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601

    8일. 새벽에 임금이 기곡대제(祈穀大祭)를 친히 거행하여 내가 축사로서 아헌관(亞獻官)과 종헌관(終獻官)에게 잔을 올렸다. 예식을 마치고 임금이 환궁한 뒤 모두 물러나 돌아갔다. 다음 날 정사에서 정언(正言) 부의에 들었다.
  • 651602

    13일.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친림하여 존호를 올리는 습의(習儀)를 행했으므로 흑단령을 입고 나아가 참석했다.
  • 651603

    15일. 오후 늦게 조석중·이면승·송면재·윤치영 4명의 동료 및 권준·조만원 두 동료와 함께 선혜청 도가에 가서 청결히 재계하고 하루 묵었다. 다음 날 새벽에 입궐했다. 임금이 명정전에 가서 옥책(玉冊)을 받아 친히 왕대비전에 올렸다. 이어서 경모궁에 행행하여 재계
  • 651604

    20일. 정사에서【이조 판서 서정수(徐鼎修)가 주관했다.】 정언에 임명되었다.【수의를 하비했다.】
  • 651605

    21일. 임금이 경모궁에 행행하자 즉시 궐에 나아가 사은하고 시신(侍臣)으로 반열에 참여했다. 궁문 밖에 이르러 반열을 이루고 왕대비전과 혜경궁을 기다렸다. 경모궁 행행으로 출궁하고 환궁할 때 모두 공경히 맞이했다. 임금이 환궁할 때 시신으로 반열에 참여하고 홍화문
  • 651606

    22일. 대간 박기정(朴基正), 집의 유운우(柳雲羽), 사간 정경조(鄭景祚), 장령 강문회(姜文會), 지평 이중련(李重蓮)·김효수(金孝秀), 헌납 심수(沈銖), 정언 홍낙민(洪樂敏)과 사간원 직방(直房)에 일제히 모여서 연명으로 올리는 차자를 논의했다. 이번 사면(
  • 651607

    23일. 어제의 동료들과 새벽에 대청(臺廳)에 이르렀는데, 정동준(鄭東浚)의 사안에 대해 발계(發啓)하는 일 때문이었다. 이전에 권유(權裕)가 상소에서 귀근(貴近)의 죄를 언급했지만 그 이름을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사에서 발계하지 못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권유가
  • 651608

    26일. 조참(朝參)에서 대계(臺啓)로 인하여 정동준의 직첩을 추탈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집의 최헌중(崔獻重)이 아뢰기를, “권유의 상소가 이미 나왔는데, 그사이 삼사에서 한마디 요청도 없으니, 입을 다문 삼사에게 책임을 물어 삭직(削職)하는 처벌을 내리십시오.”
  • 651609

    27일. 의금부에서 개좌하여 공초를 받았다.【판의금부사 조종현(趙宗鉉), 지의금부사 구익(具㢞), 동의금부사 이한풍(李漢豐)·홍의영(洪義榮)이 주관했다.】 전 정언 신현이 운운하기를, “저는 무식한 신진(新進)으로서 처음 대간의 자리에 들었는데, 격례(格例)를 전혀
  • 651610

    2월. 3일. 임금이 경모궁 춘향대제(春享大祭)를 친히 거행했다. 〔두주〕 이달 감시(監試)의 회시(會試)에서 둘째 형님이 낙방했다.
  • 651611

    6일. 전임 초계문신 10인·신임 초계문신 11인과 명을 받고 궐에 나아가【초계문신에서 파직되었더라도 또한 관대 차림으로 항상 사진(仕進)하는 것이 규례이다.】 춘당대에 입시했다.【영화당(映花堂)에 친림하여 시사(試射)했다.】 하교하기를, “이번에 『사기』와 『한서
  • 651612

    11일. 전·현임 초계문신 6인과 함께 명을 받고 감인소(監印所)로 가서【감인소는 선인문(宣仁門) 안에 있는데, 주조한 활자와 간인한 서적을 보관하는 곳으로 내각 소관이다.】 『사기』와 『한서』에서 뽑은 열전 등사본을 교정하고 저녁에 물러났다. 다음 날 새벽에 또
  • 651613

    15일. 미시(未時)에 큰형수가 딸을 낳았다. 파면 삭직된 사람들을 서용(敍用)하라는 명이 내려졌는데, 나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삭직된 두 관직 가운데 하나는 서용을 받고, 다른 하나는 받지 못했다.】
  • 651614

    16일. 새벽에 내각에 들어가 근친 정사(覲親呈辭)를 올리니【삭직당한 한 관직이 아직 서용 받지 못한 것을 모르고 정사를 올렸다.】, 말과 납약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각신(閣臣)이 내가 지금 삭직 중이니 정사를 올리는 것은 격례에 어긋나므로 일단 근행(覲行)을 늦추
  • 651615

    22일. 임금이 경모궁에 행행하여 고유제(告由祭)를 친히 거행했다.【원행 고유이다.】 〔두주〕 2월 26일. 1월 친시를 행했는데, 어제(御題)는 ‘반도 한 가지로 온갖 상서를 올리네.[蟠桃一朶獻千祥]’로 칠언율시를 짓는 것인데 지방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 651616

    윤2월. 9일. 임금이 자궁을 모시고 현륭원에 행행하면서 노량(鷺梁)에서 주정(晝停)하고 시흥(始興) 행궁(行宮)에서 묵을 때, 동료들과 융복을 갖춰 입고 강두(江頭)에서 공경히 전송했다.【이때 파면 삭직한 사람을 서용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나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 651617

    10일. 사근평(肆覲坪) 행궁에서 주정하고 화성(華城) 행궁에서 묵었다.
  • 651618

    11일. 임금이 화성 낙남헌(落南軒)으로 가서 문무과(文武科)를 설행하고, 이어서 방방(放榜)을 했다.
  • 651619

    12일. 임금이 자궁을 모시고 현륭원에 전알(典謁)한 뒤 화성 행궁으로 돌아와 성상(城上) 습조(習操)와 야간 습조를 행했다.
  • 651620

    13일. 임금이 봉수당(奉壽堂)에 가서 자궁에게 음식을 올렸다.
  • 651621

    14일. 신풍루(新豐樓)에 친림하여 사민(四民)과 진민(賑民)에게 쌀을 하사하고, 낙남헌에 나아가 양로연(養老宴)을 열었다.
  • 651622

    15일. 임금이 자궁을 모시고 환궁할 때, 사근(肆覲) 행궁에서 주정하고 시흥 행궁에서 묵었다.
  • 651623

    16일. 임금이 노량에서 주정하고 당일 환궁할 때, 동료들과 강두(江頭)에서 공경히 맞이했다.
  • 651624

    18일. 청파역(靑坡驛)에서 인마(人馬)가 와서 강동현(江東縣)으로 근행(覲行) 길에 올라【지난 달 정사(呈辭)로 인하여 내려갔다.】 8일 만에 관아에 도착하여 부모님을 뵈었다.
  • 651625

    19일. 정사에서 정언 부의에 들었다. 〔두주〕 윤달 26일. 친시가 열렸다. 어제(御題)는 칠언율시였는데, 지방에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 651626

    3월. 7일. 임금이 세심대(洗心臺)에 행행하여 조어연(釣魚宴)을 행했다. 초계문신이 모두 모시고 노닐었는데, 지방에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 651627

    18일. 임금이 읍청루(挹淸樓)에 행행했다.
  • 651628

    24일. 정사에서 지평 부의에 들었다.【이달 초계문신들에게 근수 장표(跟隨掌標)를 각 하나씩 하사했다. 문신들이 무시로 궐 안을 출입하지만, 한 명의 관례(官隷)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651629

    4월. 7일. 〔두주〕춘등 시사(春等試射)를 행했는데 지방에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어제(御題)는 ‘뜻이 활달했다.[意豁如也]’로 부를 짓는 것이었다. 이날 시사에 점수가 없는 자는 ‘어진 자는 활쏘기 하는 자와 같다.[仁者如射]’를 백구부(百句賦)로 지어 올렸다고
  • 651630

    17일. 대동역(大同驛)에서 인마가 와서 서울로 출발했다.
  • 651631

    24일. 집에 도착했다.
  • 651632

    25일. 내각에 들어가서 입래 단자(入來單子)를 올렸다.【지방에 있던 초계문신은 도성에 들어온 뒤에는 단자를 직접 올리라고 하교했다.】 웅어[葦魚] 1급(級)을 하사받았다.【또 준치[鰣魚]‧소금에 절인 웅어를 하사받았다.】
  • 651633

    26일. 임금이 경모궁에 행행하여 문안하는 반열에 참여했다가 즉시 돌아왔다. 이날 환조대왕(桓祖大王)‧의혜왕후(懿惠王后)를 영흥(永興) 본궁(本宮)에서 제향(躋享)했다.【올해는 환조대왕의 여덟 번째 회갑이기 때문에 이 예를 거행했다. 대신과 종백(宗伯)을 보내 섭행
  • 651634

    27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초계문신의 2월삭(月朔) 친시를 설행하여【어제(御題)는 ‘태상의 아내와 무엇이 다른가.[何異太常妻]’로 부를 짓는 것이었다.】 부를 지어 올렸는데, 출방 결과 차중(次中)을 받았다.【신봉조(申鳳朝)가 삼중(三中)으로 수석을 차지했고,
  • 651635

    29일. 정사에서 정언 부의에 들었다.
  • 651636

    5월. 1일. 절선(節扇) 2자루를 하사받았다. 다음 날 혜경궁 단오첩(端午帖)을 지어 올리는 초계문신으로 들어가 빈청(賓廳)에 모여서 4수를 지어 올렸는데, 2수가 뽑혀서 각각 5장씩 써 올렸다.
  • 651637

    3일. 정릉(靖陵) 단오제(端午祭)의 전사관 겸 대축(典祀官兼大祝)에 임명되어 즉시 봉상시(奉常寺)에 이르러 제물(祭物)을 받들고 능소(陵所)로 갔다.
  • 651638

    4일. 제물을 잘 준비하라고 신칙(申飭)했다. 저녁에 여러 제관이 향을 받아 나왔다.【헌관(獻官)은 이의강(李義綱)이다.】
  • 651639

    5일. 새벽에 여러 제관과 능에 올라 예를 거행할 때, 대축(大祝)으로서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하며 축문을 읽었다. 예를 마친 뒤 파하고 돌아왔다.
  • 651640

    6일. 밴댕이[蘇魚] 2급(級)을 하사받았다.
  • 651641

    6월. 18일. 혜경궁의 회갑 탄신일이자, 원자궁의 탄신일이다. 입궐하여 문안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치사(致詞)‧전문(箋文)‧표리(表裏)를 친히 드렸다. 이어서 연희당(延禧堂)에 이르러 자궁에게 음식상을 올렸다. 내외의 빈척(賓戚)이
  • 651642

    19일. 이때 둘째 형수가 강동(江東) 관아에서 딸을 낳았다.【문을 닫은 뒤 잠깐 사이에 낳았다고 한다.】
  • 651643

    20일. 이인(李䄄)이 도성에 들어오자, 대신이 차대(次對)를 청했는데, 엄지(嚴旨)가 내려져 도성 문밖으로 나왔다. 2품 이상도 엄지를 받고 도성 문밖으로 나왔다. 호동(壺洞) 이 판서 어른이 와서 머물렀다. 이날 이른 아침에 궐밖에 나가 윤행원(尹行元) 등의 상
  • 651644

    23일. 하교하기를, “심적(沁謫)을 이미 돌려보냈으니, 대신 2품 이상은 도성에 들어오도록 하라.” 했다. 2품 이상이 모두 도성에 들어왔고, 대신은 그길로 발길을 돌려 강교(江郊)로 향했다가 방향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날 정사에서 지평 부의에 들었다. 이
  • 651645

    26일. 여러 대신이 누차 엄지(嚴旨)가 내려졌다는 이유로 모두 올라와 서명(胥命)했다. 서명(胥命):대명(待命)과 같이 임금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 651646

    28일. 영의정과 우의정을 면직시키고, 시임과 원임을 모두 파직했다.
  • 651647

    7월. 15일. 정사에서 분병조 좌랑(分兵曹佐郞) 수의에 들었다.
  • 651648

    17일. 참판 숙부님이 이천(伊川) 관아에서 돌아가셨다.
  • 651649

    25일. 입궐하여 근친 정사(覲親呈辭)를 올렸는데【정사는 22일에 올렸고, 출발은 이날이다.】 말을 지급하라고 명이 내려지고 납약을 하사받았다. 오후에 청파역에서 인마가 와서 계부님과 누님을 모시고 강동 관아로 출발했다. 송도(松都)에 이르러 이 이형(李姨兄)과 함
  • 651650

    8월. 2일. 관아에 도착해서 부모님을 뵈었다.
ㆍ페이지 이동: / 13047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