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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351

    十四日. 洪奭周入直, 讀昨日自止三遍, 看『資治通鑑』十五板, 製太學恩杯詩. 曺錫中讀「離婁」下篇上半十遍·下篇下半三十遍, 合讀下篇一遍, 製進恩杯詩. 申絢製進恩杯銘, 讀「貨殖傳」自越王止王者埒富四十行五遍, 誦「舜典」·「召南」·「坤卦」一遍. 黃基天讀「游俠傳」自韓子曰止復出焉五十
  • 651352

    十五日. 曺錫中入直領賞, 讀「萬章」上篇上半二十遍. 申絢讀昨日自止三十五遍, 誦「大禹謨」·「邶風」至「匏有苦葉」·「屯」‧「蒙」二卦一遍. 洪奭周領賞, 直堂后. 黃基天讀「游俠傳」昨日自止三十遍. 金近淳進箋領賞, 午後退, 讀「貨殖傳」前自止二十遍.
  • 651353

    十六日. 金近淳追省記入直, 讀「貨殖傳」前自止十遍. 洪奭周仕進堂后. 黃基天讀「滑稽傳」六十遍, 誦「小旻什」至「何人斯」一遍. 申絢讀昨日自止十遍. 曺錫中讀「萬章」上篇上半十遍下半三十遍.
  • 651354

    十七日. 金近淳入直, 恩杯御製書役, 終日泮儒詩集校正. 洪奭周仕進堂后, 宿鑄所. 黃基天讀「貨殖傳」自老子曰止民乎三十六行十遍, 宿鑄所. 申絢『恩杯詩集』校正, 宿鑄所. 曺錫中『恩杯詩集』校正.
  • 651355

    十八日. 申絢入直, 『恩杯詩集』校正. 黃基天都政時以吏郎入侍. 洪奭周都政時入侍, 宿鑄所. 曺錫中都政時以吏郎入侍. 金近淳都政時入侍.
  • 651356

    十九日. 黃基天入直, 都政入侍. 申絢『恩杯詩集』校正, 宿鑄所. 洪奭周都政時入侍, 宿鑄所. 曺錫中都政入侍. 金近淳都政入侍.
  • 651357

    二十日. 申絢入直, 『恩杯詩集』校正監印. 金近淳都政入侍, 詩集監印. 洪奭周都政入侍, 『恩杯詩集』監印. 黃基天都政入侍. 曺錫中都政入侍, 『恩杯詩集』監印.
  • 651358

    二十一日. 金啓溫入直. 黃基天『恩杯詩集』監印, 讀「游俠傳序」十遍. 金近淳恩杯詩集監印, 退讀「貨殖傳前自止十遍, 看「黥布傳」一廻. 洪奭周恩杯詩集監印, 讀十四日自止二十七遍. 申絢『恩杯詩集』監印, 誦「臯陶謨」·「谷風」至「二子乘舟」·「需」‧「訟」二卦一遍. 曺錫中『恩杯詩集』監
  • 651359

    二十二日. 洪奭周入直, 『恩杯詩集』監印, 讀昨日自止十遍, 誦『詩傳』自「周南」止「豳風」一遍, 看『資治通鑑』四十二板. 黃基天『恩杯詩集』監印, 誦「周南」·「召南」·「豳風」·「鹿鳴什」·「商頌」一遍. 曺錫中『恩杯詩集』監印, 讀「萬章」下篇上半二十遍. 金近淳監印, 退讀「貨殖傳」
  • 651360

    二十三日. 黃基天入直, 『恩杯詩集』監印, 讀「游俠傳」自韓子曰止復出焉五十四行三十遍, 誦「北山什」一遍. 曺錫中讀「萬章」下篇下半三十遍, 合讀上下篇一遍. 洪奭周『恩杯詩集』監印, 讀自凡編戶之民止以曹邴氏也三十三行五十遍, 誦『詩傳』自「鹿鳴」止「都人士」一遍, 看『資治通鑑』四十一板
  • 651361

    二十四日. 曺錫中入直, 讀「告子」上下篇十遍, 『恩杯詩集』監印. 洪奭周讀自齊俗賤奴虜止非也三十七行五十遍, 誦『詩傳』自「文王」止「商頌」一遍, 看資治通鑑十九板. 金近淳讀「貨殖傳」昨日自止四十遍, 統讀前自止二遍, 看「田儋列傳」一廻. 黃基天『恩杯詩集』監印, 夜陪受誓戒班. 申絢讀
  • 651362

    二十五日. 金近淳入直監印, 製進春帖延祥詩. 曺錫中讀「盡心」上下篇十遍, 製進春帖延祥詩. 洪奭周『恩杯詩集』監印, 讀「貨殖傳」一遍, 誦『大學』·『中庸』各五遍, 看『資治通鑑』十一板. 黃基天製進春帖延祥詩. 申絢讀「貨殖傳」自凡編戶之民止非也六十三行三十遍, 誦「湯誓」·「仲虺之誥」
  • 651363

    가을 가을에 온 집안이 서울로 올라가 남동(藍洞)에서 정매(鄭妹)의 혼사를 치렀다. 정매(鄭妹):정동형(鄭東逈)에게 시집 간 막내 여동생을 가리킨다. 신현의 작은형인 신작(申綽, 1760~1828)이 저술한 『석천유고』 「정매묘지(鄭妹墓誌)」에서 이력을 확인할 수
  • 651364

    9월 ○9월에 정시(庭試)를 설행했는데, 큰형님이 초시(初試)를 보았고 회시(會試)에는 낙방했다. 정시(庭試):조선 후기에 경사(慶事)나 중대사(重大事)가 있을 때 특별히 시행하는 문무과이다. 초시(初試)와 전시(殿試)만 있었다. 이해 9월 26일 문효세자(文孝世子
  • 651365

    10월 10일 ○10월 10일 이후 온 집안이 모두 심중(沁中)으로 돌아갔다. 심중(沁中):강화도를 가리킨다.
  • 651366

    12월. 25일. 도목정사(都目政事)에서【이조 판서 이명식(李命植)이 주관했다.】 아버님이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수의(首擬)를 하비(下批)하여 철물색(鐵物色)에 획차(劃差)되었다.】 아버님이 … 임명되었다:『승정원일기』 1784년(정조 8) 1
  • 651367

    28일. 선공감 하예(下隸)가 심중에 왔다.
  • 651368

    1월. 3일. 아버님이 서울로 올라가서 남동에 머물렀다.
  • 651369

    4일. 중모(仲母)님이 해주(海州) 본댁에서 돌아가셨다. 중모(仲母)님:중부 신대익(申大翼, 1741~1762)의 처 순흥안씨(順興安氏, 1740~1785)이다. 신작의 『석천유고(石泉遺稿)』 「중모순흥안씨묘지(仲母順興安氏墓誌)」에서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 651370

    17일. 아버님이 처음으로 공무(公務)를 행했다. 이후 연이어 입직(入直)과 차제(差祭), 진배(進排) 등의 공무가 있었다.
  • 651371

    4월. 1일. 아버님이 영선(營繕) 장무(掌務)의 직임에 획차되었다.
  • 651372

    6일. 큰형님이 운구(運柩)하는 일 때문에 해주로 출발했다.
  • 651373

    16일. 큰형님이 상여를 배행하여 초정(初亭)에 도착하여 널을 멈추었다.
  • 651374

    5월. 4일. 중모님을 도장(道藏)의 언덕에 장사지냈다.【중부님 묘 좌측에 합사하여 쌍분을 만들었다.】 도장(道藏)의 언덕:강화도 진강(鎭江)에 위치했다.
  • 651375

    15일. 아버님이 심중에 행차하여 8~9일을 머무르고 서울로 올라왔다.
  • 651376

    6월. 30일. 아버님이 선공감(繕工監)으로 행차하여 영선전(營繕錢) 1천 냥을 봉부동 고(封不動庫)에 넣고 이어서 장무에서 해직되었다. 봉부동 고(封不動庫):물건을 유사시 외에는 쓰지 못하도록 창고에 넣고 굳게 봉하는 것을 말한다.(『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
  • 651377

    7월. 22일. 서울로 출발했다.
  • 651378

    23일. 서울에 도착하여 이동(里洞)에 머물렀다.
  • 651379

    9월. 1일. 아버님이 이동으로 옮겨왔다.
  • 651380

    10월. 1일. 아버님이 또 장무에 획차되었다.
  • 651381

    11일. 큰형수가 의동(義洞) 본댁에서 세상을 떠났다. 큰형수:큰형 신진(申縉, 1756~1835)의 처 연안 이씨(延安李氏)를 말한다.
  • 651382

    11월. 4일. 신시(申時)에 큰형수를 금천(衿川) 도곡(道谷)에 장사지냈다.
  • 651383

    18일. 반촌(泮村)에 들어가서 권양중(權陽仲)‧송주경(宋周卿)과 함께 책을 읽었다. 20여 일을 머무르다가 파했다. 송주경(宋周卿):송면재(宋冕載, 1764~미상)이다. 본관은 여산(礪山), 자가 주경(周卿)이고 부친은 송익상(宋翼庠)이며, 어머니는 김상효(金尙孝
  • 651384

    12월. 22일. 아버님이 선공감에 행차하여 또 영선전 1천 냥을 봉부동 고에 넣었다.
  • 651385

    1월. 백관들에게 각자의 소회를 써서 바치라는 명이 있었다. 아버님이 겨울철의 공역(工役)은 일은 곱절로 힘들고 공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생각한 바를 써서 바쳤다.
  • 651386

    21일. 비답(批答)하기를, “너의 말이 실로 합당하구나. 때에 맞게 부리는 의리에 대해 마땅히 유념하겠다.” 했다.
  • 651387

    2월. 26일. 심중(沁中)으로 출발하여 다음 날 집에 도착했다.
  • 651388

    5월. 1일. 서울로 출발하여 다음 날 이동(里洞)에 도착했다.
  • 651389

    3일. 광산(廣山)으로 출발했다.
  • 651390

    6일. 이동으로 돌아왔다.
  • 651391

    11일. 문효세자(文孝世子)가 훙서(薨逝)했다.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이다. 휘는 순(㬀),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784년(정조 8) 7월에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786년(정조 10) 6월 6일 5세의 나
  • 651392

    18일. 전염병인 당진(唐疹)을 앓았는데 10여 일만에 차도가 있었다.
  • 651393

    29일. 아버님이 경희궁(慶熙宮) 수리관(修理官)에 임명되어 날마다 일을 감독했는데, 70여 일만에 끝났다.
  • 651394

    6월. 6일. 축시(丑時)에 아내가 남동(藍洞)에서 딸을 낳았다.【8살 때 요절했다.】
  • 651395

    27일. 이웃 마을에 가서 생원 윤신(尹愼)과 아사(雅士) 이헌영(李憲英)과 함께 부(賦) 30수를 짓고 마쳤다.
  • 651396

    윤7월. 21일. 아버님이 압도색(鴨島色)으로 환차(換差)되었다. 압도색(鴨島色):선공감에 딸린 부서의 관원이다. 압도에서 나는 정완(正薍)‧초완(草薍)과 같은 초물(草物)을 관리했다.(『육전조례(六典條例)』 「공전(工典) 선공감(繕工監) 압도색(鴨島色)」)
  • 651397

    8월. 1일. 도동(桃洞)에 가서 박중요(朴重耀)‧중실(重實) 형제와 아사 박금원(朴錦源)과 함께 표(表) 수십 수를 짓고 마쳤다.
  • 651398

    11일. 아버님이 초완(草薍) 베는 것을 감독하는 일로 압도(鴨島)에 행차했다.
  • 651399

    26일. 초완 베는 일의 감독을 마치고 아버님이 압도에서 심중의 집에 행차했다가 10여 일을 머물고 서울로 올라왔다.
  • 651400

    9월. 18일. 다시 도동에 가서 세 벗과 함께 표 수십 수를 짓고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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