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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00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8일. 정동관이 도승지가 되었다. 대신(大臣)이 연명으로 차자(箚子)를 올려 김일주에 대해 국청을 열기를 청했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
65000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9일.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판부사 홍억(洪檍) 등 2품 이상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김한록의 처자식을 처형할 것과 김일주에 대해 국청을 열 것을 청했다. 예조의 직방(直房)에서 상소를 작성했는데, 아버님이 들어가 참여했다. 이조참의 오연상 등 3품 이하가 사도서( -
65000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0일.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양사(兩司), 승정원이 또 차자와 계사를 올렸는데,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김한록의 서자 김필주(金弼柱)와 김인주(金寅柱), 조카 김화주(金華柱) 등을 모두 절도(絶島)에 안치했다. -
65000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2일. 의금부 당상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김한록의 손자들을 찬배할 것을 청했는데, 그대로 시행하도록 했다. -
65000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3일. 역적 김한록의 손자 김노형(金魯亨)·김노정(金魯鼎)·김노련(金魯連)을 모두 극변(極邊)에 찬배했다. -
65000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4일. 김희순이 대사헌이 되었고, 김선이 대사간이 되었으며, 신기가 병조참판이 되었다. -
65000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5일. 차대에서, 양사(兩司)가 다시 김일주에 대해 처음 내린 전교대로 국청을 열 것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응교 여동식(呂東植)과 교리 김계온이 들렀다. -
65000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6일. 옥당의 전망(前望) 단자로 김이교(金履喬)를 낙점했다. 김이교(金履喬): 1764~1832.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세(公世), 호는 죽리(竹里),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예조판서·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1800년 6월에 순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 김 -
65000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7일. 아무 일 없었다. -
65001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8일.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도당록(都堂錄)의 회권(會圈)에서 6점을 받은 사람 32인을 뽑았다.【홍시부・홍의영(洪儀泳)・박효성・권식・한기유(韓耆裕)・이윤겸(李允謙)・홍희준・윤치영(尹致永)・김계하・이석호(李錫祜)・임준상(任俊常)・임천상・신재명・조민화(趙民和)・한 -
65001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9일. 그믐. 「곽광전(霍光傳)」을 2번 읽었다. -
65001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6월. 1일. 「곽광전」을 3번 읽었다. -
65001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일. 「곽광전」을 2번 읽었다. -
65001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3일. 「곽광전」을 3번 읽었다. 승지 조윤수, 승지 엄기, 승지 송면재, 교리 안정선과 함께 수어청에 가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저녁에 돌아왔다. 전교하기를, 전 판서 이조원(李祖源)과 참판 심기태(沈基泰)는 모두 직첩(職牒)을 돌려주고, 참판 김이익(金履翼)과 -
65001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4일. 「김일제전(金日磾傳)」을 5번 읽었다. -
65001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5일. 차대를 행했다. 「조충국전(趙充國傳)」을 2번 읽었다. -
65001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6일. 「조충국전」을 2번 읽었다. -
65001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7일에서 9일. 「조충국전」 읽기를 10번 채웠다. -
65001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일. 「신경기전(辛慶忌傳)」을 10번 읽었다. 아버님과 큰형님, 둘째 형님을 모시고 신문(新門) 밖에 가서 연꽃을 감상했는데, 두 아이가 따랐으며 박 중실이 와서 모였다. 저물녘에 그대로 중실의 집에 갔다가 저물고 나서 돌아왔다. -
65002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1일. 「부개자전(傅介子傳)」과 「상혜전(常惠傳)」을 5번 읽었다. -
65002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2일. 「정길전(鄭吉傳)」과 「감연수전(甘延壽傳)」을 5번 읽었다. -
65002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3일. 「진탕전(陳湯傳)」을 1번 읽었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을 모시고 임 이모(林姨母)의 생신에 가서 인사했다. 임 이모(林姨母): 임씨(林氏) 집에 시집간 이모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후일(鄭厚一)과 두 번째 부인 전주 류씨(全州柳氏) 사이에는 1남 3녀가 -
65002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4일. 「진탕전」을 2번 읽었다. 수찬 김이교가 상소하여 김한록에 관한 일의 본말을 아뢰었는데, 답하기를, 흉계가 저와 같이 두려운데, 대의(大義)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그대 집안사람 덕분이다. 운운. 했다. -
65002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5일. 차대가 있었다. 고(故) 부제학 김시찬(金時粲)은 이조판서로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으며,【김한록 무리를 엄히 물리쳤기 때문이다.】 수찬 김이교는 자급(資級)을 올려주었다.【김시찬의 손자로서 그 의론을 대대로 지켰다.】 이날 전망(前望) 단자로 김이교를 승지에 -
65002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6일. 「진탕전」을 3번 읽었다. 태화정(太華亭)에 가서 연꽃을 감상하고 돌아왔다. 대신(大臣)이 김귀주의 일로 차자를 올렸는데, 답하기를, 경들은 조급하게 굴지 말라. 내가 천천히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볼 것이다. 운운. 했다. -
65002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7일. 「진탕전」을 2번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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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8일. 아버님이 탄신(誕辰) 문후하는 반열에 참석했다. 나는 승지 박종경(朴宗京), 승지 박종순(朴鍾淳), 승지 송지렴(宋知濂), 교리 안정선, 정언 홍희준과 함께 신문(新門) 밖에 가서 연꽃을 감상하고 나서 중포(中布)에 활쏘기를 연습했는데, 10순(巡) 가운데 -
65002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9일. 「진탕전」을 2번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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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0일. 승지 박종순이 들렀다. 삼사(三司)가 합사(合辭)했다. 이날부터 날마다 김귀주의 일에 대해 계사를 냈지만,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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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1일. 오랫동안 가뭄이 들어, 이날 삼각산(三角山), 목멱산(木覓山), 한강(漢江)에 당하(堂下) 3품관을 보내 1차 기우제를 지냈다. -
65003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2일. 도목정사를 행했으며, 이조판서 박종래와 병조판서 조득영이 참석했다. 판부사(判府事) 홍억 등이 김귀주의 일에 대해 연명으로 상소했는데, 아버님이 들어가 참여했다. 답하기를, 경들은 요사이 합사(合辭)에 대한 비답을 보지 못했는가? 했다. 이조참의 오 -
65003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3일. 동촌(東村)에 갔다가 그길로 응교 여동식과 함께 장용영(壯勇營)으로 걸어가서 연꽃을 감상하고 저녁에 돌아왔다. 승지 박종경이 들렀다. 함경도관찰사 민태혁(閔台爀)이 파직되었다. 「준불의전(雋不疑傳)」과 「소광전(疏廣傳)」을 5번 읽었다. -
65003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4일. 용산강(龍山江)과 저자도(楮子島)에 재신(宰臣)을 보내 2차 기우제를 지냈다. 비가 조금 내렸다. 「우정국전(于定國傳)」을 5번 읽었다. 목릉(穆陵) 기신제(忌辰祭)의 헌관으로 차출되었는데, 병 때문에 즉시 탈하(頉下)했다. 이만수가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
65003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5일. 차대가 있었다. 삼사가 김귀주의 일로 계속해서 합사한 계에 대해 이날 아뢴 대로 하도록 했다. -
65003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6일. 전 정언 원유붕(元有朋)이 상소하여, 그 조부와 역적 김귀주는 외숙과 생질의 의리가 있지만 당시 그의 흉측한 논의를 엄히 물리쳤다고 운운했다. 또 역적 김귀주가 빈궁(嬪宮, 혜경궁 홍씨)을 핍박하며 기사년(1689년, 숙종 15)의 남은 논의를 함부로 말했 -
65003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7일. 남단(南壇)과 우사단(雩祀壇)에 재신(宰臣)를 보내 3차 기우제를 지냈다. 이날 이후로 연이어 비가 내려서 정지했다. -
65003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8일. 문 밖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
65003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9일. 그믐. 큰형님이 사촌으로 행차했다. 서유기에게 공초를 받았는데, 의금부에서 국문(鞫問)할 것을 명했다. -
65003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7월. 1일. 임금이 직접 효안전 삭제를 지내고, 겸하여 역적 김귀주의 관작을 추탈한 일을 고유(告由)했다. 이날 「설광덕전(薛廣德傳)」과 「평당전(平當傳)」을 5번 읽었다. -
65004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일. 임금이 직접 효안전 추향제(秋享祭)를 지냈다. 이날 「팽선전(彭宣傳)」을 5번 읽었다. -
65004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3일. 의금부에서 국문(鞫問)한 죄인 서유기의 공초에, 사인(士人) 이완준(李完峻)이 지은 상소이고 그가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고 운운했다. 이완준에게 형조의 포교(捕校)를 보내 진술을 받아서 들이라고 명했다. -
650042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4일. 이완준의 구초(口招)에 대해 판부하기를, 조부를 위해 원통함을 호소하는 마음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것에 대해 상언(上言)이나 격쟁(擊錚)을 하지 않고 도리어 남을 사주하여 상소하게 한 것은 떠보려는 죄과로 자연스레 귀결된다. 더구나 최익남은 아 -
65004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5일에서 7일. 아무 일 없었다. -
65004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8일. 윤치영 등의 공사(供辭)에 대해 판부하기를, 갑자기 공초를 바꾼 것은 분명 간악한 마음이 있는 것이니, 우선 엄히 형추하여 속속들이 밝혀내라. 운운했다. -
650045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9일. 「왕길전(王吉傳)」을 3번 읽었다. -
650046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일. 「왕길전」을 3번 읽었다. 윤치영을 추가로 형추하여 공초를 받은 계사에 대해 판부하기를, 이 죄수의 간교함이 갈수록 심하며, 피해 나가려고 꾸며대는 말이 아님이 없다. 스스로 세 가지 죄를 칭한 것은 더욱 고약하고 오만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엄히 -
65004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1일. 「왕길전」을 4번 읽었다. 큰형님이 사촌에서 돌아왔다. 윤치영에게 다시 공초를 받은 계사에 대해 판부하기를, 편지를 보내 권한 한 가지 일을 반드시 이우진이 했다고 한 것은 필시 숨긴 실정이 있을 것이니, 다시 엄히 신문하라. 이우진도 똑같이 엄히 신문 -
65004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2일. 「공우전(貢禹傳)」을 2번 읽었다. 지평 권홍(權{亻+弘})이 상소하여 홍희운이 정일환과 김달순에게 빌붙은 죄를 처벌할 것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65004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3일. 「공우전」을 2번 읽었다. 윤치영을 추가로 형추하여 다시 공초를 받은 계사에 대해 판부하기를, 이 죄수의 공사(供辭)가 갈수록 변덕스럽고 허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 번이나 그 말을 바꾸었는데, 최초에는 이우진이 그를 상대로 수작 -
65005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5일. 임금이 직접 효안전 망제를 지냈다. 이날 가묘(家廟)에 햅쌀을 천신(薦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