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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8일. 식년 강경(式年講經) 초시(初試)의 합격자를 발표하고 대궐에 나아갔다가 사동(社洞)에 가서 활쏘기를 연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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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9일. 차례를 지냈다. 큰형님과 삼종형(三從兄)을 모시고 삼종(三從) 신향(申𥿧)의 집에 갔다가 함께 남쪽 산기슭에 올랐는데, 응교 윤행직(尹行直)이 와서 모였다. 저녁에 돌아왔다. 신향(申𥿧): 1768~1818.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인옥(仁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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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일. 사동(社洞)에 가서 활쏘기를 연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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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1일. 영의정 이병모가 졸서(卒逝)했다. 특별히 전교를 내려 죽음을 애도하고, 승지를 보내 치제(致祭)했으며 홍문관으로 하여금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시호(諡號)를 의논하도록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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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2일. 승지는 전망(前望) 단자로 이조원과 나를 낙점했고, 나는 우부승지가 되었다. 이때 도승지는 이조원, 좌승지는 이문회, 우승지는 박종정, 좌부승지는 심규로(沈奎魯), 동부승지는 임후상(任厚常)이었다. 즉시 명패를 받들어 사은숙배를 하고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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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3일. 새벽에 출근했고, 우승지 박종정과 함께 숙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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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4일. 여러 동료와 함께 어가를 수행하여 효안전에 나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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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5일. 임금이 직접 효안전 망제를 거행했는데, 나는 술을 받아 술잔을 신위 앞에 올렸다. 예를 마치고 어가를 수행하여 승정원으로 돌아왔다. 조방(朝房)에 나가서 자고 대궐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서 다시 출근했다. 종일 일이 없었고, 신시에 퇴근했다. 응교 이면승(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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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6일. 이른 아침에 일이 있어 나왔다. 어제 동부승지가 잘못 쓴 계사를 곧 내가 대신 썼는데, 그가 이미 체차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에 임후상이 동부승지에 잉임(仍任)되었으며, 도승지 이조원은 체직이 허락되고 김이영이 그 후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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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7일. 새벽에 출근했고, 종일 일이 없었으며, 신시에 퇴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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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8일. 새벽에 출근했다. 전교하기를, 소대를 하라. 했다. 이어서 하교하기를, 승지는 우부승지가 들어와 참석하라. 했다. 신시에 임금이 성정각에 나아가고, 참찬관 신현, 각신 홍석주, 옥당 홍의영, 주서(注書) 이진연(李晉淵), 겸춘추 정종현(鄭宗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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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9일. 신시에 퇴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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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0일. 차대를 행하고, 이어서 소대를 행했다. 나는 신시에 퇴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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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1일. 새벽에 출근했다. 오시(午時)에 소대를 하여, 승지 이문회, 옥당 홍의영, 각신 박종훈, 한림(翰林) 정관수 등이 성정각에 들어가 입시했다. 소대가 끝나고 옥당은 먼저 물러가고, 승지와 사관, 각신은 명을 받들어 응제(應製)했다. 이문회는 서리 맞은 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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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2일. 새벽에 출근했다. 정종대왕(正宗大王)의 탄신일이라, 임금이 진전(眞殿)에 행행(行幸)하여 전알(展謁)하고 다례(茶禮)를 지냈는데, 승지와 사관 및 대신(大臣)·각신·종친(宗親)·의빈(儀賓)이 나아가 참석했다. 예를 행할 때, 나는 술잔을 올리고 3대 임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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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3일. 신시에 퇴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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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4일. 새벽에 출근했다. 사간 여동식이 상소했는데, 이번 감시(監試)에서 합격한 수종(隨從)이 많고, 이소(二所)에서는 합격자 발표 전에 시권을 많이 잃어버려 과장 밖에서 매매를 했다는 풍문이 전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상소했는데, 대강 신은 승정원에 도착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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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5일. 현병하여 출근하지 않았는데, 패초 계사(牌招啓辭)에 윤허했다. 곧바로 다시 상소했는데, 대강 거듭 스스로 논열(論列)하는 상소를 올리니, 속히 삭직(削職)하는 은혜를 입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입계했다. 상소에 이르기를, 신은 재주와 기량이 용렬하고 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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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6일. 소대에 좌부승지 심규로(沈奎魯)가 들어가 참석했다. 하교하기를, 오늘은 우승지와 우부승지가 입직(入直)하도록 하라. 하고, 신시에 입시할 것을 명하여 나와 우승지 이문회, 각신 박종훈, 가주서 홍기섭(洪起燮)이 성정각에 입시했다. 임금이 곧 『정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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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7일. 미시(未時)에 전교하기를, 우부승지는 입시하라. 했다. 내가 각신 박종훈, 주서 홍기섭, 겸춘추 김치룡과 함께 성정각에 입시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겸춘추는 전서(篆書)를 잘 쓰는가? 하니, 김치룡이 대답하기를, 삭서(朔書)에 늘 전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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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8일. 비가 내림. 이어서 좌부승지 심규로와 함께 숙직했다. 우승지도 대간(臺諫)의 상소로 배척당한 까닭에 상소를 올려 해당 방(房)으로서 스스로 인혐(引嫌)했다. 도승지 김이영의 체직이 허락되고, 남공철(南公轍)이 그 후임이 되었다. 우승지도 … 인혐(引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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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9일. 그믐. 사시(巳時)에 임금이 성정각에 나아가 소대를 행했는데, 승지 신현, 옥당 박종기·조민화, 각신 박종훈, 가주서 윤일규(尹日逵), 겸춘추 김치룡과 정종현이 차례로 나아가 엎드렸다. 임금이 말하기를, 읽으라. 했다. 박종기는 『국조보감』 제4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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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월. 1일. 새벽에 임금이 직접 효안전 삭제를 행했다. 나아가 참석하여 손을 씻는 물을 붓고, 술을 따르고, 술잔을 신위에 올렸으며, 예를 마치고 어가를 수행하여 승정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궐을 나와서 아버님에게 인사드리고, 밝기를 기다려 다시 출근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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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일. 새벽에 임금이 직접 효안전 동향대제(冬享大祭)를 행했다. 나아가 참석하여 찬(瓚)을 따르고, 술을 따르고, 술잔을 신위에 올렸으며, 예를 마치고 어가를 수행하여 승정원에 돌아왔다. 신시에 퇴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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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3일. 새벽에 출근했다. 비가 내림. 이어서 우승지 이문회와 함께 숙직했다. 집의 윤상규가 들어와서 정민시의 아들들을 분산하여 정배하는 일은 정계(停啓)하도록 했다. 좌승지 홍의호(洪義浩)의 체직이 허락되고, 류경(柳畊)이 우승지에 낙점되었으며, 이문회는 좌승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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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4일. 신시에 퇴근했다. -
650127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5일. 새벽에 출근했다. 이날 차대와 소대, 석강을 행했다. 신시에 퇴근했다. -
65012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6일. 새벽에 출근했다. 임금이 성정각에 나아가 주강을 행했는데, 지경연사(知經筵事) 박종래, 특진관 이진복(李鎭復), 승지 신현, 옥당 박종기·홍면섭, 각신 박종훈, 가주서 신재식, 겸춘추 노휘(盧{金+彙})·정종현이 차례로 나아가 엎드렸다. 임금이 이전에 독법을 -
65012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7일. 새벽에 출근했다. 도승지 김이영의 체직이 허락되고, 김이익이 그 후임이 되었으며, 옥당은 전망(前望) 단자로 김이재가 낙점되었다. 나는 이어서 우승지 류경과 함께 숙직했다. -
65013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8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서총대과(瑞蔥臺科)를 설행했다. 나는 융복을 갖추고 어가를 수행하여 나아가 참석했다. 승지와 사관, 각신도 모두 응사(應射)하라고 명했는데, 도승지가 동가(動駕)할 때 어가를 수행하는 일 때문에 응사할 승지가 신현 한 명뿐이라고 대답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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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9일. 새벽에 출근했다.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 전경 문신(專經文臣)의 전강(殿講)과 제술(製述), 한학 문신(漢學文臣)의 전강, 전경 무신(專經武臣)의 전강 등 모두 네 개의 시험을 설행했다. 시소(試所) 승지에 내가 낙점되어 곧바로 시소의 일을 거행했다. 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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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0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구일제(九日製)와 서북 별부료 군관(西北別付料軍官)의 시사(試射)를 설행했는데, 시소(試所) 승지에 내가 낙점되어 어가를 수행하여 나아가 참석했다. 어제(御題)는 말로써 펴서 아뢰게 하고 공으로써 밝게 시험하다.[敷奏以言明試以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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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1일. 새벽에 출근했다. 입격한 유생이 입시하는데 승지는 우부승지와 동부승지가 입시하라는 명이 있어 즉시 유생을 데리고 입시했다. 심동규 등이 차례로 성명을 아뢰기를 마치자, 나에게 기둥 밖으로 물러나라고 명했다. 초시(初試)에 입격한 사람은 곧바로 내보내고, 상 -
650134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2일.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 일차 유생 전강(日次儒生殿講)을 행하니, 여러 신하가 차례로 나아가 엎드렸다. 나에게 명하여 고관(考官)을 차하(差下)하도록 문서를 쓰게 했고, 탑교(榻敎)로 집책 승지(執冊承旨)에 나를 낙점했다. 종일토록 입시하고, 강(講)이 끝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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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3일. 현병(懸病)하고 출근하지 않으니 패초하기를 청하는 계사에 대해 윤허했다. 곧바로 패초를 어기니 추고만 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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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4일. 현병하고 출근하지 않으니 패초하기를 청하는 계사를 윤허했다. 패초를 받들어 입궐하고 다시 신시에 퇴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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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5일. 새벽에 출근했다. 이어서 동부승지 임후상과 함께 숙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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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6일. 이른 아침에 식가(式暇)로 나왔다. -
650139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7일. 새벽에 제사에 관한 일을 행하고 이어서 식가로 출근하지 않았다. 큰형님이 지사(地師) 김사열(金思說)을 데리고 사촌으로 출발하여 떠났다. 이조참판 이면응(李冕膺)은 일찍이 상중(喪中)에 있으면서 귀양을 가서 상을 마치지 못하여 의리를 좇아 사직하니 의금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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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8일. 새벽에 출근했다. 좌부승지 심규로와 함께 숙직했다. -
650141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19일. 이조참판 이면응이 여러 번 패초에 나오지 않다가 이어서 상소하고 지레 고향으로 가니, 명하여 전주부(全州府)에 정배하고 이틀 길을 하루에 가도록 해서 보냈다. 신시에 퇴근하여 남동(藍洞)에 가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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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0일. 새벽에 장인어른 제사의 일에 참여하여 식가로 출근하지 않았다. 다시 용산(龍山)에 가서 숙부님을 배알하고 벽동(碧洞) 족숙(族叔)의 강변 정자의 우소(寓所)에 들렀다가 해질녘에 돌아왔다. 이날 차대했다. -
650143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1일. 새벽에 출근했다. 좌부승지 심규로와 함께 숙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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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2일. 대간 이우진이 김귀주·김한록·심환지·김달순 및 김종수(金鍾秀)의 일은 맥락이 서로 이어진다는 뜻으로 상소하니, 답하기를, 근래 이 큰 의리를 말하는 자가 날마다 있었으나 그대의 말이 가장 엄정하고 통쾌하다. 운운. 했다. 부수찬 김이재가 상소하여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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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3일. 새벽에 출근했다. 좌승지 이문회와 함께 숙직했다. 내일 전경 문무신(專經文武臣)의 전강(殿講)에 문신(文臣) 제술 시관(製述試官)으로 배망(排望)되어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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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4일. 동지 정사(冬至正使) 심능건(沈能建),부사(副使) 오태현(吳泰賢), 서장관(書狀官) 이영로(李永老)가 나갔다. 진시(辰時)에 임금이 희정당으로 나아가 전강 제술(殿講製述)을 행했는데, 나는 시소 승지(試所承旨)로 낙점 받았다. 어제(御題)로 금인명(金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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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5일. 새벽에 출근했다. 우승지 류경과 함께 숙직했다. 조득영을 이조판서로, 한만유를 병조판서로 삼았다. -
650148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6일. 전교하기를, 우부승지는 입시하라. 하니, 진시(辰時)에 나와 각신 박종훈, 주서 홍기섭 등이 성정각에 입시했다. 곧 『태실가봉의궤(胎室加封儀軌)』 및 두 장자(障子)를 내렸는데, 하나는 비석의 탑본(搨本)이고 하나는 속리산 그림이었다. 나에게 명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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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7일. 새벽에 출근했다. 대간 이우진, 지평 임준상이 대청(臺廳)에 나아가 이서구(李書九)가 권유의 상소에서 두목이 되었고, 김달순의 주달(奏達)에서 발단이 되었으므로 국청을 열어 실정을 알아내 통쾌히 전형(典刑)을 바로 할 것을 청하며 신계하자, 답하기를, -
650150
실재일승(實齋日乘)-오(五) / 미상
28일. 현병(懸病)하고 출근하지 않으니 패초하기를 청하는 계사에 윤허를 내렸다. 바로 패초를 어기니 추고만 하게 했다. 참판 박윤수, 승지 박종순이 찾아왔다. 전 참의 신재선이 직령(直領)을 착용하고 함부로 들어와 신문고(申聞鼓)를 치니, 잡아 가두라고 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