벽에 임금이 친히 사직 춘향 대제(春享大祭)를 지내니, 제일위 집준(第一位執尊)으로 나아가 참석했다. 제향을 파한 뒤에 이어서 어가를 따라 시신으로서 입궐하고 도총부 직차(直次)에 나아가 배알하고 바로 나왔다. 빈청에서 재차 아뢰니 답하기를, “끊임없이 우
  • 649817

    9일. 아버님을 모시고 새벽에 입궐하여 다음날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나왔다. 아버님이 이어서 도총부에 가서 직숙했다. 예조에서 가상 존호(加上尊號)의 길일을 이달 28일 묘시(卯時, 오전 5~7시)로 택하여 들였다. 의금부의 초기(草記)로 인하여, 전 강진현감(
  • 649818

    10일. 일찍 입궐하여 선인문(宣仁門)에서부터 도총부 직차에 들어가 배알했다.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 관각 당상(館閣堂上), 삼사 장관(三司長官), 육조참판이 일제히 모여서 존호를 의논하여 ‘광헌(光獻)’ 두 글자로 입계(入啓)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 649819

    11일. 일찍 상호도감(上號都監)에 나아가니 당상과 낭관이 일제히 모였고 원역(員役)과 공장(工匠) 등이 일하기 시작했다.【1방(房)은 옥책(玉冊)을 만들고, 2방은 옥보(玉寶)를 만들고, 3방은 의장(儀仗)의 잡물을 고치거나 수선했다. 도감 소속은 녹사(錄事) 1
  • 649820

    12일. 구전 정사(口傳政事)에서, 아버님이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수의로 하비되었다.【부의는 조관진(趙觀鎭), 말의는 신대현(申大顯)이었다. 이조판서 서매수(徐邁修)가 정사를 주관했다.】 당일 숙배하고 이어서 출직(出直)했다. 나는 일찍 도감에 나아갔다가 저
  • 649821

    13일. 도목 정사(都目政事)에 이조판서 서매수, 병조판서 김달순이 참석했는데, 작년 말부터 이조·병조의 판서가 공무를 행하지 않다가 지금 비로소 설행한 것이다. 조고(祖考)를 이조참판에 예겸(例兼)으로 추증하라고 계하(啓下)했다. 정동관(鄭東觀)은 안동부사(安東府
  • 649822

    14일. 일찍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이교신(李敎信)이 체차되었다. 대교 회권(待敎會圈)·내각회권(內閣會圈)에서 직각(直閣)에 5점은 김매순(金邁淳), 4점은 오연상(吳淵常)·홍석주(洪奭周), 대교(待敎)에 5점은 박종훈(朴宗薰), 4점은 조석정(曺
  • 649823

    15일. 일찍 도감에 나아가 의주(儀注)에서 대내로 들이는 것에 대한 내용을 수정했다.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 649824

    16일.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 649825

    17일.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수궁 대장(守宮大將)에 서매수를 낙점하고, 유도대신(留都大臣)에 이시수(李時秀)를 임명한다고 하교했다. 이기경(李基慶)의 상소로 인하여 홍이유(洪履猷) 등의 공사(供辭)를 반포하라고 하교했다.
  • 649826

    18일. 도감에 나아가 오후에 도제조로 사진했다. 아버님이 입궐하여 도총부에 입직했다. 저녁에 나는 도감에서 돌아왔다가 바로 다시 입궐했다. 본관(本館)에서 청재(淸齋)하고 도총부에 나아가 배알하여 살피고 이어서 직차(直次)로 돌아왔다.
  • 649827

    19일.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임금이 출궁하니, 아버님은 시위(侍衛)로서 반열에 참여했고, 나는 경연(經筵)으로서 반열에 참여하여 어가를 따랐다. 이날 임금이 창릉참(昌陵站)에 주정(晝停)하여 명릉(明陵)·홍릉(弘陵)에 나아가 친히 제사를 지냈으며 국내(局
  • 649828

    20일. 아버님이 그대로 입직하고, 나는 일찍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돌아왔다.
  • 649829

    21일. 아버님이 그대로 입직하고, 나는 일찍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돌아왔다. 의궤 낭청에 송흠시를 획출(劃出)했다. 다음 날 식년 감시(監試)·복시(覆試)의 시관에 1소(所)는 이집두(李集斗)·김면주(金勉柱)·장석윤(張錫胤)·박종순(朴鍾淳)·김회연(金會淵)·이영하
  • 649830

    22일. 감시 회시의 초장(初場)을 설행했다. 일찍 도감에 나아갔다. 도제조 이하가 일제히 모여 정부(政府)에서 습의(習儀)를 행했고, 옥보(玉寶)·옥책(玉冊)·의장(儀仗)은 모두 일을 끝내 이어서 봉과(封裹)를 행했으며,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아버님이 출직했다
  • 649831

    23일. 도감에 나아가 문부(文簿)를 마감(磨勘)했다.【호조는 미(米) 50석, 병조는 무명[木] 3동(同)에 또 4동이다. 대전(代錢) 400냥 내로 원역(員役)·공장(工匠)에게 요포(料布)를 지급하니, 전(錢) 260여 냥, 무명 20여 필, 미 8석이 남았다.
  • 649832

    24일. 감시 회시의 종장(終場)을 설행했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은 3소에 들어가 답안을 냈다. 시제는 ‘서의삼착(書義三錯)’인데 모두 100장 이내로 일찍 제출했다. 서수(書手) 권녕(權甯)은 글씨를 잘 쓰기로 칭송 받는 자인데 자신의 글씨만 못했기 때문에 그의
  • 649833

    25일. 교리 김매순이 상소를 올려 여러 옥당을 구제하고, 승지 남공철(南公轍) 등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삼사(三司)를 서용하지 않겠다는 명을 중지할 것을 청했다. 답하기를, “삼사의 여러 사람의 처분은 내 어찌 단서도 없이 그리 한 것이겠는가. 경들은 대간의 상
  • 649834

    26일. 아버님이 직소에서 낮 근무의 초기(草記)를 하고 한성부 좌기에 나아갔다가 이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감시 회시의 방목(榜目)이 나왔다. 큰형님은 생원 3등 제16인에 들었고, 둘째 형님은 2등 제1인에 들었다. 조카 정문진(鄭文晉)도 방목에 들었는데 하객이
  • 649835

    27일. 패초하는 계사에 대해 윤허했다. 즉시 조방(朝房)에 나아가 패를 바치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진사 김운순(金運淳)【김근순(金近淳)의 아우이다.】을 만났다. 패를 어겨서 추고만 하라는 명이 내렸다. 아버님이 출직했다. 하객은 9인이었다.【교
  • 649836

    28일. 도감 당상·낭청 및 차비관(差備官)이 옥책(玉冊)·옥보(玉寶)를 받들어 모시고 입궐했다. 바로 직소에서 가서 참여하여 명정전(明政殿)에 이르니 임금이 친림하여 옥책·옥보를 받고 만녕문(萬寜門)을 통해 들어갔고 당상·낭청은 문밖에서 머물렀다. 대내에서 친히
  • 649837

    29일. 그믐. 옥권(玉圈)에 붉은 띠 차림으로 종묘에 전배(展拜)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새 진사 5인을 가서 만나보았다.【임승운(林昇運)·이형원(李衡遠)·임풍진(林豊鎭)·홍석모(洪錫謨)·오언의(吳彦誼)】 이날 하객은 17인이었다.【정언 김계하(金啓河)·판서 이만
  • 649838

    3월. 1일. 새벽에 입궐하여 숙배하고, 여러 승지와 성정각(誠正閣)에 입시했다. 공사(公事)를 읽고 판부(判付)를 쓰라고 명했으며 이를 마치고 물러 나왔다. 이어서 동부승지 안책과 반직(伴直)했다. 집안에서 다례를 행하고 3위(位)의 신주(神主)를 고쳐 썼는데 참
  • 649839

    2일. 아버님이 승정원을 지나가다가 들르고 도총부에 입직했다. 승지 박서원(朴瑞源)·안책은 체차를 허락했고, 홍의호(洪義浩)·김종선(金宗善)이 낙점되었으며, 나는 동부승지로 좌차(座次)를 낮추어 부직하게 되었다. 곧 숙배하고 신시(申時)에 퇴청했다. 도총부 직차에
  • 649840

    3일. 새벽에 사진(仕進)했다.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전교하기를, “좌승지와 동부승지는 입시하라.” 하여, 나는 곧 홍의호(洪義浩)와 성정각(誠正閣)에 입시했다. 홍의호에게 전교를 쓰라고 명하여 말하기를, “‘경이 고향 집에 돌아간다는 것을 듣고 내 마음
  • 649841

    4일. 일찍 출발하여 비바람을 만났다. 두미강(斗尾江) 강변길을 지나 30리를 가서 봉안참(奉安站)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나루를 건너고 월계(越溪)를 지나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통해 어젯밤에 경성(京城)에서 도둑을 경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사실인지는
  • 649842

    5일. 닭이 울기를 기다려 곧 출발했다. 좌의정의 행차를 따라 20리를 가서 양근 읍내에서 아침을 먹었다. 50리를 가서 봉안참(奉安站)에서 점심을 먹고 전유 사관 서유순(徐有恂)의 행차를 만났다. 30리를 가서 평구참(平丘站)에서 말을 먹였다. 40리를 가서 저녁
  • 649843

    6일. 내가 행 부호군(行副護軍)에 부직되었는데 좌의정이 성 밖에 머물러 들어가지 않으니, 사관이 잇따라 나왔다. 승지는 먼저 들어오라는 명이 있어, 곧 입궐하여 들어가서 숙배하고 이어서 도총부 직차에 가서 배알했다. 아버님이 출직하여 모시고 간 뒤에 귀가했다. 영
  • 649844

    7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칭경 정시(稱慶庭試)를 행하고 이동사(李東師)·이영곤(李永昆) 등 7인을 뽑았다. 아버님이 시위(侍衛)로서 참석했다. 정사가 있었으며 나는 병조참의에 수의로 하비되었는데,【부의는 안책(安策), 말의는 박서원(朴瑞源)이니 모두 당상(堂上
  • 649845

    8일. 상피할 때 아래에 있는 사람이 체차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전례를 끌어다가 상소했고, 기신재계(忌晨齋戒)를 받들지 않고 승지 박종순·승지 홍희운(洪羲運)에게 가서 조문했다. 이날 하객은 3인이었다.【전적 신재명(申在明)·참판 윤동만(尹東晩)·직각 심상규(沈象奎)
  • 649846

    9일. 상소했으나 입계(入啓)되지 못했으므로 제수된 뒤 3일이 지나도록 나가서 숙배하지 않은 것이 되어 승정원이 종중추고(從重推考)하여 다시 패초할 것을 청했고 윤허했다. 곧 조방(朝房)에 나아가니, 패초를 어긴 데 대해 추고만 하라고 명했다. 이날 하객은 3인이었
  • 649847

    10일. 아침 일찍 소본(疏本)이 입계되었다.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본직을 체차하도록 하라.” 했다. 아버님이 도총관으로서 병이 있다고 기록하여 들여보냈다. 분부하기를, “실제 병이 있는가?” 하니, 병세가 억지로 참을 만하므로 내일 사진할 수 있다
  • 649848

    11일.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친림하여 생원 진사의 방방(放榜)을 행했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참석하여 백패(白牌)를 받았다. 새벽에 아버님을 모시고 통화문(通化門) 밖에 나아가 두 형님을 기다렸다가 나왔다. 전(殿)의 뒤에서 문에 이르러 다례(茶禮)와 고유제
  • 649849

    12일. 임금이 중희당(重熙堂)에 친림하여 생원 진사의 사은(謝恩)을 받았는데 두 형님은 참석하고 곧 돌아왔다. 내일 삼일제(三日製)를 행하는데, 내가 대독관(對讀官)에 말의로 들었다.【수의 조석중(曺錫中)을 하비(下批)했다.】 3일에 불었던 바람이 영동(嶺東)에서
  • 649850

    13일. 새벽에 기제(忌祭)를 지냈다. 생원 진사가 알성(謁聖)했는데 두 형님도 참석했다. 임금이 춘당대에 친림하여 삼일제를 행했는데, 두 형님이 이어서 과장(科場)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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