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4990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5일. 양사에서 신계(新啓)하여 이익모・장석윤(張錫胤)을 모두 외방으로 멀리 귀양 보내라고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신계(新啓): 사간원이나 사헌부에서 죄인의 죄상(罪狀)를 들어 임금에게 아뢰는 문서를 말한다. 장석윤(張錫胤): 1764~미상. 본관은 덕수(德水) -
64990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6일. 좌의정 한용귀의 상소로 인하여 이인채(李寅采)는 명천(明川), 이정륜은 희천(熙川)으로 귀양 보냈고, 서형수는 흥양(興陽)으로 귀양 보냈다. 정언 임한이 상소하여 서형수가 지난달 6일 연석에서의 이야기를 고치려고 도모하는데 서유순(徐有恂)·서기수가 그를 위해 -
64990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7일. 진하사 서용보(徐龍輔), 부사 이시원(李始源), 서장관 윤상규(尹尙圭)가 들어왔다. 판부사 서매수가 부주(附奏)하기를, 정신이 어둡고 가물거려 잘 알아듣지 못한 것이 더욱 심했습니다. 당일에 연석에서 하신 하교도 번번이 입시한 승선(承宣)에게 물어보고 나 -
64990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8일. 양사에서 계문을 올리기를, 이익모는 김달순과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고 피로써 맹세한 무리이니, 김달순이 처음의 연석에서 아뢸 말에 대해 낭자하게 부응했습니다.라고 내용을 고쳐서 위리안치의 형벌을 시행하기를 청했다. 신계(新啓)하기를, 서형수는 역적 -
64990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9일. 홍문관의 회권(會圈) 권점으로 19인을 뽑았다.【3점은 권식(權烒)·홍희준(洪羲俊)·임천상(任天常)·김계하(金啓河)·신재명(申在明)·한긍리(韓兢履)·조양진(趙良鎭)·이태순(李泰淳)·박종신(朴宗臣)·김렴(金鐮)·서유망(徐有望)·홍면섭(洪冕燮)·홍대호(洪大浩)· -
64990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일. 행 부호군 신현이 올린 상소의 대락적인 내용은 감히 놀랍고 황송한 마음을 아뢰어 살펴주시는 은혜를 입기를 바라는 일로 입계(入啓)했다. 상소에 이르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삼가 전 영의정 서매수의 부주를 살펴보건대, 문득 1월 6일 연본의 일을 거론 -
64990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1일.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의 초장(初場)을 치렀다. 양쪽에서 동문이 열릴 때 여러 시관과 함께 이소에【비선당(丕闡堂)】 들어가서 과장을 열었다. 부제(賦題)는 당(堂)에 올라 청묘의 시를 노래 부른다.[升歌淸廟.]이고, 표제(表題)는 주나라가 문왕 -
64990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2일. 여러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했다. 판부사 서매수가 방향을 돌려 지평(砥平)으로 갔다. 서유순·서기수는 연본을 고치려고 도모했던 일로 의금부에서 심리를 받고 공초를 바쳤는데 서로 책임을 미루었다. 판부(判付)에 두 사람을 다시 엄히 심문하여 구초(口招)를 -
64990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3일. 별시의 종장을 치렀다. 책제(策題)는 심법(心法)이다. 시권 8백여 장을 거두었다. 큰형님이 부모님을 모시는 처지로 인해 곁을 떠나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이조에 정장(呈狀)을 올려 장릉 참봉에서 체직되었다. 주서 정원용과 한림 정관수가 당 -
64991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4일. 여러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했다. 밤이 되어 정사가 있었으니, 내가 형조참의 부망에 들었다.【수망 이문회(李文會)가 되었다.】 윤광렬(尹匡烈)이 장릉 참봉이 되었다. 이문회(李文會): 1758~1828.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주경(主卿)이다. 공조 -
64991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5일. 여러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했다. 밤이 되어 편차를 마쳤다. 영의정 이병모가 사은숙배했다. 이날 차대를 행했다. 영의정이 연석에서 김달순·이동형의 일을 청하니 김달순을 신지도(薪智島)에 이배하여 천극(荐棘)하고, 이동형은 절도에 안치하라고 명했다. 삼사가 -
64991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6일. 종일 비가 내림. 이른 아침에 방문(榜文)이 나왔고 오후가 되어 마쳤다. 여러 시관과 함께 대궐에 나아갔다가 바로 퇴근해서 돌아왔다. 정릉(靖陵)의 한식제(寒食祭) 헌관(獻官)에 차정되어 곧바로 소정동(小貞洞) 압도계(鴨島契) 도가(都家)에 나가서 재계했다 -
64991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7일. 새벽에 대궐 아래로 나아가서 향을 받아 정릉으로 나아갔다. 한강에 이르러 세찬 바람을 만나 건너지 못하고 강을 따라 내려와 노량(鷺梁)의 주교(舟橋)를 통해 건너고 다시 강을 따라 올라갔으니 60여 리를 우회한 것이다. 저녁이 되어 향소(享所)에 도착했다. -
64991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8일. 새벽에 정릉 한식제를 행했다. 날이 밝은 후에 출발하여 대궐에 나아갔다. 제사를 물리고 난 음식을 나누어 주는 곳에 갔다가 바로 귀가했다. 이날 김달순에게 가극해야 한다는 일로 계문하니 계문한대로 처리하라 했다. 양사에서 이동형에게 천극의 형벌을 시행하기를 -
64991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9일. 임금이 건릉(健陵)과 현륭원(顯隆園)으로 행차했다. 나는 군직으로 배종함에 융복(戎服)을 갖춰 입고 노량에 나아가서 반열을 맞추어 기다렸다. 묘정(卯正) 3각(刻)에 임금이 궁문 앞을 나가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으로 출발하여 잠시 머물다 바로 출발했다. 신 -
64991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0일. 묘시에 임금이 건릉에 나아가서 전배(展拜)하고 친제(親祭)하고, 이어서 현륭원에 나아가서 전배하고 친제한 뒤에 화성행궁에 돌아왔다. 신하들이 어가를 수행하여 반열에 참여하고 물러나 사차(私次)로 돌아왔다. -
64991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1일. 진시에 임금이 화령전(華寧殿)에 나아가 전배하고 작헌례를 행한 뒤에 행궁으로 돌아왔다. 신하들은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서 반열을 갖추어 장안문 안에서 기다렸다. 서용보가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신시에 대가가 출발하니 신하들이 차례로 어가를 수행했다. 밤 2경에 -
64991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2일. 묘시에 임금이 시흥 행궁에서 출발하니 신하들이 차례로 배종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에 이르러 조금 쉬었다. 아버님이 지영하러 강가에 와서 즉시 진배(進拜)했다. 오시에 대가가 출발하여 관왕묘(關王廟)를 둘러보고 저녁에 환궁했다. 수행했던 여러 신하들이 -
64991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3일. 판부사 한용귀가 광주로 갔다. -
64992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4일. 큰형님이 사촌에서 돌아왔다. -
64992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5일. 주강을 행했다. -
64992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6일. 이조판서 김사목이 사직 상소를 올려 체직되었다. -
64992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7일. 사학(四學) 유생들이 상소하여 역적을 토벌할 것을 아뢰었는데 물러가서 학업을 닦으라고 답했다. -
64992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8일. 대사헌 이의필이 심환지가 김달순 등의 흉악한 와주(窩主)라고 상소했다. 답하기를, 이 대신의 그때의 일은 이러니 저러니 논할 것 없이 이미 원상(院相)을 지낸 노고가 있고, 또 고인이 되었으니 어찌 추후에 거론할 필요가 있겠는가. 했다. 원상(院相) -
64992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9일. 대간 신헌조가 이노춘(李魯春)이 김달순・서형수 등의 와주라는 뜻으로 상소했다. -
64992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30일. 성을 올라 꽃을 감상했다. 옥당과 양사에서 상소하여 심환지 등의 죄상을 논핵했다. -
64992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3월. 1일. 북촌(北村)에 가서 꽃을 감상했다. 이날 소대(召對)를 행했는데 대간 신헌조가 또 갑자년(1804년, 순조 4) 권유(權裕)의 옥사가 있을 때 한 위관(委官)의 일로 상소했다. 신헌조에게 서용에서 배제하는 형벌을 시행하라고 명했다. 소대(召對): 왕명 -
64992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일. 숙부님의 회갑이다. 집안에서 작은 술상을 마련하여 남양의 숙부님, 벽동의 족숙과 판서 한만유, 판서 박종래, 선산 부사 이영수(李英秀), 삼가 현감 박헌원(朴獻源), 광주 판관 박정규(朴正圭)와 종중의 몇 사람이 와서 참석했다. 종일 비가 내렸는데 저녁이 되 -
64992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3일. 정언 박영재(朴英載)가 상소하여 심환지의 여섯 가지 대죄를 논핵하니, 박영재를 삭직하라고 명했다. 신헌조가 한 위관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 신헌조에게 물어서 아뢰라고 명하니, 김관주로 우러러 대답했으나 사실대로 실토하지 않았으므로 신헌조를 삭출(削黜)하라고 명 -
64993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4일. 정사에서 내가 성균관 대사성[泮長]의 말망에 들었다. 계부님이 곤암으로 출발했다. -
64993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5일. 관학 유생들이 상소하여 역적을 토벌해야 한다고 하니, 물러가서 학업을 닦으라고 답했다. -
64993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6일. 삼사에서 신계하여 고 영의정 심환지에게 먼저 관작을 추탈(追奪)하는 형벌을 내리고, 판부사 김관주에게 먼저 관작을 삭탈하고 문외출송하는 형벌을 내리기를 청했다. 양사에서 신계하여 고 참판 정일환(鄭日煥)에게 먼저 관직을 추탈하는 형벌을 내리고,【심환지에게 몸 -
64993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7일. 저녁에 압도(鴨島)의 도가(都家)에 가서 재계했다. 내가 천조관으로 예비 차비관이 되었으니 이에 이르러 실직에 오른 것이다. -
64993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8일. 재계하는 곳에 있었다. -
64993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9일. 새벽에 황단(皇壇)에 나아갔는데 종일 비가 내렸다. 내일 별시 전시(別試殿試)의 관원에 내가 부망에 들었다. 저녁에 승지의 전망(前望)으로 이호민과 내가 낙점되었다. 이때에 도승지 서미수(徐美修)·좌승지 신기(申耆)·우승지 김종선(金宗善)·좌부승지 이호민(李 -
64993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일. 새벽에 황단제(皇壇祭)를 행했다. 나는 천조관으로 세 위패에 조두(俎豆)를 바쳤다. 예식이 끝나자 바로 나와서 대루원에서 묵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입궐해서 동부승지로 사은숙배했다. 이날 춘당대에 친림하여 문무관의 중시(重試)와 문무과 별시 전시를 설행 -
64993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1일. 양사(兩司)의 합계(合啓) 가운데 이노춘(李魯春)을 도배(島配)하고 장석윤을 안치하는 일에 대해 아뢴 대로 하라고 했다. 오시(午時)에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 주강을 행했는데, 지사(知事) 조득영, 특진관(特進官) 이진복(李鎭復), 승지 신현, 옥당 조진화 -
64993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2일. 궐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식가(式暇)를 받아 나왔다. 이노춘은 거제부(巨濟府)에 도배(島配)되었고, 장석윤은 고금도에 절도 안치(絶島安置)되었다. 이날 소대를 행했다. 식가(式暇): 집안의 시제(時祭)나 기제(忌祭)를 지내야 하는 관원에게 주는 휴가를 가리킨 -
64993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3일. 새벽에 기제사를 지내고 나서 식가로 인해 집에 있었다.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친림하여 서총대(瑞蔥臺) 시사(試射)를 설행했다. 승지와 사관에게 활쏘기에 응할 것을 명했으나 나는 식가로 들어가지 않았다. 기제사: 신현의 어머니인 연일정씨(延日鄭氏)의 기제 -
64994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4일. 새벽에 기제사를 지내고 나서 출근하여 좌부승지 이호민과 함께 숙직했다. 저녁에 어가를 수행하여 효안전에 나아갔다. 기제사: 신현의 현조비(玄祖妣)인 신여석(申汝晳)의 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의 기제사이다. -
64994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5일. 새벽에 임금이 친히 효안전 망제를 행했는데, 나는 술을 받아 술잔을 신위 앞에 올렸다. 예를 마치고 어가를 수행하여 승정원으로 돌아왔다. 동지사(冬至使)가 돌아왔는데, 정사(正使) 이시수(李時秀)는 형편상 곧바로 과천(果川)으로 가고,부사(副使) 이보천(李 -
64994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6일. 도승지와 좌승지의 체직이 허락되었다. 나는 좌부승지 이호민(李好敏)과 함께 숙직했다. 도승지와 좌승지: 도승지는 서미수(徐美修), 좌승지는 신기(申耆)였다. -
64994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7일. 좌부승지와 함께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권정례(權停禮)로 중시(重試) 및 별시(別試)의 방방의(放榜儀)를 거행하고, 즉시 승정원으로 돌아왔다. 공충 병사(公忠兵使) 임재수(林栽洙)와 경상 좌수사(慶尙左水使) 이회식(李晦植)이 하직(下直)했는데, 입시하라는 -
64994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8일. 향실(香室)에 나아가 선무사(宣武祠) 절제(節祭)의 향을 전하고 나서 명을 받고 선무사에 나아가 봉심(奉審)과 적간(摘奸)을 마쳤다. 아버님과 큰형님, 둘째 형님이 성 위에 와서 나아가 인사를 드린 뒤에 들어왔다. 임금이 바야흐로 희정당에 거둥하여 친히 중 -
64994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9일. 새벽에 정 매의 제사에 참여하고 바로 출근했다. 진시(辰時)에 황단(皇壇)에 나아가 황단 위와 경봉각(敬奉閣)을 봉심했다. 경봉각 안에는 족자[障子] 4개가 봉안되어 있는데, 대명(大明)의 태조(太祖)·선종(宣宗)·의종(毅宗) 세 조정의 어필(御筆)과 선종 -
64994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0일. 새벽에 출근했고, 그대로 동부승지 오연상과 함께 숙직했다. -
64994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1일. 이어서 좌부승지 박종정과 함께 숙직했다. -
64994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2일. 우승지 이호민이 예조참의로 옮겨 임명되고, 권상신(權常愼)이 그 후임이 되었다. 이날 양사(兩司)에서 신계하여 전 장령 조수민에게 원찬(遠竄)하는 형벌을 시행하기를 청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했다. 서형수에게 아첨하고 김달순에게 아부한 죄 때문이었다. 이어 -
64994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3일. 동부승지 오연상이 권상신과 친사돈의 혐의가 있어서 사직 상소를 올려 체직되었고, 한흥유(韓興裕)가 후임이 되었다. 좌승지 김재창이 체차되고, 민명혁(閔命爀)이 우부승지로 낙점되었으며, 권상신은 좌승지로 승진하고 박종정은 우승지로 승진했으며, 나는 좌부승지로 -
64995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4일. 새벽에 출근하여 좌부승지로서 사은하고, 그대로 우승지 박종정과 함께 숙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