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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9851

    14일.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아버님이 한성부 좌기에 나아갔다.
  • 649852

    15일. 소분(掃墳)하러 가기 위해 올린 정사(呈辭)를 입계(入啓)하니 말미를 주었다. 문과 강경(文科講經) 시관(試官)에 부의로 들었는데, 이미 정사했으므로 현탈(懸頉)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이날 차대(次對)를 행했다.
  • 649853

    16일. 새벽에 입궐하여 하직(下直)하고 이어서 출발하여 사촌(社村)에 갔는데, 사익(士益)·흥철(興喆)이 따라왔다. 올해 아버님은 품계가 오르고 나는 가자되었으며, 두 형님은 나란히 사마시(司馬試)에 올랐다. 여러 경사가 한꺼번에 모여드는 것은 실로 드물게 있는
  • 649854

    17일. 이어서 사촌(社村)에 머무르며 성묘하고 제수를 살펴 검사했다. 이날 아버님이 새벽에 입궐하여 하직했다. 숙선옹주(淑善翁主)의 부마(駙馬)를 다시 간택했는데, 전교하기를, “전 정랑 홍인모(洪仁謨)의 아들 홍축길(洪丑吉), 진사 윤응렬(尹膺烈)의 아들 윤축경
  • 649855

    18일. 성묘하고 수촌(水村)에 가서 아사(雅士) 조운명(趙雲明)에게 조문했다. 우치(牛峙)로 향하여 계부님이 계신 곤암댁(昆巖宅)에 들러 배알하고 그대로 유숙했다. 이날 아버님의 행차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저녁에 산성(山城)에 머물렀다.
  • 649856

    19일. 일찍 우치에 가서 성묘하고 제수를 살펴 검사했다. 저물녘에 아버님과 숙부님, 두 형님의 행차가 산성에서 출발하여 경안(慶安)에서 점심을 먹고 우치에 도착했다. 익환(益煥)·천석(千石) 및 한성부의 종 9명이 산성에서 모시고 왔으며 악공(樂工) 6명이 따라왔
  • 649857

    20일. 큰산소 4위(位)에서 소분(掃墳)과 다례(茶禮)를 행했다. 장항(獐項)·곤암(昆巖)에서도 다례를 행하고 이어 우치로 돌아가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술과 안주를 주었다.
  • 649858

    21일. 우치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출발했다. 사촌(社村) 선산 아래에 도착하여 성묘하고 이어서 묘막(墓幕)으로 갔다.
  • 649859

    22일. 소분과 다례를 행하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술과 안주를 주고 종일 음악을 베풀었다. 이날 이시수(李時秀)는 다시 좌의정에 제수되고, 김달순(金達淳)은 이조판서에 제수되었으며, 이경일(李敬一)은 병조판서에 낙점되었다. 동지사(冬至使) 민태혁(閔台爀) 등이 들어
  • 649860

    23일. 아버님이 다시 출발하여 서울로 떠나니, 숙부님과 둘째 형님이 모시고 가서 저녁에 산성에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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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행차가 산성에서 일찍 출발하여 오후에 서울에 도착했고, 큰형님은 판교(板橋)로 출발했다가【판서 이조원(李祖源)이 판교에 머무는 중이었다.】 서울로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그대로 머물러 성묘하고 앞뜰에서 활쏘기를 연습했다.
  • 649862

    25일. 감기에 걸려 시름시름 앓아 그대로 사촌(社村)에 머물렀다. 이날 문과 회시(文科會試) 시관에 말의로 들었는데, 지금 지방에 있으므로 현탈(懸頉)했다.
  • 649863

    26일. 그대로 사촌에 머물렀다. 하루 종일 병을 앓았다.
  • 649864

    27일. 인마(人馬)가 서울에서 와서 성묘했다. 돌아가는 길에 회인현감(懷仁縣監) 김기희(金箕熙)에게 들러서 만나보고 이어서 서울로 출발했다. 저녁에 산성(山城)에서 묵었는데, 판관 이상정(李象鼎)이 와서 보았다. 김기희(金箕熙): 김기희는 1801년(순조 1) 7
  • 649865

    28일. 판관을 보고 출발하여 서장대(西將臺)에 오르고 이어서 서문(西門)으로 나왔다. 포시(晡時, 오후 4시)에 집에 도착하여 아버님을 뵈었다. 이날 좌의정 이시수가 입시하여 아뢰기를, “영동(嶺東) 6읍의 화재를 입은 호(戶)의 수는 관서(關西)에 비하면 조금
  • 649866

    29일. 그믐. 차대(次對)를 행했다. 아버님이 좌차(座次)로 좌윤에 올랐고 또 부총관에 말의로 들었다.
  • 649867

    1월. 1일. 임금이 효안전(孝安殿) 정조제(正朝祭)를 친히 행했다. 내가 동부승지로서 참석해서 술을 따르고 향로를 받들었다. 예식이 끝나자 어가(御駕)를 수행하여 돌아와서 대루원(待漏院)에 가서 묵었다. 새벽에 아버님이 문후하는 반열에 참석하기 위해 의막(倚幕)에
  • 649868

    2일. 새벽에 출근했다. 사알(司謁)을 통해 구두로 하교하기를, 󰡒우의정이 주청한 박치원(朴致遠)·윤재겸(尹在謙)이 당시에 올린 상서를 『정원일기(政院日記)』를 살펴보고 들여라.󰡓 했다. 󰡐살펴보니 윤이 올린 상서는 세초(洗草) 속에 들어 있고, 박이 올린 상
  • 649869

    3일. 사알을 통해 구두로 하교하기를, 󰡒박치원·윤재겸의 두 상서를 우의정으로 하여금 찾아서 들이게 함이 좋겠다.󰡓 했다. 오시에 여러 동료들과 공사(公事) 문서를 가지고 성정각(誠正閣)에 입시하여 각자 공사를 읽었다. 읽기를 마치니 판부(判付)를 썼다. 이 일
  • 649870

    4일. 새벽에 제사에 참석하는 일로 바로 출근했다. 사알을 통해 구두로 하교하기를, 󰡒우의정은 어찌 지금까지 두 상서를 찾아오지 않는가?󰡓 했다. 우의정 김달순(金達淳)이 그의 자손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한 곳을 널리 수소문하고 있다고 회주(回奏)했다. 오시에 여러
  • 649871

    5일. 오시에 여러 동료들과 공사문서를 가지고 성정각에 입시하여 공사문서를 읽어 아뢰었다. 나에게 전교를 쓰라고 명하기를, 󰡒10일 차대(次對)는 내일로 당겨 정하겠다.󰡓 했다. 이어서 물러가라고 명하니 차례로 나왔다. 우의정이 박·윤의 두 상서를 모두 봉해서
  • 649872

    6일. 진시에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차대를 행했다. 동부승지 신현(申絢), 가주서(假注書) 정원용(鄭元容)·이현장(李炫章), 기사관 서기수(徐淇修)·정관수(鄭觀綏), 영의정 서매수(徐邁修), 좌의정 한용귀(韓用龜), 우의정 김달순, 행 광주유수 이만수(李
  • 649873

    7일. 이인채가 또 이우도 마땅히 귀양 보내야 한다고 진소(陳疏)하니, 대신이 아뢴 대로 시행하라고 답했다. 아침에 어제 연석에서 한 말을 하교하기를, 󰡒이를 등사하고 오늘 조지(朝紙)에 반사하여 빨리 시행함이 좋겠다.󰡓 했다. 즉시 각사의 아전들을 불러들여 동
  • 649874

    8일. 새벽에 출근했다. 오시에 명을 받들어 성정각에 입시했다. 공사문서와 병조의 절목을 읽으라고 명하고, 이어서 전교 몇 장을 쓰라고 명했다. 즉시 물러나왔다. 2경(更) 1점(點)에 합문에 나아가서 어가를 수행하여 효안전에 나아갔다.
  • 649875

    9일. 새벽에 임금이 효안전의 춘향대제를 친히 행했다. 내가 울창주를 따르고, 향로를 받들고, 술을 따랐다. 예가 끝나자 어가를 수행하여 승정원에 돌아와 대루원에서 묵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다시 출근했다. 이날 정사에서 김근순(金近淳)을 부제학으로 삼았는데 심
  • 649876

    10일. 우부승지 이희갑과 함께 명을 받들어 성정각에 입시했다. 내가 아뢰기를, 󰡒내일 연주(練主)를 모시고 나아갈 때와 모레 우주(虞主)를 받들어 종묘(宗廟)에 나아갈 때 지송(祗送)하고 지영(祗迎)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예조에서 살펴볼 만한 등록이 없으므
  • 649877

    11일. 새벽에 출근했다. 진시(辰時, 오전 7시~9시)에 임금이 효안전에 나아가니 신하들이 어가를 수행하여 나아갔다. 친히 조상식(朝上食)을 행했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친히 주다례를 행하니 나아가서 참여하여 술잔을 따르고 향로를 받들었다. 신
  • 649878

    12일. 새벽에 임금이 친히 조곡(朝哭)을 행하고, 재전(齋殿)에 돌아가서 옷을 바꿔 입으니【연복(練服)】 백관들도 모두 옷을 바꿔 입었다.【천담복(淺淡服)】 예조의 복제를 전하께서 고쳤다. 의상(衣裳)【약간 거친 생포인데 가장자리를 깁고, 부판(負版)·벽령(辟領)
  • 649879

    13일. 새벽에 출근하여 익일 문안(翌日問安)에 참석했다. 오시에 우부승지 이희갑과 명을 받들어 성정각에 입시했다. 아뢴 공사를 낭독하기를 명했다. 낭독을 마치니 하교하기를, 󰡒재일(齋日)에도 전좌(殿座)를 하는가?󰡓 하여 내가 그 전례를 자세히 몰라서 입시한
  • 649880

    14일. 김선(金銑)이 연주서사관(練主書寫官)으로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2경 1점에 합문에 나아갔다가 바로 어가를 수행하여 효안전으로 들어갔다.
  • 649881

    15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망제(望祭)를 행하니 나아가 참석하여 술을 따르고, 향로를 받들었다. 예식이 끝나자 어가를 수행하여 승정원에 돌아왔다가 바로 나왔다. 감기로 고통스러워 현병(懸病)하여 승정원에 나아가지 않고, 패초를 청했으나 계사(啓辭)에 비답을 내려주
  • 649882

    16일. 패초를 청하는 계사에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 우의정 김달순의 대명(待命) 계사에 전교하기를, 󰡒경은 경의 견해를 바꾸려 하지 않고 나 또한 나의 지조를 감히 고치지 않은 탓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경의 넓은 도량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쓸 것이
  • 649883

    17일. 패초를 청하는 계사에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 대사간 신헌조가 상소하여 김달순을 논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했다. 부제학 서유구가 사직 상소하여 체직되었고, 김이도가 후임이 되었다.
  • 649884

    18일. 패초를 청하는 계사에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 이날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인일제(人日製)를 실시했다. 승정원에서 승지의 인원수를 갖추지 않을 수 없는데 신현을 패초하는 계사에 비답을 내리지 않았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뜻으로 들어가 여쭈었지
  • 649885

    19일. 패초를 청하는 계사에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 부제학 김이도의 체직을 허락하고, 정동관을 후임으로 삼았다. 대간 윤제홍·김처암(金處巖)은 현탈(懸頉)하여 합계(合啓)에 참석하지 않은 까닭에 유배 보내고, 황기천(黃基天)은 밖에 있다고 거짓으로 핑계를 대며 합
  • 649886

    20일. 첨지 이동형(李東馨)이 상소하여 김달순을 성토하고 박치원·윤재겸의 상소는 곧 김상로·홍계희가 사주하여 나온 것이라고 했다. 지금 박치원·윤재겸을 충신이라고 하여 포증(褒贈)을 한다면 김상로·홍계희의 흉계도 또한 충신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어 서영수(徐
  • 649887

    21일. 임금이 경모궁에 행차하여 춘전알(春展謁)을 행했다. 의금부에서 김달순을 홍주목에 중도부처하는 것과 이동형을 이원현에 귀양 보내는 일로 아뢰었다. 의금부에서 … 아뢰었다: 『승정원일기』에는 우부승지 한치응(韓致應)이 의금부의 말로 계한 내용 중에 하나는 삭출
  • 649888

    22일. 주강(晝講)을 행했다. 김달순을 삼사의 합계로 인해 멀리 길주목으로 귀양 보냈다. 김달순을 … 보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순조는 삼사의 합계에 대해 윤허하지 않고, 원래 계문대로 시행하라는 비답을 내렸다.
  • 649889

    23일. 주강을 행했다. 김달순을 경흥부의 지극히 먼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 장령 조수민의 상소에 답하기를, 󰡒김달순·이동형은 마음은 다르면서 행동은 같으므로 근래의 처분을 내렸으니 조정 신하들은 거의 모두 내가 고집하는 바를 알 것이다.󰡓 했다. 이날 아우 서
  • 649890

    24일. 주강을 행했다. 김달순은 삼사의 합계로 인해 남해현 절도에 안치되었다. 양사의 합계는 멀리 유배 보낸 죄인 이동형은 먼저 절도에 안치하는 법을 시행하자고 계청했으나,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았다. 이후의 계청이 모두 윤허 받지 못했다. 행 대호군 채홍리가 걸해
  • 649891

    25일. 영의정과 좌의정이 부주(附奏)하니, 엄한 비답을 내렸다. 부주(附奏): 임금의 유지(諭旨)에 대해 신하가 답하여 아뢰는 글이다.
  • 649892

    26일. 주강을 행했다. 삼사의 합계에 김달순에게 위리안치의 형전을 더하자고 청했는데 윤허하지 않았다. 이후에 연달아 계문을 올렸으나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큰형님이 사촌에서 돌아왔다.
  • 649893

    27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유생들의 도기(到記)를 행했다. 내가 대독관(對讀官) 부망(副望)에 들어갔는데 말망의 오연상(吳淵常)이 낙점되었다. 부(賦)의 수석은 생원(生員) 권비응(權丕應)이고, 강(講)의 수석은 유학(幼學) 정희조(鄭熙祚)이며 사제(賜第)했다
  • 649894

    28일. 대사헌 이의필(李義弼)이 상소하여 영의정 서매수가 징토(懲討)를 완만히 하고 기세를 도운 죄를 논핵하므로, 파직을 명하고 이익모(李翊模)를 후임으로 삼았다. 종씨 위(緯)가 용강 현령(龍崗縣令)이 되었다. 이날은 명해의 혼례이므로 가서 보고 돌아왔다. 위(
  • 649895

    29일. 관록의 일로 엄한 하교가 내려졌다. 도승지 조득영이 이조참판에 제수되고, 영의정과 좌의정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갔다.
  • 649896

    30일. 영의정 서매수를 허부(許副)했다. 허부(許副): 정승의 사임을 허락하는 것이다.
  • 649897

    2월. 1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삭제(朔祭)를 행했다. 전교하기를, 󰡒지난번 한 통의 상소는 큰 의리를 수립했다고 할 만하다. 이제 천명하는 날을 맞아 어찌 발탁하는 특별한 거조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조참판 조득영을 병조판서에 제수하라.󰡓 했다. 병조판서 김
  • 649898

    2일. 홍시부가 또 대청(臺廳)에 나아가서 이익모의 일을 극렬히 논했다.
  • 649899

    3일. 황기천이 고금도(古今島)로 이배(移配)되었다.
  • 649900

    4일. 부제학 정동관, 응교 김계렴(金啓濂), 부응교 여동식(呂東植), 부수찬 이면구(李勉求), 수찬 김상휴 등이 관록에서 불화가 생긴 일로 모두 경기의 연해로 귀양 보내라고 명했다. 계부님이 곤암(昆巖)에서 왔는데 아우 관(綰)도 따라왔다. 계부님이 …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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