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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0251

    14일. 『시전』 제8권을 보고 이어서 한 번 외웠다. 저녁에 선인문 밖에 나아갔다.
  • 650252

    15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망제를 지내니, 나아가 반열에 참여하고 환궁하기를 기다렸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시전』 제9권을 보고 이어서 한 번 외웠다.
  • 650253

    16일. 삼가댁(三嘉宅)이 고동(雇洞)으로 이사하니, 나아가 사우(祠宇)를 모시고 봉안한 뒤에 귀가했다. 승지 박종순에게 들렀고, 아우 관(綰)이 곤암(昆巖)에서 올라왔다.
  • 650254

    17일. 바람이 거세게 불고 번개가 침.
  • 650255

    18일.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 650256

    19일. 『시전』 제10권을 보고 이어서 한 번 외우기를 마쳤다.
  • 650257

    20일. 차대 및 소대를 행했다. 화성 유수(華城留守) 조진관이 상소하여 체차되고 홍명호(洪明浩)가 그 후임이 되었다. 부묘도감(祔廟都監) 도제조(都提調)는 좌의정 이시수가, 제조(提調) 4명은 서영보·조윤대·남공철·오재소가 되었다. 근래에 시관이 패초를 어겨 회피
  • 650258

    21일. 일소(一所)에 들어가는 참시관(參試官)에 수망(首望)으로 의망되어 패초를 받들고 입궐했는데, 부망(副望)으로 의망된 김시근이 낙점되어 곧 물러나 돌아왔다. 처음에는 초시(初始) 때 대간의 비평하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으로 상소를 작성해 올리려고 했는데, 중간
  • 650259

    22일. 바람이 거세게 불며 며칠 동안 그치지 않음. 가순궁이 박 판돈녕부사 상(喪)의 자최(齊衰) 기년복(朞年服)을 이날 공제(公除)했다.
  • 650260

    23일. 사학(四學)의 거재유생이 예목(禮木)에 대한 일로 전라도 감영(監營)의 저인(邸人)을 붙잡아 왔는데, 형벌을 남용하여 징수를 독촉했으므로 20인이 모두 재사(齋舍)에서 내쫓겼다. 그리하여 작년 통독(通讀)에서 강기(講記)한 사람으로 대신 채워 넣었다. 강기
  • 650261

    24일. 아무 일 없었다.
  • 650262

    25일. 『과송(課誦)』 3권을 비로소 현토(懸吐)했다. 황단제(皇壇祭) 진폐찬작관(進幣瓚爵官)에 차임되어 저녁에 공북문(拱北門) 밖에 나아가 서계(誓戒)에 참석했다. 승보시(陞補試)의 초초(初抄)는 28일이라고 영(令)을 내었다.
  • 650263

    26일. 감시 복시(監試覆試)를 출방(出榜)한 뒤 궐에 나아갔다. 작년 승상 초시(陞庠初試) 가운데 이집로·이광정·심화석·김로·이노원·박종일·이희승·김철순·정희순·안건희(安建喜) 모두 10인이 진사가 되었다. 박 생(朴甥) 및 향종({糸+向}從)이 방목에 들었다.
  • 650264

    27일. 둘째 형님이 절사(節祀)를 지내러 사촌에 갔다. 가서 새 진사 8인【조길원(趙吉源)·이운일(李運一)·홍길주(洪吉周)·윤병렬(尹秉烈)·조운명(趙雲明)·윤광집(尹光集)·홍희조(洪羲祖)·송현재(宋顯載)】을 만나고, 박 생(朴甥)과 향종에게 들러 만나고 돌아왔다.
  • 650265

    28일. 승보시(陞補試)의 초초(初抄)는 이날이라고 영을 내었는데, 효안전 한식제(寒食祭)를 친히 행하는 것과 서로 겹쳐서 설행하지 못했다. 이어서 순제(旬製)를 󰡐문려를 높고 크게 하여 사마의 수레가 드나들 수 있게 하다.[高大門閭, 令容駟馬高蓋車.]󰡑로 내었
  • 650266

    29일. 한식날이다. 임금이 친히 효안전제(孝安殿祭)를 지냈는데, 나는 황단제(皇壇祭)의 제관(祭官)이므로 참석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돌아와 날이 밝기를 기다려 황단(皇壇)에 나아가 의식 절차를 연습하고 돌아왔다. 새 진사 4인【신석보(申錫輔)·서명보(徐鳴輔)·윤학
  • 650267

    30일. 남동(藍洞)에 갔는데 사수(士隨)가 어제 아들을 낳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새 진사 4인【신석응(申錫膺)·홍진연(洪晉淵)·심화석·이희승】에게 들러 만나 보았다. 둘째 형님이 사촌에서 돌아왔다. 저녁에 압도(鴨島)의 도가(都家)에 나가 재계했다.
  • 650268

    3월. 1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삭제를 지냈다. 금위대장(禁衛大將)에 이해우·이요헌(李堯憲)이 새로 통망(通望)되었는데 이해우가 되었다. 향관(享官)이라서 종일 재소(齋所)에 있었다.
  • 650269

    2일. 새벽에 황단(皇壇)에 나아가 종일 향소(享所)에 있었다. 헌관은 좌의정 이시수이다.
  • 650270

    3일. 새벽에 예를 행하고 파하여 돌아왔다. 새 진사 4인【김철순·박종복(朴宗復)·이경우(李景愚)·임한진(林翰鎭)】에게 가서 만나 보았다.
  • 650271

    4일. 순제(旬製)의 답안지를 거두니, 시와 부가 도합 180여 장이었다.
  • 650272

    5일. 임금이 효안전에서 재숙(齋宿)했다. 저녁에 아버님을 모시고 선인문 밖 의막에 나아갔다.
  • 650273

    6일. 새벽에 임금이 효안전 담제(禫祭)를 지내니, 아버님을 모시고 나아가 참석했다가 곧 돌아왔다. 순제(旬製)의 출방(出榜)을 했는데, 남종현(南鍾玄)이 시에서 이하(二下)로 수석을 차지했고, 강원일(姜元日)이 부에서 이하로 수석을 차지했다. 이어서 두 번째 순제
  • 650274

    7일.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자궁의 체후가 회복한 데 대한 진하(陳賀)를 행하니, 아버님을 모시고 나아가 참석했다. 예가 끝나자 물러나 돌아왔다. 새 진사 윤명규(尹命圭)에게 들러 만나 보았다.
  • 650275

    8일. 내일 춘도기(春到記) 대독관(對讀官)에 내가 수망으로 의망되어 낙점되었다.
  • 650276

    9일. 임금이 명정전에 나아가 춘도기를 행했다. 나는 유생들을 데리고 공경히 맞이했고, 이어서 대독관으로서 참석했다. 어제(御題)는 󰡐하늘이 그대를 보정(保定)함이 또한 심히 견고하도다.[天保定爾, 亦孔之固.]󰡑로 내고 부를 짓게 했고, 좌의정 이시수가 시험을
  • 650277

    10일. 생원·진사의 방방(放榜)을 인정전에서 행하니, 궐 밖에 가서 박 생(朴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이어서 뒤를 따라 장동(長洞)에 갔다. 아버님이 찾아오자 곧 모시고 고동(雇洞) 삼가댁(三嘉宅)에 갔다. 향종이 이미 나오자 이어서 창방(唱榜)과 다례(茶禮)에
  • 650278

    11일. 임금이 편전(便殿)에 나아가 친히 생원·진사의 사은(謝恩)을 받았다. 새로 급제한 진사 정섭(鄭燮)은 나이가 82세이니 오위장(五衛將)에 제수했다. 새 진사 12인【정시용·안정희·윤광집·신석보·서명보·윤학선·이목원·이희승·김철순·이경우·윤명규·송현재】이 와
  • 650279

    12일. 새벽에 돈화문 밖에 나아가 묘시(卯時)에 임금이 원릉(元陵)에 거둥하는 것을 공경히 전송한 뒤에, 곧 궐하(闕下)에서 물러나 돌아왔다. 식사 후에 아버님을 모시고 동대문 밖으로 나갔다. 임금이 원릉의 친제(親祭)를 지낸 뒤에 환궁하니 곧 공경히 맞이하고,
  • 650280

    13일. 새벽에 기사(忌事)를 행하고 해주댁 사우(祠宇)에 가서 참배했다.
  • 650281

    14일.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저녁에 선인문 밖에 나아갔다.
  • 650282

    15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망제를 지내니, 나아가 반열에 참석하고 대내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동지사(冬至使) 심능건 등이 들어왔다. 순제(旬製)의 출방(出榜)을 했는데, 김학동(金學東)이 부에서 삼중(三中)으로 수석을 차지했고 심학로(沈學魯)가
  • 650283

    16일. 임금이 경희궁(慶熙宮)에 거둥하여 친히 함흥본궁(咸興本宮)과 영흥본궁(永興本宮) 두 궁에 의대(衣襨)와 향축을 전했다. 새벽에 궐 밖에 나아가 공경히 반열에 참석하여 맞이하고, 이어서 의막에 머물러 있었다. 오후에 환궁하자 또 공경히 반열에 참석하여 맞이하
  • 650284

    17일. 삼일제(三日製)에 방외(方外)도 통틀어 설행하라고 명하니 동부승지 김노경·홍문관 제학 서영보가 함께 성균관에 가서 시취(試取)하고 왔다. 새벽에 성균관에 나아가 승지와 제학과 함께 어제(御題) 󰡐봄 물이 사방 못에 가득하다.[春水滿四澤]󰡑를 받들어 게시
  • 650285

    18일. 임금이 영화당(暎花堂)에 거둥하여 재숙(齋宿)했다.
  • 650286

    19일. 임금이 황단(皇壇)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행했다. 이어서 반열에 참석한 유생에게 시취(試取)했다. 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이해응(李海應)은 초시(初試)를 보게 했다. 병조 당상 민창혁·홍수만이 서로 궐내 입직의 책임을 미루어 입직을 거르니 모두 찬배되었
  • 650287

    20일. 새벽에 성균관에 나아가 승보시(陞補試) 초초(初抄)를 설행했다. 글제는 󰡐태사씨에게서 책을 보고 주례가 모두 노나라에 있음을 기뻐하다.[觀書太史氏, 喜周禮盡在魯.]󰡑이고, 󰡐노(魯)󰡑 자를 압운으로 가부(歌賦)를 짓게 했고, 모두 제한 시간은 거화(
  • 650288

    21일.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되어서도 끝마치지 못했다.
  • 650289

    22일.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되어서야 끝마쳤다. 문과 복시(文科覆試)를 출방(出榜)한 뒤 대궐에 나아갔다. 작년 통독 초시(通讀初試) 중 최대식·차진형·이현묵·박종심·홍주명 모두 5인이 급제했다.
  • 650290

    23일. 이른 아침 출방(出榜)하여 690여 인을 뽑았는데, 최황이 부(賦)에서 이하(二下)로 수석을 차지했고, 이현기(李賢耆)가 시에서 이하로 수석을 차지했다. 이어서 교리 권식과 벽송정(碧松亭)에 가서 꽃구경을 하고 곧 귀가했다.
  • 650291

    24일. 태묘(太廟)에 부묘(祔廟)할 때 당상 집례(堂上執禮) 예차(預差)로 차출되었다. 저녁에 홍화문 밖에 나아갔다. 부묘(祔廟): 삼년상을 마치고 왕이나 왕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의식이다.
  • 650292

    25일. 삼경(三更)에 임금이 명정전에 친림하여 서계(誓戒)를 받으니, 나아가 참석했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대신의 수의(收議)로 인하여 심낙수(沈樂洙)는 관작을 회복하고, 윤전(尹烇)·권순장(權順長)에게 모두 부조(不祧)의 은전을 베풀라는 명이 있었다. 부조(不祧)
  • 650293

    26일. 새벽에 제사를 지냈다. 해주댁이 동내(洞內)로 이사하므로 가서 사우(祠宇)를 모시고 새집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조태(曺台)에게 들러 만나보고 뒷동산에 올라 꽃구경을 했다.
  • 650294

    27일. 식사 후에 승지 박종순과 북저동(北渚洞)에 가서 꽃구경을 했다. 교리 김계온도 모였다가 해질녘에 파하여 돌아왔다.
  • 650295

    28일. 새벽에 의정부 밖 의막에 가서 예행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러나 돌아왔다.
  • 650296

    29일. 아무 일 없었다.
  • 650297

    30일. 저녁에 선인문 밖에 나아갔다.
  • 650298

    4월. 1일. 임금이 친히 효안전 삭제를 지내므로 나아가 참석했다. 임금이 이어서 재전(齋殿)에 나아가 경숙(經宿)하니, 백관이 각자 머무르는 곳으로 돌아갔다. 묘시(卯時)에 임금이 종묘에 나아가니, 곧 나아가 반열에 참석했다. 임금이 이어서 전알례(展謁禮)·성생기
  • 650299

    2일. 새벽에 임금이 친히 종묘 하향 대제(夏享大祭)와 겸하여 부태묘제(祔太廟祭)를 지내므로 나아가 참석했다. 임금이 환궁하자 나는 백관을 따라 반열에 참석하여 돈화문 밖에 이르렀다. 이어서 선인문 밖에 나아갔다. 임금이 명정전에 나아가니, 백관이 입궐하여 진하(陳
  • 650300

    3일. 큰형님과 둘째 형님을 모시고 사동(社洞)에 가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돌아왔다. 부묘도감(祔廟都監)의 공로로 예조판서 조윤대는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진했고, 호조판서 서영보·공조판서 남공철·판윤 오재소는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승진했으며, 도청(都廳) 윤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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