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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0051

    16일. 오은군(鰲恩君) 이경일(李敬一)이 상소하여 치사(致仕)하기를 청했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내일 추도기(秋到記)의 강경(講經) 시관에 이시수·김희순·신현·민명혁·윤우열·박종신을 낙점했다. 치사(致仕): 70세가 되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제도이다. 당상관
  • 650052

    17일. 임금이 인정전에 친림하여 추도기를 설행했다. 나는 시관으로서 들어가 참석하여 유생에게 강(講)을 받고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북인(北人) 김석홍(金錫洪)이 수석을 차지하여 사제(賜第)했다. 제술(製述)에서 수석을 차지한 김정원(金鼎元)에게도 사제했다. 곧바로
  • 650053

    18일. 큰형님이 지사(地師) 김경인(金景寅)을 데리고 사촌으로 갔는데, 새 산소의 재혈(裁穴)을 위해서였다. 재혈(裁穴): 하관(下棺)을 하기 위해 생기(生氣)가 흐르는 지맥을 정확하게 정하는 행위이다.
  • 650054

    19일. 동문(東門) 밖에 나가 함경도관찰사를 송별했다. 동문(東門) … 송별했다: 6월 24일 함경도관찰사에 임명된 이만수(李晩秀)는 7월 19일에 하직했다.(『승정원일기』)
  • 650055

    20일. 이날부터 연이어 주강을 행했다.
  • 650056

    21일. 죽은 아내의 이장(移葬) 때문에 올린 정사(呈辭)를 입계하자 말미를 주었다.
  • 650057

    22일. 새벽에 입궐하여 하직하고 나왔다.
  • 650058

    23일. 아무 일 없었다.
  • 650059

    24일. 새벽에 명호(命濩) 및 백소(伯素)와 함께 사촌으로 가는 길을 출발했다. 해천(蟹川)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사촌에 도착하여 큰형님에게 인사하고 나서 유숙했다. 명호(命濩): 신현의 아들 신명호(申命濩, 1790~1851)이다. 백소(伯素): 신대리(申大
  • 650060

    25일. 비가 내림. 성묘했다.
  • 650061

    26일. 명호 및 백소와 함께 곤암(昆巖)에 가서 계부님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우치(牛峙)에 가서 성묘했으며,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다시 곤암에 가서 무덤을 파냈다. 날이 저물고 나서 우치의 묘사(墓舍)에 돌아와 잤다. 이날 유시에 새 산소 또한 흙을 파냈
  • 650062

    27일.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림. 곤암의 묘에 가서 관을 들어냈는데, 계부님과 큰형님이 왔다. 무덤의 구덩이에는 벌레와 물로 인한 피해가 조금 있었다. 이어서 운구(運柩)하여 저녁에 두동(斗東)의 서덕관(徐德寬) 집에 도착하여 관을 멈추었다. 그리고 명호와 함께 두
  • 650063

    28일. 칠(漆)을 시작했는데, 위아래 우판(隅板)에 틈이 벌어진 곳은 칠포(漆布)를 썼다. 산역(山役)을 시작하여, 밥을 먹은 뒤에 성묘하고 나서 산역을 보았다. 저녁에 두동으로 돌아왔다. 우판(隅板): 관의 양쪽 마구리에 대는 널조각이다. 칠포(漆布): 관위에
  • 650064

    29일. 그믐. 종일 비가 내림. 사촌에 가서 신대술과 백소 및 지사(地師) 성욱(性郁)과 함께 새 산소에 올라 개금정(開金井)하고, 손좌건향(巽坐乾向, 서북향)에 진(辰, 남동)으로 분금(分金)했다. 이어서 신 생(申生)과 함께 두동으로 돌아왔다. 이날 이조판서
  • 650065

    8월. 1일. 흐리고 간혹 비가 내림. 하례(下隷) 하나를 서울에 보냈고, 신대술은 방향을 바꾸어 양지(陽智)로 갔다. 궤연(几筵)에 초하루 차례를 지냈는데, 큰형님이 왔다. 이어서 산에 올라가 산역을 보았는데, 구덩이를 파니 흙빛이 밝고 윤이 났다. 저녁에 두동으
  • 650066

    2일. 종일 비가 내림. 관을 다시 칠하고 결과(結裹)를 했다. 큰형님이 와서 모시고 묵었다. 자유(子牗)가 공충 감영(公忠監營)에서 심부름꾼을 시켜 개장(改葬) 때의 제수(祭需)를 보냈다. 결과(結裹): 상례(葬禮)에서 줄기직 따위로 관을 싼 위에 숙마(熟麻)로
  • 650067

    3일. 맑음. 새벽에 운구(運柩)하여 산 위에 이르렀다. 서울 인편이 왔다.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하관(下棺)하고 우제(虞祭)를 지냈다. 산역을 마치지 못했는데 날이 어두워져 사촌으로 돌아왔다. 이날 차동(車洞) 임 이모(林姨母)의 상이 났는데, 향년 7
  • 650068

    4일. 생 이언회 및 창룡·득성이 모두 서울로 돌아갔다. 저녁에 산역을 마치고 나서 묘를 떠났다. 어둑해질 무렵 사촌에 돌아와서 묵었다.
  • 650069

    5일. 일찍 큰형님을 모시고 서울로 출발했는데, 명호와 백소가 따랐다. 해천(蟹川)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집에 도착하여 아버님을 뵈었다. 다녀오는 데 모두 11일이 걸렸다.
  • 650070

    6일. 일찍 큰형님과 둘째 형님을 모시고 차동(車洞)으로 가서 성복(成服)에 참석하여 소공복(小功服)을 받았다. 승지의 전망(前望) 단자에서 내가 낙점되어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때 도승지는 이조원, 좌승지는 이해우(李海愚), 우승지는 엄기, 좌부승지는 이문회, 우부
  • 650071

    7일. 아버님 생신이다. 아침 일찍 수자(須資)하고 나와서 아버님을 뵈었다. 친족과 인척 몇 사람이 와서 모였다. 승정원의 동료가 봉심(奉審)하는 일로 모두 나갔는데, 우승지가 함께 숙직할 사람이 없다고 나를 패초할 것을 청했다. 임금이 입시한 승지에게 물어보기를,
  • 650072

    8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 조강을 행했다. 영사(領事) 서용보, 지사 조득영, 특진관 한용탁·정만석, 승지 신현, 각신 홍석주, 옥당 임천상·박종훈, 대사헌 조윤대, 사관 정관수, 주서(主書) 이영곤(李永昆)이 입시했다. 임금이
  • 650073

    9일. 신시에 퇴근했다.
  • 650074

    10일. 새벽에 출근했고, 우부승지 홍수만과 함께 숙직했다.
  • 650075

    11일. 신시에 퇴근했다.
  • 650076

    12일. 새벽에 출근했고, 좌부승지 이문회와 함께 숙직했다.
  • 650077

    13일. 이어서 좌부승지와 함께 숙직했다. 둘째 형님이 사촌 행차를 출발했다.
  • 650078

    14일. 이어서 좌승지 이해우와 함께 숙직했다. 전교하기를, 󰡒병방(兵房)과 형방(刑房)은 방을 바꾸어라.󰡓 하여, 나는 병방에서 형방으로 바뀌었다.
  • 650079

    15일. 여러 동료와 함께 숙직하여 재계하며 잤다. 내일 문안(問安) 승지로 내가 나아갈 것을 명했다.
  • 650080

    16일. 묘초초각(卯初初刻, 오전 5시)에 임금이 원릉(元陵)에 행행(行幸)했는데, 여러 동료와 함께 어가를 수행했다. 묘동(廟洞)에서 주정(晝停)하고 진시(辰時)에 원릉에 이르렀다. 나는 곧 문안을 하겠다고 하직하고 나서 달려가서 입궐했다. 승전색(承傳色)에게 전
  • 650081

    17일. 현병(懸病)하여 출근하지 않았으며 패초에도 나아가지 않았는데 추고만 당했다. 날이 저문 뒤에 여러 동료와 함께 모두 체직이 허락되었다.【12일 만에 체직되었다.】
  • 650082

    18일. 과장(科場)의 폐단에 대해 특별히 신칙하는 하교를 내렸다.
  • 650083

    19일. 식년 감시 초시(式年監試初試) 시관의 수의(首擬)로서 명패를 받들고 입궐했다. 일소의 시관은 홍석주·이지연·이항, 이소의 시관은 신현·박종훈·심후진(沈厚鎭)이 낙점되었다. 이어서 시관은 성정각에 입시하라고 명했다. 하교하기를, 󰡒몇 년 전부터의 과장(科場
  • 650084

    20일. 초장(初場)이었다. 이른 아침에 과장(科場)을 열고 사자(士子)가 문에 들어온 뒤에 시제(試題)를 내걸었다. 󰡐초(楚)나라의 사신에게 「그대들의 수레를 정비하고 그대들의 군사(君事)를 공경하여 내일 아침에 만나자고 이르시오.」라고 대답했다.[對楚使語, 戒
  • 650085

    21일. 밤까지 시권을 채점했다.
  • 650086

    22일. 종장(終場)이었다. 이른 아침에 과장(科場)을 열고 사자(士子)가 문에 들어온 뒤에 시제를 내걸었다. 예의(禮義)는 󰡐용모와 의관(儀觀) 및 패옥(佩玉) 울리는 소리를 익히고 나서 나간다.[習容觀玉聲]󰡑였다. 의제(疑題)는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 650087

    23일. 밤까지 시권을 채점했다.
  • 650088

    24일. 밤까지 시권을 채점했다. 이날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칠석제(七夕製)를 설행했다. 표(表)에서 수석을 차지한 생원 조경진(趙璟鎭)에게는 회시(會試)에 곧바로 응시할 자격을 주고, 그 이하에게는 급분(給分)하고 시상(施賞)했다. 급분(給分): 합격 점수에는
  • 650089

    25일. 종일 시권을 채점하여 밤까지 했다. 이날 큰형님이 강화도의 집으로 행차를 출발했다.
  • 650090

    26일. 시권을 채점하여 저녁에 마치고, 밤에 편차했다. 이날 황해도관찰사 이상황이 상소하여 체직되고, 이호민이 그 후임이 되었다. 정배된 죄인 김려(金鑢)와 김재익(金載翼)은 그 집안사람이 격쟁하여 원통함을 호소한 것으로 인해 모두 풀어주었다.
  • 650091

    27일. 합격자를 발표했다. 임한진(林翰鎭) 등 260인을 뽑았는데 신시에 이르러 마치고, 이어서 여러 시관과 함께 대궐에 나아가 입래 숙배(入來肅拜)를 했다. 이날 임금이 경모궁에 행행(行幸)하여 가을 전알(展謁)을 행했다.
  • 650092

    28일, 29일. 연이어 주강을 행했다.
  • 650093

    30일. 큰형님이 강화도에서 돌아왔다.
  • 650094

    9월. 1일. 주강을 행했다. 아버님이 특진관으로 들어가 참석하고 늦게 돌아왔다.
  • 650095

    2일. 연이어 주강을 행했다. 호조판서 박종보를 체차해 주었고, 서영보(徐榮輔)와 조득영이 추가로 천거되었는데 서영보가 되었다. 개성 유수 유한모가 임기가 차서 체직되었고, 홍의모(洪義謨)가 그 후임이 되었다. 서영보(徐榮輔): 1759~1816. 본관은 달성(達城
  • 650096

    3일. 교리 안정선, 교리 윤정렬(尹鼎烈), 주서 조봉진(曺鳳振)과 함께 사동(社洞)에 가서 활쏘기를 연습하고 저녁에 돌아왔다. 내일 식년 강경(式年講經)의 시관으로 일소(一所)는 홍수만, 이소(二所)는 이우진이 낙점되었다. 식년 강경(式年講經): 1806년(순조
  • 650097

    4일. 사헌부에서 신계하여 전 승지 김용주(金龍柱)에게 우선 절도(絶島)에 안치하는 형전을 시행할 것을 청했는데, 아뢴 대로 하라고 했다.【김한록과 김귀주의 남은 논의를 물려받고 김관주와 김일주의 흉악한 계획을 빚어내었다고 말을 만들어 발계했다.】 이날부터 연이어
  • 650098

    5일. 승지 송면재, 교리 안정선, 교리 윤정렬, 주서 조봉진과 함께 수어청의 구영(舊營)에 가서 활쏘기를 연습하고 돌아왔다.
  • 650099

    6일. 조 숙정(曺叔正)의 연궤(筵几)가 서울에 올라왔다는 것을 듣고, 가서 곡하고 돌아왔다. 삼가댁(三嘉宅)의 사우(祠宇)에 들러 절했다. 둘째 형님이 표임(豹壬)을 데리고 반중(泮中)에 가서 머물렀는데, 표임의 눈병 때문에 반중의 봉사(奉事) 정렬(鄭烈)에게 침
  • 650100

    7일. 우레가 괴이하여 특별히 전교를 내려서 감선(減膳)하고 구언(求言)했다. 감선(減膳):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근신하는 뜻에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여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던 일을 말한다. 구언(求言): 나라에 재앙이 있을 때, 혹은 국정에 필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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