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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501

    4월. 10일. 외숙모님이 전염병으로 돌아가셨다.
  • 651502

    12일. 서울로 출발했다.
  • 651503

    15일. 집에 도착했다.
  • 651504

    5월. 3일. 음성(陰城) 관아로 출발했다.
  • 651505

    7일. 표임(豹壬)이 처음으로 천연두를 앓았는데 13일 만에 나았다. ○이달에 아버님이 서울로 올라가서 계속 머물렀다.
  • 651506

    6월. 2일. 큰아기[大阿只]가 천연두를 심하게 앓다가 죽었다.【작년 4월에 태어난 아이다.】 ○이달에 아버님이 괴산(槐山)의 살옥(殺獄) 사건의 사관(查官)을 했던 일로 심문을 받고 곧 방면되어 바로 관아로 돌아갔다. 아버님이 … 일로:음성 현감(陰城縣監)으로서
  • 651507

    8월. 10일. 정사(政事)에서【이조 판서 김문순(金文淳)이 주관했다.】 아버님이 강동 현감(江東縣監)에 임명되었다.【당시 강동의 전임 수령 윤서동(尹序東)이 관직(館職)으로 옮겨 임명되어 자리가 생겼다. 하교에 호서 수령 중에 가장 오래 근무한 자를 의망(擬望)하
  • 651508

    9월. 2일. 아내가 분만하여 딸을 낳았다. ○이날 아버님과 이 이형, 둘째 형님을 모시고 성천(成川)에 가서 강선루(降仙樓)에 올랐다. 다음 날 아버님은 관아로 돌아가고, 곧바로 이 이형‧둘째 형님과 함께 향산(香山)으로 출발하여 온정원(溫井院)을 들렀다. 은산(
  • 651509

    9일. 강동 관아에 돌아왔다.
  • 651510

    10월. 10일 전에 서울로 출발하여 15일 사이에 집에 도착했다. 달경(達庚)이 처음으로 천연두에 걸렸는데 증세가 자못 가볍지가 않았다. 보원탕(保元湯) 등의 약을 써서 13일 만에 무사히 나았다.
  • 651511

    19일. 큰형님이 내행(內行)을 모시고 강동 관아로 출발했고, 둘째 형수가 아이들을 데리고 따라갔다.
  • 651512

    11월. 8일. 큰딸아이와 젖먹이 딸아이가 처음으로 천연두에 걸렸는데, 젖먹이 딸아이는 증세가 위중하여 통증이 있은 지 며칠 만에 죽었다.【올해 9월에 태어난 아이다.】 큰딸아이는 13일 만에 나았다.
  • 651513

    12월. 1일. 큰딸아이가 천연두를 앓고 나서 후유증의 여파로 다시 덧나서 병이 깊어졌다. 연달아 약을 썼지만 효과가 없어 22일에 그대로 죽었다.
  • 651514

    24일. 두 딸을 금산(衿山)에 묻었다.
  • 651515

    2월. 24일. 갑경록(甲庚錄)【1794년(정조 18) 등과(始科)부터 1800년(정조 24) 말년까지.】 정시 초시(庭試初試)를 설행하여【자전(慈殿)의 나이가 50세가 되고 자궁(慈宮)의 나이가 60세가 되어 두 경사를 합쳐서 축하하기 위해 시행한 정시이다.】 이
  • 651516

    28일.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친림하여 문·무과 전시(殿試)를 설행했다. 어제(御題)는 ‘임금이 이르기를, 「너의 만수무강을 점치노라」라고 했다.[君曰卜爾萬壽無疆]’로 부(賦)를 지으라는 것이었다. 천자축(天字軸) 4번째 장으로 시권을 제출했다.【독권관(讀券官)
  • 651517

    29일. 비가 내렸다. 오후 출방(出榜) 결과 11인을 뽑았다. 이석조(李奭祚)·장성좌(張聖佐)【나이가 80세였기 때문에 특별히 급제시킨 것이다.】·류이좌(柳台佐)·신현(申絢)·홍낙준(洪樂浚)·김전(金銓)·이우형(李宇炯)·김철수(金喆修)·한치중(韓致重)·류원명(柳遠
  • 651518

    자전흡제5순자궁흡제6순합2경정시전시방목. 자전이 50세, 자궁이 60세가 되어 두 가지 경사를 합쳐서 열린 정시 전시(庭試殿試) 방목. 갑과 1인. 권준(權晙). 을과 2인. 윤동수(尹東壽), 이동만(李東萬). 병과 47인. 이윤겸(李允謙), 오태증(吳泰曾), 이석
  • 651519

    3월. 10일. 임금이 춘당대에 친림하여 합격자를 발표했다. 새벽에 들어가 홍패(紅牌)와 어사화(御賜花)를 받고 물러 나왔다. 이날부터 12일까지 삼일유가(三日遊街)를 행했다. 이날 한림권점(翰林圈點)에서 3점(點)을 받은 사람으로는 박종순(朴鍾淳), 박종경(朴宗京
  • 651520

    11일. 여러 신은(新恩)을 따라 사은(謝恩)하러 통화문(通化門) 안으로 들어갔다. 임금이 가마를 세우고는 신래(新來)들을 불러 앞으로 나오라 명하고 묻기를, “누구인가?” 하여 대답하기를, “신은 신현입니다.”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한림권점에서 너는 무
  • 651521

    12일. 신은알성(新恩謁聖)에 들어가 참배했다. 이날 오태증이 검열(檢閱)이 되고, 이존수가 내각 대교(內閣待敎) 겸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가 되었다. 신은알성(新恩謁聖):문무과 급제 후에 문묘(文廟)에 가서 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 651522

    13일. 둘째 형님이 달경(達庚) 모자(母子)를 데리고 강동(江東)으로 출발했다. 강동(江東):평안도 강동현으로 당시 신현의 부친 신대우(申大羽)가 강동 현감으로 재직 중이었다.
  • 651523

    15일. 계부님을 모시고 강동 관아로 짐을 꾸려 출발했다. 계부님:신대숙(申大䎘, 1750~1812)을 가리킨다.
  • 651524

    19일. 황주(黃州)에 이르러 서울로 돌아오는 서장관(書狀官) 정문첨(鄭文詹)을 만나 노차(路次)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한참 뒤에 파했다. 정문첨(鄭文詹):정동관(鄭東觀, 1762~1809)의 자(字)가 문첨(文詹)이다. 노차(路次):길 가는 중에 잠시 쉬기 위해
  • 651525

    20일. 평양(平壤)에 도착했을 때 강동 관아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다. 악수(樂手) 5명과 관례(官隷) 몇 사람이 와서 나를 접대했다.
  • 651526

    21일. 오후에 강동 관아에 도착해서 아버님을 뵈었다. 성천 부사(成川府使) 윤동만(尹東晩), 자산 부사(慈山府使) 윤이상(尹理相)이 와서 모여 잔치를 열었다. 며칠 술을 마시다가 파했다.
  • 651527

    4월. 14일. 서울 인편으로 이번 달 10일 전에 내가 초계문신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각(內閣)에서 보낸 관문(關文)이 도착해서 조만간 올라오라고 했는데, 지방에 있는 신임 초계문신을 재촉해서 올라오게 하라는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 651528

    신임 초계 강제문신(抄啓講製文臣) 좌목(座目). 【7일. 의정부 초계. 8일. 모두 사과(司果)와 사정(司正)에 제수되었다.】 강원(講員) 9인. 김근순(金近淳), 이존수(李存秀), 서준보(徐俊輔), 홍낙준(洪樂浚), 신현(申絢), 구득로(具得魯), 강준흠(姜浚欽)
  • 651529

    17일. 서울로 출발했다.
  • 651530

    18일. 큰형님이 금천(衿川) 산소에 가서 큰딸아이의 무덤을 광주(廣州) 산소로 이장(移葬)했다. 이날이 장사 지낸 날이라고 한다. 큰딸아이:1786~1793. 신현의 큰딸아이는 학질과 천연두를 앓다가 죽었다.
  • 651531

    22일. 집에 도착했다. 다음 날 웅어[葦魚] 2급(級)과 준치[鰣魚] 1미(尾)를 하사받았다.
  • 651532

    25일. 『강제절목(講製節目)』 1책을 하사받았다.
  • 651533

    28일.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친림하여 초계문신 친시를 행했다.【지방에 있던 초계문신이 모두 모였다.】 시(詩)·부(賦)·표(表) 세 과목으로 출제하여 부를 지어 올렸는데, 부제(賦題)는 ‘「기취」 8장은 오복을 갖추었다[旣醉八章備五福]’로 출방 결과 차중(次中
  • 651534

    30일. 삭서(朔書)에 해서 100자, 초서 20자를 써서 올렸다.【당하 문신(堂下文臣) 중에 40세 이하인 사람을 초계(抄啓)하여 매달 초하루에 삭서를 써 올리는데, 혹 전서(篆書)로 올리는 것은 40자만 쓴다. 시골에 있거나 혹 파삭(罷削)된 경우는 쓰지 않고,
  • 651535

    5월. 1일. 칠별선(漆別扇) 1자루[把]‧유별선(油別扇) 1자루를 하사받았다.
  • 651536

    2일. 희릉(禧陵) 단오제(端午祭) 찬자(贊者)에 임명되었다. 다음 날 선혜청(宣惠廳) 문밖 도가(都家)로 나가서 재계했다. 다음 날 새벽 궐하(闕下)로 나아가 향(香)을 따라 능소(陵所)에 나아갔다. 다음 날 새벽 예를 행하고 홀기를 읽고 제향을 파한 뒤에 돌아왔
  • 651537

    6일. 박종경이 올린 삭서의 종이가 너무 짧아 양식을 갖추지 못한 일로 인해 임금의 칙교(飭敎)가 있었다. 이에 신임 초계문신이 다시 삭서를 써서 올렸는데, 해서는 모두 『천자문(千字文)』을 베껴 쓰고, 초서는 모두 두보(杜甫)의 「북정(北征)」을 베껴서 올렸다.
  • 651538

    11일. 삭서 1,700자를 써서 올렸는데 출방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 상으로 간장지(簡壯紙) 1속(束)을 받았다. 이날 웅어 1급을 하사받았다.
  • 651539

    17일. 소금에 절인 밴댕이[蘇魚] 2급을 하사받았다.
  • 651540

    6월. 8일.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에 임명되어【수의를 하비했다. 실주서(實注書)는 정문시(鄭文始)가 의망되었다.】 즉시 당후(堂后)로 들어갔다. 저녁에 나와서 대루청(待漏廳)에서 묵었다. 〔두주〕 이번 달 당록(堂錄)이다. 4일. 홍문관 신록(弘文館新錄)에 부제학
  • 651541

    9일. 새벽에 여러 승지를 따라 입궐했다. 임금이 성정각(誠正閣)에 나아가 차대(次對)를 행했다. 대신과 비국당상을 인견했는데 내가 주서(注書)로 자리에 나아가 부복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주서는 나가서 대간(臺諫)이 패초(牌招)에 나올지 여부를 알아오도록 하라.
  • 651542

    11일. 병으로 체차(遞差)를 청하고 신시(申時) 후에 궐 밖으로 나왔다.
  • 651543

    13일. 과시(課試) 시제는 ‘삼성도 및 화성루 상량문[三星圖及華城樓上樑文]’【5월 초하루에 치렀어야 할 시험이다.】이다. 강원은 짓지 않았다.
  • 651544

    20일. 초계문신 중 강원 9인은 내각에 모여 시관(試官)과 「대학서」를 강론하고, 강설(講說)을 수정해서 올리라는 명이 있었다. 즉시 동료 9인과 내각으로 들어가서 시관 김희(金熹)·서용보(徐龍輔)와 「대학서」를 강론하고 문답한 말을 강설로 작성해서 올렸다. 그대
  • 651545

    21일. 강설이 전혀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다는 임금의 칙교가 있었다. 즉시 다시 수정해서 들이라는 명이 있어 다시 수정해서 저물녘이 되어서야 올리고 어두워질 때 파하여 돌아왔다. 다음 날 다시 칙교가 있어서 새벽에 내각에 들어가 두 시관과 다시 익히고 강론하여 강설
  • 651546

    24일. 지엄한 하교를 내리기를, “여러 문신의 강설이 모두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으니, 모두 금청교(禁淸橋) 냇물에 세초(洗草)하도록 하라.” 했다. 얼마 후에 다시 하교하기를, “강설은 아까울 것 없지만 그 강설한 내용은 경서이다. 금청교는 물이 탁하고 깨끗하지
  • 651547

    28일. 종묘(宗廟) 추향대제(秋享大祭) 봉조관(奉俎官)에 차정되어 서계(誓戒)를 받는 데에 나아가 참석했다.
  • 651548

    7월. 2일. 의정부의 이의(肄儀)에 참석했다. 다음 날 선혜청 도가(都家)로 나가 재계했다.
  • 651549

    5일. 새벽에 궐하(闕下)에 나아가서 향을 따라 종묘에 나아갔다. 이날 날씨가 더워 청심원(淸心元) 각 2환(丸)을 하사받았다. 다음 날 새벽에 예를 행하고 곧바로 파하여 돌아왔다.
  • 651550

    20일. 조석중‧이면승‧송면재‧윤치영 네 동료가 와서 모였다. 종일 조촐한 술자리를 차려놓고 『대학(大學)』을 강설하다가 저녁 무렵에 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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