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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0401

    11일. 아침에 흐림. 일찍 출발했다. 도중에 뇌우를 만났다. 총수(葱秀)에서 조반을 먹고 옥류천(玉溜泉)에 다시 들렀다. 마당(馬當)에서 묵었다. 이날은 흐리거나 비가 내려서 90리를 갔다. 마당(馬當):이덕무(李德懋)의 『아정유고(雅亭遺稿)』 권3 「계사추유기(
  • 650402

    12일. 아침에 뇌우가 심하게 내림.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도중에 또 뇌우를 만났다. 회란석(廻瀾石)을 구경했는데 고금천(古金川) 앞에 있었다. 석벽이 큰 내를 마주하고 수십 보를 구불구불 이어졌고 중간 석벽에 구멍이 나 있는데 산비둘기가 깃든 곳이다.
  • 650403

    13일. 아침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붊. 일찍 출발하여 경덕궁(敬德宮)에 들어갔다. 부조현(不朝峴)을 넘었는데 고개에 비각이 있어 󰡐고려충신부조현(高麗忠臣不朝峴)󰡑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 태조가 고려의 선위(禪位)를 받고 경덕궁에서 과거 시험을 보았는데 조현하지
  • 650404

    14일. 평양에서 타고 온 말을 돌려보냈다.
  • 650405

    22일. (묘향산을) 다녀온 일을 엮어 󰡐서정보(西程譜)󰡑라 이름 했다. 3개의 도를 거치고 11개의 강을 건너고 26개 군을 지났으며 32일이 걸렸다. 왕복 1,940리이다. 서정보 끝.
  • 650406

    정술인(鄭述仁)에게 답장하다 〔두주:천고의 의혹을 풀 만하다.〕 「정술인(鄭述仁)에게 답장하다」【이 세 편은 모두 평양에서 지었기에 함께 기록한다.】 보내온 편지에서 박읍(亳邑, 은나라 수도)에 기자의 묘가 있다는 이야기는 두예(杜預)에게서 나왔다. 두예는 “양국(
  • 650407

    명랑(明娘)의 시첩(詩帖) 뒤에 쓰다 「명랑(明娘)의 시첩(詩帖) 뒤에 쓰다」 〔두주:참 고문이다.[眞古文.]〕 명아(明兒)는 일명 조심월(照心月)이니 정주(定州) 기생이다. 10여 세에 판서 윤공(尹公)이 보고 사랑하여 시를 주면서 좋은 집에서 오래 행복하자는 약
  • 650408

    명랑의 시첩에 쓰다 〔두주:증자고(曾子固, 증공(曾鞏))의 시도 엮어서 기록할 만하다.〕 「명랑의 시첩에 쓰다」 〔두주:송나라 왕십마(王十媽)는 절서(浙西)의 유명한 창기이다. 자줏빛 금으로 된 봉황 비녀를 새로 만들고 푸른 옥을 새긴 구슬로 장식하려 하자, 일시에
  • 650409

    황해도 관찰사 윤공에게 보내는 편지 〔두주:오래된 일을 실행했기에 고문을 지었다.〕 「황해도 관찰사 윤공에게 보내는 편지」 초여름에 대감의 체후와 관찰사의 직임 수행은 편안하십니까. 제가 지난번에 봉산의 행정(杏亭)을 지나다가 편인기(片麟奇)가 시묘살이 하는 일을
  • 650410

    신의보(申儀父)의 관서 유람을 전송하는 서(序) 「신의보(申儀父)의 관서 유람을 전송하는 서(序)」 도는 자신에게 있지만 자연히 외물과 뜻이 통하고, 안에 없던 적이 없지만 그저 밖에서 도움을 받는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갈매기와 친하고 사마자장(司馬子長)이 강산
  • 650411

    의보가 묘향산에 가는 것을 전송하며 「의보가 묘향산에 가는 것을 전송하며」 嘗聞東國內 예로부터 들었네 동국에서는 香嶽最爲高 묘향산이 가장 높다 말하는 것을 地同上黨脊 땅은 상당의 산마루 같고 峯匝蓮臺牢 봉우리는 연화대 둘렀다네 衆流爭一門 온갖 물은 한곳으로 모여들며
  • 650412

    또 짓다 「또 짓다」 昔子入金剛 지난번 그대 금강산에 들어가 疏成山海還 산해소를 완성해 돌아왔지 高人見境別 고상한 이 특별한 경치 보았으니 用意文章間 뜻이 문장 사이에 있다네 維時夏之首 막 여름이 시작될 때 復將游西關 다시 서관 유람을 가는구나 西關始啓東 서쪽 관문
  • 650413

    또 짓다 「또 짓다」 含毬門外水斜灣 함구문 밖은 물 굽이쳐 흐르고 鐵瓮城頭石壯關 철옹성 머리는 웅장한 바위 관문이로다 曾有車乘從亳社 일찍부터 은나라 기자의 수레 왔는데 空傳玉帛赴塗山 공연히 폐백 전하러 도산으로 갔었구나 井田禾麥千年地 벼와 보리심은 정전은 천년의 땅
  • 650414

    또 짓다 「또 짓다]」 〔두주:소년은 그래도 이러한 가망이 있다.〕 三旬風雨病文園 한 달 동안 풍우 맞아 병이 든 사마상여는 纔到湖邨更別尊 호수 마을 이르자 곧 다시 이별의 술잔 나누네 芳草連天花又盡 방초는 하늘 이어지고 꽃은 또 다졌는데 陽關西出客銷魂 서쪽으로 양
  • 650415

    秋 渾室上京, 過鄭妹昏事於藍洞.
  • 650416

    九月 設庭試, 伯兄主爲初試, 其會試見落.
  • 650417

    十月旬後 一室捲歸沁中.
  • 650418

    十二月. 廿五日. 都政,【吏判李命植.】 父主拜繕工監監役.【以首擬下批, 劃差鐵物色.】
  • 650419

    廿八日. 監隷來沁中.
  • 650420

    正月. 初三日. 父主上京, 留藍洞.
  • 650421

    初四日. 仲母主喪出於海州本宅.
  • 650422

    十七日. 父主始行公. 是後連有入直‧差祭‧進排等公故.
  • 650423

    四月. 初一日. 父主劃差營繕掌務之任.
  • 650424

    初六日. 伯兄主發海州行, 爲運柩事也.
  • 650425

    十六日. 伯兄主陪喪行, 抵初亭, 停柩.
  • 650426

    五月. 初四日. 葬仲母主于道藏之原.【祔仲父主墓左而雙墳焉.】
  • 650427

    十五日. 父主行次沁中, 留八九日上京.
  • 650428

    六月. 三十日. 父主行次監中, 以營繕錢一千兩, 納于封不動庫, 仍解掌務.
  • 650429

    七月. 廿二日. 發京行.
  • 650430

    廿三. 抵京, 留里洞.
  • 650431

    九月. 初一日. 父主移次里洞.
  • 650432

    十月. 初一日. 父主又劃差掌務.
  • 650433

    十一日. 伯嫂氏喪出於義洞本宅.
  • 650434

    十一月. 初四日. 申時, 葬伯嫂于衿川道谷.
  • 650435

    十八日. 入泮村, 與權陽仲‧宋周卿做讀, 留廿餘日而罷.
  • 650436

    十二月. 廿二日. 父主行次監中, 又以營繕錢千兩, 納于封不動庫.
  • 650437

    正月. 命百官各書所懷以進. 父主以方冬工役, 事倍工半之意, 書進所懷.
  • 650438

    廿一日. 批曰, “爾言誠合, 使以時之義, 當留意矣.”
  • 650439

    二月. 廿六日. 發沁行, 翌日抵家.
  • 650440

    五月. 初一日. 發京行, 翌日抵里洞.
  • 650441

    初三日. 發廣山行.
  • 650442

    初六日. 還里洞.
  • 650443

    十一日. 文孝世子薨逝.
  • 650444

    十八日. 患輪行唐疹, 十餘日差安.
  • 650445

    廿九日. 父主差慶熙宮修理官, 逐日蕫役, 凡七十餘日而畢.
  • 650446

    六月. 初六日. 丑時, 室人生女于藍洞.【八歲而殤.】
  • 650447

    廿七日. 往隣洞, 偕尹生員愼‧李雅士憲英, 做賦三十首而止.
  • 650448

    閏七月. 廿一日. 父主換差鴨島色.
  • 650449

    八月. 初一日. 往桃洞, 與朴重耀‧重實兄弟及朴雅士錦源, 做表數十首而止.
  • 650450

    十一日. 父主行次鴨島, 以草薍監刈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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