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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0201

    23일. 그대로 성균관에 머물러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되어서야 끝마쳤다.
  • 650202

    24일. 이른 아침에 8초(抄)에 대한 출방(出榜)을 하여 368인을 뽑았는데, 노일성(盧一星)이 시에서 이중(二中)으로 수석을 차지했고, 오치규(吳致奎)가 부에서 이하(二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이날 이어서 계획 방목(計劃榜目)을 냈는데, 김계숙이 부에서 12분(
  • 650203

    25일. 새벽에 성균관에 들어가 통독강(通讀講)을 설행했다. 『주역(周易)』으로 강(講)을 받았는데,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제초(製抄)에 시제를 걸었는데, 󰡐우(虞)의 신하들이 하례했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정했다.[虞群臣賀, 奠高山大川.]󰡑를 본떠 표를 짓
  • 650204

    26일. 이어서 통독강을 설행했다. 『맹자』로 강을 받았는데, 밤이 되어서야 끝나서 밤이 깊었을 때 귀가했다. 표임이 『춘추좌씨전』을 다 읽었다. 감시(監試) 초시(初試) 때에 금천(金川)의 유학 한광목(韓光穆)이 타인의 조흘첩(照訖帖)을 가지고 이소(二所)에 들어
  • 650205

    27일. 합제(合製)의 영(令)이 나오자, 사정이 있어서 시장(試場)을 설행할 수 없다고 사양하고 다음날에 물러났다.
  • 650206

    28일. 입춘이다. 새벽에 성균관에 들어갔다. 유생이 시장에 들어오니, 󰡐동쪽 교외에서 봄을 맞다.[東郊迎春]󰡑라는 시제를 내걸었는데, 시의 압운은 󰡐춘(春)󰡑 자이고, 󰡐토우로 추위를 보내다.[土牛送寒]󰡑로 부를 짓게 했다. 인정(人定)을 제한 시간으로
  • 650207

    29일. 그믐. 새벽에 이어서 시권 채점을 시작했는데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어서 출방(出榜)했는데, 부에서 삼중(三中)이 조민영(趙敏永), 시에서 삼중일(三中一)이 이노원(李魯元), 삼중(三中)이 신도준(申道濬), 부에서 초삼중(草三中)이 성노묵(成老默), 시
  • 650208

    1월. 1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에서 삭제를 지내니, 곧 곡하는 반열에 나아가 참석했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팔도와 사도(四都)에 권농 윤음(勸農綸音)을 내렸다. 나는 사직단(社稷壇) 기곡 대제(祈穀大祭) 천조관에 차임되어 저녁에 의정부(議政府) 서계소(誓戒所)에 나
  • 650209

    2일. 삼경(三更)에 나아가 서계(誓戒)를 받고 바로 돌아왔다. 삼가댁(三嘉宅)·해주댁(海州宅)·대평동(大平洞) 사우(祠宇)에 가서 참배했다.
  • 650210

    3일. 저녁에 선인문 밖에 나아갔는데, 내일 새벽 곡하는 반열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 650211

    4일. 새벽에 임금이 친히 효안전에서 춘향 대제(春享大祭)를 지내므로 나아가 참석했고, 환궁할 때를 기다렸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 650212

    5일. 이른 아침 의정부 이의(肄儀)에 나아가 참석했다. 문희공(文僖公) 사우에 들러 참배하고 다시 남동(藍洞)으로 갔다. 이날 차대를 행했다.
  • 650213

    6일. 저녁에 압도(鴨島)의 도가(都家)에 나가 재계했는데 교리 안정선과 함께 있었다.
  • 650214

    7일. 승지 박종순이 술을 가지고 와서 종일토록 있다가 갔다.
  • 650215

    8일. 새벽에 재소(齋所)에서 대궐로 나아가고 이어서 향축을 따라 사직(社稷)에 나아갔다.
  • 650216

    9일. 새벽에 예를 행하고 바로 돌아왔다.
  • 650217

    10일. 아무 일 없었다.
  • 650218

    11일. 임금이 효안전에 거둥하여 친히 조석 상식 및 주다례를 행하고 머물러 재숙(齋宿)했다. 저녁에 아버님과 큰형님, 작은형님을 모시고 선인문 밖에 나아갔는데, 내일 곡하는 반열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 650219

    12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에서 대상제(大祥祭)를 지내므로 아버님을 모시고 곡하는 반열에 참석했다. 환궁하기를 기다렸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이날 비로소 정사(呈辭)했는데 승정원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날마다 그리했다.
  • 650220

    13일. 효안전 향관(享官) 안창군(安昌君) 이경(李燝) 등과 산릉(山陵)의 수릉관(守陵官) 서춘군(西春君) 이엽(李爗) 등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 무겸(武兼) 송국인(宋國仁) 등이 괘서(掛書)하여 조정 관원을 낱낱이 비판한 일로 의금부 당상을 패초하여 나국(
  • 650221

    14일. 저녁에 선인문 밖에 나아갔다.
  • 650222

    15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에서 망제를 지내므로 나아가 참석하여 환궁한 뒤에 물러나 돌아왔다.
  • 650223

    16일. 신문(新門) 밖에 갔다.
  • 650224

    17일. 참판 정동관·승지 박종순이 찾아왔다. 목수 김만필(金萬弼) 등 5~6인을 사촌에 보냈으니, 북랑(北廊)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얼음이 녹지 않아서 모두 곧바로 돌아왔다.
  • 650225

    18일. 큰형님이 사촌으로 떠나니, 사익(士益)이 모시고 갔다. 이어서 『춘추좌씨전』 제6권 「양공(襄公) 하(下)」, 「소공(昭公) 상(上)」을 보았다.
  • 650226

    19일. 새벽에 돈화문 밖에 나아갔다. 임금이 경모궁에 거둥하여 춘계 전알(春季展謁)을 행하니, 곧 공경히 맞이하여 어가를 수행했다. 경모궁에 이르러 반열(班列)에 참석하고 다시 어가를 수행하여 궐하(闕下)에 되돌아갔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 650227

    20일. 차대에서 남공철·김이익·김계락(金啓洛)을 정경(正卿)으로 승진 발탁했다. 김계락(金啓洛): 1753~1815.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경순(景淳),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성천 부사・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 650228

    21일. 『춘추좌씨전』 제7권 「소공 중(中)」을 보았다.
  • 650229

    22일. 내일 인일제(人日製)는 춘당대에 친림하여 설행한다는 명이 있었다. 독권관(讀券官)에 김사목·조윤대·심상규·김시근(金蓍根)·신현·홍수만·김상휴가 낙점되었다.
  • 650230

    23일. 새벽에 통화문(通化門) 밖에 나아가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유생들을 거느리고 공경히 맞이하려는데 승지가 미처 여쭙지 못하여 문 열기를 허락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 혼자 통화문 안에서 공경히 맞이했다.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인일제를 설행했다. 행 도승지 민기현
  • 650231

    24일. 신현을 의금부에 잡아다 처리하라는 전지와 관련하여 용서하라는 명이 내렸다. 곧 의막에서 물러나 돌아와서 정사(呈辭)를 우선 멈췄고, 엄한 전지를 받자마자 연속해서 정사를 올렸으니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 650232

    25일. 동촌(東村)에 가서 저녁에 돌아왔다.
  • 650233

    26일. 혜경궁의 병환이 위중하니, 약원(藥院)이 직숙했다.
  • 650234

    27일. 2품 이상이 아침저녁으로 문안했는데 저녁 문안할 때 아버님이 나아가 참석했다. 전교하기를, 󰡒신유년(1801년, 순조 1)의 한 가지 일은 곧 내가 일찍이 마음에서 그친 적이 없다. 이는 모두 오로지 나 소자가 덕에 밝지 않고 나이도 어린 데서 연유한 것
  • 650235

    28일. 2품 이상이 아침저녁으로 문안했는데 아버님도 들어가 참석했다. 저녁 문안에 판부사(判府事) 홍억 등이 상소했는데, 대개는 서로 이끌어 연명으로 상소하여 내린 명을 거둘 것을 청했고, 아버님도 상소에 참여했다.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경들도
  • 650236

    29일. 이문회 등 3인을 풀어 주라고 명하고 모두 승지에 다시 제수했다. 좌의정은 연이어 부주(附奏)를 아뢰고 도성 안에 들어오지 않으니, 몸소 맞이하겠다는 하교가 있었다. 대간의 전망 단자(前望單子)에 헌납(獻納) 최이형(崔履亨)·지평(持平) 한영건(韓永建)이
  • 650237

    30일. 옥당이 전망 단자를 들이니 모두 낙점되었다. 좌의정이 엄한 하교로 인하여 도성에 들어와 금오(金吾)에서 대명(待命)했다. 입궐하고 또 입대(入對)를 원하니 답하기를, 󰡒지금 승정원이 반포하여 이조·병조가 거행했고, 대간(臺諫)의 전계(傳啓)가 정지된 뒤이
  • 650238

    2월. 1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삭제를 지내니, 나아가 참석했다가 바로 돌아왔다. 남단(南壇) 춘향(春香)의 아헌관(亞獻官)에 차임되어 저녁에 압도(鴨島)의 도가(都家)에 나가서 재계했는데, 승지 박종순이 다른 향관(享官)으로 함께 거했다. 좌의정이 다시 도성을
  • 650239

    2일. 새벽에 궐에 나아가 향축을 따라 봉상시(奉常寺)에 나아가 신위(神位)를 모시고 남단(南壇)에 나아갔다. 초헌관(初獻官)은 김기성(金箕性)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쳐 몹시 추웠다. 이날 약원(藥院)이 옮겨 직숙하다가 그만두고 본원(本院)에서 돌아가며 직숙했다.
  • 650240

    3일. 새벽에 남단제(南壇祭)를 지냈다.【풍운뇌우(風雲雷雨)의 신(神)·국내 산천(國內山川)의 신·성황(城隍)의 신이다.】 곧 신위(神位)를 모시고 봉상시에 나아가서 도로 봉안하고 이어서 귀가했다. 또 문묘 석채(釋菜)의 아헌관에 차임되어 압도(鴨島)의 도가(都家)
  • 650241

    4일. 새벽에 궐에 나아가 향축을 따라 성균관에 나아갔다. 초헌관은 이집두였다. 조석 식당(朝夕食堂)에 모두 참석했는데, 유생으로서 모여서 먹은 자가 100여 인이었다. 먹을 때 먼저 북을 치니 동서(東西)의 거재 유생(居齋儒生)이 차례로 와서 모이기를 마쳤다. 대
  • 650242

    5일. 새벽에 문묘 석채를 지내고 곧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귀가했다. 예조에서 자궁의 체후가 회복된 것을 하례하도록 계청(啓請)하니, 종묘에 고하여 방물(方物)과 물선(物膳)은 마련하지 말고 외방(外方)은 전문(箋文)을 올리는 것을 그대로 두
  • 650243

    6일. 『춘추좌씨전』 제8권 「소공 하」·「정공(定公) 상」을 보았다.
  • 650244

    7일. 행 판돈녕부사(行判敦寧府事) 박준원(朴準源)이 졸서(卒逝)했다. 임금이 창경궁 금천교(禁川橋)에서 거애(擧哀)하니, 아버님을 모시고 거애의 곡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특별히 은졸(隱卒)을 내리라고 전교했다. 동원(東園)의 부판(副板) 1부(部)를 각별히 가려서
  • 650245

    8일. 일찍 저동(苧洞)에 가서 판돈녕부사 박준원의 상에 조문했다. 이날 정사에서 판돈녕부사 박준원의 시호에 대해 충헌(忠獻)·충경(忠敬)·익경(翼敬)으로 의망하여 들였는데, 󰡐충헌󰡑으로 낙점되었다. 검상(檢詳)에 여동식·김상휴·박대규로 의망하여 들였는데, 여동
  • 650246

    9일. 이조판서 이시원이 지난번 홍낙임의 관작을 복구하는 일로 스스로 인혐하여 체차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니, 답하기를, 󰡒받들어 행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이며 지금 인혐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병이라면 절로 회복될 것이니 사직하지 말고 공무를 행하라.󰡓 했
  • 650247

    10일. 박 판돈녕부사의 성복(成服)에 임금이 명정문 밖 금천교에 나아가 망곡례(望哭禮)를 행했다. 새벽에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서 박 판돈녕부사의 집에 가서 조문하고 바로 돌아왔다. 큰형님, 둘째 형님을 모시고 해주댁에 가서 종일 있다가 돌아왔다.
  • 650248

    11일. 『춘추좌씨전』 제9권 「정공 하」와 「애공(哀公)」 끝까지 보았다. 승지 박종순이 방문했다.
  • 650249

    12일. 소대 및 별강을 행했는데 이날부터 연이어 강대(講對)를 행했다.
  • 650250

    13일. 가순궁이 상선(常膳)을 들지 않는 것을 약방이 연이어 구전(口傳)으로 아뢰니, 이때에 이르러 마지못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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