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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3일. 그대로 입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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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4일. 출직했다. 행 호군 김노충(金魯忠)이 죄수의 공초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이유로 상소하여 위태롭고 급박한 뜻을 아뢰었다. 답하기를, “경의 숙질(叔姪)이 문득 죄수의 공초에 들어갔으니 심히 뜻밖의 일이며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잘 알고 있고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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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5일. 소대를 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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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6일. 양사(兩司)에서 다시 홍이유 등에게 더욱 자세히 캐어묻도록 발계(發啓)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정배(定配)한 죄인 정대용(鄭大容)·임한호(林漢浩)를 풀어 주었다. 전 이조판서 서매수, 전 병조판서 김달순을 모두 서용하여 다시 전직(前職)에 제수했다. 칭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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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7일. 임금이 소대를 행했다. 형조의 계목에 의해 통문을 보낸 유생 김원희(金元喜)·정재민(鄭在民)·이영복(李榮復)·홍종익(洪宗益)은 모두 형장(刑杖)을 치고 도배(島配)했다. 우의정 김관주(金觀柱)·병조판서 김달순 등이 모두 공무를 행했다. 이날 정사에서 승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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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8일. 사국에 나아가 직숙했다. 공조에서 관찰사 3인을 천거했는데 아버님이 수의(首擬)로 천거 대상에 들었다.【부의(副擬)는 임육(任焴), 말의(末擬)는 윤문동(尹文東)이었다.】 공조판서는 이노춘(李魯春)이다. 집의 이기경(李基慶)이 상소하여 김노충(金魯忠)을 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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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9일. 출직하여 남촌(南村) 몇 곳에 갔다. 옥당 원재명(元在明)·신귀조(申龜朝)·이회상(李晦祥)·송면재(宋冕載)·신서(申漵)를 모두 체차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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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0일. 입궐하여 홍문관에 입직했다. 상번(上番)은 홍석주(洪奭周)였다. 신시(申時)에 임금이 관물헌(觀物軒)에 나아가 소대를 행했다. 옥당 홍석주·신현, 승지 김종선(金宗善), 각신(閣臣) 심상규(沈象奎), 가주서 박종훈(沈象奎), 사관 홍병철(洪秉喆)·김시근(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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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월. 1일. 그대로 입직했다. 능행(陵幸)을 어떻게 할지 여쭈니, 전교하기를, “이번 봄에 공손히 건릉(健陵)을 찾아뵈려 했는데 전(殿)과 궁(宮)에서 지속적으로 힘써 만류했다.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억누르고 우러러 청을 받들어 가을이 되기를 기다리려 하니 명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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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일. 비가 내림. 그대로 입직했다. 전교하기를, “구임 옥당 외에 모두 체차해 주겠다. 권준(權晙)·송지렴(宋知濂)도 체차한다.” 했다. 저녁에 대청(臺廳)에 가서 삼사(三司)의 합계(合啓)에 참여했다. 병조의 직차(直次)에 들러 참의 박윤수를 보았다. 양사(兩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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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일. 출직했다. 임금이 소대를 행했다. 옥당 전망 단자(前望單子)에 응교 김재창(金在昌), 부응교 윤행직(尹行直), 교리 이면승(李勉昇), 부교리 김회연(金會淵)·박종정(朴宗正), 수찬 송응규(宋應圭), 부수찬 이호민(李好敏)이 낙점(落點)되었다. 교리 홍석주(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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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4일. 의정부에 나아가 이의(肄儀)에 참여했다. 구전 정사(口傳政事)에서 아버님이 부총관 수의로서 하비되었다.【부의는 이상경(李尙慶), 말의는 조관진(趙觀鎭)이었다. 병조판서 김달순(金達淳)이 정사를 주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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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5일. 아버님이 입궐하여 부총관으로서 사은(謝恩)했다. 나는 향관(享官)으로서 재숙(齋宿)했다. 홍문관 대신(大臣)이 예조 당상을 거느리고 대왕대비의 존호를 청했으니 수렴청정을 마치고 나서 자애와 덕스러움이 더욱 빛났기 때문이다. 경재(卿宰)가 일제히 빈청(賓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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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6일. 그대로 재숙했다. 2품 이상이 일제히 빈청에 모여 자전(慈殿)의 존호를 올릴 것을 청하는 초계(初啓)를 내었다. 아버님이 입궐하여 동참하고 즉시 직소에서 나아가 배알했다. 정사가 있었는데 이조참판 김면주(金勉柱), 이조참의 박종래(朴宗來)가 주관했다. 아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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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7일. 임금이 사직에 거둥하니, 시신(侍臣)으로서 반열에 참여했다. 향소(享所)에 이르러 임금이 친히 희생(犧牲)과 기명(器皿)을 살펴보는 예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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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8일. 새벽에 임금이 친히 사직 춘향 대제(春享大祭)를 지내니, 제일위 집준(第一位執尊)으로 나아가 참석했다. 제향을 파한 뒤에 이어서 어가를 따라 시신으로서 입궐하고 도총부 직차(直次)에 나아가 배알하고 바로 나왔다. 빈청에서 재차 아뢰니 답하기를, “끊임없이 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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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9일. 아버님을 모시고 새벽에 입궐하여 다음날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나왔다. 아버님이 이어서 도총부에 가서 직숙했다. 예조에서 가상 존호(加上尊號)의 길일을 이달 28일 묘시(卯時, 오전 5~7시)로 택하여 들였다. 의금부의 초기(草記)로 인하여, 전 강진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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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0일. 일찍 입궐하여 선인문(宣仁門)에서부터 도총부 직차에 들어가 배알했다.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 관각 당상(館閣堂上), 삼사 장관(三司長官), 육조참판이 일제히 모여서 존호를 의논하여 ‘광헌(光獻)’ 두 글자로 입계(入啓)했다.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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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1일. 일찍 상호도감(上號都監)에 나아가니 당상과 낭관이 일제히 모였고 원역(員役)과 공장(工匠) 등이 일하기 시작했다.【1방(房)은 옥책(玉冊)을 만들고, 2방은 옥보(玉寶)를 만들고, 3방은 의장(儀仗)의 잡물을 고치거나 수선했다. 도감 소속은 녹사(錄事)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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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2일. 구전 정사(口傳政事)에서, 아버님이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수의로 하비되었다.【부의는 조관진(趙觀鎭), 말의는 신대현(申大顯)이었다. 이조판서 서매수(徐邁修)가 정사를 주관했다.】 당일 숙배하고 이어서 출직(出直)했다. 나는 일찍 도감에 나아갔다가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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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3일. 도목 정사(都目政事)에 이조판서 서매수, 병조판서 김달순이 참석했는데, 작년 말부터 이조·병조의 판서가 공무를 행하지 않다가 지금 비로소 설행한 것이다. 조고(祖考)를 이조참판에 예겸(例兼)으로 추증하라고 계하(啓下)했다. 정동관(鄭東觀)은 안동부사(安東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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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4일. 일찍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이교신(李敎信)이 체차되었다. 대교 회권(待敎會圈)·내각회권(內閣會圈)에서 직각(直閣)에 5점은 김매순(金邁淳), 4점은 오연상(吳淵常)·홍석주(洪奭周), 대교(待敎)에 5점은 박종훈(朴宗薰), 4점은 조석정(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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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5일. 일찍 도감에 나아가 의주(儀注)에서 대내로 들이는 것에 대한 내용을 수정했다.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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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6일.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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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7일.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수궁 대장(守宮大將)에 서매수를 낙점하고, 유도대신(留都大臣)에 이시수(李時秀)를 임명한다고 하교했다. 이기경(李基慶)의 상소로 인하여 홍이유(洪履猷) 등의 공사(供辭)를 반포하라고 하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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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8일. 도감에 나아가 오후에 도제조로 사진했다. 아버님이 입궐하여 도총부에 입직했다. 저녁에 나는 도감에서 돌아왔다가 바로 다시 입궐했다. 본관(本館)에서 청재(淸齋)하고 도총부에 나아가 배알하여 살피고 이어서 직차(直次)로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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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9일.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임금이 출궁하니, 아버님은 시위(侍衛)로서 반열에 참여했고, 나는 경연(經筵)으로서 반열에 참여하여 어가를 따랐다. 이날 임금이 창릉참(昌陵站)에 주정(晝停)하여 명릉(明陵)·홍릉(弘陵)에 나아가 친히 제사를 지냈으며 국내(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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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0일. 아버님이 그대로 입직하고, 나는 일찍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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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1일. 아버님이 그대로 입직하고, 나는 일찍 도감에 나아가 저녁에 돌아왔다. 의궤 낭청에 송흠시를 획출(劃出)했다. 다음 날 식년 감시(監試)·복시(覆試)의 시관에 1소(所)는 이집두(李集斗)·김면주(金勉柱)·장석윤(張錫胤)·박종순(朴鍾淳)·김회연(金會淵)·이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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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2일. 감시 회시의 초장(初場)을 설행했다. 일찍 도감에 나아갔다. 도제조 이하가 일제히 모여 정부(政府)에서 습의(習儀)를 행했고, 옥보(玉寶)·옥책(玉冊)·의장(儀仗)은 모두 일을 끝내 이어서 봉과(封裹)를 행했으며, 저녁에 파하고 돌아왔다. 아버님이 출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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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3일. 도감에 나아가 문부(文簿)를 마감(磨勘)했다.【호조는 미(米) 50석, 병조는 무명[木] 3동(同)에 또 4동이다. 대전(代錢) 400냥 내로 원역(員役)·공장(工匠)에게 요포(料布)를 지급하니, 전(錢) 260여 냥, 무명 20여 필, 미 8석이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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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4일. 감시 회시의 종장(終場)을 설행했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은 3소에 들어가 답안을 냈다. 시제는 ‘서의삼착(書義三錯)’인데 모두 100장 이내로 일찍 제출했다. 서수(書手) 권녕(權甯)은 글씨를 잘 쓰기로 칭송 받는 자인데 자신의 글씨만 못했기 때문에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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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5일. 교리 김매순이 상소를 올려 여러 옥당을 구제하고, 승지 남공철(南公轍) 등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삼사(三司)를 서용하지 않겠다는 명을 중지할 것을 청했다. 답하기를, “삼사의 여러 사람의 처분은 내 어찌 단서도 없이 그리 한 것이겠는가. 경들은 대간의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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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6일. 아버님이 직소에서 낮 근무의 초기(草記)를 하고 한성부 좌기에 나아갔다가 이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감시 회시의 방목(榜目)이 나왔다. 큰형님은 생원 3등 제16인에 들었고, 둘째 형님은 2등 제1인에 들었다. 조카 정문진(鄭文晉)도 방목에 들었는데 하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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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7일. 패초하는 계사에 대해 윤허했다. 즉시 조방(朝房)에 나아가 패를 바치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진사 김운순(金運淳)【김근순(金近淳)의 아우이다.】을 만났다. 패를 어겨서 추고만 하라는 명이 내렸다. 아버님이 출직했다. 하객은 9인이었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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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8일. 도감 당상·낭청 및 차비관(差備官)이 옥책(玉冊)·옥보(玉寶)를 받들어 모시고 입궐했다. 바로 직소에서 가서 참여하여 명정전(明政殿)에 이르니 임금이 친림하여 옥책·옥보를 받고 만녕문(萬寜門)을 통해 들어갔고 당상·낭청은 문밖에서 머물렀다. 대내에서 친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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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9일. 그믐. 옥권(玉圈)에 붉은 띠 차림으로 종묘에 전배(展拜)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새 진사 5인을 가서 만나보았다.【임승운(林昇運)·이형원(李衡遠)·임풍진(林豊鎭)·홍석모(洪錫謨)·오언의(吳彦誼)】 이날 하객은 17인이었다.【정언 김계하(金啓河)·판서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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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월. 1일. 새벽에 입궐하여 숙배하고, 여러 승지와 성정각(誠正閣)에 입시했다. 공사(公事)를 읽고 판부(判付)를 쓰라고 명했으며 이를 마치고 물러 나왔다. 이어서 동부승지 안책과 반직(伴直)했다. 집안에서 다례를 행하고 3위(位)의 신주(神主)를 고쳐 썼는데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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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2일. 아버님이 승정원을 지나가다가 들르고 도총부에 입직했다. 승지 박서원(朴瑞源)·안책은 체차를 허락했고, 홍의호(洪義浩)·김종선(金宗善)이 낙점되었으며, 나는 동부승지로 좌차(座次)를 낮추어 부직하게 되었다. 곧 숙배하고 신시(申時)에 퇴청했다. 도총부 직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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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3일. 새벽에 사진(仕進)했다.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전교하기를, “좌승지와 동부승지는 입시하라.” 하여, 나는 곧 홍의호(洪義浩)와 성정각(誠正閣)에 입시했다. 홍의호에게 전교를 쓰라고 명하여 말하기를, “‘경이 고향 집에 돌아간다는 것을 듣고 내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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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4일. 일찍 출발하여 비바람을 만났다. 두미강(斗尾江) 강변길을 지나 30리를 가서 봉안참(奉安站)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나루를 건너고 월계(越溪)를 지나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통해 어젯밤에 경성(京城)에서 도둑을 경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사실인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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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5일. 닭이 울기를 기다려 곧 출발했다. 좌의정의 행차를 따라 20리를 가서 양근 읍내에서 아침을 먹었다. 50리를 가서 봉안참(奉安站)에서 점심을 먹고 전유 사관 서유순(徐有恂)의 행차를 만났다. 30리를 가서 평구참(平丘站)에서 말을 먹였다. 40리를 가서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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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6일. 내가 행 부호군(行副護軍)에 부직되었는데 좌의정이 성 밖에 머물러 들어가지 않으니, 사관이 잇따라 나왔다. 승지는 먼저 들어오라는 명이 있어, 곧 입궐하여 들어가서 숙배하고 이어서 도총부 직차에 가서 배알했다. 아버님이 출직하여 모시고 간 뒤에 귀가했다.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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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7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칭경 정시(稱慶庭試)를 행하고 이동사(李東師)·이영곤(李永昆) 등 7인을 뽑았다. 아버님이 시위(侍衛)로서 참석했다. 정사가 있었으며 나는 병조참의에 수의로 하비되었는데,【부의는 안책(安策), 말의는 박서원(朴瑞源)이니 모두 당상(堂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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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8일. 상피할 때 아래에 있는 사람이 체차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전례를 끌어다가 상소했고, 기신재계(忌晨齋戒)를 받들지 않고 승지 박종순·승지 홍희운(洪羲運)에게 가서 조문했다. 이날 하객은 3인이었다.【전적 신재명(申在明)·참판 윤동만(尹東晩)·직각 심상규(沈象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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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9일. 상소했으나 입계(入啓)되지 못했으므로 제수된 뒤 3일이 지나도록 나가서 숙배하지 않은 것이 되어 승정원이 종중추고(從重推考)하여 다시 패초할 것을 청했고 윤허했다. 곧 조방(朝房)에 나아가니, 패초를 어긴 데 대해 추고만 하라고 명했다. 이날 하객은 3인이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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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0일. 아침 일찍 소본(疏本)이 입계되었다.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본직을 체차하도록 하라.” 했다. 아버님이 도총관으로서 병이 있다고 기록하여 들여보냈다. 분부하기를, “실제 병이 있는가?” 하니, 병세가 억지로 참을 만하므로 내일 사진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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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1일.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친림하여 생원 진사의 방방(放榜)을 행했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참석하여 백패(白牌)를 받았다. 새벽에 아버님을 모시고 통화문(通化門) 밖에 나아가 두 형님을 기다렸다가 나왔다. 전(殿)의 뒤에서 문에 이르러 다례(茶禮)와 고유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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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2일. 임금이 중희당(重熙堂)에 친림하여 생원 진사의 사은(謝恩)을 받았는데 두 형님은 참석하고 곧 돌아왔다. 내일 삼일제(三日製)를 행하는데, 내가 대독관(對讀官)에 말의로 들었다.【수의 조석중(曺錫中)을 하비(下批)했다.】 3일에 불었던 바람이 영동(嶺東)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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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삼(三) / 미상
13일. 새벽에 기제(忌祭)를 지냈다. 생원 진사가 알성(謁聖)했는데 두 형님도 참석했다. 임금이 춘당대에 친림하여 삼일제를 행했는데, 두 형님이 이어서 과장(科場)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