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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0351

    六日. 雨夕淸. 上練光亭, 時始改修之役. 軒楹已撤盡矣, 土木撩亂, 甚害登臨, 恨不自我後先也. 黃同知晑, 持酒肴來.
  • 650352

    七日. 曺生來訪都事于大同館. 夜箕伯丈相邀, 至應酬軒錢飮. 得京書.
  • 650353

    八日. 拜箕伯丈告行. 至燕申堂, 老妓明兒, 携詩帖請題. 其所得詩已百餘軸, 伯祖詩翰亦在, 蓋以問禮官赴灣時題贈者. 遂書七言絶一首以贈之. 起程濟而來, 偕入愛蓮堂. 都事來別. 金潤玉持酒追到. 至舟次, 與黃察訪聖憲別. 將發, 曺生携二歌妓來, 其一牡丹也. 遂與二曹及金潤玉, 泛
  • 650354

    九日. 或陰灑雨. 朝飯黃州. 次鳳山治. 卜者劉隱泰, 其弟子朴駿命來. 是日行九十里.
  • 650355

    十日. 或陰灑雨, 夜雷雨. 早發. 聖一轉向庄舍, 遂與之分. 客次周旋凡七日, 當岐情戀. 朝飯黔藪. 至瑞興, 日尙高, 疲憊甚, 停次. 是日行七十里.
  • 650356

    十一日. 朝陰. 早發. 途中遇雷雨. 朝飯蔥秀. 重入玉溜泉. 次馬當. 是日或陰或雨, 行九十里.
  • 650357

    十二日. 朝大雷雨. 待晴而發. 途中又遇雷雨. 觀廻瀾石, 在古金川之前. 石壁逶邐數十步, 以臨大川, 中壁而竇, 山鳩之所棲. 壁上大刻曰暎水屛. 野田中有碑, 穹然對壁. 後刻廻瀾石三大字, 而書其傍曰, 新安許國書.【曾見永平金水亭, 有名廻瀾石者, 蓋傳模此書也.】 前刻許・魏二詔使
  • 650358

    十三日. 朝雨有風. 早發. 入敬德宮. 度不朝峴, 峴有碑閣之題曰, 高麗忠臣不朝峴. 我太祖旣受麗禪, 試士于敬德宮, 不朝而走者千餘人, 故以名. 過豐德治, 雇舟濟昇天浦. 過府治, 侵夜還逸里. 是日行百里.
  • 650359

    十四日. 解送箕馬.
  • 650360

    二十二日. 次行事, 名西程譜. 涉三道, 濟十一江, 過二十六郡, 爲日三十二. 往復一千九百四十里. 西程譜終.
  • 650361

    「答鄭述仁書」 〔頭註:可破千古之惑.〕 「答鄭述仁書」【此三篇竝箕上作, 偕錄.】 來書, 亳中箕冢之說, 出自杜預. 預之言曰, “梁國蒙縣薄伐城, 有殷湯冢, 其西有箕子冢.” 其說不知何所傳焉, 而蓋因『史記』朝周語, 好事者增衍之也. 然箕聖之東來, 欲其守罔僕之志也, 武王就而封之,
  • 650362

    「書明娘詩帖後」 「書明娘詩帖後」 〔頭註:眞古文.〕 明兒一名照心月, 定州妓也. 年十餘, 判書尹公見而愛憐之, 贈之以詩, 有華屋深貯之約, 無何尹公卒, 而兒亦老於妓籍. 兒姿貌靘秀, 好文喜俠. 慕眞娘之爲人, 嘗以匹馬之朴淵, 酹其墓. 游安州, 會節度使新修百祥之樓, 入謁請讌以落
  • 650363

    「題明娘詩帖」 〔頭註:曾子固之詩, 亦堪編錄.〕 「題明娘詩帖」 〔頭註:宋王十媽, 浙西名倡. 新製紫金鳳釵, 欲以碧鏤珠飾之, 一時能致數斗. 時人謂王媽吐珠.〕 門前冷落舊人稀, 誰識當年吐碧璣, 惟有芳名堪可記, 我行朝自百祥歸.
  • 650364

    「與海西尹觀察書」 〔頭註:行古事, 綴古文.〕 「與海西尹觀察書」 肇暑, 伏惟台體旬宣百福. 僕曩過鳳山之杏亭, 見片麟奇居廬事感歎, 歷屢日未已, 且恨尙不爲執事擧也. 麟奇者鄕井賤民, 早喪父事母甚孝. 先五六年, 母病幾於殆, 麟奇泣禱天, 斫指取血以進母, 母由是獲甦. 至去冬而死,
  • 650365

    「送申儀父游關西序」 「送申儀父游關西序」 道有有於己, 而自然契遇於物, 未有無諸內, 而徒可借助於外. 若海上人之狎漚鳥, 司馬子長之資江山, 皆所謂道在內而其發偶有所契也. 漚鳥非足以忘機, 江山非足以爲文. 今有人, 又欲求忘機於漚鳥, 資文章於江山. 吾適見終身洲渚而鳥日遠, 足遍燕齊
  • 650366

    「送儀父游香山」 「送儀父游香山」 嘗聞東國內, 香嶽最爲高, 地同上黨脊, 峯匝蓮臺牢, 衆流爭一門, 千庵列周遭, 木魚響明月, 下方聽雲璈, 自昔方外士, 躋攀不知勞, 平生慕奇勝, 颯爾已二毛, 子今渡浿江, 袖有秋水刀, 逝將窮絶頂, 俯視滄溟濤, 軒擧躡太淸, 若士顧盧敖, 應憐人間
  • 650367

    「又」 「又」 昔子入金剛, 疏成山海還. 高人見境別, 用意文章間. 維時夏之首, 復將游西關. 西關始啓東, 箕檀闢人寰. 衣裳改鱗介, 文敎變蠢頑. 近者習尙異, 侈麗矜閭闤. 民風賤文儒, 墮地學馳彎. 男婦仰販商, 胥隷被文斕. 樓觀敞雲月, 聲伎穕髻鬟. 大都游翫者, 其樂不在山.
  • 650368

    「又」 「又」 含毬門外水斜灣, 鐵瓮城頭石壯關. 曾有車乘從亳社, 空傳玉帛赴塗山. 井田禾麥千年地, 太伯烟霞萬古顔. 往蹟浸湮悲恨在, 茫茫鴨水上雲間. 文章道得江山助, 東國江山浮碧樓. 暎野曉峯千林色, 浸城春浪膩於油. 家家顔色輕盧婦, 處處風光勝石頭. 他日共君重到去, 旗亭畵壁認
  • 650369

    「又」 「又」 〔頭註:少年乃有此可望.〕 三旬風雨病文園, 纔到湖邨更別尊. 芳草連天花又盡, 陽關西出客銷魂. 讀書萬卷亦無聞, 獨袖銅泉渡浿濆. 莫上高峰望代碣, 趙州城外盡秋雲. 檀君初降海日賓, 至今臺樹想精神. 一千四十餘年事, 須訪籤山採史人. 山行十日不辭勞, 揀石評泉到桔槹.
  • 650370

    무자년(1768, 영조 44) 겨울 이여고(李汝皐)와 묘향산을 유람하기로 약속했는데 조성뢰(曺聖賚)가 함께 가자고 언약하고 시일은 내년 2~3월 사이로 했다. 또 일찍이 박사안(朴士安) 형제와 사군(四郡)을 함께 찾아보자는 말을 했는데, 다 일이 겹쳐 가지 못했다.
  • 650371

    4월. 10일. 광성진(廣城津)을 건너 석정(石井)에서 묵었다. 이날 30리를 갔다. 광성진(廣城津):강화도호부(江華都護府)에 속한다. 김포(金浦)와 진의 사잇길로 통하는 곳에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정리고(程里考), 서지강화육대로(西至江華六大路)」)
  • 650372

    11일. 점심을 먹기 전에 철오포(鐵吾浦)와 양화도(楊花渡)를 건너서 성남(城南)에서 묵었다. 성뢰도 이미 먼저 출발해서 고개 너머 의원을 찾아갔다. 그가 남긴 별도의 글을 보니 마음이 몹시 아쉽다. 막내 동생 신대숙(申大䎘)이 왔다. 이날 90리를 갔다. 철오포(
  • 650373

    12일. 흐리고 흙먼지 날리고 바람이 붊. 주서(注書) 한사응(韓士凝)과 조헌진(曺憲振)이 왔다. 새벽에 숙부들을 따라 용호(龍湖)에 배를 띄우고 밤섬[栗島]에 들어갔다. 김농암(金籠巖)의 옛터를 마주하니 오래된 은행나무 6~7그루가 있어 들쭉날쭉 떨어져 서 있는데
  • 650374

    13일. 이성재(李聖載) 어른을 방문하여 묘향산의 일에 관해 상세히 들었다. 이에 묘향산이 눈 안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성재 어른이 “유람하는 데에는 기간을 정해서는 안 되네. 기간을 정하면 이미 분주하고 불안한 마음이 드러날 것이네.” 했다. 이건지(李建之)와 그
  • 650375

    14일. 성재 어른과 한사응, 지세(持世), 박신규(朴信圭), 이운승이 왔고 종숙부가 왔다. 조자구(趙子九)가 술을 가져와서 머물러 묵었다. 이선세(李善世) 어른도 왔다. 두보의 󰡐고산옹현청(高山擁縣靑)󰡑이라는 구절을 가져다 운을 나누어 이별을 읊었다. 읊은 사
  • 650376

    15일. 흐림. 동래 부사 구상(具庠) 백은(伯殷)과 조헌진이 오고 선세 어른이 또 왔다. 느지막이 출발하여 고양(高陽) 읍내에서 묵었다. 편지를 써서 두 아우와 정술(鄭述)에게 부쳤다. 이날 50리를 갔다.
  • 650377

    16일. 간혹 흐리고 큰바람이 붊. 고양을 일찍 출발하여 파주(坡州) 읍내에서 조반을 먹고 조현(朝峴)에서 말을 먹이고 개성[松京]에서 묵었다. 숭양서원(崧陽書院)을 배알했다. 거듭 온 지 이미 7년이 되었다. 서원에는 정몽주 선생의 화상이 있다. 지난해에 고쳐 그
  • 650378

    17일. 종일 음산함. 개성을 일찍 출발하여 남문 누각에 올랐다. 연경궁(延慶宮) 터를 지나 청석협(靑石夾)에 들어갔다. 안악(安岳) 군수의 행차를 만나 외가 선조의 사당에 배알했다. 금천(金川) 읍내를 지나다가 한림 홍빈(洪彬)을 만났는데 묘향산에서 돌아오는 길이
  • 650379

    18일. 아침에 흐림. 일찍 출발하여 옥류천(玉溜泉)을 구경했다. 옥류천은 총수산에 있는데 〔두주:이 단락 서두 부분의 글이 좋다.〕 산이 험준하고 풍치가 뛰어났다. 출발해서 대천(大川)에 이르니 모두 기이한 석벽이 늘어서있고 높이가 수백 척이었다. 석벽 위 바위
  • 650380

    19일. 일찍 출발했다. 동선령(洞仙嶺)을 넘었는데 동선령은 서관(西關)의 제일 요충지이다. 그다지 높고 험하지는 않더라도 좌우에 겹겹이 험한 봉우리이고 수목이 빽빽이 우거져 한 사람이 만 명을 대적할 만한 견고함이 있어 고개가 참으로 유명했다. 사인암(舍人巖)은
  • 650381

    20일. 저녁에 흐리고 바람이 붊. 이른 아침에 평안도 관찰사 어른에게 인사했다. 읍호루(挹灝樓)에 올랐으니 대동문의 문루이다. 북쪽으로 연광정이 겨우 몇 보 거리인데 정경은 훨씬 미치지 못하니 연광정이 그 승경을 독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조생(曺生)과
  • 650382

    21일. 아침에 천둥 치고 비 내리고 흐리더니 밤새 또 비가 내림. 조생이 왔다. 심부름꾼을 보내 찰방(察訪) 황성헌(黃聖憲)을 오게 했다. 이 사람은 일찍이 의주(義州) 막부에서 왕고(王考)를 모시던 사람인데 평양 사람이고 수염이 아름다우며 신장이 8척으로 비범한
  • 650383

    22일. 새벽에 비가 내려 아침까지 이어짐. 연광정에 올랐을 때 비 기운이 막 걷히니 강 안개가 숲에 비치는 것이 참으로 그림 같았다. 애련당(愛蓮堂)에 들어갔다. 애련당은 아름답다고 일컬어지지만 그다지 기이한 풍경은 없었다. 말을 빌려 묘향산으로 출발했다. 늦게
  • 650384

    23일. 아침에 흐림. 일찍 순안을 출발했다. 숙천(肅川) 읍내에서 조반을 먹었다. 숙녕관(肅寧館)에 들어가니 가운데 연못 정자가 있는데 이름은 󰡐열심(悅心)󰡑이니 서령아(舒靈阿)의 글씨이다. 옆에 종음(鍾音)의 칠언시 4구(句)가 있는데, 글씨는 미남궁(米南宮
  • 650385

    24일. 저녁에 흐리고 비가 흩날림. 아침에 백상루(百祥樓)에 올랐는데 이곳도 평안도의 이름난 누각이다. 왼쪽 언덕의 형세에 의지하여 매우 높고 탁 트였다. 청천강(淸川江) 이북의 산천은 아득하여 다함이 없다. 조반을 먹고 동문을 나서 청천강을 건너 이른바 소착(疏
  • 650386

    25일. 비가 그쳤다 내렸다 함. 일찍 출발하여 육승정(六勝亭)에 들어갔다. 육승정은 연못에 있는 정자이고 연못의 둘레는 수십백 보이다. 가운데에 채색한 누각이 있어 신선하여 볼 만하고 연못에 걸쳐있어 다리를 통해 왕래하며 연못 밖으로는 버드나무가 늘어져 그늘이 둘
  • 650387

    26일. 아침에 흐림. 일찍 마유현(馬逾峴)을 넘었다. 묘향산 푸른 봉우리를 바라보니 높이 솟아 위로 하늘을 찌를듯하고 빼어난 기운이 삼엄하게 닥치듯 밀려와 마치 사람을 엄습하는 듯했다. 이로부터 인가 울타리가 깨끗하며 산수가 아름답게 펼쳐져 수십 리 사이에 속세의
  • 650388

    27일. 아침부터 흐리다가 저녁에 비가 오더니 밤새 내림. 새벽에 서쪽으로 안심사(安心寺)에 올랐다. 2리를 가니 부도(浮屠) 수십 기가 있어 마치 무덤 무더기처럼 빽빽했다. 비문은 대부분 이름난 분이 짓고 썼다. 보제(普濟)의 비석을 읽었더니 이색(李穡)이 짓고
  • 650389

    28일. 아침에 비가 오다가 갬. 운무가 흩어졌다 모였다 하면서 언덕과 산을 휘감아 온갖 자태로 변하니 매우 아름다웠다. 다시 출발하는데 혜신 대사가 와서 전송했다. 검산방(黔山防)에 이르러 폭우와 큰 천둥 번개와 우박을 만나 사인(士人) 김옥겸(金玉兼)의 집에 투
  • 650390

    29일. 그믐. 비가 내림. 북원(北院)에서 조반을 먹었다. 대체로 묘향산에서 성천(成川)으로 가는 사람의 노정은 개천(价川)을 경유하는데, 개천의 무진대(無盡臺)도 이름난 볼거리이다. 그러나 내가 길을 떠나고부터 족인이 이미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고 나 또한 그를
  • 650391

    5월. 1일. 일찍 안주를 출발했다. 족인과 함께 성을 쌓는 곳에 이르러서 서로 헤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여러 차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사당이 남문 밖 왼편에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다. 주막에서 조반을 먹었다. 순천(順川) 읍내를 지나
  • 650392

    2일. 온정(溫井)에서 조반을 먹었다. 온정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목욕하는 사람과 마주쳐 결국 들어가지 않았다. 원천령(遠天嶺)을 넘으니, 민가가 정갈하고 소나무 울타리의 초가집이 자못 사람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큰 하천이 서북으로 급하게 흐르니 이것이 장차 비류강
  • 650393

    3일. 일찍 출발했다. 동문에 오르니 󰡐방선(訪仙)󰡑이라는 편액이 있었다. 길을 끼고 버들을 심은 것이 5리나 이어졌는데 모두 생기가 있으니 10여 년이 지나면 울창한 그늘을 기대할 수 있겠다. 강동(江東) 읍내에서 조반을 먹었다. 만류제(萬柳堤)를 거쳐 열파정
  • 650394

    4일. 흐림. 이른 아침에 권성일이 왔다. 같이 묵으며 8일에 함께 서울로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늦게 조제이(曺濟而)와 함구문(含毬門)을 나섰다. 이곳은 평양 외성(外城)으로 기자가 도읍한 곳이다. 궤도(軌道)가 종횡으로 나 있고 구역이 가지런하여 서직(黍稷)이 편
  • 650395

    5일. 흐림. 도사 신익(申熤)이 왔는데, 나에게는 종인(宗人)이다. 관서에서 옛 친구를 많이 만나니 또한 기이한 일이다. 공금정(控襟亭)에 올라가서 그네[秋千/鞦韆] 뛰는 것을 구경하려다가 의주 부윤이 와서 묵는다는 말을 듣고 하지 않았다. 공금정(控襟亭):원문은
  • 650396

    6일. 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맑음. 연광정에 올랐는데 이때 개수하는 공역을 시작했다. 마루 기둥이 이미 다 철거되고 흙과 목재가 어질러져있어 올라가는데 매우 방해가 되었으니, 내가 먼저 오거나 나중에 오지 않은 것이 유감스러웠다. 동지 황향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
  • 650397

    7일. 조생(曺生)이 와서 대동관(大同館)의 도사(都事)를 방문했다. 밤에 평안도 관찰사 어른을 맞이하여 응수헌(應酬軒)에 이르러 전별하는 술자리를 베풀었다. 서울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 650398

    8일. 평안도 관찰사 어른을 배알하러 간다고 고했다. 연신당에 이르니 늙은 기생 명아(明兒)가 시첩(詩帖)을 가져와 글을 써주기를 청했다. 그 얻은 시가 100여 축으로 큰할아버지의 시와 서한도 있었으니, 이는 문례관(問禮官)으로 의주에 갔을 때 써 준 것이었다.
  • 650399

    9일. 간혹 흐리고 비가 흩뿌림. 황주(黃州)에서 조반을 먹었다. 봉산(鳳山) 읍내에서 묵었다. 점술인 유은태(劉隱泰)와 그 제자 박준명(朴駿命)이 왔다. 이날 90리를 갔다.
  • 650400

    10일. 간혹 흐리고 비가 흩뿌리다가 밤에 뇌우(雷雨)가 내림. 일찍 출발했다. 권성일은 농장으로 방향을 바꾸었기에 마침내 그와 갈라졌다. 나그네 숙소에서 7일 동안 함께 지냈기에 갈림길을 만나니 마음이 애틋했다. 검수(黔藪)에서 조반을 먹었다. 서흥(瑞興)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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