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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651

    7일. 아버님 회갑 생신이다. 형제들이 단란하게 모여서 부모님을 모시고 술자리를 마련해 즐겁게 보냈다.
  • 651652

    9일. 도목정사에서【이조 판서 윤시동(尹蓍東)이 주관했다.】 정언에 임명되었는데【수의를 하비했다.】 즉시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체차해 주었다. 〔두주〕 8월 14일. 2월에 치른 친시를 다시 시험을 쳤는데 어제(御題)는 ‘패공은 북향으로 앉고, 항왕은 동향으로 자리
  • 651653

    27일. 어머님 생신이다. 형제들과 단란하게 모여 함께 모시고 지내며 술자리를 마련했다. 삼등 현령(三登縣令) 엄기(嚴耆)가 찾아왔다.
  • 651654

    9월. 8일. 정사에서【이조 판서는 위와 같다.】 정언에 임명되었다.【수의를 하비했다.】
  • 651655

    12일. 대동역(大同驛)에서 인마가 와서 누님과 둘째 형수를 모시고 서울로 출발했다.
  • 651656

    15일. 『갱재축(賡載軸)』 1책을 하사받았다.【이때 이르러 인출을 마치고 반사(頒賜)했다.】
  • 651657

    18일. 이동(里洞) 집에 도착했다. 다음 날 이동에서 각교(閣橋)의 새집으로 이사했다.
  • 651658

    22일. 대전(大殿)의 탄신일이다. 새벽에 만팔문(萬八門) 밖에 가서 문안했다. 여러 문신에게 전정(殿庭)에 나가 문안하는 예를 행하라는 명이 내려와 즉시 영춘헌(迎春軒) 앞뜰에 들어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른바 문안이란 것도 절차가 있으니, 절차대로 하라.”
  • 651659

    24일. 패초가 있었는데, 여러 대간과 패초를 어겨서 추고(推考)만 하라는 명이 있었다. 동료들과 수어청(守禦廳)에서 활쏘기 연습을 했는데, 이후 연이어 활쏘기 연습하는 모임이 있었다.
  • 651660

    26일. 임금이 영화당에 나아가 초계문신의 3월삭 과강(課講)을 시행하여 궐밖에 나아가 기다렸다.【시임 대간은 으레 응강(應講)하지 않았다.】 전교하기를, “초계문신 가운데 현재 대간 직임을 겸한 사람은 체차해 주어서 응강하게 하라.” 했다. 즉시 체직되어 궐에 참
  • 651661

    10월. 1일. 새벽에 입궐하여 동료 홍석주와 영화당(映花堂)에서 했던 강의(講義)를 편차(編次)하고 오후 늦게 물러났다.
  • 651662

    8일. 청파역(靑坡驛)에 가서 참판 숙부님의 반우(返虞)를 맞아 곡했다.
  • 651663

    11일. 임금이 선희묘(宣禧墓)에 행행할 때 동료들과 약현(藥峴)에서 공경히 전송했다. 그날로 환궁하여 대현(大峴)에서 공경히 맞이하고 저녁에 마치고 돌아왔다. 이날 내행(內行)이 강동(江東)에서 길을 떠났다.
  • 651664

    13일. 동촌(東村)에 가서 권 양중(權陽仲)과 이 군직(李君稷)을 만나 활쏘기를 했다. 권 양중(權陽仲):권준(權晙)의 자(字)가 양중(陽仲)이다. 이 군직(李君稷):이전수(李田秀)의 자(字)가 군직(君稷)이다.
  • 651665

    17일. 모화현(慕華峴)에 나가 내행의 행차를 맞이하고 해가 저물 때 도착했다.
  • 651666

    21일. 임금이 춘당대에 가서 신구(新舊) 초계문신이 9월에 치렀어야 할 친시(親試) 및 시사(試射)를 행하여【매번 3월과 9월에 춘추등(春秋等) 친시 및 시사를 행하는데, 신구 초계문신을 함께 시험했다. 이전의 두 차례는 모두 강동 관아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 651667

    22일. 환향책을 짓기 시작했다. 다음 날 전적(典籍) 부의에 들었다.【대사성 이만수의 자벽과(自辟窠)이다.】 자벽과(自辟窠):해당 관서의 장관이 자의(自意)로 관원을 추천,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 651668

    24일. 『어제환향책(御製還餉策)』 인본(印本) 1책을 하사받았다.
  • 651669

    25일. 신천 군수의 행차가 출발했다.
  • 651670

    30일. 환향책을 다 지어서 올렸다. 출방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송상렴(宋祥濂)이 삼중(三中)으로 수석을 차지했다.】
  • 651671

    11월. 5일. 집에서 ‘낙남헌(落南軒)’으로 부를 지어 올려【윤2월에 치렀어야 할 친시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신봉조가 이하(二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 651672

    9일. 집에서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中)을 잡아라.[惟精惟一允執厥中]’로 설(說)을 지어 올려【1월 과시(課試)의 시제(試題)이다.】 출방 결과 모두 외(外)를 받았다.
  • 651673

    10일. 왕대비전 탄신일이다.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51674

    12일. 동지이다. 입궐하여 만팔문(萬八門) 밖으로 가서 문안에 참석했다. 콩죽을 하사받고, 즉시 물러나 돌아왔다. 황장력(黃粧曆) 1건·중력(中曆) 1건을 하사받았다.
  • 651675

    15일. 집에서 ‘균역(均役)’에 관한 교서(敎書)를 지어 올려【1월 과시 외(外) 등급의 비교시(比較試)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김이영(金履永)이 삼하(三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비교시(比較試):과거 시험에서 동점자가 발생하여 우열을 가려야 할
  • 651676

    16일. 집에서 ‘조나라 모수가 자신을 천거했다.[趙毛遂自薦]’로 계(啓)를 지어 올려【2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김근순이 이하(二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또 ‘그 범의 눈길 얼마나 씩씩했던가.[虎視何雄哉]’로 칠언율시【1월 친시의 추시(
  • 651677

    17일. 새벽에 동료들과 입궐했다. 임금이 성정각(誠正閣)에서 어제(御題)로 ‘다시 술과 고기를 내려 주어 집에 돌아가 처자에게 주었네.[復賜酒肉歸遺細君]’로 부를 지으라 했다.【4월 친시이다.】 하교하기를, “근래 너희들이 지은 글은 전혀 볼만한 것이 없다. 이
  • 651678

    18일. 진시(辰時)에 집에서 ‘수역율(壽域律)’로 부를 지어 올렸는데【윤2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삼중(三中)을 받았다. 미시(未時)에 ‘정나라에서 자산으로 하여금 사명을 윤색하게 했다.[鄭敎子産潤色詞命]’로 서(書)를 지어 올려【4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삼
  • 651679

    19일. 집에서 ‘십만 군대 깃발 들고 장양에서 묵었네.[旌旗十萬宿長楊]’로 칠언고시를 지어 올렸는데【4월 친시로 김이영과 비교(比較)하는 시험이다.】, 출방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김이영은 삼중(三中)을 받았다.】
  • 651680

    20일. 하교하기를, “어고정초(御考正草)는 의리상 마땅히 존각(尊閣)해야 하는데, 문신들이 정초(正草)를 추심할 때 간혹 직접 받지 않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온당치 못하다.” 하여 즉시 각리(閣吏)를 시켜 각각의 집에까지 가져가 전하도록 했다. 어고정초(御考正草)
  • 651681

    21일. 밤에 집에서 ‘눌재족보(訥齋族譜)’ 서(序)를 지었는데【3월 과강의 비교(比較) 시험이다.】 출방 결과 삼중(三中)을 받았다.【같은 점수가 4인이었다.】
  • 651682

    23일. 밤에 집에서 ‘임포를 대신하여 매화를 아내로 삼아 혼인하다.[代林逋娶梅妻爲婚]’로 서(書)를 지어【5월 친시이다.】 출방 결과 삼상(三上)을 받았다.【황기천(黃基天)이 이하(二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 651683

    24일. 경증(景曾)이 와서 머무르며 『시경(詩經)』을 읽었다.
  • 651684

    25일. 각리(閣吏)가 정초(正草)를 가지고 와서 전했다. 집에서 ‘지방 유생을 대신하여 관학은 사문에 관계된 일 외에는 봉장을 올려 관원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끼치지 말라.[代方外儒生通館學事係斯文外愼勿封章以貽侵官之譏]’로 통문(通文)을 지어 올렸는데,【3월 과강인데
  • 651685

    26일. 집에서 ‘장진주(將進酒)’로 회문체(回文體)의 칠언절구를 지어 올려【1월 과강의 추시(追試)이다.】 출방 결과 삼중(三中)을 받았다.
  • 651686

    27일. 집에서 ‘경우와 이우 등이 세육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장을 올리다.[耕牛泥牛等乞禁歲肉事狀]’로 판결문을 지어 올려【3월 과시의 추시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를 받았다.【조만원이 삼하(三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밤에 또 ‘사치를 억제하는 방법[抑奢侈]’
  • 651687

    29일. ‘대풍가(大風歌)’로 칠언율시를 짓고, ‘칠덕무(七德舞)’로 오언율시를 지어 올렸다.【5월에 과시의 비교(比較) 시험이다.】 칠언율시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고【김이영이 삼상(三上)으로 수석을 차지했다.】 오언율시 출방 결과 삼중(三中)을 받았다.【최광
  • 651688

    12월. 6일. 납약 3종을 하사받았다. 밤에 집에서 ‘사기(士氣)’로 책략(策略)을 지어 올려【8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삼하(三下)로 수석을 차지했다.
  • 651689

    7일. 동료들과 입궐했다. ‘경술(經術)’을 책문(策文)으로 제출하라는 어제(御題)를 써 내리고, 귀가하여 지어 올리라고 명했다.【7월 친시이다.】 각각 책제(策題) 1책을 하사받고 즉시 궐 밖으로 나왔다. 이날 지난 월삭(月朔) 삭서(朔書)의 출방 결과 시관의 채
  • 651690

    8일. ‘경술’로 책문을 지어 올려 출방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최광태가 삼하일(三下一)로 수석을 차지했다.】
  • 651691

    9일. 집에서 ‘진연 제1작의 치사인 「왕모헌반도」[王母獻蟠桃進宴第一爵致詞]’로 칠언율시를 지어 올려【6월 친시이다.】 출방 결과 삼중(三中)으로 수석을 차지했다.
  • 651692

    10일. 입궐하여 정초(正草)를 받아 오고, 생치(生雉) 1수(首)·건시(乾柹) 1첩(貼)을 하사받았다.
  • 651693

    12일. 소목(燒木) 2단(丹)·숯 1석(石)을 하사받았다.
  • 651694

    13일. 중궁전 탄신일을 맞아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서 내각(內閣)에 나아가 포폄 좌기(褒貶坐起)에 참석하고 돌아왔다.【초계문신은 내각에 소속되므로 내각에서 포폄 좌기를 거쳤다.】 포폄 좌기(褒貶坐起):관원의 성적을 매기기 위해 모이는 자리이다.
  • 651695

    15일. 임금이 편전에 나와서 유생의 전강 및 초계문신의 친시를 시행했다.【8월 친시이다.】 어제(御題)는 ‘설궁에서 맹자를 만나다.[雪宮見孟子]’로 부를 짓는 것으로 각각 전정(殿庭)에서 지어 올렸고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신봉조가 삼중(三中)으로 수석
  • 651696

    16일. 윤시동(尹蓍東)이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 651697

    17일. 밤에 ‘휘어진 늙은 가지에 옥룡이 차가워라.[老枝擎重玉龍寒]’로 칠언율시를 지어 올려【9월 과시(課試)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 내일부터 초계문신 등은 내각에 일제히 모여 그대로 유숙하면서 제강(製講)을 마치고 나가라는 하교가 있었다.
  • 651698

    18일. 새벽에 동료들과 입궐했다. 하교하기를, “문신들은 소유사(大酉舍)와 대유사(小酉舍)【내각에 있는 당호이다.】에 나누어 거처하면서 응제(應製)하도록 하라.” 하고, 즉시 ‘다섯 재상과 한 어옹[五相一漁翁]’으로 부를 지으라는 어제(御題)를 내렸다.【11월 친
  • 651699

    19일. 묘시에 ‘한낮에 시장을 만들다.[日中爲市]’로 칠언율시를 지으라는 어제(御題)를 내렸다. 지어 올려서 차상(次上)을 받았다. 바로 또 ‘오색 붓[五色筆]’으로 오언율시를 지어 올려 삼하(三下)를 받았다. 바로 또 ‘관대한 조서[寬大書]’로 칠언율시를 지어
  • 651700

    20일. 임금이 춘당대에 가서 도목정사를 행했다. 이조 판서 심환지(沈煥之)·이조 참의 박종갑(朴宗甲)이 참석하고, 아울러 12월 초하루에 치렀어야 할 친시를 행했다. 어제(御題)는 ‘춘첩(春帖)’을 오언율시로 지으라는 것이었고, 글을 지어 올려 삼중(三中)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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